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2. 율리아 카이사리스 ────────────────
"저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나요?"
"기억이 나지 않으시나요?"
웃음 짓는 율리아의 얼굴에 마르쿠스가 미간을 좁혔다.
분명 어딘가에서 만난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짚이는 시기나 장소가 없었다.
이렇게나 눈에 띄는 소녀라면 분명히 인상에 선명하게 남아야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잠깐 스쳐 간 건가? 아니, 그것도 조금 이상한데.'
그랬다면 율리아도 마르쿠스를 기억하지 못했어야 한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했다는 건 잠깐이나마 서로를 인식할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는 뜻이다.
얼떨떨한 사람은 마르쿠스만이 아니었다.
카이사르도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뭐야, 둘이 이미 구면이었느냐?"
열심히 기억을 더듬고 있는 마르쿠스 대신 율리아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예전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3년 전 아버지께서 비티니아에서 로마로 돌아오신 날에 제가 조금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요."
"아~원형 경기장 앞에서 누군가와 부딪쳤다던? 네가 그럴 아이가 아닌데 어쩌다가 그랬을까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20대 무렵의 카이사르는 로마에 있었던 시기보다 해외에서 도피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독재관 술라의 명령에 거역해 4년 동안 소아시아 인근을 떠돈 게 첫 망명이었다.
덕분에 율리아는 4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22살에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변호사로 개업을 했다가 또다시 실패를 겪었다.
돌라벨라의 재판에서 호르텐시우스에게 패한 그는 24살에 또다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그리스에서 3년간 머문 카이사르는 제사장으로 임명된 뒤에야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무리 조숙한 율리아라고 해도 아버지의 귀국일이 다가오자 들뜬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러 나왔던 그녀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에서 누군가와 부딪쳐 넘어졌다.
3년 전, 원형 경기장이라는 말을 들은 마르쿠스는 불현듯 깨달았다.
새롭게 개편한 검투사 시합의 보고를 받으러 나왔던 어느 날, 자신과 부딪쳐 넘어졌던 소녀를 일으켜줬었다.
나이답지 않게 야무졌던 그 아이는 이제 조금 더 성숙한 소녀가 되었을 것이다.
마르쿠스의 머릿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율리아와 이전의 보았던 소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정말로 그때 그 아이가······? 하하, 세상이 이렇게 좁다니 신기한 일이네요."
"정말 그러네요. 저도 이런 식으로 다시 뵙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답니다."
완전히 상황을 파악한 카이사르가 마르쿠스와 율리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가 그때 부딪쳤다던 친절한 귀족이 마르쿠스를 말하는 거였니? 그래,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 둘이 이야기를 나눠보아라. 여보, 우리는 방으로 가서 따로 이야기를 나눕시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의 옆을 지키고 있던 스파르타쿠스에게도 말을 걸었다.
"자네가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지? 나도 자네의 경기를 몇 번 봤는데 로마에서 자네에 견줄 만한 자가 없겠더군. 괜찮다면 함께 가서 자네의 무용담을 들려주지 않겠나?"
스파르타쿠스가 마르쿠스를 돌아보았다.
마르쿠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파르타쿠스는 카이사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속이 빤히 보이게 둘만 남겨두자 율리아가 난처한 듯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아버지도 참···너무 노골적이시네요. 불편하셨다면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원래 이런 자리는 노골적으로 만드는 거니까요."
카이사르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마르쿠스에게 약혼자가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없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나중에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제안을 했었다, 그때부터 이미 이런 자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카이사르의 딸이 이렇게나 눈길을 끄는 소녀라는 점과 이미 구면이라는 점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마르쿠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3년 전에 아주 잠깐 정도인데 곧바로 저를 기억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르쿠스 님에게는 제가 잠깐 부딪친 꼬마 정도였겠지만, 저에겐 굉장히 부끄러웠던 기억이거든요. 살면서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쳐본 적이 없었는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몇 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들뜰 겁니다."
