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카틸리나의 반란 >
"원로원에서 제일 거슬리는 자들은 실라누스와 키케로입니다."
"맞습니다. 카토도 최근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고 하지만 제일 방해가 되는 건 역시 저 두 사람입니다."
"저 둘이 죽는다면 의원들도 지금처럼 기세등등하게 날뛰지는 못할 겁니다."
"그냥 방해되는 자들은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현직 집정관과 전직 집정관을 죽이자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카틸리나의 지지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누가 봐도 명백한 반란 모의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망설이거나 겁을 먹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분노와 살의로 눈이 멀어 온갖 과격한 의견들이 판을 쳤다.
실라누스에 이어 거부권을 가진 호민관들을 전부 죽이자는 말도 나왔다.
카틸리나의 참모격인 유스투스가 최대한 침착하게 회의를 진행하고자 애썼다.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법안 통과에 어깃장을 놓는 자들을 다 때려죽이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여건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카틸리나가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유스투스의 말이 맞네. 사실 저 두 명을 죽이는 것도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일세. 여기에 거부권을 가진 호민관들마저 죽이는 건 너무 부담이 크네. 게다가 우리는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호민관을 암살하는 건 자충수가 될 수 있어 보이는군."
"그렇습니다. 그러니 일단 실라누스와 키케로를 확실히 죽일 방법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술라의 밑에서 여러 경험을 쌓았던 만리우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 둘을 어떻게 암살하죠? 우리가 했다는 게 알려지면 역으로 숙청의 빌미만 주는 꼴이 될 텐데요."
"맞습니다. 일단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을 지켜야 합니다. 이게 수반되지 않는다면 저 둘을 죽이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흐음······."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카틸리나는 이내 그럴듯한 방안을 떠올렸다.
"집정관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은 언제나 아침에 수많은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게 관례일세. 그때 암살자들을 들여보내면 되지 않을까? 일부가 소란을 일으켜서 주의를 끈 사이에 나머지가 재빠르게 암살을 하는 거지."
고전적이기는 해도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유스투스가 양피지를 펼쳐 세부적인 계획을 정리해나갔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계획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암살할 사람들의 동선, 암살 대상의 행동과 위치에 따른 암살 방법, 탈출 경로, 변수가 생겼을 때의 대처. 이 모든 걸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암살이 실패하고 붙들렸을 경우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혹시 모르니 실행하는 자들도 우리와 관계성을 캐내기 힘든 사람들로 선별할 걸세. 거기에 준비를 다 끝내려면 못해도 사흘에서 나흘은 걸리겠군."
"그러면 일단 며칠 간격을 두고 키케로와 실라누스가 어떻게 아침에 방문자들을 맞이하나 세심하게 관찰을 하도록 하죠. 그자들의 행동을 도식화할 수 있으면 암살 성공률이 훨씬 더 올라갈 테니까요."
"좋아. 드디어 마음에 안 드는 그 신참자 놈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겠군."
대략적인 암살 모임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상식적으로 현직 집정관과 전직 집정관을 암살하면 그 파장은 감당 못 할 정도가 되겠지만, 카틸리나 일행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심증이 확고해도 심증만으로는 현직 집정관인 카틸리나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원로원 측에서도 똑같이 암살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카틸리나는 언제나 호위와 지지자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아침에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활동도 진즉 그만뒀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앞일이 예측되지 않는 광기 넘치는 대화의 끝이었다.
※※※※
결국 카틸리나 일당은 사흘간의 관찰 끝에 완벽한 암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동안 카틸리나는 태연히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며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시켰다.
의원들은 카틸리나의 뻔뻔함을 욕하기는 했어도 그가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카틸리나가 포기를 모르는 듯 부채 탕감 법안을 지속적으로 발의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물론 통과되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계속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현직 집정관이 나라를 뒤집어엎을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카틸리나 일당은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성공적으로 키케로와 실라누스를 죽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암살자들은 토가 밑에 단검과 독약을 숨기고 실라누스와 키케로의 저택을 향했다.
만약 암살이 실패하면 독을 마시고 스스로 자결할 각오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열려 있던 키케로와 실라누스의 집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암살자들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방문객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는 걸 전제로 한 것이다.
