# 33 32. 은화의 폭우 ──────────────── 마르쿠스가 그토록 자신했던 신형마차는 언뜻 봐서 구조적으로 달라진 점은 없었다.
감상을 듣기 위해 부른 셉티무스와 셀리니는 물론 중간에 합류한 다나에도 뭐가 달라졌는지 선뜻 찾아내지 못했다.
한참을 살피던 다나에가 자신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이전에 타던 마차보다 좀 더 육중해 보이네요?"
"맞아. 마차가 가벼우면 속도는 늘어날지 몰라도 안정감이 떨어지거든. 포장된 도로에서는 무게가 무거울수록 승차감도 좋고, 안정도도 높아져. 물론 너무 무거우면 움직임이 둔해지니까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지."
이번 신형마차는 부유한 귀족들에게 판매할 고급형을 우선으로 생산했다.
무게를 늘린 덕분에 마차의 문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좌석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일 수 있었다.
실제로 마차에 앉아본 셀리니와 다나에는 앉는 느낌도 좋고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마차를 둘러보는 셉티무스는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무게를 늘리면 안정적으로 되는 건 당연하겠죠. 하지만 그러면 말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겠습니까? 다른 장인들이 지금까지 무게를 늘리지 못한 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좋은 지적이야. 당연히 무작정 무게를 늘리면 안 되지. 말들이 마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힘을 발휘하게 해줘야 해.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거야."
마르쿠스가 신호를 보내자 비트루비우스가 신형마차에 말들을 연결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셉티무스는 이내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마차와 말을 연결하는 도구가 바뀐 건가요?"
"그래. 정확히 말하면 마구를 대대적으로 교체했어. 당연히 이것도 특허로 등록할 생각이고."
"목에 걸던 줄이 가슴 쪽으로 옮겨졌군요."
"정확히 봤어. 견인 점이 목이 아니라 어깨 위에 오도록 했어. 이렇게 하면 아무리 무거운 짐을 끌어도 말의 목에는 아무런 압박이 걸리지 않게 돼. 당연히 훨씬 더 많은 힘으로 짐을 끌 수 있게 되는 거지. 이 마구를 쓰면 마차를 끌 때는 물론 화물 운송에도 엄청난 혁신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거야."
고대에 사용한 마구는 말의 목 부위에 줄을 거는 조악한 구조였다.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도 목이 아닌 등 쪽으로 줄을 거는 현대인들에게는 심각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형태였다.
로마인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끌채에 멍에를 부착해 말에 가해지는 압박을 줄이려고 했지만, 그리 큰 효과는 없었다.
마르쿠스는 말들의 목을 조르는 마구를 보자마자 마차와 함께 이를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개념만 알고 있으면 전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실제로 서양에서도 마르쿠스가 만든 구조의 마구가 중세부터 널리 사용됐다.
이 마구의 개선은 단순히 말들이 짐을 더 잘 끌게 됐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들의 노동력이 훨씬 증가한 만큼 이제 화물 운송만이 아닌 농업에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신형마차가 로마 전역에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이 마구는 몇 년 안에 기존의 물건을 전부 대체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마차의 파급력도 그리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말들이 모는 마차를 타본 셉티무스와 다나에, 셀리니는 개선된 승차감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엉덩이가 안 아파요!"
"이거라면 마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는데도 부담이 없겠네요. 이제 피곤하면 그냥 눈을 붙이면 되겠어요."
"도련님께서 자신만만하셨던 이유를 알겠습니다. 이건 귀족들과 기사계급이 군침을 흘릴만한 물건이 확실합니다. 어마어마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겠어요."
초기 단계의 서스펜션일지라도 아예 없는 것과 있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거기에 기존보다 차체의 무게를 늘려서 안정감도 더했으니 그 차이는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제강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코일 스프링을 이용하겠지만, 일단 지금만으로도 혁신이라 칭하기엔 충분했다.
마르쿠스는 여기에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수를 한 가지 더했다.
바로 마차에 큼지막하게 박아둔 독수리가 새겨진 방패 모양의 로고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장식의 일환이라 생각했는지 이 부분을 가장 늦게 주목했다.
마차에서 내린 셀리니가 정교하게 새겨진 로고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련님, 이 장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브랜드 마크···아니, 노탬 마캄이야. 우리 가문에서 만든 최고급 마차라는 걸 증명해주는 상징이지."
