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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로마의 모순 (57/326)

  < 56. 로마의 모순 >

  56- 사회의 모순

  로마라는 사회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거대한 모순을 품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제도가 품고 있는 모순이 하나둘 퇴적된 것이다.

  그중 몇 개는 봉합이 됐지만, 몇 개는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사회를 천천히 좀먹고 있었다.

  수임료를 받지 못하는 변호사가 예술품으로 자금세탁을 하는 소소한 문제부터 점점 올라가는 노예에 대한 경제 의존도.

  토지 배분을 둘러싼 자영농과 귀족들의 대립, 넓은 영토를 통치하기에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원로원 중심의 과두정까지.

  그중에서도 기원전 63년에 곪아서 터진 문제는 선거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로마의 선출직, 이른바 명예로운 경력을 지내는 사람들은 봉급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아니고 재무관, 안찰관, 법무관, 집정관의 순서로 선거를 치르려면 당연히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심지어 로마의 선거는 금권선거가 기본이었다.

  막대한 부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거기에 선출돼도 봉급을 받지 못하니 빚을 갚으려면 자연히 뇌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속주 총독으로 부임한 이들이 가혹한 수탈을 저지르는 건 예정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유한 오리엔트는 그나마 나았으나 갈리아나 아프리카로 부임한 자들은 그래도 빚을 갚지 못했다.

  특히 베레스 재판 이후로는 속주민들이 총독을 자주 기소했기 때문에 수탈하기도 힘들었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는 이런 로마의 모순적인 체제에 고통받는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워낙 거대한 사고를 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있는지라 마르쿠스도 잘 알고 있었다.

  "집정관 선거를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일단 이런 곳에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장소를 옮겨도 괜찮을까요?"

  "그, 그러지."

  카이사르에게 당선 축하를 하는 건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은 축하 인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율리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카틸리나를 안내해 저택으로 돌아왔다.

  기존에 대출 업무를 맡아온 다나에가 카틸리나에 관한 자료를 가져다주었다.

  카틸리나는 긴장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나에와 율리아도 조용히 마르쿠스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좁지 않은 응접실에는 마르쿠스가 두루마리를 쫙 펼치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미 상당한 빚을 진 상태로군요."

  마르쿠스의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에 포도주를 마시려던 카틸리나의 몸이 딱 굳었다.

  그가 뻣뻣한 몸놀림으로 포도주잔을 다시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빚이 조금 많이 있네."

  카틸리나가 지금까지 진 빚은 빈말로도 조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로마의 정치인들 중 거액의 부채를 진 사람들은 많지만, 현재 가장 유명한 사람은 카이사르와 카틸리나였다.

  다만 카틸리나는 카이사르처럼 화려한 생활을 즐기지는 않았다.

  그의 집안은 집정관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었으나 지금은 가세가 크게 기울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치활동도 오롯이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법무관까지는 당선이 됐지만 아프리카로 부임한 터라 빚을 갚을 만큼의 돈을 모으지도 못했다.

  "집정관 선거에 2연속 낙마를 하시면서 부채가 감당 못 할 만큼 쌓였군요. 첫 번째는 조금 억울하게 패하셨네요. 속주에서 권력 남용을 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후보 자격을 잃었고요."

  "그건 무죄판결을 받았네."

  "두 번째 선거는 3위로 낙선.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당선되겠다는 각오로 선거에 임하시겠군요."

  "그래. 그러니 꼭 좀 자금을 융통해주게. 집정관이 된다면 동방 속주로 부임하기도 훨씬 쉬울 것이고, 자네에게 빌린 돈쯤이야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걸세."

  카틸리나는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돈이 없으면 선거를 치를 수 없는데 누구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초조한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가 돈을 빌리지 못하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었다.

  채권자들은 그가 단순히 거액의 채무를 져서 돈을 더 빌려주지 않는 게 아니었다.

  마르쿠스는 카틸리나가 돈을 빌리기 힘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카틸리나 님이 집정관에 당선되신다고 제가 빌려드린 돈을 받을 수는 있는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집정관만 되면 당연히 갚을 수 있지."

  "채무상환의 능력보다는 의지가 더 중대한 문제입니다. 카틸리나 님이 저번에 거신 공약만 봐도 그렇고요."

  "그, 그건······."

  카틸리나가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가 변명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르쿠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부채의 전액 탕감. 저희 같은 채권자들에게는 실로 무시무시한 공약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냥 공약일 뿐일세. 선거 때야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는가."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만 카틸리나 님의 공약은 무게감이 다르죠. 막대한 채무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카틸리나 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카틸리나 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당선되자마자 모르는 척 할 수 있을까요? 바로 폭동이 일어나고 카틸리나 님의 정치생명도 끝날 겁니다."

  카틸리나는 더는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의 눈가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 특유의 분노가 깃들었다.

  원래부터 고지식한 성격의 그는 수많은 빚을 지고도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통 다 이렇다.

  눈이 돌아갈 만큼의 빚을 지고도 태연하게 돈을 더 달라고 하는 카이사르가 오히려 이상한 부류였다.

  빚을 다 갚지 못하면 결국 기다리는 건 비참한 몰락뿐이다.