저택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암살자들은 허망하게 등을 돌려 돌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계획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카틸리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실라누스와 키케로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즉각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카틸리나는 평소처럼 의심을 피하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넘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잔뜩 열이 받은 키케로와 실라누스는 분노를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실라누스가 먼저 카틸리나에게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카틸리나, 어제 내 집 앞에 수상한 자들이 서성거렸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들어보니 키케로 역시 마찬가지였다는군. 짐작 가는 바가 있지 않소?"
카틸리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알겠소. 그리고 고관대작의 집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오? 당신을 찾아왔다가 헛걸음하고 돌아간 사람이겠지."
거짓말을 늘어놓는 카틸리나를 빤히 쳐다본 실라누스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나와 키케로는 클리엔테스들에게 이미 어제부터 아침 방문을 중지하겠다고 통지를 해두었네. 그리고 다른 원로원 의원들에게도 비밀리에 말을 전해두었지. 자네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가 알고 있었을 사실일세."
"허허, 그랬소? 그래서 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아직도 잡아뗄 생각인가? 그 수상쩍은 놈들은 자네의 사주를 받고 온 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
카틸리나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저렇게까지 확실히 말을 하는 걸 보니 어떤 증거가 있지 않나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키케로가 실라누스의 뒤를 이어 카틸리나를 규탄했다.
"카틸리나, 언제까지 모른 척 하고 있을 생각인가.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 시국에, 폭도들을 뒤에서 이끄는 자네 외에 그 누가 나와 실라누스를 해하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겠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건 알았지만 과대망상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문밖에서 서성거렸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예비 살인자로 몰다니. 거기에 그 배후에는 내가 있다고? 증거라도 있나? 기껏해야 내가 자네들의 일정을 몰랐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밖에 없지 않나. 설령 그들이 자네들을 해하려고 온 폭도가 맞더라도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늘!"
다소 흥분된 상태이긴 했어도 카틸리나의 반론은 정확했다.
고작 이 정도 심증만으로 현직 집정관을 몰아붙이는 건 상당한 무리수였다.
다른 의원들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키케로가 어째서 저러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키케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카틸리나, 설마 우리가 심증만으로 현직 집정관인 당신을 압박하는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당연하지!"
"자수할 마음은 없는 게 확실하고?"
"자수는 무슨 자수를 하라는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생사람을 잡는 게 로마 최고의 변호사라는 당신의 방법인가?"
카틸리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분위기를 봐서는 키케로나 실라누스가 증거를 잡은 것 같지도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수하면 당연히 고발을 당할 게 뻔한데 바보가 아닌 이상 혐의를 인정할 이유가 없었다.
당당하게 혐의를 부정하는 카틸리나의 모습에 키케로는 이마를 짚으며 한탄했다.
"착각하지 말게 카틸리나. 내가 자수를 권하는 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닐세. 물론 자네를 동정하는 것도 아니네. 로마의 집정관이 동료를 암살하려다가 적발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이러는 것이지.
이미 명예 따위 모르는 자네는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시민들을 이끌어 가야 할 우리의 입장은 다르네. 자수하게, 카틸리나. 자네의 머릿속에 있는 끔찍한 음모를 더 실현하지 말고 이쯤에서 멈추란 말일세.
"
"끝까지 정신 나간 소리만 늘어놓는군. 계속 헛소리를 한다면 집정관의 권한으로 자네를 회의실에서 추방하겠네."
"그렇다면 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지. 실라누스와 나는 정확히 한 달 뒤에 자네를 고발할 걸세. 정말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디 끝까지 그렇게 버텨보게. 자수한다면 국외추방 정도로 끝내줄 거라 내 약속하지. 하지만 법정에서 자네의 죄가 전부 밝혀질 경우 받을 처벌은 절대 그 정도가 아닐 것이네."
"고작 이딴 소리나 늘어놓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니···내 대답은 변하지 않을 테니 한 달 뒤 고발을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게!"
불같이 화를 낸 카틸리나는 그대로 원로원 회의장을 떠나버렸다.
남아있는 의원들은 허둥지둥 키케로와 실라누스에게 다가왔다.
