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 베레스 재판 (38/326)

  # 38 37. 베레스 재판 ──────────────── 오스티아 항구부터 시칠리아까지.

  생각보다 먼 여정이었다.

  배 여행의 낭만 같은 건 하루도 못 가서 지루함과 짜증으로 변해버렸다.

  파도가 그리 심하지도 않았는데 이놈의

  2단 갤리선인 리부르니안은 엄청나게 흔들렸다.

  마르쿠스는 한쪽 구석에 축 늘어진 채로 뱃멀미의 후유증을 달래야 했다.

  그는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뛰어 배에서 내렸다.

  신기하게도 땅에 내려오자마자 핑핑 돌던 머리가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하아···젠장, 이제야 좀 살겠네."

  "도련님이 이렇게 뱃멀미가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배는 생전 처음 타보는 거라서.

  다음에 탈 때는 조금 더 익숙해져 있겠지.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스파르타쿠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르쿠스의 등을 조심스레 두드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키케로는 미리 만나기로 했던 의뢰인과 접촉했다.

  시칠리아 대표단에서도 가장 발언권이 강한 히케타스라는 인물이었다.

  키케로는 시칠리아 재무관을 역임하던 시절부터 그와 안면이 있었다.

  성실하고 올곧은 히케타스는 예전부터 키케로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주신 데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

  "

  "고맙네.

  자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군.

  일단 내 일행이 수배해 둔 마차와 인력이 있으니 자네는 증인과의 접선을 도와주게.

  "

  "예.

  그런데 기소 수임료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고액 의뢰는 예술품으로 보수를 지불하는 게 관례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렇지."

  로마의 변호사들 사이에서 현금거래를 하지 않는 건 거의 철칙과도 같았다.

  로마의 법률상 변호사들은 사례금은 받을 수 있어도 수임료는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벌서

  200년 전에 확립된 원칙이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가 돈을 좇아 일한다면,

  정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사회적 관념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당연히 실력 있는 변호사들은 사례금을 빙자한 수임료를 받아 재산을 축적했다.

  불법인 보수를 챙기는 것이니 감찰관에게 꼬리가 쉽게 잡힐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변호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임료는 예술품이었다.

  현금화도 쉽고,

  저장기간이 길어져도 가치변동이 적은 까닭이다.

  예술품을 이용한 자금세탁의 기원은 이토록 머나먼 고대까지 거슬러 오는 것이다.

  히케타스가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정도 고생을 하셨으니 당연히 사례를 지불해야 하겠지만···저희 쪽에 남은 예술품이 거의 없습니다.

  전부 베레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

  "그놈 참 악랄하게도 챙겼나 보군.

  그 저택에 있는 으리으리한 예술품들이 전부 총독 시절에 횡령한 것들이었을 줄이야.

  "

  키케로는 전에 보았던 베레스의 호화저택을 떠올리고 혀를 내둘렀다.

  예술적 혼이 투철해서 저택을 골동품 가게처럼 꾸며놓았나 싶었는데 그게 전부 도적질한 물건이라는 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의원님, 사정이 이러니 예술품 대신 다른 가치 있는 물건을 구해보겠습니다.

  정 안되면 감찰관에게 걸리지 않는 방식으로 현금을······.

  "

  "아아, 그럴 필요 없네.

  여기 오는 동안 내 일행과 수임료를 어떻게 받을지 이미 의논을 해놨으니까.

  "

  키케로가 이제 좀 혈색이 돌아온 마르쿠스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7월에 있을 선거에서 안찰관 자리를 노리고 있네.

  안찰관의 절반은 평민이 담당하게 되어 있으니 당선은 거의 기정사실이라 봐도 될 걸세.

  그런데 문제는 내가 당선 후에 다른 귀족들처럼 돈을 허공에 뿌려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란 것이지.

  "

  안찰관은 도로나 건축물,

  공공사업 등을 관장하는 상임 정무관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일반 행정만을 수행하는 직종은 아니다.