  그렇게 믿고 있는 카틸리나의 목소리에는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울분이 실려 나왔다.

  "그러면 자네도 내게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 이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다만 집정관에 당선되신다면 저에게 빌린 돈을 상환하는 걸 우선한다는 계약서를 써주시길 바라는 거죠.

  "그, 그거야 당연하지. 지금 이 자리에서 쓰겠네. 자네에게 빌린 돈을 최우선으로 갚도록 하겠네."

  "좋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하죠."

  마르쿠스가 웃으며 양피지 조각을 내밀었다.

  너무나 선선히 돈을 빌려주는 모습에 율리아와 다나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틸리나도 얼떨떨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로···선거비를 빌려줄 건가? 이렇게 쉽게?"

  "예. 그래도 제가 빌려줬다는 건 비밀로 해주시면 좋겠네요. 원로원에는 카틸리나 님이 선거에서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물론이지. 자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갈 만한 행동은 하지 않겠네. 나도 명예를 아는 귀족인데 설마 은인에게 해가 갈 짓을 하겠는가."

  카틸리나는 마르쿠스를 은인이라고 칭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채권자들이 카틸리나를 말로만 괴롭히는 건 그에게 아직 당선의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고 판단한다면 즉각 강제 추심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집정관 선거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여기에서 이긴다면 최소한의 숨통은 트인다.

  시끄러운 채권자들도 집정관에 당선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떨어진다면 그때는 정말로 미래가 막막해진다.

  부유하지 못한 귀족에게 선거란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카틸리나는 그 도박장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마르쿠스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그는 몸을 돌려 허겁지겁 응접실을 나섰다.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자금이 생겼으니 구체적인 전략을 짜기 위해서였다.

  율리아는 카틸리나를 배웅하는 마르쿠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해 불가라는 심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마르쿠스 님, 정말로 저분에게 돈을 빌려주실 건가요?"

  "계약서를 썼잖아. 당연히 빌려줘야지."

  "물론 마르쿠스 님께서 다 계획이 있으시겠지만······."

  율리아는 잠깐 고심을 해보았지만 굳이 돈을 빌려줄 이유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다나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틸리나의 정보를 다시 한번 살폈다.

  "카틸리나 님께서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대출 업무에 발을 걸치고 있는 다나에는 로마에서 유명한 빚쟁이들을 미리 다 조사해두었다.

  현명한 율리아도 그녀의 임무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미 많은 토론을 하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카틸리나도 당연히 토론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내린 공통적인 결론은 이 자에게는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르쿠스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여유롭게 희석한 포도주를 한 잔 따라 입으로 가져갔다.

  "당연히 카틸리나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지. 그런 게 있었으면 사람이 저렇게 어두워졌겠어?"

  같은 빚쟁이여도 카이사르와 카틸리나는 유형이 달랐다.

  카이사르는 아무리 큰 빚을 지고 있어도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채무 따위는 언제든 상환할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부채가 아무리 많아도 압박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반면 카틸리나처럼 갚아야 할 빚을 무겁게 의식하는 사람은 반드시 티가 나게 된다.

  성격은 점점 어두워지고 언행에서 자신감도 사라진다.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의 이런 태도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챈다.

  대부분 로마의 채권자들은 카틸리나는 이제 슬슬 가망이 없다고 보고 있었다.

  이번 집정관 선거에서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떨어질 확률도 거의 100 퍼센트에 수렴한다고 판단했다.

  율리아는 그러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마르쿠스의 속내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준다면 카틸리나 님에게 부채를 지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네요."

  '오, 예리하네.'

  율리아의 추측은 사실에 거의 근접했다. 그러나 그녀도 그 이상의 진실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마르쿠스의 목적은 카틸리나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거액의 빚을 지는 것이었다.

  역사에서 거듭된 낙선으로 절망한 카틸리나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모아 반란을 모의하게 된다.

  이때 카틸리나를 탄핵한 키케로의 연설은 현대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 연설은 라틴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한 번쯤은 반드시 보게 되는 명문이기도 하다.

  마르쿠스는 슬슬 역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해 자신의 입지를 넓힐 생각이었다.

  곧 원로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는 만큼 시민들과 의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고른 무대가 바로 카틸리나의 반란이다.

  반란진압은 순수하게 공화정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눈총을 살 염려도 없다.

  카틸리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게 된 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도 충분했다.

  선거비로 빌려줄 돈이 아깝기는 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여기면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었다.

  이런 계획을 모르는 이들은 당연히 마르쿠스의 결정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했다.

  율리아가 아무리 총명해도 반란이라는 사태까지 예측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이번 집정관 선거는 상당히 큰 파장이 올 거야.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어. 혹시 모르니까 집안사람들에게 안전에도 신경을 쓰라고 전해줘."

  "예. 그렇게 할게요."

  율리아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남편을 얻기를 원했지만, 너무 생각이 깊은 사람을 만나도 머리가 아플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계산할 것이 너무 많아진 율리아는 두 손 다 들었다는 얼굴로 마르쿠스의 지시에 귀를 기울였다.

