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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새 시대의 씨앗 (67/326)

  < 66. 새 시대의 씨앗 >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소아시아를 떠났다는 소식에 원로원은 연일 긴급회의를 이어나갔다.

  온종일 회의를 해도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개혁을 확실히 진행해 시민들의 지지를 모은다는 기본 전략은 그대로 진행했다.

  시민들의 호응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자유를 박탈당할 뻔했던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원로원을 향한 여론이 호의적으로 바뀐 게 피부로 체감이 될 정도였다.

  덕분에 마르쿠스는 또다시 잠잘 틈도 없이 격무에 시달렸다.

  은행 설립 준비부터 관련 제도의 시행안과 법안의 검토,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단의 구상까지.

  특히 은행과 관련된 제도는 완전히 생소한 개념을 만드는 거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수면 시간을 줄여서라도 마르쿠스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재무관 선거에서 압도적 1등으로 당선되었으니 내년부터 시작될 의정활동도 준비해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몸이 2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토록 할 일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그의 주의를 완전히 돌아가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 낌새를 눈치챈 사람은 스파르타쿠스의 아내인 셀리니였다.

  최근에 임신한 그녀는 마르쿠스의 만류에도 언제나 야식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묘한 말을 건넸다.

  "최근에 율리아 님의 거동이 평소와 좀 다른 것 같던데요. 조금 불편해 보이신다고 해야 할까요."

  "혹시 몸이라도 안 좋대?"

  "아니요. 그건 아니고 제가 임신 초기에 보였던 행동과 좀 비슷한 것 같아요."

  "뭐? 임신?"

  셀리니 역시 미세하게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임산부라 눈치챈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라 마르쿠스는 서류도 내팽개치고 황급히 의사를 불렀다.

  이 시대에서 초음파 검사나 임신진단시약 같은 걸 쓸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임신검사는 보통 간단한 문진으로 먼저 이뤄진다.

  이집트에서 건너온 민간방식도 유용하게 사용됐다.

  2개의 자루에 밀과 보리를 채우고 임신 여부를 판단하고 싶은 여성이 자루에 소변을 본다.

  보리나 밀이 발아하면 소변을 본 여성은 임신한 것으로 판정됐다.

  이 방법은 은근히 정확도가 높았다.

  남성이나 임신하지 않은 여성의 소변으로는 보리나 밀이 발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도 발아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럴 확률은 3할이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사회 고위층은 그런 방식을 쓰기 전에 먼저 의사에게 문진을 받았다.

  크라수스가의 저택에 불려온 의사는 유력한 임신징후를 나타내는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최근에 후각이나 미각에 변화를 느끼신 적이 있으십니까?"

  "음···생선의 미약한 냄새가 갑자기 역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달거리가 오지 않고 있는 것은 확실하시죠?"

  "네. 두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평소보다 쉽게 피로한 느낌이 들고 갑자기 특정 음식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래서 요새 부쩍 당분이 많은 과일이나 간이 센 음식을 먹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율리아의 주변을 둘러싼 가솔들은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특히 크라수스와 테우토리아는 거의 춤이라도 추고 싶은 듯한 기색이었다.

  크라수스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근엄하게 물었다.

  "자네의 진단은 어떤가?"

  의사는 몇 가지 더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은 뒤,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

  "무조건이라는 장담은 못 하지만, 제 소견으로는 아이를 가지셨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그리고 임신 초기 단계에서는 유산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암암, 당연히 조심해야지. 하하하!"

  의사의 진단이 떨어지자 크라수스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테우토리아는 율리아의 손을 꼭 잡으며 몇 번이나 장하다는 말을 건넸다.

  셀리니와 다나에도 박수를 치며 율리아의 임신을 축복해주었다.

  스파르타쿠스도 마르쿠스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율리아 님에게 축하한다고 한 말씀 해주셔야지요."

  "어? 아···응."

  스파르타쿠스의 조언에 정신이 퍼뜩 든 마르쿠스가 율리아에게 다가갔다.

  의식하지 않아도 시선이 절로 그녀의 복부로 향했다.

  율리아는 기쁨과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복부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느새 마르쿠스의 옆으로 다가온 크라수스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주었다.

  "우리는 자리를 피해줄 테니 부부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라.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는 둘 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율리아, 정말 축하하고 고맙구나. 몸조리 잘하고 이제부터는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네, 아버님. 절대 무리하지 않고 안정을 취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혹시나 필요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거라. 이거 내일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의 반응이 기대되는구먼. 하하하!"

  크라수스는 어찌나 기뻤던지 방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나가고 방에 둘만 남게 되자 마르쿠스는 엉거주춤 율리아의 옆에 앉았다.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수고했다, 고맙다, 여러 가지 말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지만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어째 갑자기 긴장하신 것 같네요?"

