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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개혁의 시작 (64/326)

  < 63. 개혁의 시작 >

  카틸리나는 더이상 발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앞에 선 키케로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 하자 마르쿠스의 눈이 흥미로 반짝였다.

  2천 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명연설,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베레스 재판 때도 살짝 그런 기미는 있었지만···정말로 진짜로 그렇게 오그라들게 말했을까?'

  당시 로마의 연설은 갖가지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기는 했지만, 카틸리나 탄핵문은 그 정도가 한층 더했다.

  마르쿠스는 내심 아무리 그래도 연설 내용을 글로 옮기면서 과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마르쿠스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받은 키케로의 입에서 대망의 첫 마디가 흘러나왔다.

  "오, 그대 카틸리나여! 언제까지 우리의 관용과 인내를 시험하고 있을 작정인가?"

  '그게 진짜 과장없이 그대로 옮긴 거였다니······.'

  왠지 모르게 시선을 두기 민망했던 마르쿠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마음과는 별개로 키케로의 웅변은 주변 모두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켰다.

  "그대는 지금까지 대체 무엇을 했는가. 어떤 마음으로 로마의 전통과 명예, 위신을 짓밟으려는 끔찍한 음모를 꾸민 것인가.

  지난 수개월 동안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불안한 표정과 보초병의 초조한 얼굴을 보고 무엇 하나 느끼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대는 그 끔찍한 음모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을 때조차 거짓과 위선을 겹겹이 둘러 자신을 방어했다.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자수의 기회를 주었을 때조차 단념하지 않고 더욱 악독한 마음을 품었다.

  "

  카틸리나는 차마 키케로의 시선을 마주 받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키케로가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한탄했다.

  "오오, 참담한 시대여! 원로원의 모두가 그대의 본심을 낱낱이 알게 되었노라. 그런데도 여전히 죄를 뉘우치는 한마디의 말조차 하지 않는구나. 그대의 계획에 따르면 우리는 오늘 밤 모두 죽었어야 한다. 그대는 신성한 원로원에서 동료 의원들을 둘러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그 사악하고 간교한 눈으로 우리의 목숨을 저울질하며 살생부를 작성하지 않았는가."

  살생부의 내용을 다시금 떠올린 원로원 의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키케로는 일부러 의원들의 분노가 올라올 때까지 숨을 고르는 척 뜸을 들였다.

  "로마를 굽어보는 위대한 신들이시여! 이 위대한 나라가, 선량한 시민으로 가득한 숭고한 도시가 어째서 저런 무뢰배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던 것입니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끔찍한 위기를 면하게 해주신 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대역무도한 죄인이 국가의 안녕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저희를 살펴주시옵소서."

  키케로는 이후로도 수십 분이 넘게 카틸리나의 죄를 규탄했다.

  로마의 초기 역사부터 되짚어가며 수많은 죄인의 사례를 카틸리나와 결부시켰다.

  키케로의 입에서 카틸리나는 천하에 다시없을 불한당이자 악적으로 재탄생했다.

  그 말을 쭉 듣고 있자니 마르쿠스마저 카틸리나가 정말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틸리나를 따르던 부하들도 카틸리나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최고 수준에 이른 언변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십 분가량을 더 카틸리나를 몰아세운 키케로는 진중한 목소리로 연설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그러니 카틸리나여, 죄를 인정하고 투항하라! 헛된 저항으로 무익한 피가 흐르게 하지 마라. 그대의 허황된 야망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피가 흘러서는 아니 된다.

  마지막 발버둥을 생각하는가? 뒤를 돌아 그대를 바라보는 수하들의 얼굴을 보아라. 위대한 신들께서 이 순간만이라도 그대에게 온전한 정신을 돌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기를 버려라, 카틸리나여! 무엇을 주저하는가? 그대의 뒤에 선 부하들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모르는 것인가!

  "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수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비판을 당하면 정신이 나가기 마련이다.

  심지어 반란 계획이 완전히 실패해 혼이 반쯤 빠져나간 사람이라면 그 효과는 더욱 크다.

