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3. 동방의 혼미 ──────────────── 밀을 사들이는 작업은 이탈리아반도 전역에서,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1년 이상을 들여 치밀하게 구축해 놓은 체계적인 조직망이 빛을 발했다.
총책임자는 타디우스였다.
그는 수많은 해방 노예의 명의를 이용해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밀을 구매했다.
지역별로 어느 정도의 밀을 소비하고 있는지 조사도 이미 끝내두었다.
덕분에 주민들이 먹을 양은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나머지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 누구도 밀을 대규모로 사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밀을 사들이는 해방 노예들도 이 밀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책임자인 타디우스도 어째서 이렇게까지 대량으로 밀을 사들이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차피 1, 2년 더 기다리면 밀값은 내려갈 텐데 어째서 이런 도박을 하는 건지···총명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아직 어린 건가."
어차피 선금을 받은 입장에서는 마르쿠스가 손해를 보든 말든 그가 알 바 아니긴 했다.
사업논의를 위해 여러 번 만났던 셉티무스도 주인의 결정을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는 단지 자신보다 주군의 판단을 믿어볼 뿐이라고 말했다.
냉철하고 사업적 수완도 좋아 보이는 사람도 충성에 눈이 멀면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는 마르쿠스가 적어도 본전이라도 챙겼으면 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따박따박 거금을 넣어주는 고객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데···과연 어떻게 될는지. 워낙 튼튼한 가문이니 이거 하나 실패했다고 망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타디우스만이 아니었다.
셉티무스도 마르쿠스의 뜻에 따르고는 있지만,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별다를 건 없었다.
그 정도로 마르쿠스의 밀 사재기 전략은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동방에서 로마의 패권을 위협하는 국가는 폰투스와 아르메니아 정도다.
이 중 폰투스는 이미 루쿨루스에게 박살이 났다.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의 왕이자 그의 사위인 티그라네스 2세에게 의탁한 상태였다.
그 티그라네스 2세마저 이번에 패배하고 수도가 함락당했다.
이런 상태인데 대체 어떻게 동방이 다시 혼란스러워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마르쿠스를 따르는 이들도 이번만큼은 군경험이 부족한 주인이 실수했다고 여겼다.
그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은 다나에와 스파르타쿠스뿐이었다.
그러나 그건 논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충성심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마르쿠스의 말이 절대적 진리라고 믿었으니 남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았다.
바꿔 말하면 두 사람만큼 충성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마르쿠스의 결정을 의심했다.
마르쿠스는 그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처음 한 번으로 족했다. 어차피 이 이상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런 데에 시간을 쏟느니 그 시간에 내실을 다지는 게 더 나았다.
실제로 마르쿠스는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지금까지 벌인 거의 모든 사업에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클레투스가 마침내 크기를 키운 고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인도에서 가지고 돌아온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얻는 것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세르기우스는 종래의 여성용 화장품에 들어가는 납 성분을 산화된 주석으로 대체했다.
마르쿠스는 그 모든 사항을 일일이 검토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만 했다.
거기에 성인식을 치른 이상 인맥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시칠리아로 떠난 폼페이우스는 그렇다 치고, 원로원 의원들이 최근 마르쿠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로원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차지하게 된 키케로가 여기저기 소문을 퍼트린 덕분이었다.
여기저기서 한 번쯤 얼굴을 비춰달라는 초대가 쇄도했다.
귀족파의 중진들과는 지금부터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므로 거절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라도 로마에 계셨다면 부담이 훨씬 덜했을 텐데······."
하필 이런 시기에 크라수스마저 속주 총독으로 부임해 버려 마르쿠스의 부담이 한층 더 심해졌다.
사업을 이끌어가면서 집안의 가장 노릇까지 하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됐다.
"너무 무리하시면 나중에 그 반동이 한층 더 강하게 올 수 있는 법이랍니다. 조금 쉬시는 것도 필요해요."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서 만나는 율리아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충고를 남겼다.
"오히려 지금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이후에 편히 쉬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그럼 저라도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율리아는 실제로 도움이 됐다.
중요한 일을 의논하기엔 아직 신뢰가 부족했으나, 사소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는 쓸모 있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흘러가자, 동방에서 날아온 보고서가 또다시 로마를 열광케 했다.
파죽지세로 진군 중인 루쿨루스가 아트락사타에서 또다시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제 미트리다테스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마르쿠스의 명령대로 밀을 사들이는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이걸 중단하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손해가 날 거라는 충고가 빗발쳤다.
"손해를 최소화하려면 미트리다테스가 죽기 전에 밀을 다시 팔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밀을 구매하는 건 돈을 허공에 버리는 일이 됩니다."
셉티무스마저도 그렇게 말했다.
다나에는 마르쿠스의 말을 믿기는 했어도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도련님,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됐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전쟁이 끝날 것 같아서?"
"···실제로 군 생활을 해보신 분들이 모두 그렇게 말씀하시니······."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봐.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테니까."
