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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해적소탕 (49/326)

  # 49 48. 해적소탕 ────────────────

  "대단하네······."

  줄줄이 끌려가는 해적들을 바라보던 마르쿠스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스파르타쿠스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끝낼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하나.'

  폼페이우스가 지중해 서부의 해적을 40일 만에 쓸어버린 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마르쿠스는 출전 전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사실을 직접 보게 되니 후세의 전략가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세운 전략의 기본 골자는 단순했다.

  직접적인 소탕 대신 항구를 점령해 식량과 물의 보급을 끊어 해적들을 고립시킨다.

  이후 견디지 못하게 된 해적들의 움직임을 일정 방향으로 유도해 한 곳에 몰아넣은 뒤 일제히 소탕한다.

  단순히 작전계획만 듣고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 이걸 실현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고대 시대는 지도는 물론 해도도 정확하지 않고, 아군끼리의 정보교환도 자유롭지 못하다.

  넓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전을 시행하려면 그만큼 치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사소한 변수 하나라도 발생하면 계획이 전부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해적들이 원하는 대로 유도당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제2, 제3의 대응책도 준비를 해둬야 한다.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을 몇 가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정도였다.

  마르쿠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폼페이우스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가장 중요한 결전에서 카이사르에게 패배한다는 사실 때문에 폼페이우스에 대한 평가를 은근 낮추고 있었다.

  '사실 그 결전도 온전히 폼페이우스의 잘못으로 진 건 아니었으니까.'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패배하게 되는 파르살루스 회전은 폼페이우스가 원해 치른 전투가 아니었다.

  정면승부를 피하고 카이사르의 보급을 끊어 말려 죽이려는 게 원래 폼페이우스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함께하고 있던 원로원 의원들의 요구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결전에 나서게 된다.

  그 결과 카이사르의 말도 안 되는 야전 지휘능력에 말려 패배한 것이다.

  물론 진 것은 진 것이니 폼페이우스의 전술적 능력은 카이사르의 밑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리라.

  하지만 카이사르는 전략적 실패를 초월적인 지휘능력으로 뒤집었을 뿐이다.

  전쟁의 전체적인 판을 짜는 전략가가 지녀야 할 능력은 폼페이우스가 오히려 더 위라고 볼 수도 있었다.

  '저런 전략가를 내 밑에도 둘 수 있다면······.'

  "마르쿠스, 여기 있었군."

  상념에 잠겨있는 마르쿠스에게 폼페이우스가 다가왔다.

  그는 이 정도의 대작전을 성공적으로 거두었으면서도 그리 들떠 보이지 않았다.

  아직 남부와 동부가 남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이 정도쯤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으니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전투의 뒤처리는 전부 끝난 겁니까?"

  "뒤처리라고 할 게 뭐 있겠나. 포로로 잡힌 해적 중 질이 안 좋은 놈들은 극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쓸 데가 있으니 당분간 가둬두라고 했네."

  원래라면 포로로 잡힌 이들은 전부 노예시장에 팔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해적 중 태반은 오리엔트 왕조들의 분쟁에 휘말려 삶의 터전을 잃은 자들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지 않는다면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폼페이우스는 동방의 혼란을 끝낼 확실한 청사진이 있었다.

  그는 완전히 박살이 난 해적들의 거점을 슥 둘러보았다.

  "일이 너무 예상대로 풀려도 조금 맥이 빠지는 법이로군. 뭐, 너무 완벽한 계획을 세운 탓이긴 하겠지만."

  딱히 자랑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어 보인다는 게 실로 폼페이우스다운 감상이었다.

  "하, 하하···물론 폼페이우스 님에게 해적들 따위야 그저 밟고 지나가는 디딤돌 정도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는 게 당연하겠죠."

  "고작 이런 놈들에게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고 생각하면 촌극이 따로 없지만, 그만큼 공화정에 인재가 없다는 말이겠지.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이 폼페이우스 님에게 온 게 아니겠습니까."