  카틸리나는 수차례나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계획이 실패한다면 구차하게 살지 않고 당당히 마지막까지 싸우겠다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마지막 전의를 불태워보려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모두가 무기를 밑으로 내린 채 체념과 절망만이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여기서 당당하게 돌격명령을 내려 봐야 카틸리나의 꼴만 우스워질 게 확실했다.

  결국 선택의 여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틸리나는 손에 든 무기를 땅바닥에 떨어트리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내가 졌다···마음대로 해라."

  우두머리의 입에서 항복의 의사가 나오자 부하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무기를 버렸다.

  1천이 넘는 카틸리나의 무리는 전원 포박당해 로마로 압송당했다.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머쥔 키케로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귀환했다.

  그래도 이번 진압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마르쿠스였다.

  의원들은 한결 같이 마르쿠스의 의연함과 총명함을 칭찬하며 안면을 트고자 했다.

  크라수스와 친분이 있는 의원들은 앞 다투어 믿음직한 아들을 둬서 부럽다는 말을 건넸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크라수스의 얼굴에는 로마로 돌아가는 내내 웃음기가 떠나질 않았다.

  1개 군단을 모으는데 들었던 돈쯤이야 아깝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반란 진압에 사용된 정당한 지출이었으니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겠지만, 원로원에 빚을 지운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돌려받지 않는 게 나아 보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반란 진압은 끝났으나 일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카틸리나를 제압하는 것 따위보다 열 배는 더 복잡한 사후처리 문제가 남아 있었다.

  특히 카틸리나와 그 일당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이 일어났다.

  정상적으로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쪽과, 원로원 최종권고를 발동해 즉결처분을 내리자는 쪽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양쪽 다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재판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대표주자는 카이사르였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일관되게 원로원 최종 권고의 위법성을 주장해왔다.

  그 생각은 당연히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최후의 수단은 말 그대로 최후의 상황에 써야만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긴박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원로원 최종 권고는 로마인들의 모든 권리를 정지시키는 초법적인 힘입니다. 법이 무력화되는 일은 적게 나오면 나올수록 좋습니다. 특히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원로원이 이런 초법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면 후대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

  평상시라면 카이사르의 말에 반대했을 의원들도 말을 아꼈다.

  그의 말대로 며칠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비상사태라고 할 만한 시기는 아니었다.

  보수파 중진 의원들 몇몇이 카이사르의 의견에 찬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카토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카이사르의 의견을 반박했다.

  "여러분, 지금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시는 게 아닙니까? 확실히 카틸리나의 반란은 진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모두 쓸려나간 건 아닙니다. 이탈리아 반도 각지에는 아직도 카틸리나의 법안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그가 억울하게 원로원에 탄압당했다는 말을 하는 자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판입니다."

  "그게 정말이오?"

  "믿지 못하겠다면 민회가 열리는 날에 포로 로마눔 광장에 한 번 내려가 보시죠."

  카틸리나의 지지자들이 모두 반란에 가담한 건 아니었다. 부름을 받은 건 당연히 신뢰할 수 있는 자들뿐이었다.

  아직 로마 시내에만 해도 수많은 채무자들이 카틸리나가 복권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반란을 일으킨 건 잘못된 행위였으나 오죽했으면 그럴까 생각하는 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는 컸다.

  카이사르는 그 점을 지적하며 공정한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했다.

  "재판을 통해 카틸리나의 죄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시민들에게 처벌 이유를 확실히 납득시켜야 합니다. 무려 현직 집정관이 일으킨 반역사건입니다. 시민들이 느끼고 있을 동요를 고려한다면 여느 때보다 신중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합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런 때이니 더욱더 원로원의 힘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집정관이라도 삿된 욕망에 휘둘려 질서를 어지럽히면 파멸할 뿐이라는 선례를 확실히 남겨야 합니다!

  지금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있는 이유도 카틸리나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카틸리나와 반란을 주도한 무리가 전부 처형당한다면 그들이 누구를 구심점으로 삼겠습니까.

