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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50/326)

  # 50 49.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이 순순히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해적들을 소탕하기 전 미리 자신의 대변인인 가비니우스에게 서신을 보내놓았다.

  현재 로마에서 폼페이우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스만큼은 아니었지만, 로마도 해적들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동방으로 자주 왕래하는 기사계급은 해적들을 대비하느라 언제나 추가지출을 감수해야만 했다.

  최근 2년간은 해적들 때문에 밀값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가 89일 만에 깔끔하게 제거된 것이다.

  로마로 들어오는 곡물의 양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해적들에게 포로로 잡혀있었던 사람들도 모두 풀려났다.

  가만히 있었으면 꼼짝없이 노예가 됐을 사람들이다.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온 그들은 폼페이우스의 영웅적인 활약을 열정적으로 퍼트리고 다녔다.

  가비니우스는 민회에서 폼페이우스가 이룬 업적을 자랑스레 발표했다.

  "위대한 폼페이우스 덕분에 지중해 항해는 이제 완전히 안전해졌습니다. 그가 나포한 해적선만 400척이 넘어가고 그의 손에 격침된 해적선은 1천 하고도 300척이 더 됩니다!

  해적들이 다시는 배를 몰고 나오지 못하도록 모든 거점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해적들이 이렇게 날뛸 수 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 사악한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가 지원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즉, 아직 해적 소탕의 근원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

  "미트리다테스를 쳐 죽여라!"

  "무능한 루쿨루스를 해임하고 폼페이우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해라!"

  전쟁이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지친다.

  미트리다테스가 로마에게 전쟁을 건 것은 이번이 3번째였다.

  루쿨루스가 미트리다테스와 싸운 건 7년이지만 미트리다테스는 술라 때부터 로마와 싸워왔다.

  그 기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20년을 로마와 싸운 게 된다.

  시민들은 이제 슬슬 누군가가 미트리다테스를 끝장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루쿨루스에게 기대를 걸었던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실패했다.

  폼페이우스에게 시민들의 열망이 집중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현재 폼페이우스가 머무는 킬리키아는 동방 속주와 바로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사령관으로 임명만 되면 곧바로 제압을 시작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폼페이우스가 해적을 쓸어버렸듯이 미트리다테스도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원로원은 대다수 의원이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평상시와 같았다.

  루쿨루스의 동생 테렌티우스가 절대로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가비니우스 이 자는 폼페이우스의 앞잡이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이 사실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식의 요구를 계속 들어준다면 폼페이우스는 점점 더 우리 원로원을 얕보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얕보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테렌티우스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잇따라 폼페이우스의 오만함을 성토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도 폼페이우스의 편을 드는 의원이 있었다. 바로 카이사르였다.

  원로원의 권위가 낮아지는 건 그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존경하는 의원님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폼페이우스의 제안은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터무니없는 게 아니라니! 폼페이우스는 신들의 이름 앞에서 임무가 끝나면 군단을 해산하겠다고 맹세했단 말일세!"

  "그러니까 그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폼페이우스는 해적을 격멸하기 위해 대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적의 배후에는 미트리다테스 6세가 있습니다. 즉, 그자를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해적 소탕 작전의 진정한 마무리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궤, 궤변이오! 미트리다테스는 그저 해적들에게 자금을 제공했을 뿐이오!"

  "그게 바로 해적과 한패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루쿨루스로 동방 전쟁을 계속하는 건 역시 무리가 있습니다. 지휘관을 교체하기는 해야 할 텐데 폼페이우스가 아닌 다른 자를 지휘관으로 보낸다? 시민들이 이를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심지어 그 지휘관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뒷감당은 대체 누가 할 겁니까."

  카이사르는 마치 네가 감당하겠냐는 눈빛으로 테렌티우스를 바라보았다.

  테렌티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의원들 역시 카이사르의 눈길을 피했다.

  결국 대책 없는 반대만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현 원로원의 무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라 할 수 있겠다.