다나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면 다른 마차에는 저 마캄이 들어가지 않는 건가요?"
"물론 보급형 마차에도 우리 가문에서 만들었다는 문장을 넣긴 할 거야. 다른 곳과는 차원이 다른 품질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저 독수리 문양의 방패 마캄은 정말로 비싼 상등품이 아니면 넣지 않을 거야. 그러면 누구나 쉽게 탈 수 없는 마차라는 상징성이 훼손되잖아."
순진한 셀리니는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셉티무스와 다나에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로고는 이 시기에도 당연히 있었다.
당장 로마군은 독수리를 자신들을 상징하는 징표로 삼았다.
차후 이 독수리 문양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다른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후 역사상의 숱한 황제들이 로마 제국을 계승했다는 의미로 이 문양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다.
심지어 로마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명권에서조차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독수리 문양을 사용했다.
이렇듯 무언가를 상징하는 표식은 익히 사용되고 있었으나, 물건의 생산자를 증명해주는 방식의 로고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현대에서 브랜드 마크는 너무나 익숙해 간과하기 쉽지만 이게 가지는 효과는 엄청났다.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 인식은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어떤 브랜드가 특정 제품을 상징하는 수준까지 가게 되면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는 게 가능하다.
마르쿠스는 로마인들이 마차와 수레를 구매하려고 하면 바로 자신의 브랜드가 떠오르도록 각인시킬 계획이었다.
특히 부유층에게 판매할 마차는 허영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고유의 브랜드 마크를 사용했다.
이는 현대의 자동차 회사가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운영하는 방식을 참고한 것이다.
마크 디자인은 마르쿠스가 전생에 꼭 타보고 싶었던 유명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 한 가지를 골랐다.
처음엔 삼각별의 형태를 쓸까 했지만, 그래도 로마이니 이탈리아에 있는 회사의 문양을 참고하기로 했다.
방패를 배경으로 새겨진 말의 문양이었다. 마르쿠스는 그걸 살짝 변화시켰다.
말을 독수리로 바꾸고 마르쿠스의 약자인 MLC를 브랜드 마크 하단에 새겨두었다.
'영락없는 표절이긴 해도 뭐···지금은 그 회사가 없으니까.'
부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이 있다.
이건 딱히 잘못된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특히 명문 가문일수록 이런 허영심이 더 강했다.
공화정의 귀족은 중세처럼 신분만으로는 평민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다.
평민들도 얼마든지 재력과 실적이 뒷받침되면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의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들이 일반 평민들과는 구별되는 존재라는 걸 언제나 드러내고 싶어 했다.
마르쿠스가 만든 최고급 마차는 이런 귀족들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최고의 홍보 효과를 내줄 사람에게 이 초기 제품을 선물했다.
바로 폼페이우스였다.
유서 깊은 명문 귀족에 다른 귀족들과도 구별되고 싶어 하는 허영심까지.
폼페이우스야말로 이 마차를 로마 부유층에 홍보해줄 최고의 광고모델이었다.
"이 특별한 마차는 현재 로마에 단 한 대밖에 없습니다. 폼페이우스 님이 이 마차를 타고 다니시는 로마 최초의 귀족인 셈이죠."
"하하하, 이런 물건을 그냥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군."
실제로 마차를 타본 폼페이우스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평생 체험해본 적이 없는 부드러운 승차감이 우선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물건을 자신만이 사용하고 있다는 우월감이 그를 한껏 들뜨게 만들었다.
이후의 일은 전부 마르쿠스의 계획대로 되었다.
폼페이우스는 어딜 가더라도 이 마차를 타고 다녔고, 만나는 귀족들에게 마차의 뛰어난 승차감을 자랑하기 바빴다.
실제로 동승해본 귀족들은 자신들도 질 수 없다는 마음에 앞다투어 마차를 주문했다.
그렇게 귀족들은 하나둘씩 마르쿠스의 마차를 구매했고, 보란 듯이 이걸 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자연히 주문량이 폭증했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긴 대기열이 형성됐다.
마르쿠스는 일부러 공급량을 조절해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만 상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주문 시기를 놓친 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자네, 이번에 새로 나온 마차 타보았나?"
"아니. 주문은 넣었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다음 달에나 돼야 받을 수 있다는군."
"허허, 나는 다음 주면 온다고 하던데 아주 기대가 크네."