  "

  카이사르와 카토 두 사람 모두 내세우는 근거가 확실했다.

  사람은 보통 너무 급진적인 쪽으로는 가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의견에 공감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카토에게 찬성하는 의원들도 많았다.

  카토의 주장은 철저하게 원로원의 권위와 힘을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원로원은 카틸리나를 성공적으로 제압하며 자신감이 오른 상태였다.

  여기에서 한 번 더 강경하게 나가 원로원의 힘을 보여주자는 카토의 제안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키케로처럼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카틸리나 일당의 항복을 받아낸 그가 어느 쪽을 선택 하냐에 따라 전체적인 판도가 결정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캐스팅 보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키케로는 극심한 부담감에 섣불리 답을 내리지 못했다.

  법의 인간인 그는 사실 누구보다도 원로원 최종 권고의 비합법성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원로원이 로마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마냥 반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원로원 최종 권고가 없다면 원로원은 절대로 지금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키케로는 자신이 인정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친우 아티쿠스는 대답을 회피했다.

  크라수스는 약삭빠르게도 문제가 터지자마자 자신은 집정관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키케로도 진즉 그렇게 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양측 진영에서 빨리 입장을 정해달라는 촉구를 매일 같이 듣는 입장이었던 까닭이다.

  여기서 뒤늦게 중립을 지킨다고 해봐야 욕만 얻어먹을 게 뻔했다.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뜻을 청취한 키케로는 마지막으로 마르쿠스를 방문했다.

  그러나 마르쿠스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았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이사르 님과 카토 님의 의견이 갈린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양자 간의 입장 차이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입니다. 뭐가 옳은지 판단하려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대신 자신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겠지요."

  "만약 그런 선택을 내린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 로마는 앞으로도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으로 운영돼야 하네. 나는 이것만큼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될 절대적인 가치라고 믿네."

  마르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키케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사실 원로원이 최종 권고를 발동해주는 게 더 좋긴 했다.

  그편이 앞으로의 계획을 더 원활히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대신 담담하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입에 올렸다.

  "원로원 최종 권고가 없었다면 원로원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도 저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키케로는 법조인으로서의 양심 때문에 선뜻 고르지 못했던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정했다.

  다음날 원로원 회의에서 키케로는 최종 권고를 발동해 카틸리나 일행을 즉결처분할 것을 요구했다.

  다른 뜻은 없으며 이는 오롯이 로마의 질서를 위해서라고 강력히 설파했다.

  키케로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의원이 카토의 편을 들어주자 대세는 곧바로 결정되었다.

  결국 기원전 62년, 원로원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할 것을 결의했다.

  카틸리나와 만리우스, 그리고 추가로 3명의 인원이 반란을 주도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집정관 실라누스는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사형집행수를 이끌고 감옥으로 향했다.

  카틸리나는 지금부터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실라누스의 통보에 입을 떡 벌리며 항변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로마의 집정관이다. 제아무리 민회와 원로원에서 내 권한을 정지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 너희들은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만리우스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우리는 로마의 시민이다! 너희가 감히 어떤 권리로 재판도 없이 우리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냐!"

  창살을 잡고 있는 힘껏 외쳐 보았지만 두 사람의 말은 허망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실라누스는 반란자들은 유언을 남길 권리도 없다며 즉각 사형을 집행했다.

  파란만장했던 카틸리나의 삶은 그렇게 좁디좁은 감옥 안에서 허무하게 끝이 났다 .

  로마에서도 유명한 명문 귀족이자 집정관까지 올라간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서글픈 최후였다.

  원로원은 즉각 카틸리나의 처형 소식을 로마 전역에 공표했다.

  현직 집정관을 즉결 처형했다는 이 놀라운 소식에 로마는 충격에 휩싸였다.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채무자들도 상상을 초월한 원로원의 강경 대응에 더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민회에서 이건 너무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그 어떤 호민관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원로원 최종 권고는 호민관들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라쿠스 형제의 전철을 따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감히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카틸리나의 추종자들도 구심점이 되어 줄 사람이 사라지자 지리멸렬 흩어지기 시작했다.

