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 율리아 카이사리스 (42/326)

  # 42 41. 율리아 카이사리스 ──────────────── 병사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간 베레스는 거의 던져지다시피 자택에 구금되었다.

  그의 저택은 최고의 부자들만이 거주하는 팔라티노 언덕에 위치했다.

  저택의 크기는 그 어떤 귀족 못지않게 컸지만, 내부를 온갖 조각상과 예술품으로 채워놓았기에 비좁게 느껴졌다.

  벽이란 벽은 모조리 그림이 걸려 있었고, 의자와 탁자들에까지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집이라기보다는 그냥 거대한 보물창고였다.

  변호인 자격으로 베레스와 면담을 신청한 호르텐시우는 응접실로 들어섰다.

  각종 골동품으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의 전경에 그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베레스는 변호인의 기분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호르텐시우스! 잘 왔소! 내가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소?"

  "벗어나다니?"

  호르텐시우스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반문했다.

  "2차 공판에서 상황을 뒤집을 묘수 말이오. 당신이라면 그런 게 있지 않소?"

  "상황을 뒤집어? 당신은 지금까지 뭘 본 거요? 홍수처럼 쏟아진 저 증거들을 보란 말이오! 당신이 저지른 범죄가 앞으로도 수십 년을 두고 언급될 텐데 어떻게 상황을 뒤집을 수 있겠소!"

  "하지만 당신은 로마 최고의 변호사가 아니오!"

  "로마 최고의 변호사가 아니라 미네르바 여신이 온다고 해도 당신에게 무죄를 받아줄 수는 없소!"

  베레스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럼 당신은 여기 왜 온 거요? 뭔가 수단이 있으니 면담을 신청했을 거 아니오. 1차 공판이 끝난 뒤 1년까지는 휴정을 신청할 수 있지 않소? 그렇게 한다면······."

  "1년이 아니라 10년을 휴정한다고 해도 내려질 판결은 바뀌지 않을 테니 포기하시오. 대체 나에게 왜 미리 당신이 저지른 범죄를 말해주지 않았던 거요. 그랬으면 나는 그냥 자진 추방을 권했을 거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니까 털어놓지 않았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모든 걸 잃게 됐소. 이제 야반도주도 불가능하게 됐으니 일정 재산을 챙겨서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할 테지. 그냥 여기에 갇힌 채로 꼼짝없이 모든 재산을 전부 몰수당하고 해외의 외딴 섬으로 추방될 준비나 하시오."

  로마 시민권자라면 아무리 중한 죄를 지어도 사형을 당하는 대신 추방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귀족은 이런 상황이 오면 평생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금액을 들고 도주한다.

  하지만 베레스는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무일푼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이 가이우스 베레스보고 거지꼴로 평생을 보내라는 말인가! 그 따위 말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나야말로 그 쪽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오. 당신 때문에 이 호르텐시우스가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됐소. 로마 최고의 변호사인 내가 키케로 같은 지방의 풋내기가 밟고 올라가는 발판으로 전락했다는 말이오! 내 명성과 경력을 모두 흡수한 그 애송이가 앞으로 로마 최고의 변호사라 불리겠지. 모두 당신 때문이오!"

  호르텐시우스는 감정이 격앙됐는지 삿대질까지 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최소한 내 수임료라도 받아가야겠소. 당신이 빈털터리가 된다면 나에게 수임료를 지급할 능력도 없을 테니까."

  "나에게 무죄는커녕 도주의 기회조차 주지 못했으면서 보수를 챙기겠다고?"

  "보수가 아니라 배상금이오. 말은 똑바로 합시다. 그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조언을 하나 해주지.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크라수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비시오."

  베레스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크라수스에게? 내가 왜 그놈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아들을 시켜서 내 뒤를 캔 배신자 놈에게."

  "멍청하기 짝이 없군! 크라수스의 장남이 키케로와 함께 있었을 때 그쪽이 보낸 해적이 습격했다는 사실을 그새 까먹었소? 당신은 지금 로마의 현 집정관이자 최고의 부를 지닌 가문의 장남을 납치하려 한 거요."

  "흥! 내가 그걸 알고 지시를 내렸겠소?"

  이미 몰릴 데까지 몰린 베레스는 호르텐시우스의 이성적인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 남아있는 거라고는 오직 응어리진 울분과 악뿐이었다.

  "내 조언을 무시할 거라면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난 내 몫을 챙겨가야겠소."

  마침 두 사람이 있는 응접실만 해도 가치 있는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호르텐시우스는 자신의 토가 자락에 숨겨서 나갈 수 있을 만한 물건을 물색했다. 금으로 만든 군신 마르스의 조각상이 그의 배상금으로 낙점됐다.

  토가 아래에 조각상을 숨긴 그는 응접실에서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베레스를 돌아보았다.

  "애초에 이런 저택에 자신의 재산을 전부 보관하는 멍청한 짓을 한 게 실수요, 당연히 분산해서 숨겨놨어야지."

  "하! 여기 있는 건 내 재산의 극히 일부일 뿐이오. 최상급의 예술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내 별장에 비치되어 있지."