  이들의 관할 범위에는 축제와 공공 오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건축물의 보수는 물론 축제의 개최까지 사비로 충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후 법무관이나 집정관까지 당선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인기를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케로는 아직 그 정도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빚을 내면 가능하겠으나 법의 인간인 그는 거액의 빚을 지는 걸 꺼려했다.

  여기에서 마르쿠스는 안찰관의 업무 중에는 식량공급도 있다는 사실을 키케로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키케로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수임료를 받아야 할지 꿰뚫어 보았다.

  "그러니까 수임료는 밀로 받겠네.

  내가 직접 받는 게 아니니 수임료라기보다는 사례금에 가깝겠군.

  내가 안찰관으로 일할 내년에 로마에 파는 곡물의 가격을 인하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네.

  "

  "그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지요.

  정말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

  "물론.

  곡물이 풍부한 시칠리아에 있는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로마는 밀 가격에 굉장히 민감하거든.

  축제 따위 아무리 열어봐야 곡물가를 잡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

  "하지만 굳이 수임료로 지불하지 않더라도 저희는 감사의 의미로라도 밀의 공급가를 낮췄을 겁니다."

  "그러면 원래 생각했던 그 가격에서 조금만 더 낮춰주게나."

  히케타스는 그 자리에서 즉각 계약서를 작성했다.

  밀값을 아무리 낮춘다고 해도 베레스에게 보상금을 받아낸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베레스가 수탈해간 금액과 예술품은 어마어마했다.

  "조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실 생각이십니까?

  제 생각으로는 파노르무스 항구나 릴리바이움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시라쿠사이와 메사나에 먼저 갈 겁니다."

  마르쿠스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히케타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예?

  그쪽은 베레스와 한통속인 도시입니다.

  수탈의 증거를 찾기는 어려울 텐데요.

  "

  "대신 협잡의 흔적을 찾아내기는 쉽겠지요.

  그리고 아무리 도시가 베레스와 결탁했다고 해도 모두가 이익을 균등히 가져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득을 충분히 챙기지 못한 사람은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상당한 불만이 쌓여 있겠죠.

  그럼 대가를 조금만 줘도 입을 술술 열게 되어 있습니다.

  "

  "아···그것도 그렇겠군요."

  "그리고 베레스의 처남 루키우스가 시칠리아의 현 총독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미 우리가 올 것을 예측하고 대비를 해놓고 있을 겁니다.

  저들이 예상하지 못한 동선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어요.

  "

  시칠리아는 넓다.

  아무리 루키우스가 총독이라고 해도 단기간에 모든 지역을 단속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연히 키케로에게 동조할 자들이 많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신경쓸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는 이런 상식의 허점을 찌를 생각이었다.

  히케타스에게는 릴리바이움에서 최대한 많은 증인들을 끌어 모으라고 말해놓았다.

  그가 소란스럽게 움직이면 루키우스의 시선도 자연히 그쪽에 쏠릴 것이다.

  그만큼 마르쿠스와 키케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마르쿠스는 미리 구해놓은 마차를 타고 키케로와 함께 시라쿠사이로 향했다.

  혹시 몰라서 대동한 호위들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오도록 명령해 놓았다.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은 스파르타쿠스뿐이었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나올 까 싶어 허름한 옷을 입히고 얼굴에는 숯도 칠해 놓았다.

  이렇게 해놓으니 마르쿠스는 건장한 노예 한명을 데리고 여행하는 평범한 가문의 자제로 보였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키케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같이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예상보다 베레스의 견제가 훨씬 심할 것 같아서 내심 불안했거든.

  "

  "아마 폼페이우스 님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금 방심해줬으면 했는데 그런 요행은 바랄 수 없을 것 같아 아쉽군.

  그래도 자네의 의견은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네.

  수임료를 밀로 받으라는 말도 그렇고.

  "

  "제가 말하지 않았어도 키케로 님이 언제가 다 떠올리셨을 겁니다."

  사실 밀값이 하락하면 키케로만이 아니라 마르쿠스에게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베레스 재판을 승소하면 시칠리아의 밀이 싸게 공급되는 시기는 내년이다.