  원로원은 완전히 승리의 분위기에 취했다.

  카토와 키케로는 원로원의 영웅이라 칭송받고, 카이사르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원로원의 지식인들은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는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사람들의 불만을 압도적인 공포와 권위로 찍어 눌렀을 뿐이다.

  일시적으로는 문제를 덮을 수 있어도 몇 년 뒤에는 비슷한 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득권층은 일단 급한 숨을 돌린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빚에 짓눌린 사람들은 분노보다 더 큰 절망에 한탄하며 또다시 눈물을 삼켰다.

  대다수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로마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바로 마르쿠스였다.

  때가 완전히 무르익었음을 직감한 그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

  마르쿠스는 키케로가 주선한 공화정을 수호하는 청년 모임에 그간 꾸준히 참석했다.

  딱히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친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 명문 귀족으로 이루어진 청년들의 배경을 이용할 때가 오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마르쿠스는 공화정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청년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의 명성은 카틸리나의 반란을 진압하며 이미 귀족들 가운데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높았다.

  "공화정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거들어 드려야지요."

  브루투스는 즉각 협력하겠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최근 탁월한 연설가로 조명을 받고 있는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도 마르쿠스에게 가담했다.

  그의 아버지는 열성적인 공화주의자이자 키케로나 카토와도 친한 사이였다.

  이렇게 조력자를 늘린 마르쿠스는 가문의 이름을 내걸고 포로 로마눔 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공화정을 수호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청년들도 가문의 이름을 기꺼이 빌려주었다.

  아직 원로원에 입성하지는 못했더라도 그들이 지닌 명문 귀족 가문의 이름값은 상당했다.

  게다가 구성원 모두가 장차 원로원을 이끌어갈 재목이 될 거라 촉망받는 이들이었다.

  원로원도 자연스레 주의를 기울였다.

  이들은 아직 로마의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으며,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거기에 크라수스가 적극 판을 키우며 청년들이 혁신적인 방안을 내놓을 거라 보증했다.

  "원로들이라면 마땅히 뜻 있는 청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지요."

  키케로 역시 마르쿠스의 뒤를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다.

  그러는 사이 바람잡이들은 채무자들의 짐을 덜어줄 대책이 발표될 거라는 소문을 흘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집회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이쯤 되니 사실상 민회가 소집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채무자들은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집회가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

  채권자들도 크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기사 계급의 대표인 크라수스 가문이 터무니없는 정책을 제안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침내 집회가 열리는 날이 밝아왔다.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과 호민관 전원,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포로 로마눔 광장에 집결했다.

  "많이도 모였네요."

  연단 위에서 광장을 둘러본 마르쿠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 선 크라수스도 흐뭇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기꺼워했다.

  "오늘이 지나면 너의 이름과 우리 가문은 로마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겠구나.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어디 저 혼자만의 힘이겠습니까.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 생각은 그저 몽상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브루투스나 쿠리오, 카시우스도 나름 도움을 주었고요. 카틸리나를 줄곧 옆에서 지켜본 유스투스의 의견도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나는 그저 로마의 실정에 맞게 네 구상을 조금 다듬어주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 역시 네 옆에서 살짝 거든 정도에 지나지 않고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너란다."

  마루쿠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자신 혼자 밀어붙이기엔 사안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문가문의 청년들을 동원해 무게감을 키우고, 크라수스의 보증을 받아 신뢰감을 더했다.

  남은 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확실히 설득해내는 것뿐이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소란스러운 군중의 함성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동시에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기분 좋은 울림을 자아냈다.

  나아가는 마르쿠스는 짧은 순간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귀족들만이 아닌 로마의 모든 시민들의 머릿속에 마르쿠스라는 이름이 깊이 각인되리라.

  줄곧 그림자 뒤에 숨어 있던 청년이 드디어 그 이름을 만방에 떨치게 되는 순간이었다.

  < 63. 개혁의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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