  율리아는 장난스럽게 물었던 거지만 마르쿠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그런 건가?"

  대부분의 남자들은 처음으로 아내가 임신했다는 게 확정되면 좀처럼 실감을 하지 못한다.

  마르쿠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안고 입을 맞췄던 아내의 몸에 손을 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의사의 입에서 유산이라는 단어를 들었기 때문일까.

  혹시나 최근에 가졌던 잠자리가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르쿠스 님의 그런 얼굴은 처음 보네요. 언제나 모든 게 예상대로라는 표정을 짓고 계셨는데."

  "나도 처음인 일엔 당황도 하고 놀라기도 해."

  "정말요? 처음 안 사실이네요."

  율리아는 환하게 웃으면서도 자신의 배 위에 얹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마르쿠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라······."

  예상을 못 한 건 아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잠자리를 가졌으니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예상이 현실이 되니 언어로 형용이 안 되는 감상이 가슴속을 가득 메웠다.

  기쁘면서도 한없이 어색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율리아 역시 마냥 행복해 보였지만, 속마음은 어떨지 몰랐다. 어쨌거나 그녀도 처음으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한 생명을 직접 몸에 품고 있는 만큼 마르쿠스보다 훨씬 더 감회가 남다를 수도 있었다.

  "일단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고 하니 당분간 일은 다나에에게만 맡겨도 괜찮을까요?"

  "괜찮은 게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당분간은 같은 침상에서 자는 것도 자제하자. 내일 바로 침상을 들여놓을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조심하는 게 아닐까요?"

  "안 돼. 적어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조심해야지."

  얼핏 들기로는 임신 4개월인가 5개월 뒤부터 안정기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당장 내일부터 임신과 태교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고대 시대의 의학 지식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율리아는 원래 역사에서 산고로 사망하는 만큼 철저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율리아는 남편이 너무 걱정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했다.

  마르쿠스가 과민반응이라고 할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건 오직 율리아와 관련된 일이었다.

  남편의 정성을 듬뿍 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을 아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각자의 바람을 입에 담았다.

  "마르쿠스 님을 닮은 현명한 아들이었으면 좋겠네요."

  "당신을 닮은 딸이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완전히 정반대의 소원을 말한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황한 쪽은 당연히 율리아였다.

  로마가 고대 국가 중에서 여성 인권이 제법 높은 편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주변국들과 비교해서다.

  로마 역시 가부장적인 사회였으며 첫 자식은 가문을 이을 수 있는 남자를 원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떠올린 마르쿠스는 내심 아차 싶었다.

  그가 아들보다 딸을 원하는 이유는 현대적인 아버지의 감성이 작용한 게 절반, 나머지 절반은 이후의 일을 생각해서였다.

  비상한 추리력을 지닌 율리아는 마르쿠스의 말에 담긴 의미를 항상 깊게 고찰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남편의 의도를 헤아려본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가문의 후계 구도 때문인가요?"

  정답에 거의 근접한 대답이 나왔지만 마르쿠스는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도 않은 사안에 벌써 그녀를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니야, 그냥 당신을 닮은 딸이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싶어서 해본 말이니 너무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어."

  "그런 건가요? 그래도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손자를 원하고 계실 텐데······."

  "그러니까 나는 딸을 원한다고 해야 당신이 딸을 낳든 아들을 낳든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잖아. 아, 깜빡 잊고 있었는데 장인어른 댁에도 한 번 가야 하지 않아? 당신은 조심해야 하는 몸이니 장인어른께서 와주셨으면 한다고 전할까?"

  "에이, 어차피 가마를 타고 갈 텐데 저는 괜찮아요. 마침 얼마 안 있으면 보나 여신제가 열리니 저는 아버지의 관저로 가 있을게요. 여신제가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와 잠깐 시간을 보내면 되겠죠."

  "···그렇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네. 이제 곧 보나 여신제였지?"

  은행의 설립과 폼페이우스의 귀환을 대비한 원로원 의원들의 상담에 응하느라 여신제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미처 없었다.

  거기에 율리아의 임신까지 겹치자 보나 여신제에 관한 일은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보나 여신제란 말 그대로 보나 여신을 기리는 축제였다.

  보나 여신은 철저히 여성들만을 위하는 여신으로 출산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여신제는 5월과 12월에 한 번씩 열리는데 5월은 모든 계층의 여성이 참가가 가능했다.

  반면 12월의 여신제는 고귀한 태생의 여성들만 참여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두 기념제 모두 여성들만을 위한 축제였기에 남자는 절대로 출입할 수 없었다.