  "하···이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오? 정말 미쳐버리겠군. 베레스, 분명히 말하는데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범죄자 중 가장 악질적이면서도 정신이 나간 인간이었소. 내 인생 최대의 불행은 그대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이 변호를 받아들인 거요."

  "변호할 때도 그렇게 잘 나불거렸으면 내가 이렇게 구금될 일도 없었을 거요. 로마 최고의 변호사? 당신은 그저 키케로에게 농락당한 패배자일 뿐이오!"

  호르텐시우스는 대답 대신 싸늘한 조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가 떠난 뒤 2차 공판이 끝나는 날까지 베레스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판결은 모두의 예상대로 나왔다.

  베레스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에 따라 사형 대신 국외추방과 재산몰수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정 부분의 재산을 빼돌릴 틈이 없었기에 완전한 무산자로 전락하게 됐다.

  거기에 원로원 의원의 자격은 물론 귀족의 신분마저 박탈당했다.

  베레스는 호르텐시우의 조언을 무시하고 마지막까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저주했다.

  추방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죄를 뉘우치지 않은 것이다.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았던 것일까.

  그리스 지방으로 쫓겨난 베레스는 자신이 사주했던 해적들에게 발각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중에 발견된 시체에는 심각한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해적들이 어떻게 베레스를 찾아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이미 원로원 의원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베레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로마에 없었다.

  베레스가 무단으로 축재한 예술품과 조각상은 전부 시칠리아로 반환됐다.

  시칠리아 주민들은 키케로의 이름을 찬양하며, 공정한 판결을 내려준 로마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 달이 넘게 로마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던 베레스 재판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베레스 재판은 끝났으나 재판의 여파는 더 오랫동안 로마를 들썩이게 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역시 키케로였다.

  폭락한 호르텐시우의 주가를 전부 흡수한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로마 최고의 변호사로 불렸다.

  거기에 키케로는 항간에 떠도는 밀값의 인하까지 확인해 해주었다.

  "제가 안찰관직을 수행하는 내년에는 시칠리의 밀을 훨씬 더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을 겁니다! 모두 여러분의 성원 덕분입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키케로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의 이름을 칭송했다.

  다른 안찰관들도 내년의 공약을 발표했지만, 키케로에게 묻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키케로만큼은 아니어도 크라수스도 알게 모르게 또 한 번 주가를 높였다.

  원로원 의원들은 재판 마지막에 크라수스가 나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덕분에 원로원이 직접 나서서 타락한 의원을 징계하는 구도가 그려질 수 있었다.

  망신만 당할뻔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체면은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크라수스는 메텔루스 가문이 베레스와 선을 긋는 것에도 여러 도움을 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퀸투스와 루키우스 메텔루스는 호르텐시우의 조언대로 크라수스에게 사과했다.

  퀸투스는 베레스의 악행에 직접 동조는 하지 않았으나, 돈을 받은 것만으로도 수치스럽다고 토로했다.

  크라수스는 그들이 받은 돈을 로마의 시민들에게 전부 돌려주게 하고 사죄 연설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루키우스는 베레스가 망쳐놓은 시칠리아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유피테르 신에게 맹세했다.

  그는 베레스와 한통속이기는 했지만, 사비를 털어서 시칠리아 복구에 힘쓰겠다고 제안한 덕에 간신히 탄핵을 모면했다.

  당연히 여기엔 집정관인 크라수스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이런 친 원로원적 행보로 귀족들은 크라수스가 여전히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또 한 명. 로마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청년이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한 명 주목해야 할 이는 크라수스 가의 장남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다. 소문만 무성했던 크라수스가의 장남이 마침내 군중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웅변은 힘이 있었고, 정의로웠으며, 좌중의 이목을 잡아끄는 강렬함이 있었다. 향후 원로원을 떠받칠 든든한 거목으로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라고 적혀 있군요."

  얇은 서적을 소리 내어 읽는 셉티무스의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가 가지고 온 책은 키케로가 작성한 베레스 재판의 회고록이었다.

  재판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회고록을 출판한 것이다.

  "그 관심받기 좋아하는 양반···진짜 속도 하나는 번개 같네."

  "출판사를 경영하는 아티쿠스 님과 절친한 사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재판 전부터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레스를 규탄한 마지막 웅변은 분명 사전에 준비해 놓았던 걸 거야. 하여간에 빈틈없는 사람이라니까."

  마르쿠스는 셉티무스에게 넘겨받은 회고록을 휙휙 넘기며 읽어 보였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언뜻언뜻 묻어나는 자기 자랑이 참으로 키케로다운 문장이었다.

  폼페이우스도 그렇고, 카이사르도 그랬던 거로 봐서 자화자찬을 즐기는 건 로마인의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은근슬쩍 자신의 이름도 띄워줬으니 이후 감사의 인사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련님의 이름이 이번 일로 시민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을 겁니다."

  "내 이름이야 아버지와 똑같으니 원래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뭐···그건 그러네요. 정확히 말하면 크라수스 가문 장남의 존재감을 이번에 확실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과한 주목을 받는 건 지양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번 건처럼 원로원 의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주목은 괜찮아. 중요한 건 견제를 받지 않는 거니까."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이 초대장은 어떻게 할까요?"

