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카틸리나의 반란 >
62
거사일이 다가오자 카틸리나는 점점 초조함을 감추기 힘들어졌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듯한 얼굴로 원로원에서 다른 의원들과 갑론을박을 주고받고, 민회에서 시민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호소했다.
그래도 위장공작은 나름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원로원은 카틸리나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추호도 모르는 눈치였다.
카틸리나의 위임장을 받아간 유스투스가 걸리지 않고 은밀히 행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키케로와 카토는 연일 카틸리나를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며 자수를 촉구했다.
다른 의원들도 입에 담지 못할 모욕을 쏟아냈으나 카틸리나는 이제 화조차 나지 않았다.
곧 죽을 자들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생각하니 저 정도쯤이야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키케로와 카토 너희 두 놈은 특히 더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결행일 당일의 회의에서 카틸리나는 의원들을 천천히 한 명씩 둘러보았다.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간 몇몇 의원은 오늘 밤에 닥칠 자신의 운명도 모르고 희희낙락 웃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내일 아침에 해가 떴을 때도 지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 두고 보마.'
카틸리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마지막이 될 원로원 회의를 파했다.
돌아가는 길에 키케로가 다시 한 번 자수를 촉구했으나 그냥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저 지겨운 소리를 듣는 것도 오늘까지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카틸리나는 해가 지자 곧바로 로마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을 소집했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채 탕감을 원하는 퇴역병들이 지난 수개월 동안 꾸준히 로마로 몰려든 덕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토가 아래에 갑옷을 받쳐 입고 있었다.
숨겨둔 검과 창으로 무장을 갖추니 전장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군대가 완성됐다.
"완벽해."
전투태세는 갖춰졌다.
남은 건 계획대로 일을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카틸리나는 혁명을 위해 모인 동지들을 자랑스레 둘러보았다.
"이제 유스투스가 도착하기만 기다리면 되겠군."
"예. 모든 게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스투스도 곧 로마에 당도할 겁니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일천에 가까운 동지를 규합했다지? 볼수록 능력이 출중하단 말이야."
계획의 성공을 확신한 카틸리나와 만리우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떠나질 않았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번 계획도 거의 그의 손에서 완성된 게 아닙니까. 비밀리에 홀로 움직인다는 판단도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저번의 암살계획과는 달리 원로원 놈들은 아직도 우리가 뭘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으니까요."
"내 생각도 같네. 계획의 누설을 막기 위해 보안을 철저히 한 게 정답이었어."
유스투스는 일의 진행상황을 카틸리나를 제외한 다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미 암살 계획이 새나간 전례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납득해 주었다.
실패하면 파멸, 성공하면 로마의 지배자가 되는 일이다.
신중하게 가자는 의견에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유스투스는 지금까지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로마의 눈을 피해 사람들을 규합해내는 결과로써 자신의 판단을 증명해 보였다.
만리우스가 미리 불러 모은 카푸아의 퇴역병들과 유스투스가 끌어모은 동지를 합하면 그 수는 2천에 달한다.
계획대로만 움직인다면 하루 만에 로마를 장악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원로원을 장악하고 카틸리나를 독재관으로 선출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상황은 종결이다.
대충 시간을 가늠해본 카틸리나는 마침내 출정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완전 무장을 갖춘 동지들을 둘러보며 혁명의 의지를 고취하고 더욱 나은 미래를 약속했다.
사람들은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 특히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모든 부채를 탕감하고 오늘 우리가 죽인 의원들의 재산을 나눠 공평하게 분배할 것이다. 오늘은 가난하고 궁핍했던 과거와 영원히 이별하는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다. 용감한 시민들이여! 나와 함께 부와 명예를 거머쥐자!"
"우오오오!"
"카틸리나 만세!"
"탐욕스러운 원로원의 돼지들을 모조리 도살하자!"
카틸리나와 그의 일행은 은신처를 벗어나 진군을 시작했다.
혁명의 계획은 간단했다.
유스투스가 이끄는 무리는 로마의 일곱 언덕 서쪽에 있는 테베레 강을 끼고 내려올 예정이었다.
거기서 합류해 세르비우스 성문을 통과하면 유피테르와 유노 신전이 위치한 카피톨리노 언덕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원로원 의원들의 저택이 밀집한 팔라티노 언덕과 첼리오 언덕은 바로 코앞이다.