  "동감일세. 하지만 원로원의 늙은 너구리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 무능한 자들이 쓸데없이 자존심만 살아서는."

  본래 공화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해적들 따위가 이렇게 설칠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폼페이우스는 임페리움을 부여받기 위해서 무려 2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시민들의 피해는 막대했고 그 분노를 원동력 삼아 원로원을 압박했다.

  그런 선동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조차 임페리움을 부여받을 수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봐도 정상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원로원도 내심 알고 있을 겁니다. 알고 있으니까 더 필사적으로 폼페이우스 님을 견제하는 거겠죠."

  "그래서 더 어이가 없는 걸세. 이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진심으로 공화정에 해를 끼칠 거로 생각하는 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술라의 밑에서 쭉 경험을 쌓아왔던 내가?"

  "아프리카누스도 공화정을 사랑했지만 원로원 의원들의 손에 탄핵당했죠. 심지어 지금의 원로원은 당시보다도 훨씬 더 무능력합니다. 그들은 폼페이우스 님의 존재 자체가 두려울 겁니다."

  사실 폼페이우스는 출신만 보면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 없는 옵티마테스의 일원이었다.

  아버지 대부터 집정관을 지낸 명문 귀족이었으며, 폼페이우스 본인부터 술라의 수제자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던 까닭이다.

  그런 배경이 있는데도 원로원은 어떻게든 폼페이우스의 위신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마르쿠스로서는 대립 구도의 틈새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 대환영이었지만, 당사자로서는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해적들을 깔끔히 쓸어버리면 아무리 원로원 늙은이들이라도 기세가 죽겠지. 아무런 공적도 없는 놈들이 과연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겠죠."

  묘한 여운이 남는 말이었으나 폼페이우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패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흔한 반응이었다.

  무얼 해도 성공만 하니 자연스레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내 지휘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데 수확은 좀 있었나?"

  "솔직히 말하면 폼페이우스 님의 천재적인 면만 한 번 더 확인하고 끝났습니다. 제가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싸우기도 전에 상대방을 무력화하는 게 전쟁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기회는 됐습니다."

  "그래. 언젠가 자네도 군단을 이끄는 자리에 갈 테니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처럼 회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것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물론 사람들은 위대한 전략가들의 기적 같은 역전의 전술에 환호하지.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걸 거는 회전은 지휘관에게도 너무 부담이 큰 게 현실일세. 이기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지면 모든 게 끝장나버릴 수도 있거든. 게다가 회전에서 이긴다고 해도 상대방을 확실히 무력화하지 못한다면 전쟁은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

  "확실히 그렇죠."

  사실 모두가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처럼 회전을 벌일 때마다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고대 최고의 전략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니발이 좋은 예다.

  그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간 뒤 연달아 3번이나 회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로마를 무너뜨릴 결정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했다.

  결국 아프리카에 상륙한 스키피오의 군대를 막기 위해 회군한 그는 자마 회전에서 패배한다.

  아무리 영웅적인 승리를 거두었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이후 최고의 전락가로 꼽혔었던 피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나, 점차 누적된 피해를 극복하지 못해 물러나게 된다.

  이후 이겨도 승자에게 득이 되지 않는 상황을 피로스의 승리라고 칭하는 격언까지 만들어졌다.

  폼페이우스는 이런 과거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자신만의 전쟁 관을 확실하게 구축해냈다.

  "그러니 자네도 명심하게나. 전투란 전쟁의 승리를 확인하는 작업이 되어야지, 승리를 결정짓기 위한 도박 수가 되어서는 안 되네. 이것만 잊지 않아도 훗날 자네가 이끄는 군단이 어이없이 전멸을 당하는 일은 없을 거야."

  "전투는 승리를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다······."

  마르쿠스는 절대로 잊지 않도록 몇 번이고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전술의 천재가 아닌 그에게는 그야말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였다.

  폼페이우스는 해적 소탕 작전에서 자신의 말이 지닌 의미를 알기 쉽게 결과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아직 작전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남부와 동부에는 여전히 상당한 수의 해적이 남아 있었다.

