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50.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 루쿨루스에게 동방 전선의 지휘권을 넘겨받은 폼페이우스는 군단 재편성에 들어갔다.
해적 소탕 때 편성된 20개 군단을 그대로 가용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원로원에서 끈질기게 반대표를 던진 결과물이었다.
온갖 핑계를 댄 끝에 그들은 폼페이우스에게 허용된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폼페이우스가 동방을 평정하는데 위임받은 전력은 10개 군단과 270척의 함대였다.
이 정도만 해도 6만이 훌쩍 넘는 대군이었다.
루쿨루스가 미트리다테스와 전쟁할 때 지휘한 병력의 2배였다.
폼페이우스가 새롭게 사령관이 되어 10개 군단을 전선에 배치한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루쿨루스에게 한 차례 혼쭐이 난 미트리다테스와 티그라네스는 바싹 긴장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속도전을 중시하는 평소의 기조와는 다르게 느긋한 움직임을 보였다.
군단 편성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의 허락을 맡고 비티니아로 향했다.
올해는 군을 움직일 계획이 없으니 충분히 볼 일을 보고와도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말을 타고 비티니아에 당도한 마르쿠스는 바로 타디우스를 찾았다.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이미 제법 괜찮은 건물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마르쿠스의 신분을 확인한 직원들이 그를 깨끗한 별채로 안내했다.
별채 안의 객실을 지키는 노예들이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타디우스 님은 안에 계십니다."
문을 통해 들어가자 탁자 앞에 앉아 있는 타디우스가 보였다. 그의 옆에는 상당한 양의 문서가 쌓여 있었다.
바쁘게 갈잎 펜을 움직이던 타디우스는 마르쿠스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밀 사재기에서 마르쿠스의 능력을 익히 실감한 그다.
게다가 해적 소탕이 단시간에 끝날 거라는 사실까지 완벽히 맞췄다.
놀라움은 물론 두려움조차 초월한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싹텄다.
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면 자연스레 신의 존재와 결부시키곤 했다.
타디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마르쿠스가 신의 총애를 받는 자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 마르쿠스를 대하는 타디우스의 태도는 흡사 왕을 대하는 신하와 비슷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부탁한 일은 순조롭게 진행 중인가?"
"물론입니다. 현재 동방 속주의 기사 계급들을 포섭해 무역 망을 구축 중입니다. 그래도 크라수스 가문과의 관계성은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게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다. 크라수스 가문의 클리엔테스들을 동원하면 훨씬 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그러지 말라고 하신지라······."
"그래, 잘했어. 안 그래도 밀 사재기 때문에 너를 주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나와 너무 가까운 모습을 연출해서는 안 돼.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그렇고."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이긴 했어도 밀을 대량으로 구매한 이상 타디우스는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그게 마르쿠스와 관련이 있다고 파악한 사람은 율리아뿐이겠지만, 더욱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데 그러면 도련님이 이렇게 저와 만나는 것도 조심하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만나는 것 정도야 상관없어. 로마에 이름난 상인 중 나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이 더 드무니까. 네 배후에 내가 있다는 것만 알려지지 않으면 괜찮아."
"예. 아, 그리고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파르티아의 상인과도 접촉했습니다. 그 옷감이 비단이라고 하던가요? 정말로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보이더군요. 로마로 가져가면 엄청난 돈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파르티아 놈들이 중간에서 떼먹으니 값이 엄청나게 뛰긴 하겠지만, 그래도 귀족들은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어줄 거야."
본래 로마가 비단의 존재를 인식하는 건 앞으로 10년도 더 뒤의 미래였다.
그리고 과시욕이 많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카이사르가 직접 비단을 로마에 유행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도 파르티아가 로마와 한나라 사이를 가로막아 비단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
파르티아 입장에서는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기회였으니 이를 포기할 리가 없었다.
로마에서 엄청난 유행을 일으킨 비단은 한 필이 말 한 마리 이상의 가격을 자랑했다고 한다.
마르쿠스는 파르티아와 관계를 맺는 김에 겸사겸사 이 비단을 로마로 들여올 계획이었다.
물론 비단의 판매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였다.