이 두 곳만 최대한 빠르게 제압해도 계획은 거의 성공이었다.
혁명의 성공을 확신한 카틸리나는 걸음걸이에 한층 힘을 더했다.
은신처에서 합류지점까지는 고작 두 시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그 누구도 지치지 않았다.
드디어 합류하기로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잔잔히 흘러가는 테베레 강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유스투스는 아직 오지 않았나 보군요."
만리우스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가 다가오자 그는 전장을 전전하던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카틸리나에게까지 곤두선 긴장감이 전해졌다.
"우리가 빨리 왔을 수도 있고, 저쪽이 늦어질 수도 있지.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 보세."
"그래도 혹여나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에게 발각되면 안 되니 은밀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도록 하지."
합류 전에 누군가에게 걸리는 사태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합류 장소도 인적이 드문 서북쪽 최상단으로 잡은 것이다.
카틸리나 일당은 숨소리조차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강가 인근 수풀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유스투스의 병력은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카틸리나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쯤이면 북쪽에서 그들이 기다리는 아군이 내려와 줘야 했다.
슬슬 불안해지려는 찰나, 만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소리? 무슨 소리······."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카틸리나의 귀에도 확실히 들렸다.
발소리라기에는 조금 이질적이었다.
"말발굽 소리 같은데······."
만리우스의 혼잣말에 카틸리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은은하게 울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아군이 도착하는 신호라고 받아들인 카틸리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기마병까지 데려오다니 유스투스가 아주 작정하고 사람들을 모은 모양이로군. 늦은 이유가 있었어."
그러나 만리우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뭔가가 이상했던 것이다.
유스투스는 분명히 북쪽에서 합류하기로 했을 터.
그런데 말발굽 소리는 남쪽, 로마가 있는 방향에서 들려왔다.
"실수로 합류지점을 지나쳐서 다시 올라오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지만, 이걸 제외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없었다.
"어, 지원군이 도착했나 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틸리나와 만리우스가 동시에 시선을 돌리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들이 보였다. 대전쟁에나 나갈 법한 상당한 규모의 무리였다.
주변은 어두웠지만 일렁이는 횃불 아래로 보이는 것은 로마 정규군단의 갑옷이었다.
잘못 보았을 리가 없다.
카틸리나의 얼굴이 이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질렸다.
"어, 어떻게······."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다른 사람들도 경악으로 몸이 굳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그들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군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 만리우스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갈랐다.
"원로원 놈들이다! 당황하지 마라, 곧 원군이 도착한다. 대열을 갖춰라!"
일행 사이에서 잠깐의 소요가 일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을 수습한 그들은 재빨리 대열을 짰다.
만리우스의 말대로 유스투스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해볼 만 하다고 여겼기에 절망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줄줄이 이어진 횃불의 숫자를 본 카틸리나의 눈이 참담함으로 물들었다.
완전한 무장을 갖춘 정규군으로 1개 군단은 족히 되어 보였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정규군이 로마 시내에······? 실라누스 이놈이 설마 나 몰래 군단을 소집했다는 말인가?"
집정관에게는 군의 통수권이 있으니 원로원의 허가만 받으면 군을 소집할 수 있다.
카틸리나를 따돌린 채 몰래 군단을 편성하는 건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군단을 소집하려면 필연적으로 국고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군단을 소집할 정도의 돈이 빠져나갔다면 카틸리나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로마 군단의 맨 앞줄에 있는 사람들은 카틸리나도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실라누스. 키케로, 카토, 루쿨루스, 나머지 원로원 의원들도 거의 총집결했군. 그리고······."
그런 거물들 옆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년이 한 명 있으니 자연스레 눈에 확 띌 수밖에 없었다.
"마르쿠스···그런가. 이번에도 크라수스 가문이 사비로 군단을 편성한 것인가."
카틸리나는 어째서 자신이 눈뜨고 뒤통수를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종종 분노한 연기를 하며 원로원 회의실을 박차고 나간 적이 있다.
그때 실라누스가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군단을 편성하기로 결의했을 것이다.
그리고 카틸리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군단 편성에 드는 자금을 크라수스가 부담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카틸리나의 계획을 간파하고 군단을 편성한 것인가.