주변의 걱정과 달리 마르쿠스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밀을 더 적극적으로 사들이라고 하고, 자신은 다른 쪽에 시간을 더 투자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놀라운 급보가 당도했다.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로마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루쿨루스의 병사들이 집단 파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뭐? 파업?"
셉티무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부하에게 되물었을 만큼 어이가 없는 소식이었다.
루쿨루스의 현 상황이 얼마나 낙관적이었던가.
폰투스는 이미 끝장냈고, 아르메니아도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승리가 코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병사들이 갑자기 파업을 일으키고 종군거부를 하고 있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헛소문이 아니냐?"
"아닙니다. 원로원도 지금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민회에서도 지금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논의가 한창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얼마 전만 해도 원로원은 루쿨루스에게 어느 정도 규모로 개선식을 열어줘야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전후 처리에 관한 문제로 여러 안건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 모든 논의가 한순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래도 상황이 정말로 급해지면 군사들도 파업을 풀겠지.'
상식적으로 병사들도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는 승리를 거부하지는 않을 터.
그냥 예정되었던 승리가 조금 늦춰졌을 뿐이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하지만 셉티무스는 왠지 여기서 끝이 아닐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도련님은 설마 이런 전개를 예상하고 계셨던 것일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됐지만, 그게 아니라면 마르쿠스의 자신감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셉티무스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마르쿠스는 셉티무스의 보고를 듣고도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슬슬 때가 오고 있어. 이제 밀 구매를 줄이고 보관에 더 신경 쓰라고 전해. 창고 주변은 무장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방비를 철저히 하고."
"알겠습니다."
물러가려던 셉티무스는 발길을 멈추고 마르쿠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도련님께서는···이렇게 되실 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응? 뭐, 대충은."
"아니 어떻게 그런······."
"루쿨루스는 타고난 명문 귀족이니까."
마르쿠스는 이전에 폼페이우스에게 했던 설명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전술가로서는 천재적이지만 부하들의 마음을 얻는 능력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속주를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로마의 기사계급과 척을 지기까지 했다.
전술가로서의 역량은 폼페이우스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전략가가 지녀야 할 자질은 형편없었던 것이다.
이건 루쿨루스만이 아닌 그의 밑에 있는 병사들에게도 불행이었다.
"원로원에서는 그래도 루쿨루스 님을 믿는 듯하던데요."
"술라의 문하 중 폼페이우스에 버금가는 명장이니까. 하지만 이미 흐름은 뒤집혔어. 병사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까."
셉티무스도 이제 마르쿠스의 말을 완전히 믿기로 했다.
실제로 한 번 휘청인 루쿨루스군의 기세는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술품을 독점하는 지휘관의 행태에 분노한 병사들이 짐 마차를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루쿨루스는 헬라-라틴 문화권에서는 알렉산드로스 이후 두 번째로 카스피해까지 진격했음에도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부하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반란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루쿨루스는 퇴각하기 시작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보급로도 문제가 없는데 후퇴한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이 사태로 루쿨루스의 동방 장악력은 회복 불가능의 상태가 됐다.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던 미트리다테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잔여 병력을 규합한 그는 아르메니아 영토를 순식간에 회복하고, 이후 자신의 왕국인 폰투스마저 넘보기 시작했다.
무려 7년에 걸쳐 얻어낸 성과가 단 한 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이 충격적인 결과에 원로원과 민회는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폭락하던 밀값이 갑자기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미트리다테스는 이전보다 더욱 교묘하게 로마를 압박했다.
술라와 루쿨루스에게 연달아 참패를 겪은 그는 로마와 정면승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철저하게 간접적으로 괴롭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바로 해적을 이용하는 것이다.
당시 지중해 인근에 악명을 떨치는 해적들의 본거지는 킬리키아 지방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일대를 지배하던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힘이 쇠락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에 패배한 동방 왕조의 인재가 계속해서 영입됐기에 인적자원도 풍부했다.
계속해서 세력이 늘어난 해적들은 횡포는 로마조차 골머리가 썩을 정도였다.
여기에 미트리다테스의 엄청난 자금지원이 더해졌다.
해적들은 당장 더 빠르고 안정적인 배로 해적선을 바꾸고, 항해사까지 고용하기 시작했다.
주거점인 킬리키아만이 아니라 수십 군데 지방 거점을 두고 체계적인 노략질을 자행했다.
안전하다고 자신하던 오스티아 항구마저 습격당하는 일이 생길 지경이 됐다.
지중해 인근의 물류가 마비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원로원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해적들에게 배가 약탈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건 곡물 수송의 정체였다.
"이집트에서 올라오던 수송 선단이 해적들에게 습격당했습니다!"
"항구에 정박해 있던 곡물선을 해적들이 나포해갔습니다."
"이집트에서 수송선을 호위해줄 병력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단 몇 달 사이에 지중해 전역이 해적 천지가 되어버렸다.