  보다 못한 키케로가 의견조율에 들어갔다.

  "여러분, 폼페이우스의 주장은 오만하기는 하지만 카이사르의 말대로 합리적입니다.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우리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이미 막대한 권한을 주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대범하게 그를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원로원이 반대한다고 해도 호르텐시우스의 법에 따라 민회에서 가결된다면 우린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

  현실적인 키케로의 조언에도 원로원 의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은 끝까지 반대를 관철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피력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키케로의 예상대로 민회는 압도적인 지지로 루쿨루스의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무려 35개의 선거구 전체가 찬성표를 던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기사계급마저 평민들의 편에 섰다.

  루쿨루스가 동방 속주를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기사계급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루쿨루스의 편을 들어주는 건 드넓은 로마에서 오직 원로원뿐이었다.

  기세를 탄 가비니우스는 이 틈에 또 하나의 법을 통과시켰다.

  바로 로마 공직자로 선출될 수 있는 나이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본래 30세가 되어야 출마할 수 있는 재무관의 자격요건을 25세로 낮추었다.

  다른 관직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집정관의 최소 나이는 폼페이우스가 처음으로 집정관이 됐던 36세에 정확히 맞추었다.

  가비니우스는 과거에 피치 못할 이유로 나이 제한을 어긴 이들도 이 기준에 맞는다면 불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누가 봐도 폼페이우스를 위해 마련된 법안이었다.

  원로원은 결사반대를 외쳤으나 누구도 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철저히 고립된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원로원 회의에서 폼페이우스를 욕하는 것뿐이었다.

  이로써 원로원 강화를 위해 술라가 했던 모든 개혁은 유명무실해졌거나, 폐지 됐다.

  폼페이우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임페리움을 필요한 시기까지 연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의 관할 하에 들어온 영역은 동방 속주 전체였다.

  자신의 해임 소식을 들은 루쿨루스는 개선식이라도 허가해 달라는 요구를 보냈고, 원로원은 이를 수락했다.

  비록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어도 성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마인으로서는 최초로 카스피 해까지 진군했으며, 영웅적인 승리도 몇 번이나 거두었다.

  한 차례 폰투스와 아르메니아까지 치고 들어가며 빼앗은 막대한 양의 금, 은, 재화도 있었다.

  원로원은 일단 개선식을 거행할 자격요건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술라의 수제자격인 루쿨루스가 돌아오면 폼페이우스를 견제해줄 거라는 희망적인 관측도 한몫을 했다.

  씁쓸하지만 이 정도가 현재 원로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동방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폼페이우스는 즉각 킬리키아에서 북상했다.

  루쿨루스와 폼페이우스는 비티니아의 서쪽에 있는 갈라티아라는 지방에서 인수인계하기로 했다.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의 부관 자격으로 두 거물이 만나는 곳에 동행했다.

  "루쿨루스 님의 심기가 편치 않을 텐데 괜찮을까요?"

  "기분이 나쁘다고 그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나. 어차피 이제 사령관은 나인데.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루쿨루스의 군단병들도 내 지휘를 받는 걸 더 좋아할걸?"

  폼페이우스는 부하들을 다루는 데 실패한 루쿨루스를 내심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위협적인 경쟁자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도 루쿨루스 님은 폼페이우스 님에게 있어서도 선배격의 인물이 아닙니까. 뛰어난 전술가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고요."

  "뭐, 그렇긴 하지.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는 차릴 생각이네. 하지만 그 이상은······."

  마르쿠스와 폼페이우스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군대를 거느리고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마 위의 머리가 상당히 벗겨진 엄숙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두 사람에게 걸어왔다.

  총사령관에게만 허락된 주홍색 망토가 그가 루쿨루스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폼페이우스는 반갑게 웃으며 그에게 팔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친애하는 루쿨루스. 이게 몇 년 만이죠?"

  루쿨루스가 폼페이우스가 내민 팔을 맞잡으며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동방으로 파견 오기 전에 한 번 보았으니 족히 7년은 넘었군. 자네의 눈부신 업적은 여기서도 익히 들었네. 그런데 옆에 있는 청년은 누구인가?"