아니, 군단이야 보험을 들어두는 차원에서 편성했다고 하면 이해는 간다. 그런데 정확한 날짜와 장소를 대체 어떻게 특정했다는 말인가.
'설마 밀정을 심어두었던 건가?'
암살 계획 유출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이번 계획은 철저히 보안을 중시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다가온 로마 군단은 카틸리나 일당에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집정관인 실라누스와 키케로, 그리고 놀랍게도 마르쿠스가 천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왔다.
먼저 키케로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여, 카틸리나. 이런 야심한 시각에 테베레 강까지 산책을 나오다니 어쩐 일인가?"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중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로마를 위협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천인공노할 무리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네의 얼굴이 보이는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우리는 여기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대비해 훈련하고 있던 참일세."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실라누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위험? 무슨 위험을 말하는 건가."
"그거야 원로원이 나를 무력으로 핍박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지. 왜. 그라쿠스 형제의 전례가 있지 않나."
"그것도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것인가?"
키케로가 황당함과 분노, 거기에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카틸리나를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조롱 섞인 표정마저 자취를 감췄다.
로마의 집정관이라는 자가 저렇게까지 구차한 핑계를 대는 모습이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실라누스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진한 한숨을 토해냈다.
"이 어이없는 촌극도 이제 끝낼 때가 되었군. 젊은이, 자네의 공이 가장 크니 자네가 직접 마무리를 지어주게."
"알겠습니다."
은은하게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 마르쿠스의 입에서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틸리나 님, 당신의 음모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더는 명예를 더럽히지 마시고 죄를 인정하시지요."
"음모? 내가 무슨 음모를 꾸몄다는 것인가. 나는 이 나라의 집정관일세. 내가 무장한 사람들을 데리고 테베레 강에서 훈련을 한 게 음모를 꾸민 증거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 물론 원로원의 허가도 받지 않고 완전 무장한 사람들을 움직인 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카틸리나 님."
단호하면서도 무감정한 한 마디가 끝없이 이어지는 변명을 잘라냈다.
마르쿠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뒤에 있는 의원들의 귀에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카틸리나 님은 로마의 안위를 수호해야 하는 집정관의 임무를 망각하고 헛된 욕망에 휩싸여 권한을 마음대로 휘둘렀습니다. 그 결과 로마의 시민들은 때아닌 혼란에 고통스러워하고 선량한 채무자와 채권자들은 이간질당해 서로 반목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을······!"
"급기야 집정관께서는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먹히지 않자 이 나라를 무력으로 전복하려는 끔찍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동료 집정관인 실라누스 님과 전직 집정관인 키케로 님을 암살하려고 한 것입니다."
카틸리나가 또다시 중간에 말을 끊으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마르쿠스가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여길 보시면 카틸리나 님이 어떤 식으로 동료 의원 둘을 암살하려 했는지 상세한 계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입수한 저는 즉각 키케로 님과 실라누스 님께 아침 접견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드렸습니다."
키케로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마르쿠스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덕분에 저와 실라누스는 카틸리나의 끔찍한 음모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키케로 님은 원로원의 명예를 고려해 카틸리나 님에게 자수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카틸리나 님은 죄를 뉘우치지 않고 폭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무력으로 로마를 뒤엎고 독재관에 취임하겠다는 망상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독재관이라는 단어를 들은 카틸리나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만리우스의 얼굴에도 이해불가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반란은 물론 이후의 세부적인 계획까지 전부 새어나갔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카틸리나는 최후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직 절대 부인할 수 없는 물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암살 계획서쯤이야 카틸리나가 작성하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조작된 증거라고 항변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카틸리나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다.
마르쿠스는 기다렸다는 듯 몇 장의 양피지를 더 꺼내놓았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반란에 참석할 자를 규합하라는 지시서입니다. 여기엔 카틸리나 님의 신분과 현직 집정관임을 증명하는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카틸리나 님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목숨을 빼앗기로 한 원로원 의원님들의 명단입니다. 참담하게도 실라누스님과 키케로 님은 물론 카토 님과 카이사르 님, 루쿨루스 님의 이름마저 올라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반사적으로 반박할 말을 외쳐보려고 했던 카틸리나는 차마 끝까지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마르쿠스가 들고 있는 건 분명히 카틸리나가 유스투스에게 맡긴 위임장이었다.