  두 부부의 논의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

  이후의 상황은 마르쿠스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현 집정관인 키케로는 카틸리나의 입후보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했다.

  "의원 여러분! 카틸리나는 단순한 부채 탕감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집정관이 된다고 해봐야 이런 정책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건 그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해괴한 공약을 걸었느냐. 그건 이 자가 혁명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틸리나는 당연히 키케로의 비방을 근거 없는 소리라 일축했다.

  다른 원로원 의원들도 결격사유가 없는 인사를 입후보도 못 하게 하는 건 너무하다는 분위기였다.

  키케로는 끈덕지게 카틸리나의 후보등록을 막아야 한다고 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표결결과 카틸리나의 집정관 후보등록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신 원로원은 카틸리나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강력한 후보 두 명을 내세웠다.

  유니우스 실라누스와 루키우스 무레나였다.

  둘 다 카틸리나와 비슷한 명문 귀족이고 인지도도 확실히 더 앞서는 이들이었다.

  거기에 원로원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면 이 두 사람이 카틸리나에게 질 가능성은 없었다.

  원로원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

  키케로와 카토도, 정치적 식견은 이 둘을 뛰어넘는 카이사르조차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역사를 아는 마르쿠스는 아예 그 사실을 전제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언제나 예외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균열은 보통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나게 된다.

  "검투사 시합에서 승부 조작이 일어났다고?"

  셉티무스의 보고를 받은 마르쿠스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비를 했을 텐데?"

  어떤 경기든 간에 사람이 하는 이상 조작의 유혹은 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 대량의 돈이 걸려 있다면 그 유혹은 곱절이 된다.

  현대에서 수많은 승부 조작의 사례를 본 마르쿠스는 사전에 대비를 해두었다.

  승부 조작에 연루된 검투사는 예외 없이 사형.

  그리고 조작을 주선한 이는 로마 전역에 신상을 공개하고 재판에 회부되도록 손을 써두었다.

  주기적으로 시합의 양상과 검투사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감찰관들도 두었다.

  검투사 시합의 경우 목숨을 걸고 하는 결투라 조작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더욱 쉬웠다.

  셉티무스는 사건 경과가 적힌 보고서를 건네며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도련님께서 주의를 기울이신 덕분에 이렇게 적발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조작을 시도하는 도중에 걸렸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부정행위를 사전에 잡아냈으니 시민들의 신뢰는 더욱 올라갔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어떤 멍청한 인간이 승부 조작을 시도한 거야? 들킬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건가?"

  "조작을 시도한 이는 지역대항전에서 고의로 패배를 한 뒤 거액의 배당금을 챙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범인의 정체가 제법 거물이더군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재빠르게 보고서를 읽어본 마르쿠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갈리아 트란살피나의 총독으로 있던 인간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아, 속주 총독이었으니 갈리아 사람들을 꼬드기긴 더 쉬웠겠군."

  갈리아 트란살피나는 갈리아 땅 중 가장 먼저 로마의 속주가 된 곳으로 현대의 프랑스 남부에 해당했다.

  승부 조작을 시도한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갈리아 검투사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시합에 져도 죽지 않도록 손을 써줄 테니 자신이 지시하는 방식대로 패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대비해 철저한 예방 교육을 받은 검투사 중 한 명이 이를 감찰관에게 고발했다.

  이 소식은 즉각 로마 전역에 퍼졌고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런데 조작범의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다고 느낀 마르쿠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키우스 무레나? 어딘가에서 본 이름 같은데······."

  고민에 빠진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이 이름을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린 마르쿠스는 머리를 한 대 후려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갈리아 총독을 지낸 루키우스 무레나라고 하면 현재 로마에 딱 한 명뿐인 까닭이다.

  "이 루키우스 무레나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셉티무스가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해주었다.

  "예. 이번 집정관 선거에 후보로 나온 그분입니다. 소문이 퍼진 이상 선거는 가망이 없다고 봐야겠죠."

  "아니, 잠깐···이 사람이 떨어지면······."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일으킨 사소한 날갯짓이 미국에서는 토네이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원리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변화가 원인이 되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랬다.

  루키우스 무레나는 욕심이 많은 인물이기는 해도 역사에서 승부 조작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발각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쿠스가 새롭게 개선한 검투사 시합에 눈독을 들인 무레나는 제대로 덜미를 잡혔다.

  거의 현행범으로 잡힌 이상 부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로마인들 대다수가 사랑하는 검투사 시합에서 승부 조작을 시도했다는 여파는 굉장히 컸다.

  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손해를 끼친 정치인들은 가차 없이 표로 단죄했다.

  기원전 62년의 집정관을 결정짓는 선거에서 루키우스 무레나는 원 역사와는 다르게 낙선했다.

  원로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도 성난 시민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무리였다.

  대신 3위로 아깝게 고배를 마셨던 카틸리나가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결과가 나왔다.

  원로원은 물론 마르쿠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처음으로 역사의 흐름이 마르쿠스의 통제를 벗어난 방향으로 흐른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원인이 됐다는 게 충격을 한층 더 배가시켰다.

  그러나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의 결과가 대파란이 되어 로마를 휩쓸었다.

  < 56. 로마의 모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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