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동방의 지배자 >
예루살렘 성은 높은 골짜기 위에 지어져 있으며 몇 겹의 성벽을 둘러쳐 철통같은 방어를 자랑했다.
보통의 적을 상대로는 몇 년 동안 방어를 해도 꿈쩍하지 않을 천혜의 요새였다.
문제는 로마가 그런 보통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의 북쪽에 진을 치고 차분하게 공성전을 준비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마르쿠스가 매수한 예루살렘 병사가 내부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예루살렘은 대제사장 힐카누스 2세가 지지자를 규합해 내분을 일으킨 상황이었다.
비교적 상황판단을 똑바로 하고 있는 그는 로마와 맞서면 멸망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굳이 피를 흘리며 공성전을 하기보다는 압도적인 전력의 무력시위로 적의 사기를 계속 깎아나갔다.
결국 더 견디지 못한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주전파를 몰아내고 스스로 성문을 열었다.
아리스토불루스를 지지하는 주전파는 성전이 있는 골짜기로 피신했다.
골짜기를 넘어오는 다리까지 끊은 그들은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성전이 위치한 산악요새도 꽤 험준한 곳이었지만 로마군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유대인이 안식일에는 싸움을 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조언을 받은 폼페이우스는 안식일을 이용해 골짜기를 둘러싸는 거대한 토성을 쌓았다.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눈앞에서 올라가고 있는 토성을 보고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결국 예루살렘과 성전은 단 3개월 만에 로마의 손에 떨어졌다.
길다면 길지만, 철통같은 방어력을 자랑한다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스라엘이 그간 보인 오만한 태도에 분노한 로마군은 약탈을 허락해 달라 요청했다.
폼페이우스는 제한적인 허가를 내려주었다.
이스라엘의 성향상 한 번쯤은 본때를 보여주는 게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성문을 열어준 힐카누스의 지지자들은 그대로 놔두도록. 아리스토불루스의 지지자들과 끝까지 로마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대상으로는 약탈을 허가하겠다."
폼페이우스는 그 와중에도 성전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도 담담하게 제사를 드리는 유대교 제사장들의 신앙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유대교의 성전에 호기심이 생긴 폼페이우스는 마르쿠스를 데리고 성소를 구경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대체 무슨 신을 믿기에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 무슨 창조주 어쩌고 하던데 어째서 신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는 거지?"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신성하게 여겨 글로만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어떻게 구별을···아, 유대교의 신은 하나뿐이라고 했으니 그 점은 상관없겠군."
"예. 그들이 믿는 신은 로마가 믿는 신과는 많이 다릅니다."
"신이 한 명뿐이라니 거참 신기한 종교도 다 있군."
폼페이우스는 유대교의 교리에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성소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지 못했다.
유대교의 성소 안쪽은 지성소라는 공간인데 이곳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다.
당연히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폼페이우스는 입구에서 무기를 마르쿠스에게 맡겼다.
"자네도 같이 가서 구경하는 게 어떤가?"
"어차피 안에 들어가 봐야 별거 없을 겁니다. 전 여기서 기다리죠."
"그래? 그럼 나는 이들이 믿는 신의 동상이라도 구경하고 오겠네."
폼페이우스가 성소 안으로 들어가자 마르쿠스는 천천히 성소 바깥을 둘러보았다.
현대에서도 딱히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이라는 성지를 눈으로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3개 종교의 성지이지만 아직 뒤의 두 종교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지금 예루살렘은 오롯이 유대교만의 성지일 뿐이었다.
그런데 미래에는 유대교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각축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긴 했다.
그때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피와 무익한 증오가 이 땅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인가.
앞으로 일어날 역사적인 사실을 떠올리니 가슴 한쪽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라···예수가 분명히 존재는 했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들었는데.'
기독교의 믿음대로 신의 아들인지, 유대교에서 말하는 대로 그저 거짓 선지자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석가모니처럼 실존 인물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정확한 탄생 연도는 기원전 4년에서 기원전 3년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아직은 먼 미래였다.
그래도 마르쿠스가 장수한다고 하면 직접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대 시대에 80살을 넘게 장수하는 건 힘들겠지만 아우구스투스도 75세까지는 살았다.
마르쿠스라고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래. 이왕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으니 한 번쯤은 봐야겠지.'
사실 본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순수하게 호기심이 동했다.
그렇게 잠깐의 상념에 빠져 있던 사이 성소에 들어간 폼페이우스가 다시 나왔다.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성소 바깥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거참 이상한 신전도 다 있군. 안에 아무것도 없던데?"
"그러니까 제가 구경할 만한 건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흔한 조각상이나 초상화 하나 없다니······."
"유대교는 그런 걸 용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예루살렘의 성소에 구경할 게 전혀 없지는 않았다.
지성소 안쪽에는 유대인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법궤가 놓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미 옛날에 유실된 터라 지금의 지성소 안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화려한 로마와 그리스의 신전에 익숙해진 폼페이우스는 실망감까지 느꼈다.