  배움을 구할 기회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덕분에 마르쿠스의 머릿속에 있는 구상은 점점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이론을 또다시 행동으로 증명해냈다.

  서부전선의 뒤처리가 끝나자마자 폼페이우스는 즉각 군단을 움직였다.

  소탕전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속도에 있다.

  해적들이 자신들이 사냥당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기 전에 거세게 몰아쳐야 한다.

  실제로 해적들은 로마군단의 가공할 속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동부의 해적들이 서쪽에서 로마군단이 소탕을 개시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이미 서부 지역의 소탕이 끝난 뒤였다.

  폼페이우스가 만든 촘촘한 그물망이 서쪽과 남쪽으로부터 천천히 동쪽을 향해 좁혀 왔다.

  해적들은 어찌할 방도도 없이 그저 파도에 휩쓸린 물고기 떼처럼 킬리키아로 몰아넣어 졌다.

  "드디어 마지막 공격에 나선다고 합니다. 목표는 킬리키아 남쪽 해안가의 해적 소굴이라고 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이렇게나 빠르게 전쟁이 끝날 수 있는 것인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전쟁이라고는 크릭수스가 일으켰던 반란과, 동방에서 진행 중이라는 미트리다테스 전쟁 정도였다.

  미트리다테스 전쟁은 무려 7년을 끌고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탈리아반도 내에서 일으킨 크릭수스의 반란조차 1년 이상 진압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중해 전 지역에 걸쳐서 들끓는 해적들이 고작 3달도 안 되는 단기간에 쓸려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도 반드시 마르쿠스를 지키리라 다짐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너만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다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야."

  마르쿠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당장 원로원조차 폼페이우스의 가공할 만한 속도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40일 만에 지중해 서쪽 전역을 평정했다는 보고를 받고 처음에는 거짓이라 의심하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군조차 그렇게 느낄 진대 퇴치당하는 당사자들은 어떤 심경이겠는가.

  해적들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그중 일부는 지중해 세계 전체를 위협했던 자신들의 자존심이라도 지킬 작정이었다.

  대규모로 뭉친 해적들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총공세에 나서는 500척의 로마 군함, 사기가 한껏 오른 군단병들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일제히 배를 띄웠다.

  진군은 순조로웠다.

  연이은 추격전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해적들은 로마군의 엄청난 위용에 섣불리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륙에서 접근하기엔 쉽지 않은 천혜의 요새에 틀어박혀 단단히 수비를 굳힐 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폼페이우스는 싸늘한 조소를 흘리고는 먼저 공격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척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경계를 늦추지 마라.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가뜩이나 저장된 식량도 적을 텐데 소원대로 계속 수성전을 펼치고 있게 해줘라."

  로마군은 인근의 섬을 장악하고 해로를 통해 안정적으로 보급을 받았다.

  반면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해적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육로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육지를 통해 보급을 받을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리고 해로는 이미 로마군에게 완전히 봉쇄당했다.

  가뜩이나 지중해 전역에서 해적들이 쫓겨 온 터라 인원도 터무니없이 불어난 상태였다.

  결국, 포위당해있다는 심적인 공포와 떨어져 가는 식량에 좌절한 해적들이 먼저 뛰쳐나왔다.

  소선을 타고 몰래 도망가려던 소규모의 해적 무리가 곧바로 로마군에게 발각됐다.

  로마 군선의 전면에 장착된 충각이 작은 해적선을 들이받아 무참하게 박살 내버렸다.

  콰앙!

  "크악!"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떨어진 해적들을 향해 화살과 투창이 날아들었다.

  삽시간에 푸른 바닷물이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탈출을 시도한 다른 해적들의 말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형 쾌속선을 쓰면 걸릴 게 뻔하니 소선을 타고 탈출했으나, 촘촘한 포위망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대부분은 군선의 충각에 배가 박살 났고, 일부는 발리스타에 정통으로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결국, 자포자기한 해적들은 모든 배를 이끌고 최후의 항전에 나서기로 했다.