미트리다테스를 끝장내 못한 루쿨루스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는 동시에 로마의 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무료 배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민들은 음식을 내놓으라고 연일 시위를 벌였다.
드디어 쌓아놓은 밀을 판매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 마르쿠스는 즉각 책임자들을 소집했다.
회의실로 사용하는 방에 자리한 사람들은 모두가 귀신에 홀린 표정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미묘하게 반응들이 달랐다.
다나에나 스파르타쿠스에게서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과 존경심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셉티무스는 주군을 믿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는 듯 보였고, 타디우스와 그의 부하들에게선 일말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조용한 실내에 마르쿠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제 밀 가격은 충분히 올랐으니 맡겨놓았던 돈을 회수하러 가도록 하자. 타디우스, 판매 경로는 확보해 놨겠지?"
"예. 주문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좋아.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절대로 누군가가 대량으로 밀을 풀고 있다는 소문이 나서는 안 돼. 그러면 당연히 가격이 다시 내려갈 테니까."
초과수요가 있는 상태에서 공급이 그에 맞게 올라간다면 가격은 곧바로 안정화 된다. 이건 기초적인 경제 상식이었다.
마르쿠스는 이 점을 수없이 강조했다.
시장이 공급이 늘어난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맡겨주십시오. 철저하게 준비를 해놓았으니 최소로 잡아도 2배가 넘는 이윤을 남길 수 있습니다. 준비 작업에 들어간 모든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말이죠."
"그래. 그리고 조금씩 분산해서 팔아야 하지만, 2년이 가기 전에 전부 팔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도록."
타디우스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어째서 2년 안에 전부 팔아야 하는 겁니까? 보관만 잘하면 밀은 3년까지도 충분히 보존할 수 있습니다. 1년 정도만 시간을 더 끌면 예상보다 더욱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 텐데요."
동방 평정은 루쿨루스가 7년을 들이고도 실패했다. 이 사태가 2년도 안 돼서 잠잠해질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표정 변화 없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타디우스, 2년 안에 전부 팔아."
고저 없는 목소리에 타디우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그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명령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태를 사전에 예측한 사람의 명령이다.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무조건 명령에 따르는 게 맞았다.
만약 이번에도 마르쿠스의 예견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면?
타디우스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눈앞의 젊은 청년이 로마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될 거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
밀의 판매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총독 임기가 끝나고 돌아온 크라수가 보고를 받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허허···우리 가문의 자산이 정말로 이 정도라고?"
"일단 예정대로 밀을 다 판매했을 때의 추정치입니다."
"뭐랄까···너무 엄청나서 현실감이 없는 수치로구나."
노예반란이 일어나기 전 크라수스 가문의 재산 총액은 약 1억 7천만 세스테르티우스였다.
이 정도만 해도 로마의 1년 예산인 2억 세스테르티우스에 근접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그리고 이 막대한 재산이 마르쿠스의 손에서 다시 한번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분업화로 끌어올린 생산력, 등자와 편자, 그리고 특허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수입.
거기에 마차와 마구의 개량으로 얻은 이윤까지 더해 밀을 사들이는 데 썼다.
67년까지 밀이 모두 판매되고 지금도 발생하는 막대한 수입까지 전부 포함하면 가문의 재산은 거의 2.5배로 불어나게 된다.
이건 로마 1년 예산의 2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산이다.
보고하는 마르쿠스조차 희열을 느낄 정도로 아찔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점은 로마 시민들은 물론 귀족들조차 크라수스의 재산이 이렇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막후에서 로마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가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처럼 계속 원로원 의원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해주세요."
"물론이다. 너도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이제 차분하게 쉬면서 인맥을 넓혀가 보아라. 네가 나중에 원로원에 들어가면 그런 게 전부 밑거름이 될 테니까."
크라수스는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대답하며 마르쿠스를 집무실 바깥까지 배웅했다.
방에 도착한 마르쿠스 두발을 쭉 뻗고 침상위에 누웠다.
그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셉티무스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일은 아닙니다만 대신 서신이 왔습니다. 키케로 님께서 모임을 개최하시는데 도련님께서 꼭 참석을 해주셨으면 한다는군요."
"모임? 연회가 아니라?"
"예. 모임입니다. 키케로 님께서 눈여겨보는 총명한 젊은이들을 초대해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입니다."
안찰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키케로의 인기는 젊은 층 사이에서 특히나 높았다.
타락한 권력자의 노욕을 징벌한 젊은 정치인.
그런 이미지를 내세운 키케로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저변을 넓히는 중이었다.
특히 공화주의에 심취한 젊은 지식인들을 자신의 파벌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마르쿠스는 가장 탐나는 인재인 게 당연했다.
마르쿠스는 셉티무스에게 받은 서신을 주의 깊게 읽어보았다.
단순한 연회였다면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런 자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참가가 확정된 청년들의 이름을 쭉 읽어 내려가던 마르쿠스의 눈이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이거 아주 흥미로운 이름이 보이는걸."
킬리키아 지방은 지도에서 진한 색깔로 표시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