"그래도 첫인상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답니다. 제가 마르쿠스 님께 말괄량이로 인식된 건 아닐까 해서요."
마르쿠스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3년 전에도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한층 더 했다.
"말괄량이라니요. 그때도 이미 침착하고 대견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요. 혹시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 열둘이 된답니다."
"제가 곧 성인식을 치르니 다섯 살 차이가 나는군요. 그래도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른스러우십니다."
이제 곧 열두 살이 된다면 현대에서는 갓 중학생이 될 나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말하는 어투나 풍기는 분위기는 이미 성인에 가깝다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집안에 거의 없었으니까요. 귀족이긴 해도 물질적으로 굉장히 풍족한 편도 아니었고요. 이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군요."
마르쿠스는 그게 어떤 상황인지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전생에서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답니다. 아버지 덕분에 저는 이렇게라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거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죠."
카이사르의 아내인 코르넬리아는 민중파의 중진인 킨나의 딸이었다.
권력을 잡고 민중파 인사들의 씨를 말리던 술라는 당연히 카이사르도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당시 막 성인이 된 18살의 청년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름난 명문 귀족이었기에 사방에서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탄원이 빗발쳤다.
여론을 의식한 술라는 카이사르를 살려주는 대신 아내와 이혼하라는 조건을 걸었다.
카이사르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사람들조차 이는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당시 민중파는 뿌리가 뽑힌 상황이었고, 킨나도 이미 고인이 됐다. 카이사르가 끈 떨어진 연 신세인 아내에게 집착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카이사르는 술라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당연히 격분한 술라는 카이사르를 죽이려고 했고, 카이사르는 국외로 도피했다.
술라는 그때 이미 5천이 넘는 사람을 살생부에 적어 예외 없이 숙청했다.
이런 비정한 독재관의 명령에 고작 18살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가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임신 중이셨던 어머니를 버릴 수 없다고 하셨다지만, 아마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어쨌든 어머니는 그 일로 아버지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럴 만하네요. 이러나저러나 해도 카이사르 님의 배짱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르긴 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빚을 그렇게 지시고도 태평한 게 아니실까요."
율리아는 은근히 카이사르에게 쌓인 게 있어 보였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감사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딸로서는 어머니를 놔두고 다른 유부녀들과 놀아나는 아버지가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하하···확실히 조금 과하게 자유분방한 면이 있으시긴 하죠."
"네 아주 살짝만 그 자신감을 누르고 사셨으면 하는데 말이에요. 아, 그래도 존경할 부분도 많은 아버지랍니다. 의외로 가정적인 면도 있으세요. 제 공부도 항상 직접 봐주시기도 하고요."
"학교에 다니지는 않으셨나요?"
"중등교육까지는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어요. 지금은 아버지에게 고등교육을 받고 있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화제로 자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답니다. 가끔은 토론도 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해요."
카이사르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는 이름난 학자 가문 출신이다.
로마 여인들은 보통 초등교육 정도까지만 받지만, 아우렐리아는 어지간한 귀족 남성 이상의 학식을 지니고 있었다.
율리아가 고등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할머니의 입김이 상당수 작용했을 것이다.
마르쿠스의 안에서 율리아에 대한 평가가 또 한 번 상승했다.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 지금까지의 대화로 보아 성격도 가정적인 편이었다.
무엇보다 카이사르의 토론 상대가 될 수 있는 지적 수준을 가졌다는 게 커다란 강점이었다.
물론 12살밖에 되지 않는 그녀가 카이사르와 대등한 토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영재교육의 목적으로 딸을 가르치고는 있는 것이리라.
"카이사르 님과 어떤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지도 궁금하네요. 정치나 군사 이야기도 하시나요?"
"군사는 제가 문외한이라 주로 정치나 사회 문제를 주제로 삼아요. 최근에는 베레스 재판과 키케로 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네요. 아, 마르쿠스 님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화제가 된 적이 있답니다."
"제 이야기요?"
"예. 아버지께서는 마르쿠스 님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으세요. 덕분에 저도 어떤 분일까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됐고요."