  마르쿠스가 밀을 대량으로 사들이려는 때와 정확히 일치했다.

  키케로는 시민들의 인기를 얻을 테고,

  마르쿠스는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만족하는 최상의 결과인 셈이다.

  물론 마르쿠스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밀을 사재기하는 사람은 타디우스지 자신이 아니니까.

  그는 어디까지나 공화정의 미래를 위한다는 정의감으로 키케로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키케로에게는 마르쿠스가 공화정을 이끌어갈 든든한 재목으로 보일 뿐이었다.

  ※※※※

  시라쿠사이에 도착한 마르쿠스는 곧장 미리 조사해둔 디온이라는 그리스인 행정관을 찾아갔다.

  굳이 그를 찍은 이유는 간단했다.

  수많은 행정관 중 재산이 가장 적게 늘어난 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시라쿠사이 행정관 디온 맞으십니까?"

  그는 그리스의 전통 의상인 히마티온을 개량한 팔리움을 입고 있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겐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용건만 말하게.

  "

  짜증 섞인 태도로 일관하던 그는 마르쿠스가 내민 은화를 보자마자 표정이 싹 변했다.

  "저흰 로마에서 온 조사단입니다.

  전 총독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사례는 충분히 드리죠.

  "

  눈앞에서 흔들리는 은화 주머니를 보는 디온의 눈에 탐욕의 빛이 서렸다.

  "음···하지만 그건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행정관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겁니다.

  증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재판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칠 테니까요.

  그리고 만약 이 재판으로 불이익을 당하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

  "어···그 말이 진짜인가?"

  "이 자리에서 계약서를 써드릴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들인 노고에 비해 보상이 너무 짜지 않았나요?

  일을 하더라도 정당한 대가는 받아야 하는 법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저녁은 술 한 잔 걸치시고 편히 쉬시죠.

  "

  마르쿠스가 은화 몇 개를 디온의 손바닥 위에 더 올려주었다.

  디온이 헤실헤실 풀어지려는 입가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흠, 뭐 이런 걸 다···고맙게 받겠네.

  자네 꽤나 돈이 많은 집안인가 보군.

  "

  "뭐, 남부럽지는 않을 정도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혹시 피해를 봐도 전부 배상해주겠다는 계약을 해준다면 입을 못 열 것도 없지.

  솔직히 나도 전 총독의 전횡이 심각했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나 같은 일개 행정관이 뭘 어쩌겠나.

  위에서 시키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른 것이니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화법이다.

  지켜보던 키케로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마르쿠스는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손짓을 보냈다.

  어차피 엮어 넣어야 할 사람은 베레스지 이런 피라미 행정관이 아니다.

  괜한 곳에서 감정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총독이 하라고 시켰으면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시켜놓고 보수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

  "내 말이 그 말이네.

  실제적인 뒤처리를 한 건 우리들인데 보수는 윗대가리들끼리만 독식하고 말이야.

  히에론 그 놈은 장부를 조작해준 대가로 남쪽에 땅을 구매했던데 나한테 떨어진 건 고작 은화 몇 푼이라니.

  "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베레스와는 다릅니다.

  가지고 계신 증거를 내어주신다면 그에 맞는 가치의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

  한참 고민하던 디온은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키케로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마르쿠스를 돌아보았다.

  "저 자가 넘어올 것 같은가?"

  "물론입니다.

  단순히 돈으로 매수하는 게 아니라 쌓여있는 불만을 제대로 긁어줬으니까요.

  더러운 일에 같이 손을 담갔는데 마땅한 보상은 받지 못했다면 얼마나 기분이 더럽겠습니까.

  "

  원래 탐욕에 눈이 먼 권력자가 꼬리를 밟히는 전형적인 패턴은 내부의 고발로 시작된다.

  그런 경우 백이면 백 내부 고발자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서 문제가 터지는 것이다.

  현대에서도 수백억이 넘는 돈을 챙긴 자가 부하에게는 수백만 원도 주기 아까워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했다.

  베레스도 그런 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마르쿠스의 예상대로 디온은 여러 가지 증거가 담긴 문서와 밀랍 서판을 가지고 왔다.