  "해적선들이 대규모로 나옵니다!"

  그동안 약탈하고 건조한 선박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배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사기가 바닥을 치고, 식량부족으로 힘도 제대로 못 쓰는 해적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최후의 발악일 뿐이다. 포위망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차분하게 섬멸해라!"

  쏟아져 나오는 해적들은 이미 포위진을 형성한 로마 선단에 그대로 들이받는 형태가 됐다.

  당연히 이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었다.

  소선에 탄 해적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다에 빠져 고혼이 되었다.

  갤리선에 탄 해적들도 갑판을 타고 넘어오기도 전에 투창과 화살 세례를 받고 명을 다했다.

  운 좋게 백병전을 벌이는 데 성공한 이들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원래부터 절망적일 정도의 전력 차가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식량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다.

  상대가 될 리가 만무했다.

  폼페이우스의 지론대로 이미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승패는 결정된 사항이었다.

  수백 척이 넘는 해적선이 부서지고 수천이 넘는 해적들이 싸늘한 주검이 됐다.

  더는 요새 밖으로 나오는 자들이 없자 폼페이우스는 기지의 제압을 명령했다.

  천혜의 요새라고 해봐야 지키는 자들의 의지와 힘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로마군이 상륙했을 때 해적들의 거점은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재보를 쌓아둔 창고 앞에서는 자중지란을 벌이는 무리까지 있었다.

  "길을 비켜 이 새끼들아!"

  "웃기지 마라! 이 보물들은 못 넘긴다!"

  도망갈 길이 없는데도 보물을 챙기려는 건 어떤 심산인지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로마군의 칼에 쓰러진 자들보다 서로를 향해 창칼을 찔려 죽은 이들이 더 많았다.

  "추악하면서도 불쌍한 광경이로군."

  그 광경을 지켜본 마르쿠스가 씁쓸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스파르타쿠스는 말없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잘 갈아두었던 검은 검집에서 뽑혀 나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지중해 전역을 공포로 몰아갔던 대해적 봉기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말로였다.

  전투가 시작된 뒤로 해적들의 거점을 완전히 제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전선을 서부에서 동부로 옮긴 지 고작 49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부를 제압하는데 40일.

  남부와 동부를 평정하는데 49일.

  폼페이우스는 3개월도 채 되지 않는 89일 만에 지중해 전역에 로마의 평화, 즉 '팍스 로마나'를 구현했다.

  세상의 그 누가 와도 이루어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폼페이우스야말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재래이며, 위대한 신들의 후손이다!"

  해적들에게 신전은 물론 도시와 가옥까지 약탈당했던 그리스인들은 무릎을 꿇고 폼페이우스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스가 해적들에게 시달린 역사는 로마보다도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들은 기원전 1세기 전반부터 끊임없이 해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토벌하려고 해도 이미 쇠락한 그리스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로마도 지금까지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폼페이우스는 단 89일 만에 해치워 버린 셈이다.

  그리스인들이 폼페이우스를 신으로 칭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3년이란 장기간을 염두에 두고 받은 임페리움은 아직 10분의 1도 채 지나지 않았다.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귀환하라는 요구를 보냈으나, 그는 일고의 여지도 없이 거절했다.

  해적 소탕을 나설 때부터 곧바로 귀환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해적들 따위를 쓸어버리는 건 사전준비에 지나지 않았다.

  폼페이우스가 노리는 진짜 목적은 처음부터 따로 있었다.

  "동방 속주의 책임자인 루쿨루스를 해임하고, 나 폼페이우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시오. 해적들을 소탕한 내가 이 분쟁의 원인이 된 미트리다테스를 직접 끝장낼 것이오."

  시대를 뒤흔드는 바람은 아직 잠잠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바람은 폼페이우스라는 거인의 손에 의해 동방을 휩쓰는 폭풍으로 변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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