그는 살생부에 적혀 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카틸리나의 살생부에는 단순히 이름만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살해하고, 남은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던 원로원 의원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루아침에 목숨을 빼앗기고 재산을 강탈당할 뻔한 셈이다. 분노가 들끓는 게 당연했다.
동시에 카틸리나의 반란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는지 실감하고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저 젊은이가 사전에 음모를 간파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이거 큰 빚을 진 기분이로군요."
의원들의 감상은 실제로 틀리지 않았다.
허술하기 짝이 없던 원 역사의 계획과 달리 카틸리나의 이번 음모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현직 집정관의 권한을 최대로 활용하면 동지들을 은밀하게 로마로 모을 수 있다.
내부에서 기습적인 봉기를 일으킨다는 판단도 틀리지 않았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상당한 수의 의원들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의원들은 카틸리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온갖 비난을 쏟아냈지만, 당사자인 카틸리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마르쿠스의 손에 들린 살생부를 보고 있었다.
'저게 대체 어떻게 마르쿠스의 손에······허억!'
순간, 카틸리나는 머릿속을 강타한 충격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갈기갈기 조각나있던 무언가가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이었다.
"설마···유스투스가······."
충격이었다. 일순 눈앞이 흔들리고 거짓말이라며 괴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잘못되어도 뭔가 한참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카틸리나는 미쳐버릴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유스투스는 기사 계급에 속하는 이였다.
그리고 기사 계급은 대부분 크라수스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암살 계획을 신중하게 정하자며 시간을 끌었던 이도 유스투스다.
암살자들이 확실하게 방법을 숙지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긴 이도 그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이고 살리는 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살생부를 작성한 사람도 유스투스였다.
심지어 이번 거사는 보안이 철저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계획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반란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사람들의 인장을 찍어 보내주었기에 완벽히 속았다.
그것 역시 조작된 자료였음이 틀림없었다.
지금까지 카틸리나가 꾸민 모든 음모가 마르쿠스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게 명백한 증거였다.
"처음부터···처음부터 완전히 놀아나고 있었단 말인가······."
카틸리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휘청휘청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내 그는 살의와 분노가 가득 찬 눈빛으로 마르쿠스를 쏘아보며 외쳤다.
"이건 함정이야! 나는, 나는 저놈이 판 함정에 빠진 거라고! 저놈이 밀정을 보내서 내 행동을 유도한 거야! 나는······!"
이성을 잃고 날뛰는 카틸리나를 두고 마르쿠스는 씁쓸함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카틸리나 님.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걸 망친 사람은 카틸리나 님 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도 몇 번이나 멈출 길이 있었지만, 선택을 내린 것도 카틸리나 님 본인입니다. 자신의 선택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건 스스로 가치를 더 깎아내리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카틸리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유스투스는 언제나 카틸리나에게 정말 그렇게 할 거냐는 확인을 구했었다.
선택을 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카틸리나 본인이었다.
실제로 그가 모든 걸 포기하고 국외로 망명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면 마르쿠스는 그의 바람대로 해줬을 것이다.
자신이 거머쥔 것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 사람 역시 카틸리나 본인이었다.
권력에 대한 야심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자신이 지닌 야심과 자존심에 걸맞은 능력이 없었을 뿐.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의원들은 흔들림 없이 냉정하게 카틸리나를 몰아세우는 마르쿠스의 자세에 감탄했다.
자신의 혐의를 모르는 척하던 카틸리나가 궁지에 몰리는 걸 통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아직 원로원에도 들어오지 않은 청년이 로마의 현직 집정관을 탄핵하는데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흥분해서 평정심을 잃을 만도 한데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나이든 원로들로 하여금 더욱 호감을 품게 만들었다.
크라수스는 누가 봐도 자랑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는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원들은 이내 저 청년이 베레스 재판에서 공화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인물과 동일인임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모든 증거를 제시한 마르쿠스는 마지막 마무리를 키케로에게 맡겼다.
말에서 내린 키케로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카틸리나를 가리켰다.
독재관의 꿈을 꾸던 반역자의 일장춘몽을 산산조각으로 부숴내는 언변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62. 카틸리나의 반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