그래도 그는 로마인으로서 타국의 신전에 들어갈 때 지켜야 하는 최대한의 예의를 다했다.
신전 안에 들어가기 전에 무기를 내려놓고 투구를 벗은 게 그 증거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조차 자신들을 모욕하는 최악의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였다.
폼페이우스는 그런 유대인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할 마음도 없었다.
로마와 유대인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장벽은 그만큼이나 두텁고 높았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주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토록 가치관이 다른 국가가 로마의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까닭이다.
폼페이우스는 선언한 대로 이스라엘의 하스몬 왕조를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하스몬 왕조가 지금까지 정복했던 모든 지역은 원래의 주민들에게 반환되었다.
예루살렘은 시리아 속주의 관할에 들어가는 하위 속주로 편성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역사상 예루살렘은 이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하게 된다.
아리스토불루스와 그의 가족들은 모조리 포로로 잡혀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나마 힐카누스 2세는 폼페이우스에게 붙은 대가로 대제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전의 대제사장이 갖던 막강한 권력은 사라졌으나 명예만은 지키게 됐다.
실제적인 권력은 폼페이우스의 충실한 앞잡이 노릇을 한 헤로데 안티파트로스가 가져갔다.
실제 전력과는 별개로 머리를 아프게 했던 유대인 문제가 끝나자 폼페이우스는 일단 숨을 돌렸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나바테아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마자 곧바로 사절을 보내 우호 관계를 맺자는 요청을 보내왔다.
이제 소아시아 남부에서조차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없었다.
당시 로마인들이 인식하는 아시아는 소아시아와 오리엔트 정도만을 포함했다.
다시 말해 폼페이우스는 사령관에 임명된 지 불과 3년 만에 아시아 전체를 평정한 것이다.
허영심이 많은 폼페이우스는 자신이 세운 업적을 철저하게 조사해 수치로 기록했다.
Ⅰ. 아시아 전역에 걸쳐 로마의 패권을 확립하고 팍스로마나를 이룩함.
Ⅱ. 1천5백 이상의 도시와 1천200만 이상의 인구가 새롭게 로마의 패권을 인정함.
Ⅲ. 전쟁의 배상금으로 2억 세스테르티우스 이상의 금액을 로마의 국고에 납부.
이 외에도 폼페이우스의 군단병이 1인당 받을 수 있는 추가 포상금은 500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했다.
이 당시 로마 군단병의 연봉은 800 세스테르티우스 정도였다.
연봉의 6할이 넘는 금액이 추가로 지급된 것이다.
이 외에도 폼페이우스는 부하들에게 토지의 분배까지 약속했다.
부하들은 연일 임페라토르를 연호하며 폼페이우스의 명령을 원로원의 명령보다 위에 놓았다.
그 무렵 또 하나의 호재가 날아들었다.
바로 카프카스 산맥에서 농성 중이던 미트리다테스가 스스로 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주변국에 동맹을 거절당하고 아들에게까지 쫓기는 신세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파르나케스는 선대왕의 유해를 폼페이우스에게 직접 보내주었다.
한때 흑해 연안을 호령한 군주의 초라한 최후는 폼페이우스에게도 일말의 감상이 들게 했다.
"폰투스 국왕들이 잠들어 있는 시노프 왕묘에 장사지내라고 전하게. 그래도 일국의 왕이었으니 최소한의 예우는 해줘야겠지."
미트리다테스의 죽음은 로마에도 빠르게 알려졌다.
무려 20여 년을 로마와 싸워온 적국 수괴의 죽음이다.
당연히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
술라도, 루쿨루스도 끝장내지 못했던 자가 폼페이우스의 손에 걸리니 3년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로마 원로원도 파르나케스 2세가 폰투스의 국왕이라는 사실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폼페이우스의 지지는 끝 모를 정도로 계속해서 올라만 갔다.
그래도 그는 곧바로 로마로 돌아가지 않았다.
새롭게 로마의 속주가 된 지역을 완벽히 재편하고 귀환하겠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쿠스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느긋하게 기다려 줄 마음이 없었다.
기원전 63년은 로마에서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던 해다.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에게 제대를 요청했다.
"제대하고 싶다고? 굳이 지금? 일 년 뒤 나와 함께 로마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나?"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가문에 일이 생겨서 급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속주 재편성에 자네가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기사 계급의 사람들에게는 폼페이우스 님께 최대한 협력해 달라는 언질을 이미 해두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실 일은 없을 겁니다."
폼페이우스가 내심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다. 속주 재편성과 금전적인 문제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였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사 계급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지금까지 이런 부분이 마르쿠스 덕분에 쉽게 해결이 됐었다.
제대를 신청하기 전에 이미 필요한 부분을 다 처리한 배려에 폼페이우스는 크게 만족했다.