단순히 카이사르가 만들어준 자리라 나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배시시 웃는 그녀의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다나에와는 또 다른 유형의 매력이었다.
마르쿠스는 그녀가 보이는 관심에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역시 율리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이후로도 율리아와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이번에는 주로 율리아가 질문을 하고 마르쿠스가 대답을 들려주었다.
대화는 생각보다도 더 길어져 밤이 깊어진 뒤에야 끝이 났다.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
마르쿠스가 돌아간 뒤에도 카이사르 저택은 여전히 부산스러웠다.
코르넬리아가 하인들을 부리며 어질러진 집 안을 청소하는 동안 카이사르는 율리아와 마주 앉아 있었다.
다소 과장되게 보였던 친근한 미소는 씻은 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율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그런 표정으로 있으신 게 더 어울려 보여요, 마르쿠스 님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을까요?"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게 하려고 보인 태도다. 앞으로 쭉 협력할 관계니까 일단은 인간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줘야지. 허술해 보이도록 틈도 슬쩍슬쩍 보여주고."
"그랬군요. 어째서 그렇게 어설픈 모습을 보이실까 했는데 전부 계획이었다니······."
"마르쿠스도 그걸 알아차렸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연기를 한 내 의도고 그라면 내 의도까지 전부 꿰뚫어 보았겠지. 내 뜻이 전해지기만 했다면 나로서는 상관없다."
율리아의 눈가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아직 순수한 그녀는 사람끼리의 관계에서 이런 계산적인 수를 두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딸의 마음을 헤아린 카이사르가 부드럽게 그녀를 달래주었다.
"너는 이런 부분은 신경 쓸 필요 없단다. 사람에게는 다 기질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너는 현명하지만 음험함이라고는 전혀 없으니까 이런 것과는 맞지 않겠지. 그러니 지금처럼 네가 대하고 싶은 대로 사람을 대하거라. 그러면 모두가 너에게 호감을 느낄 거다."
"딱히 호감을 얻기 위해 사람과 교류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네 사람 보는 안목은 비범한 구석이 있단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나보다 정확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너를 일부러 마르쿠스에게 붙인 거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라 율리아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분에게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어요."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어떻더냐?"
거듭 질문을 던지는 아버지에게 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인격이든 능력이든 흠을 잡을 데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어째서 아버지께서 그토록 신경을 쓰시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뭔가 특이사항은 없었고?"
"특이사항이라고 하긴 뭐하지만···굉장히 위험한 분이라는 느낌도 받았어요."
"위험? 인격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율리아는 잠시 적합한 표현을 찾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가 뗐다.
"위험하다는 건 난폭하다거나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분은 본질적으로는 온후하시고 이성적인 분이랍니다. 그러면서도 빈틈이 없고 냉철한 면모도 가지고 계시죠. 하지만 그게 다라고 여긴다면 분명히 치명적인 실수를 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치관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가치관이야 사람이라면 다 제각각인 게 아니더냐."
"예.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가끔 도저히 그 내면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그분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카이사르는 율리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확실히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어려운 유형은 똑똑한 자도, 계략에 능한 자도 아니다.
이쪽의 의도한 대로 반응해주지 않는 사람이 가장 골치가 아프고 위험했다.
마르쿠스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의 배경이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아군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린을 건드리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너의 조언은 깊이 새겨두도록 하마.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계획 중 하나가 조금 틀어지는데······."
"정략결혼 말씀이신가요?"
"알고 있었느냐?"
"모르는 게 이상하죠."
율리아는 별로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당시의 결혼은 정략결혼이 대다수였고, 정략결혼을 한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마르쿠스 정도라면 불평을 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좋은 신랑감이긴 했다.
"나는 너를 폼페이우스나 마르쿠스 중 한 명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물론 완전히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폼페이우스 님이요? 그분은 아내가 있으신 걸로 아는데요."
"아, 뭐···곧 이혼하지 않을까 해서."
율리아가 어물쩍 말을 돌리는 카이사르를 흘겨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자연스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 설마 또······."