마르쿠스가 진짜로 노리는 건 파르티아의 고위 귀족들과 연줄을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파르티아는 스스로를 페르시아의 후예라 자처하는 강국으로 결코 얕볼 수 없는 힘을 지녔다.
원 역사에서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 군단은 이 파르티아에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다.
로마 공화정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크라수스와 그의 차남 푸블리우스까지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날 것이다.
마르쿠스로서는 절대로 닥치게 둬서는 안 될 미래였다.
이후로도 파르티아는 로마와 여러 차례 충돌하지만, 로마는 파르티아를 완전히 복속시키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길어진 보급선을 로마가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파르티아의 지속적인 저항도 한몫을 했다.
이 두 가지 장애물은 결코 단시간에 해결을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확실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었다.
마르쿠스는 타디우스조차 집중해야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다음 임무를 알려주었다.
"현 파르티아 왕인 프라아테스 3세의 아들 중 미트리다테스 3세라는 왕자가 있어. 폭력적이면서 급하고 성질이 안 좋은 놈인데 그자와 연이 닿아 있는 귀족과 접촉하도록 해. 너무 급하게는 하지 말고 5년 내로 성과를 거두면 충분해."
"왕족과 가까운 귀족이라면 관계를 맺긴 힘들겠지만 5년이라면···가능할 것 같군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파르티아의 국왕 프라아테스 3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오로데스 2세와 미트리다테스 3세가 그 두 명이다.
미트리다테스 3세는 로마와 전쟁 중인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와는 당연히 별개의 인물이었다.
마르쿠스는 파르티아의 왕자들 간에 흐르는 미묘한 알력을 최대한 이용해볼 계획이었다.
한참이나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분쟁의 씨앗은 미리미리 뿌려놓아야 적절한 때에 수확할 수 있는 법이다.
'전투란 전쟁의 승리를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에게 받은 가르침을 충실하게 적용해볼 계획이었다.
전쟁에 들어가는 순간은 최소한 9할 이상의 승리를 확신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마르쿠스는 이후로 타디우스에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상세히 일러주었다.
막대한 양의 자료를 검토하며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변수도 전부 검토하기 시작했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탁월한 판단력이 한계까지 발휘되고 있었다.
※※※※
폼페이우스는 여유롭게 움직이면서도 싸우기 전에 이긴다는 자신의 전략을 충실히 실천했다.
그는 단순히 미트리다테스를 쓰러뜨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어설프게 승리를 거둬봐야 미트리다테스는 언제나 그랬듯 다시 재기에 성공할 것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한 번에 숨통을 끊을 필요가 있었다.
후방에서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그럴 기반을 닦아놓기 위해서였다.
폼페이우스는 우선 포로로 잡고 있던 해적 노예들을 풀어주었다.
질이 안 좋고 너무 심한 약탈을 한 자들은 진즉 처형했는데도 2만이 넘는 포로가 남아 있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동방의 전쟁에 말려들어 가족과 터전을 잃고 해적이 된 자들이었다.
후방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면 군단은 시간이 갈수록 진군할 힘을 잃어버린다.
다행히 소아시아는 야만인들이 사는 미개척지대는 아니었다.
해적들의 본거지인 킬리키아도 원래는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단지 너무 잦은 전쟁에 휩쓸려 수많은 도시와 땅이 폐허가 됐던 것뿐이다.
폼페이우스는 포로로 잡혀 있던 해적들이 다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앞으로는 충실히 농사를 짓고 폭력적인 삶에서 벗어나도록. 너희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면 다시는 이전처럼 쫓겨날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자비에 포로들은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해적들에게 약탈당한 해안가의 주민들을 배려해 포로들은 철저히 내륙지방에만 이주시켰다.
포로들은 당연히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부흥시키기 위해 애썼다.
루쿨루스가 실패했던 속주의 안정화 작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폼페이우스는 루쿨루스에게 배척받았던 기사 계급을 중용해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기사 계급의 대표 격인 마르쿠스의 존재 덕분에 일이 한층 더 쉽게 풀렸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적에게도 대비할 여유를 주는 게 아닐까요?"
군단장들이 의문을 표했으나 폼페이우스는 그럴 가능성을 일축했다.