"정말로 카틸리나가 두 분을 암살하려고 자객을 보냈다는 말입니까?"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바로 고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려와 의문이 섞인 말들이 빗발쳤으나 키케로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저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카틸리나를 단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원로원은 이미 너무 많은 분쟁을 일으키는 걸 외부에 보여줬습니다. 아까 카틸리나에게 말했던 것은 제 진심입니다. 되도록 자수를 유도해서 사태를 좋게 끝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카틸리나가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모양새가 좋지 않긴 하지만 집정관을 끌어내릴 수밖에요. 전례가 없는 일이라 큰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어쩔 수 없지요."
대다수의 의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원로원의 체면을 생각해준 키케로의 덕을 칭송했다.
카토마저 합리적이고 의연한 결정이라며 키케로를 치켜세워주었다.
수많은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격려의 응원을 받는 키케로가 문득 한쪽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사태를 관망하던 크라수스가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 정도면 되었느냐' 라고 묻는 듯 보였다.
크라수스는 만족스럽게 웃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 했으면 충분하다.'
속내를 다 꿰뚫어볼 수 없는 미소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되돌린 키케로는 일이 잘 풀려가고 있다는 확신에 내심 안도했다.
크라수스가 보증을 했다는 것은 곧 이 계획을 입안한 이도 그렇게 판단했다는 뜻인 까닭이다.
이 순간 키케로가 가장 신뢰하는 이름은 눈앞에 보이는 크라수스가 아닌 다른 이였다.
회의가 파하고 돌아가는 길, 그 이름은 키케로의 뇌리에 한층 더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마르쿠스.'
이틀 전 그와 나누었던 충격적인 대화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키케로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스름한 만월이 저 높은 곳을 향해 천천히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별빛으로 빛날 아름다운 밤하늘을 약속하고 있었다.
로마의 하늘 위를 밝힐 달처럼 공화정의 미래 역시 찬란하리라는 확신이 그의 가슴을 가득 메웠다.
※※※※
원로원 회의장을 빠져나온 카틸리나는 그대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소집했다.
의원들 앞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본심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놈들이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는 말씀입니까?"
만리우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카틸리나의 입에서 절로 침중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다고 하더군. 허세가 아닐까 싶지만 놈의 표정이 너무나 당당하게 보였네."
"거짓말입니다. 진짜라면 당장 행동으로 옮겼겠죠. 기한을 정해두고 자수를 강요하면서 카틸리나 님을 흔들어보려는 술책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키케로 그놈의 성격상 바로 고발을 하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가는지라······."
원로원은 태생적으로 자신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많았다.
키케로 같은 신참자들은 원로원의 이런 욕망을 잘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키케로가 보인 태도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심지어 유스투스도 카틸리나의 의견에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키케로는 정말로 증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무슨 근거로 그런 추측을 하는 것인가?"
만리우스가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정말로 현직 집정관과 전직 집정관을 암살하려고 한 게 들켰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야반도주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된 시선으로 유스투스를 응시했다.
"일단 제가 미심쩍게 생각하는 건 저희가 암살 계획을 완벽히 수립하자마자 키케로와 실라누스가 방문객을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게다가 클리엔테스들에게는 그걸 굳이 비밀리에 전달했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보낸 사람들만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은 게 아닙니까."
"확실히···우연이라고 하긴 좀 공교롭지."
"그렇다면 자네는 우리 계획이 사전에 새어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겠지?"
실내에 있는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토록 세심하게 짠 암살모의가 사전에 유출됐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배신자가 있다는 소리다.
지지자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둘러보았다.
이대로 놔두면 서로 간의 신뢰가 흔들릴 수도 있다.
유스투스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유출됐다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배신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정말로 상세한 계획이 유출되었다면 암살자들은 그 자리에서 붙들렸을 테니까요. 아마 실행 단계에서 계획 일부가 새어나갔을 겁니다."
"하긴, 그렇게 보는 게 합리적이겠군."
"예. 하지만 만약 저희가 연관되었다는 물증이 있다면 커다란 문제가 될 겁니다."
거기까지 들은 만리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탁자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서는 안 되지. 카틸리나 님, 각오를 굳히셔야 합니다."
만리우스가 말한 '각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격적인 무장봉기를 일으키자는 것이다.
카틸리나가 자조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방법이 없는 것인가······."
만리우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핵심 인물들도 모두 찬성의 의사를 밝혔다.