"자네는 언제나 내 마음을 미리 헤아려 주는군. 로마에 일찍 가 있더라도 개선식에는 꼭 참여하게. 자네도 이 전쟁에서 상당한 공을 세웠으니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이제 해적들은 없으니 뱃길이야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조심히 가게."
"예. 폼페이우스 님도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마르쿠스는 발길을 돌리려다 말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참, 로마로 귀환하시기 전에 원로원에 최소한의 약속을 받는 게 좋을 겁니다."
"약속? 굳이 그런 걸 요구할 필요가 있을까? 괜히 모양만 빠질 것 같은데."
"모양이 빠지더라도 취할 수 있는 이득은 확실히 취하는 게 좋습니다. 원로원은 지금 어떻게 하면 폼페이우스 님의 체면을 훼손할 수 있을지만 궁리하고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원래 역사에서도 폼페이우스는 동방 평정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솔직히 마르쿠스에게는 그러든 말든 상관없었다.
동방에서 취해야 할 이득은 다 취했고, 은근슬쩍 자신의 기반도 넓혀 놓았다.
군단을 지휘하는 경험까지 쌓았으니 폼페이우스에게 더 배울 건 없었다.
그래도 많은 걸 받았으니 도의상 그에 맞는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마르쿠스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금 폼페이우스는 역사보다도 더 심하게 원로원과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다.
원로원이 작정하고 폼페이우스를 묻어 버리려고 하면 이후의 계획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폼페이우스가 몰락하지 않을 정도의 여지는 남겨줘야 했다.
문제는 당사자가 자신의 현 상황이 어떤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원로원 늙은이들이 내 체면을 깎으려고 하면 본인들만 손해를 볼 뿐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네. 로마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온 영웅을 홀대한다?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될 게 뻔한데 그들이 그런 모험을 감수하려 하겠나."
"정말로 급한 상황이 오면 원로원은 자신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을 끌어내릴 겁니다. 그러니 일단 폼페이우스 님이 재편성한 속주안이라도 사전승인을 받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쎄···분명 자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그러면 내가 10개 군단을 등에 업고 원로원을 압박하는 거로 보이지 않겠나. 나는 이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는데 그런 행보를 보이면 민중들의 지지를 잃을 우려가 있다고 보는데."
폼페이우스는 자신이 이룬 업적에 한껏 취해 있는 상태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업적을 세웠고,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았다.
다만 유능한 정치가라면 이로 인해 자신이 견제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폼페이우스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
오히려 이렇게나 대단한 업적을 세운 자신을 누가 견제할 수 있겠나 자신하고 있었다.
권력보다는 명예를 우선시하는 그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집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보여 위신이 깎이는 걸 더 두려워했다.
원로원에 압박을 가하라는 조언에 따르지 않는 건 그 때문이었다.
첫 집정관에 출마할 때는 그런 행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귀족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그라비타스(장중함)의 가치를 보일 때라고 판단했다.
마르쿠스로서는 그저 답답할 노릇이었다.
"폼페이우스 님은 이미 군단을 해산하시기로 신들의 이름에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원로원 의원들은 한없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우려가 있습니다. 군대 해산 전에 최소한의 협조는 약속을 받아야지요."
"자네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닐세. 분명히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일 거야. 하지만 내가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원로원을 압박하면 그들은 나를 진정한 위협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 내 쪽에서 먼저 대범하게 나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지."
"그들이 폼페이우스 님의 선의를 알아준다면야 좋겠지만 정치는 선의로 하면 반드시 배신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하, 그런 마음조차 품지 못하게 하는 게 바로 강자의 그릇이라는 것 아니겠나. 자네는 다 좋은데 너무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 다 잘 풀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게나."
이렇게까지 말하니 마르쿠스도 더 할 말은 없었다.
안타깝지만 폼페이우스가 시대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미리 로마로 가서 최소한의 작업을 해둘 수밖에.'
여차하면 크라수스를 움직여서라도 원로원이 폼페이우스와 사생 결단을 내지 않도록 유도하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처리할 일들이 많은데 폼페이우스까지 말을 듣지 않으니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폼페이우스가 지금까지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층 더 그랬다.
뭐든 마음대로 굴러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마르쿠스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총사령관의 막사를 떠났다.
밖을 나온 그는 눈을 들어 서쪽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로마가 있는 방향이다.
3년 만에 귀환하게 되는 로마는 이전까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로마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마르쿠스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배경과 영향력은 3년 전보다도 훨씬 더 커져 있었다.
폼페이우스를 앞세워 원로원의 연령제한을 낮췄으니 이제 2년만 더 기다리면 된다.
로마로 돌아가는 마르쿠스의 시선은 단지 로마가 위치한 서편 하늘이 아닌 더욱 먼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 보였다.
격동의 기원전 63년이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4년도 채 걸리지 않아서 평정한 영역은 얼추 검은색 삼각형 안에 있는 영토라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지도로 보면 정말 엄청난 전공이라는 게 실감이 될 듯 합니다..
< 54. 동방의 지배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