  셉티무스가 고급스럽게 꾸며진 파피루스지 한 장을 꺼내 마르쿠스에게 건넸다.

  "카이사르 님께서 재무관에 당선되었으니 도련님을 집으로 초대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는군요. 원로원 의원 중에는 카이사르 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거야 카이사르가 의원들의 아내를 하도 건드리고 다녀서 그런 거지. 정치적으로 그를 위협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직 거의 없어. 오히려 나를 동정하는 사람이 더 많을걸? 질 안 좋은 채무자에게 잘못 걸렸다고."

  마르쿠스는 초대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피식 웃었다.

  어떤 의도로 초대를 하는지 속히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어차피 바라는 바였으니 기꺼이 넘어가 주기로 했다.

  셉티무스를 통해 초대에 응하겠다는 대답을 보내자 카이사르는 곧바로 약속 날짜를 잡았다.

  어디까지나 마르쿠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초대하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스파르타쿠스만을 대동하고 카이사르의 주택으로 향했다.

  셉티무스와 다나에는 처리해야 할 사업문제 때문에 함께 오지 못했다.

  마르쿠스는 이제 로마의 명물이 된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팔라티노 언덕을 내려갔다.

  카이사르는 다른 명문 귀족들과는 달리 로마의 일곱 언덕에 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주택은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수부라에 있었다.

  물론 인술라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에 사는 건 아니었다.

  이름난 명문 귀족인 그는 수부라에서도 제법 깨끗한 거리에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진 빚의 규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어째서 아직도 수부라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사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허영심이 적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수부라를 떠나 부유층이 밀접해 있는 언덕으로 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이게 다 계획된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라고 어째서 호화저택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없었겠는가.

  오히려 남들보다 곱절은 더 그런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젊었을 때부터 민중파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평민들에게 비칠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해 일부러 수부라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리라.

  카이사르의 집에 도착한 마르쿠스의 마중은 놀랍게도 카이사르가 직접 나왔다.

  카이사르는 마차에서 내린 마르쿠스의 어깨에 친근하게 손을 올렸다.

  "어서 오게. 언제 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굳이 집 밖까지 마중을 나오시다니 환대에 감사합니다."

  마르쿠스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카이사르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자네가 빌려준 덕분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는데 당연히 이 정도 정성은 보여야지. 요리도 아주 질 좋은 재료로 정성껏 했으니 마음껏 먹고 마시게. 물론 자네의 부탁대로 납을 가열한 연당은 조미료로 첨가하지 않았네. 그게 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예. 지금 그걸 대체할 조미료를 개발 중입니다. 이미 거의 다 완성됐으니 나중에 시식회를 열 예정입니다. 초대장을 드릴 테니 꼭 오셔서 맛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자네가 불러준다면야 당연히 가겠네. 우리 사이에 그 정도쯤이야."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우리'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친분을 강조했다.

  주택 안으로 마르쿠스를 들인 카이사르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다.

  "이쪽이 내 아내 코르넬리아라네.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현숙한 아내지."

  기품이 넘치는 귀부인이 마르쿠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르쿠스도 마주 웃으며 정중히 예를 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입니다."

  코르넬리아의 얼굴을 본 마르쿠스는 내심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서른은 되었을 것 같은데도 이십 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거기에 고결함이 감도는 분위기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아내를 두고도 다른 유부녀들과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카이사르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 아내의 입장에서는 꽤 속을 끓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코르넬리아의 안색은 어딘가 피곤해 보이기도 했고, 조금 혈색이 좋지 않은 듯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카이사르는 아내와 사별을 한 경험이 있는 거로 아는데.'

  마르쿠스가 잠시 코르넬리아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 카이사르가 유쾌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역시 자네도 남자긴 남자로군. 사실 말이 나온 김에 자랑 좀 하자면 내 딸도 아내를 닮아 벌써 미모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네. 게다가 날 닮아 굉장히 총명하기도 해서 자네와 좋은 말 상대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 마침 저기 오는군."

  카이사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향해 차분하게 걸어오고 있는 한 소녀가 보였다.

  수수하면서도 깔끔한 옷을 걸쳤지만, 외견에서 풍기는 고급스러움은 그 어떤 명문귀족 못지않았다.

  카이사르는 팔불출 딸바보처럼 과한 자랑을 한 게 아니었다.

  아직 열둘에서 열셋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데도 절로 눈길 갈 정도의 미모였다, 미인에게는 익숙하다고 생각한 마르쿠스도 내심 감탄할 정도였다.

  어머니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고귀한 분위기와 이지적인 눈동자가 굉장히 인상적인 소녀였다.

  아직은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지만 육칠 년 후의 미모는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역사에 따르면 카이사르의 딸과 결혼한 폼페이우스는 아내에게 완전히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어찌나 아내를 사랑했던지 그녀와 시간을 보내느라 정치와도 거리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마르쿠스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녀와 눈을 마주친 마르쿠스는 순간 묘하게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르쿠스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은 그녀의 입에서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율리아 카이사리스입니다.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