"상황을 보아하니 키케로의 말이 허세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다행히 저들은 친절하게 한 달이나 유예기간을 줬습니다. 그 정도 기간이면 충분히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굳힌 카틸리나가 유스투스를 향해 물었다.
"가능하겠지?"
"예. 하지만 정말로 거행하시겠습니까?"
"자수를 해도 어차피 파멸할 텐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큰 쪽을 택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구상해둔 계획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오오, 벌써 생각해둔 바가 있었나?"
모략을 꾸미는 데는 자신이 없었던 카틸리나가 반색하며 벌컥 몸을 앞으로 당겼다.
군대를 지휘하는 데만 능한 만리우스도 유스투스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카틸리나 님은 현재 로마의 집정관이십니다. 봉기를 일으키더라도 우리는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합니다."
모두가 말없이 유스투스의 말을 들었다.
그는 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 달이면 토스카나에 있는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데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획이 새나가면 곤란하므로 더욱 은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카틸리나 님이 저에게 위임장을 써주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이를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기꺼이 써주겠네. 그래서, 지지자들을 비밀리에 로마로 들여온 뒤에 어떻게 할 작정인가?"
"우선 키케로와 실라누스, 카토를 비롯한 눈엣가시들을 모조리 때려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의원들의 신병을 확보해 원로원을 소집하면 됩니다. 거기서 카틸리나 님을 독재관으로 임명하고 현 로마의 혼란을 수습하게 하는 거죠. 카틸리나 님은 집정관이시니 원로원 의원들이 동의만 한다면 충분히 독재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술라와 마리우스가 써먹었던 방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군대를 끌고 들어와 로마를 점령하는지, 내부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상당한 설득력을 느낀 카틸리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원로원 의원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가능하겠나?"
"한 번에 모든 의원들을 사로잡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면 가능할 겁니다. 게다가 집정관에게는 군 통수권이 있지요. 실라누스를 죽이고 일부 중진들을 사로잡아 카틸리나 님에게 임페리움을 부여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 의원들도 감히 우리에게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죠."
"명쾌한 방법이로군."
만리우스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카틸리나와 다른 지지자들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이 방법이 가장 타당해 보였던 까닭이다.
방법은 정해졌으니 남은 것은 세부적인 계획을 짤 뿐이다.
그들은 거침없이 죽여야 할 자와 사로잡아야 할 자를 구분하기 위한 토론에 들어갔다.
실라누스, 키케로, 카토는 당연히 만장일치로 죽여야 할 목록에 들어갔다.
카틸리나는 카이사르 역시 척살대상으로 지목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거들먹거리며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다양한 인사들의 이름이 쉬지 않고 거론 되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의원들일수록 언급되는 빈도가 높았다.
그렇게 누구를 죽일지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는 찰나, 만리우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크라수스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만리우스의 물음에 카틸리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은혜를 입었긴 해도 원로원파인 크라수스와 카틸리나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게다가 그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으면 향후 국정을 운영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카틸리나의 고뇌를 짐작한 유스투스가 슬쩍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크라수스 가문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의 저택은 상시 엄청난 수의 경비에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거의 중무장한 군대에 필적한다는 말도 있더군요. 거기에 크라수스 가문의 장남 옆에는 그 스파르타쿠스가 붙어 있습니다. 거길 뚫어내려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의 대부분을 쏟아야 합니다. 크라수스 하나 잡자고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과연, 듣고 보니 그렇군."
"유스투스의 말이 옳은 듯합니다. 크라수스는 군대를 동원해서 압박하도록 하죠. 재산의 절반쯤 내놓으면 살려주겠다고 하면 말을 듣겠지요."
"그럼 일단 크라수스는 가만히 놔두는 쪽으로 정하겠네."
마침내 살생부의 작성이 끝났다.
단순히 죽여야 할 자들의 목록만을 적은 게 아니라 상세한 수단까지 치밀하게 기록을 해두었다.
카틸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행일은 키케로가 선언한 고발일로부터 사흘 전.
카틸리나가 직접 나서서 반란군을 이끌 것이다.
독재관으로 우뚝 서서 로마를 자신의 발아래에 두리라.
장대한 혁명의 길이 카탈리나로 하여금 달디 단 권력의 야욕을 꿈꾸게 하고 있었다.
< 61. 카틸리나의 반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