  "일단 내가 직접 처리한 일들만 해도 이 정도일세.

  그런데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 계약서를 먼저 쓸 수 있을까?

  그러는 게 양쪽 다 신뢰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

  "물론입니다."

  마르쿠스는 디온에게 받은 증거를 일단 한쪽 구석에 밀어놓고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러면 여기에 인장을 찍어주시죠.

  이 증언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면 제가 마땅한 보상을 해드리겠다는 계약서입니다.

  "

  "오오, 고맙네.

  자네 참 도리를 아는 사람이로군.

  어디 보자······.

  "

  디온은 흐뭇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쭉 살폈다.

  계약서의 내용은 마르쿠스가 말한 그대로였다.

  "만약 이 증언으로 증인이 피해를 입는다면, 어떠한 종류의 손해라도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책임지고 보상······."

  디온은 입을 떡 벌린 채로 계약서와 마르쿠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내 새하얗게 얼굴이 질린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마,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쪽···아,

  아니 도련님이 설마······.

  "

  "아, 제가 말 안 했습니까?

  제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입니다.

  "

  "크라수스라면 로마 집정관······."

  "네.

  그분의 아들이지요.

  "

  지금까지 누구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는지 자각한 디온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무리 시칠리아에 근무하는 행정관이라도 현 로마의 집정관이자 최고 부호인 크라수스의 위용을 모를 리가 없다.

  키케로의 뒤에 폼페이우스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크라수스의 이름까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귀하신 분 앞에서 그만 건방을···그 혹시 옆에 계신 분은 그렇다면?

  "

  "이분이 이번에 베레스를 기소할 분입니다.

  변호사이자 현 원로원 의원인 키케로 님이십니다.

  이전에 시칠리아에서 재무관을 역임한 적도 있으시죠.

  "

  "허억!"

  단순한 조사단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디온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저, 저는 정말 베레스가 시켜서 그랬던 겁니다.

  부디 선처를······.

  "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소중한 증거를 제공해준 사람을 잡아넣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

  "예, 예.

  감사합니다.

  "

  "그렇다면 이야기를 마저 하도록 하죠.

  이 증거품에 관해서 말인데······.

  "

  마르쿠스가 디온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키케로는 눈앞에 쌓인 증거품을 훑어보았다.

  "행정관 한 명을 털어도 이만큼이나 증거가 나오다니···정말 상상한 것 이상이로군.

  시칠리아를 끝장낼 생각으로 수탈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겠어.

  "

  증거목록에 따르면 베레스가 보고를 올린 회계장부는 맞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거의 모든 수치가 조작이었으며,

  국고 위원회의 자금까지 횡령한 것도 확인 되었다.

  그중에서도 대미는 해적과 짜고 쳐서 이익을 나눠 먹은 것이었다.

  이건 히케타스에게도 들은 적이 없는 사실이었다.

  탐관오리라도 다 같은 탐관오리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발상의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3년 동안 한 지역을 이렇게 알차게 털어먹은 그 수완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디온은 이후로도 마르쿠스가 묻지 않은 사실까지 줄줄 털어놓았다.

  폼페이우스에 이어서 크라수스까지 키케로에게 붙었다면 베레스의 몰락은 기정사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총독인 루키우스는 이미 주변 도시들에 증거를 은닉하라는 지시를 내렸단 말이군요."

  디온이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해 불만인 자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들의 명단을 적어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소개장도 써드릴 수 있습니다.

  "

  "오, 그거 고맙군요.

  아직 신분을 드러내놓고 활보할 생각은 없는지라 이건 큰 도움이 되겠네요.

  "

  "예, 예.

  그리고 루키우스 총독이 내린 지시도 하루만 시간을 주시면 더 상세히 알아 올 수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더 말씀드리자면······.

  "

  디온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키케로와 마르쿠스는 귀를 기울였다.

  루키우스가 내린 명령과 방해공작의 계획이 착착 그들에게 전해졌다.

  시라쿠사이가 꽁꽁 감추고 있던 베레스와의 협잡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