"정말인가? 부럽구만 그래. 나도 진즉 주문을 넣었어야 했는데···마누라가 자기만 신형 마차를 타지 못했다고 어찌나 앓는 소리를 해대던지 돌아버릴 지경이라네."
"쯧, 꼭 우리 집 풍경을 보는 것 같군. 나도 딸아이가 어찌나 졸라대던지."
"그래도 타본 사람들 말로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일세. 한 번 타보면 이전의 마차로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고 하니까."
"허···정말 그 정도일까? 빨리 나도 받아봤으면 좋겠군."
결국 방패 문양 독수리가 새겨진 마차는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로마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
성과를 낸다면 앞으로는 그 어떤 일도 미리 보고하지 않아도 좋다.
크라수스는 마르쿠스와 맺은 약속을 그대로 이행했다.
"네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리고 있는지는 들었다. 정말 너는 나를 끊임없이 놀라게···아니, 이제는 이런 말도 지겹구나. 그냥 앞으로는 네가 어떤 놀라운 일을 하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려고 한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정진하겠습니다."
"밀의 전매는 솔직히 나도 조금 부정적이지만···간섭하지 않기로 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아라."
"예. 믿어주신 만큼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크라수스는 마르쿠스의 능력을 믿고 이제 실무에서 거의 손을 떼기로 했다.
집정관 임기와 상관없이 앞으로 가문의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마르쿠스일 것이다.
어차피 사업의 핵심적인 인력들도 전부 마르쿠스의 색으로 물든 지 오래였다.
크라수스가 돌아온다고 해도 밑의 사람들이 어색해할 가능성이 컸다.
그 역시 어렴풋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사업의 실권을 완전히 거머쥔 마르쿠스는 거침없이 기존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한창 추진 중인 밀의 전매도 규모를 한층 더 키우기로 했다.
음지에서 대신 움직여줄 수족도 이미 구해놓았다.
셉티무스가 추천한 타디우스라는 젊은 상인이 마르쿠스의 대리로 밀을 사재기하기로 했다.
그는 인성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약삭빠르고 셈에 능한 자였다. 그러면서도 너무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 신중함도 갖추고 있었다.
마르쿠스가 써먹기 딱 좋은 인재였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도록 계약 부분은 철저하게 신경을 썼다.
타디우스가 배신할 낌새를 보인다면 얼마든지 그를 파멸시킬 수 있도록 약점을 틀어쥐었다.
타디우스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계약에 응했다.
"돈을 버는 데는 응당 위험을 감수해야지요. 어차피 제가 허튼짓만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건 없고, 말만 잘 따른다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데 그까짓 게 대수겠습니까."
오히려 목줄을 맡김으로써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처세술이다.
마르쿠스의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었으니 당연히 대환영이었다.
이런 자질구레한 계약 외에도 그가 할 일은 점점 더 불어만 갔다.
워낙 벌려놓은 일이 많았던 까닭이다.
날이면 날마다 마르쿠스는 다나에와 셉티무스를 대동하고 사업장을 둘러보았다.
스파르타쿠스도 최근 경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함께 마르쿠스의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날도 마르쿠스는 기술자들의 공방에 들러 보고를 받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는 한결 편안해진 마차에서 꾸벅꾸벅 졸던 그는 다나에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에 눈을 떴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 있네요. 무슨 행사라도 열리는 걸까요?"
"글쎄.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다나에의 말대로 거리 한쪽에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축제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어조는 꽤나 살벌했고, 한편으로는 절박해 보이기도 했다.
호기심이 생긴 마르쿠스는 마차를 세우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 중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호소하고 있는 이들은 로마 주민이 아니었다.
말에서 진하게 새어 나오는 남쪽의 방언을 봐서는 시칠리아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화살처럼 마르쿠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친애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이런 이유로 저희 시칠리아 주민들은 전 시칠리아 총독 가이우스 베레스를 강하게 규탄하는 바입니다. 시칠리아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부디 로마 시민들께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마르쿠스는 바쁜 일정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던 중대한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가이우스 베레스···그래, 하마터면 깜빡 잊어버리고 지나칠 뻔했어.'
기원전 70년 로마를 가장 들썩이게 만들었던 사건의 주인공은 폼페이우스도, 크라수스도 아니었다.
속주민들이 전임 총독을 고발해 재판장에 세운 전대미문의 사건.
신참자인 키케로의 명성을 로마 전역에 떨치게 만든 베레스 재판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시칠리아 주민들을 바라보는 마르쿠스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