"조금이야 회복하겠지. 하지만 시간을 들이면 유리해지는 건 우리지 저쪽이 아닐세."
루쿨루스에게 쫓겨났었던 미트리다테스는 이미 폰투스에 돌아와 옛 영토를 회복한 상태였다.
부하들은 이대로 시간을 두면 미트리다테스가 과거의 성세를 완전히 회복할 거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폰투스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영토는 찾았을지 몰라도 잇따른 패배로 손실된 병력은 한순간에 보충되는 게 아니다.
폼페이우스는 필요 이상의 호들갑을 떨지도, 적을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기원전 66년의 봄이 끝날 무렵.
후방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폼페이우스는 진군할 준비를 끝마쳤다.
완벽히 채비가 갖춰지자 몰아치는 속도는 폭풍과도 같았다.
10개 군단을 앞세운 폼페이우스는 그대로 폰투스 왕국으로 진군했다.
미트리다테스는 허를 찔렸다.
여유롭게 준비를 하는 모습에 속았다.
이렇게 갑작스레 쳐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노도와 같이 치고 들어온 로마군은 강했다.
10개 군단의 대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 폰투스의 방어군을 가볍게 쓸어버리며 수도로 다가왔다.
"반격이다. 전군을 소집하라!"
미트리다테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로마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 아르메니아에서 원군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풍부한 자금을 동원해 3만이 넘는 병력을 편성했다.
수도에 병력을 집중한 미트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공성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그런 미트리다테스의 노림수를 비웃듯 전방위적인 파상공세를 펼쳤다.
폰투스 전역의 도시들이 로마군의 손에 떨어졌다.
아르메니아에서도 원군파병이 지체될 것 같다는 악재가 들려왔다.
결국 미트리다테스는 어쩔 수 없이 3만의 병력으로 폼페이우스와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
용감하긴 했으나 무모한 결정이었다.
미트리다테스는 훨씬 더 많은 병력을 지니고 있을 때도 루쿨루스에게 패배했다.
게다가 현재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병력은 루쿨루스보다 2배나 더 많았다.
물론 미트리다테스에게 노림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사방으로 퍼져 있는 로마군이 다시 모이기 전에 폼페이우스의 본대를 칠 작정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생각이 폼페이우스에게 읽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조함이 몰려오면 자연히 시야는 좁아지고 무리수를 두게 되지."
저 멀리 대열을 펼치고 있는 폰투스군의 진영을 본 폼페이우스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진영에는 이미 9개 군단이 집결해 있었다.
1개 군단은 미트리다테스의 퇴로를 제한하려고 일부러 소집하지 않았다.
미트리다테스가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온 순간 전쟁의 승패는 결정됐다.
"폰투스가 자랑하는 전차병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군."
폰투스군은 병종의 구성부터 이미 만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래 헬레니즘 왕조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수의 고급 병종을 운영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병사들의 대부분은 보병과 경무장 기병들이었다.
그나마 중장기병인 카타프락토이도 보이긴 했으나 폼페이우스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는 옆에서 함께 전황을 지켜보는 마르쿠스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자네의 아버지가 만든 등자를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마침 좋은 시연 무대가 되겠군."
"적들과 기병전을 벌이실 생각입니까? 카타프락토이는 위협적인 상대일 텐데요."
"그건 정면에서 싸워줬을 때의 이야기일세. 사실 헬레니즘 왕조의 중장기병을 공략하는 법은 이미 오래전에 결론이 나왔거든. 이미 파훼 당한 수에 매달리는 것만큼 불쌍한 자들은 없는 법이지."
쾅! 콰앙!
요란한 발리스타의 발사음이 회전의 서막을 알렸다.
발리스타의 명중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적들을 움찔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아무리 카타프락토이여도 스콜피오와 발리스타의 포격을 뚫고 정면으로 돌진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로마군은 기병들이 접근하기 힘들도록 철로 된 마름쇠들을 어지럽게 뿌려놓았다.
물론 미트리다테스는 학습능력이 없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술라와 루쿨루스에게 패배했던 때와 같은 전술을 펼칠 마음은 없었다.