  루쿨루스의 시선을 받은 마르쿠스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입니다. 폼페이우스 님의 부관 자격으로 종군하고 있습니다."

  "오, 자네가 그 크라수스의 아들인가? 크라수스가 자식 사랑이 극진하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그 뒤에도 몇 번인가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고 갔다.

  그래도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폼페이우스가 루쿨루스를 내심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무시할 만한 위치의 인물은 아니었다.

  어쨌든 옵티마테스의 일원이며 집정관을 지냈고, 전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개선식까지 치르기로 예정된 이다.

  제아무리 폼페이우스라도 열두 살이나 더 많은 선배 앞에서 대놓고 무례를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속주 총독의 인수인계는 우선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자신의 지휘봉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된다.

  루쿨루스에게 지휘봉을 건네받은 폼페이우스는 훈훈한 칭찬으로 답례를 했다.

  "비록 전쟁은 끝내지 못했어도 루쿨루스 님의 활약상은 많은 로마인의 가슴을 뜨겁게 했을 겁니다. 특히 5배 이상 더 많은 아르메니아의 군대를 격퇴한 전술은 후대에도 많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

  "허허,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 나도 자네가 해적 소탕 작전에서 보인 눈부신 전략을 감동과 경탄의 눈길로 지켜보았네. 과연 전략의 천재 폼페이우스다운 성과일세."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고작 해적 놈들 쓸어버렸을 뿐, 폰투스와 아르메니아를 몰아친 루쿨루스 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뭐, 그래도 나머지는 제가 손쉽게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로마로 돌아가셔서 마음 편히 후속 보고를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손쉽게' 마무리를 짓겠다는 표현에 루쿨루스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자신은 이 손쉬운 일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무능한 장수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뒤틀린 속내를 숨기지 못한 그는 묘하게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전임자의 공을 받아 마무리 짓는 건 자네의 가장 큰 특기가 아닌가. 세르토리우스 반란도 그랬고, 노예 반란도 그랬으니까. 이번 동방전쟁도 충분히 잘 마무리를 하겠지. 내가 폰투스와 아르메니아를 완전히 박살을 내놨으니까."

  폼페이우스의 입에 걸려있던 억지 미소가 씻은 듯 사라졌다.

  남의 공을 가로챈다는 비난은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공격할 때 가장 잘 써먹는 수단이었다.

  물론 이는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를 해서 끝낸 전쟁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술라의 문하에서 민중파를 쓸어버린 일도 그렇고, 이후 레피두스가 일으킨 반란도 폼페이우스가 혼자서 제압해냈다.

  노예 반란에 숟가락을 얹은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은 폼페이우스가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치열한 전쟁이었다.

  당장 이번 해적 소탕만 해도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입증해 보였다.

  물론 그건 폼페이우스의 입장일 뿐이고, 루쿨루스는 기분이 나쁜 게 당연했다.

  필사적으로 판을 다 깔아놨더니 정작 다른 사람이 공을 넙죽 가져갈 상황이 된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이제 억지로 갖추고 있던 예의를 집어던지고 싸늘한 조소로 맞대응했다.

  "하! 내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가 됐겠소? 바로 원로원의 무능한 장수들이 전쟁을 끝낼 능력이 없어서 내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오? 바로 지금 루쿨루스, 당신처럼!"

  "뭐라?"

  "내가 틀린 말을 했소? 세상에 대체 얼마나 탐욕을 부렸으면 부하들이 종군거부를 하는 수준을 넘어 무기한 집단파업에 들어간다는 말이오. 나였다면 충분한 전리품을 나눠줘서 처음부터 부하들의 마음을 잡았을 거요. 부하들의 인망도 얻지 못하는 자가 무슨 임페라토르를 자처하겠다고···쯧."