카이사르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려 율리아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부분은 아직 네가 몰라도 되는 이야기다."
"제가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이전에도 제 친구인 클라우디아의 어머니와 관계를 가지셨잖아요. 제가 부끄러워서 클라우디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어요."
"흠···그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너의 신랑 후보는 그 두 사람이니 어느 쪽이 더 좋을지 지금부터 생각을 해보아라."
카이사르의 여성 편력은 딸이 뭐라고 한다고 고쳐질 게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율리아는 체념한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 의견을 들으신다면 저는 폼페이우스 님보다는 마르쿠스 님이 좀 더 좋을 것 같네요."
"아까는 위험하다면서?"
"예. 폼페이우스 님은 분명 다시 없을 영웅의 상을 타고나신 분이죠. 하지만 마르쿠스 님은 잘 모르겠어요, 그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실지. 사실 그래서 조금 더 끌리네요."
"그래, 나도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면 마르쿠스가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를 끝까지 자신의 편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결혼으로 관계를 묶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카이사르는 검지와 엄지로 눈가를 주무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르쿠스는 적당히 추켜올려주고 명예욕을 자극해주면 다룰 수 있는 폼페이우스와는 다르단다. 오히려 네가 질질 끌려다니는 구도가 될 수도 있어."
율리아가 12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어른스럽고 식견이 탁월한 건 전적으로 카이사르의 교육 덕이었다. 물론 이유 없이 딸에게 그렇게 정성을 쏟은 게 아니다.
카이사르는 율리아가 자신을 닮아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다는 걸 진즉 꿰뚫어 보았다.
딸이라 후계자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 이상의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아이였다.
그 누구와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관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철저하게 신경을 써서 가르쳤다.
그러나 마르쿠스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런 장점이 빛이 바랠 우려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일단 마르쿠스와 폼페이우스를 조금 더 저울질해 보기로 했다.
※※※※
어지럽던 기원전 70년이 저물고 새로운 해가 밝아왔다.
해가 바뀌자마자 로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낭보가 날아들어 왔다.
바로 동방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루쿨루스가 마침내 아르메니아의 수도, 티그라노케타를 함락시켰다는 승전보였다.
소문에 의하면 티그라네스가 이끄는 병력이 10만이 넘었다. 이 대군이 고작 2만도 채 되지 않는 루쿨루스의 병력에 참패를 당한 것이다.
싸웠다 하면 이기는 상승 장군 루쿨루스는 카스피해까지 쭉 밀고 들어갔다.
동방이 평정될 기미를 보이자 자연히 해적들의 기세도 주춤해졌으며, 밀값이 엄청난 기세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시칠리아에서 싸게 들어오고 있는 밀까지 더해지자 로마의 밀 가격은 거의 절반까지 떨어졌다.
로마인 대다수는 동방이 완전히 평정되면 지금보다도 더욱 밀값이 내려가리라 예상했다.
2만으로 10만을 이기는 기적의 전술가가 앞으로 패배를 할 가능성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굳이 밀을 저장하지 않고 흥청망청 소비하는 데 주력했다.
마르쿠스는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전국 각지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지어둔 창고도 진즉에 완성됐다.
마르쿠스는 자기 대신 밀을 전매할 타디우스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해 셉티무스에게 넘겨주었다.
"타디우스에게 이걸 전해. 즉시 시작하라고."
"어느 정도 규모로 사들일까요?"
마르쿠스의 대답은 간결했다.
"전부."
다음화에서도 동방전역 이야기가 나올 테니 지도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진의 출저는 다음의 베스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지도에 있는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는 술라 시절부터 로마와 치열하게 싸운 왕입니다.
그리고 술라의 휘하에 있던 맹장 루쿨루스와 또다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게 현 상태입니다.
루쿨루스가 저 폰투스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옆에 있는 아르메니아까지 진군한 게 현 상황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아르메니아도 거의 박살내고 옆에 조그마하게 보이는 카스피해 앞까지 밀고 들어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