"기병들은 최대한 측면으로 돌아가 적을 타격하라! 기병이 측면을 돌파할 때까지 보병들은 정면에서 적들의 공세를 버틴다!"
수십 년간 연달아 얻어터지다 보면 싫어도 상대방의 전략을 흡수하게 된다.
미트리다테스는 로마군이 즐겨 사용하는 망치와 모루 전술을 응용해 구사했다.
사실 헬레니즘 왕조도 옛날부터 망치와 모루 전술을 사용하긴 했다.
애초에 이 전술을 완성한 사람은 엄연히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따지고 보면 이쪽이 원조인 셈이다.
그러나 전술의 숙련도는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헬레니즘 왕조보다 로마가 월등히 높았다.
로마는 한니발이 한층 더 가다듬어 완벽히 승화시킨 이 전술을 자신들이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트리다테스는 로마군에 연달아 패배하며 양자 간의 전술적 역량 차이를 몸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구를 거쳐 자신들이 당한 전략을 그대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로마의 군단병이 강력하기는 해도 기병 전력은 자신들이 우위라는 확신이 있었던 까닭이다.
물론 완벽한 오산이었다.
미트리다테스의 의도를 읽은 폼페이우스는 등자를 착용한 기병들을 측면에 배치했다.
맹렬하게 달려오던 폰투스의 카타프락토이는 로마 기병들의 산발적인 공격에 발이 묶였다.
폼페이우스군과 루쿨루스군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점이었다.
등자가 보급된 뒤의 로마군은 기병을 육성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경기병들은 안정적인 자세로 정확한 사격을 날렸고, 다른 기병들도 마상전투를 한층 더 수월하게 해냈다.
마르쿠스가 정보를 은폐해 카우치드 랜스를 사용하는 중장기병은 육성되지 않고 있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대신 로마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던 궁기병을 대폭 증강한 까닭이다.
원래 로마군에서 활은 그리 비중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등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궁기병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을 느꼈다.
활은 시리아에서 사용하는 합성궁의 일종을 들여와 사거리와 위력을 늘렸다.
이렇게 기병 전력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것만으로도 종래 로마군이 가지고 있던 힘은 거의 배로 상승했다.
"뭐냐! 어째서 로마 놈들의 기병을 뚫어내지 못하는 거냐! 저 궁기병들은 또 뭐냐! 언제부터 저놈들이 저런 병종을 대규모로 운영했다는 말인가!"
믿었던 정예병력이 망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자 미트리다테스는 혼란에 빠졌다.
처음에는 로마 기병들을 내심 얕잡아 보았으나 저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폼페이우스의 훈련과 지휘하에 정예화된 기병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마치 저 파르티아의 기병들을 상대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든든한 모루 역할을 해줘야 하는 중앙병력마저 로마군의 맹공에 삽시간에 돌파당하고 있었다.
측면이 뚫릴 리가 없다고 확신한 폼페이우스가 중앙에 정예병을 집중해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특히 스파르타쿠스가 속해 있는 백인대의 활약이 눈부셨다.
전열의 한 축에 구멍이 뻥 뚫리자 폰투스 군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망치와 모루 전술은 모루가 버티는 사이 망치 역할을 하는 기병대가 적의 후방을 타격해야 한다.
그러나 모루는 적의 공세에 뚫렸고, 망치는 적을 타격하기는커녕 발이 묶여 우물쭈물하는 상황이다.
결국 폰투스 군은 별다른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다 같이 패주하는 비극에 빠졌다.
심지어 걸음이 느린 보병들은 제대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로마군에게 포위당했다.
미트리다테스는 간신히 끌어모은 병력이 학살당하는 걸 지켜보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로마···저주스러운 이름 같으니!"
이렇게 싸워도 지고, 저렇게 싸워도 지니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다.
부하들의 시선만 아니라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그는 좌절까지는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패배를 겪었어도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순간이다.
도주하는 그의 눈에 주홍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 폼페이우스의 당당한 모습이 비쳐들었다.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이상하게 상대방의 표정이 눈에 박혀 들었다.
대승리를 거두었으면서도 이를 당연시하는 무심한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일까.
이번만큼은 전처럼 잘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미트리다테스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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