  아픈 데를 연달아 찔리자 루쿨루스는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여기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7년이나 끈 전쟁을 마무리 짓지도 못했으면서 개선식을 하겠다니 참으로 대단한 염치가 아니오. 나였다면 부끄러워서 오히려 시민들에게 사죄했을 거요. 로마인 중 최초로 카스피 해까지 진격하고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후퇴를 했으니 따지고 보면 로마의 명예를 더럽힌 거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개선식이라니 나 원······."

  점점 과격해지는 언사에 마르쿠스가 폼페이우스에게 그쯤 하는 게 좋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두 손을 부들부들 떠는 루쿨루스를 본 폼페이우스는 그제야 비판을 멈추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자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옆에 마르쿠스가 있으니 참아준다는 느낌이었다.

  "흠, 어쨌거나 당신이 뭐라고 해도 이 지역의 총독은 나요. 인수인계를 마쳤으면 즉각 로마로 돌아가시오."

  "그쪽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돌아갈 거니 신경 끄시게. 그리고 아무리 자네가 총독이라고 해도 내 개선식에 함께할 병사들을 내어줘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겠지?"

  개선식에는 임페라토르를 연호하며 함께 행진할 병사들의 존재가 필수였다.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폼페이우스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루쿨루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좋은 생각을 떠올린 그는 흔쾌히 허락을 내려주었다.

  "물론. 개선식을 치르는데 병사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 천오백에서 육백 정도 내어줄 테니 데려가시오."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아는군. 나는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돌아가겠소."

  심기가 뒤틀린 루쿨루스는 인사도 하지 않고 휑하니 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르쿠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무 감정싸움을 하신 게 아닌지."

  "흥, 이제 루쿨루스 저 자가 역사의 전면에 나설 일은 없을 텐데 무슨 걱정인가. 로마로 돌아가면 동방에서 끌어 모은 재산으로 호화스러운 삶이나 누리면서 유유자적 살겠지."

  "냉정하시네요."

  "자네도 나중에 느끼는 날이 올 걸세. 사람이 좋아봐야 결국 주변에서는 이용할 생각만 하는 법이야. 물론 상재가 뛰어난 자네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정치판은 더하다네."

  폼페이우스의 말 자체에는 마르쿠스도 동감했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했다.

  정치판에서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고 해도 표면적으로는 그걸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

  치명적인 한 수를 준비하고 있어도 그 독은 친근한 미소 뒤에 감춰둬야 한다.

  그리고 상대를 밟을 때는 가차 없이, 철저하게 짓밟아 후환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폼페이우스처럼 상대를 망신만 주는 건 괜히 우환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정치력이 군재의 절반만 됐어도 로마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내심 안타까워하는 마르쿠스의 속내와 반대로 폼페이우스는 루쿨루스가 보일 반응을 기대하며 잔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로마로 돌아가기 위해 항구에 도착한 루쿨루스의 눈에 폼페이우스가 약속한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늘어선 대열을 보니 약속대로 일천 오백이 넘어보였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가능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루쿨루스는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그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폼페이우스 이 개자식이······."

  나열해 있는 병사들의 태반은 은퇴를 앞둔 노병과 중상을 입어 전투가 불가능한 이들이었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친히 루쿨루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병사들을 선별해 귀향길에 동행시켰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굴욕감이 루쿨루스의 전신을 내달렸다.

  "감히 나에게···이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를 이 따위로 대우한다고?"

  루쿨루스가 아무리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고 해도 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르쿠스의 예상대로 폼페이우스의 이 행동은 득보다는 실이 될 테지만, 지금의 폼페이우스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실패라는 것과 관련이 없었던 사나이다.

  걸림돌이야 발로 차서 날려버리면 된다고 판단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거리낌 없이 했다.

  루쿨루스와 원로원이 어떤 수단을 쓴다고 해도 그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폼페이우스에게 힘없는 원로원과 루쿨루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폰투스와 아르메니아만을 향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로마를 괴롭혀온 동방의 전제군주들이 마침내 폼페이우스라는 대재앙과 마주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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