  로마 종교계의 책임자인 최고 사제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행사 자체는 최고 사제의 관저에서 열리는 게 보통이었지만, 최고 사제는 여신제가 열리는 동안 다른 이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대신 로마에서도 가장 큰 존경을 받는 베스타 여사제들이 여신제를 주관했다.

  그리고 최고 사제의 가족 중 여성이 있다면 그들도 베스타 여사제를 도와 의식의 준비를 도왔다.

  율리아는 최고 사제인 카이사르의 딸이었으니 자신도 여신제의 준비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

  물론 마르쿠스는 아이를 가진 그녀가 이리저리 움직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혼으로 출가한 사람에게까지 의무가 부여되는 건 아니잖아. 홑몸도 아니니 그냥 쉬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이가 있으니까 더 가야하지 않을까요? 출산을 관장하는 여신님의 기념제잖아요. 게다가 제가 할머니 옆에 있어야 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 새어머니는 뭐랄까···이런 일에는 조금 안심이 안 돼서요."

  율리아는 마르쿠스가 해적 소탕을 나가 있는 동안 어머니 코르넬리아와 사별했다.

  원래 역사보다 2년 정도 더 늦은 이별이었다.

  카이사르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뒤, 술라의 손녀인 폼페이아와 재혼했다.

  폼페이아는 아름답고 배경도 훌륭한 여인이었으나 총명함은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로마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카이사르의 집안에서는 조금 겉도는 분위기였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며느리가 생각이 짧은 언행을 보일 때마다 두통으로 머리를 앓았다.

  특히 보나 여신제 같은 중요한 축제를 준비해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율리아가 자신이라도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여전히 율리아가 축제에 참여하는 걸 허락할 마음이 없었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들 거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이번 여신제에서 일어날 커다란 소동에 그녀가 마음고생을 할 게 뻔해서다.

  "당신 생각이 정 그렇다면 의식의 준비만 도와주고 당일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게 어때? 여신제가 시작되면 엄청 달아오를 텐데 그런 분위기가 임신 초기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대."

  "예? 하지만 출산을 주관하는 여신님의 행사인데······."

  "보나 여신도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보다는 그걸 열 수 있도록 준비한 사람의 공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할 거야. 나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현대인인 마르쿠스는 당연히 로마의 종교적인 행사를 미신이라고 여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거 참여 안 해도 아무런 천벌도 내리지 않는다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마르쿠스의 관점이고 보통 로마인들의 시각은 달랐다.

  이 시대에는 아무리 현명한 이들일지라도 일말의 신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됐다.

  대신 그 정도면 여신에게도 최대한의 정성을 쏟은 거라는 식의 설득을 했다.

  여사제만큼의 투철한 신앙심은 없었던 율리아는 결국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이 저렇게까지 쉬길 원하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그러면 내일 아버지의 관저로 가서 의식의 준비만 도울게요. 어차피 행사 당일에는 아버지도 관저를 비우셔야 하니 아버지와 함께 여기로 돌아올게요. 그러면 괜찮겠죠?"

  "물론. 내 고집을 들어줘서 고마워."

  마르쿠스는 조심스레 율리아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입을 맞췄다.

  율리아도 마르쿠스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오늘까지만 같은 침대에 눕기로 한 두 사람은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마르쿠스는 옆에서 색색거리며 잠이든 율리아를 밤이 깊어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내년이면 나도 아버지가 되는 건가······.'

  이제 어느 정도 실감은 갔지만 아직 얼떨떨한 기분이 다 가시지는 않았다.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예전에 셀리니가 임신했을 때 스파르타쿠스가 보였던 반응이 문득 생각났다.

  그는 몇 번이나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눈물을 보였다.

  마르쿠스는 그 기분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건 역시 무리였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마자 성별의 문제를 떠올린 자신이 조금 어이없기도 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이용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는 것에 가까웠다.

  태어날 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만은 분명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부모가 된 이상 자식에게 행복한 미래를 안겨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아들인지 딸인지가 먼저 확실해져야겠지.'

  태어날 아이가 어떤 성별인지에 따라서 미래의 구상이 완전히 달라질 여지가 있었다.

  고대 사회에서 자식의 행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정치 지형을 만들어 놓는 게 필수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율리아에게 밝힌 대로 딸인 쪽이 앞으로의 계획을 그리기 수월했다.

  반대로 아들을 낳는다면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많아질 것이다.

  '내년에 태어난다면 그 아이와는 1년 터울이 되는 건가······.'

  눈을 감은 마르쿠스의 머릿속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아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 카틸리나가 집정관으로 선출되었을 때 원로원은 거의 매일같이 비상대책 회의를 열었었다.

  위기감을 느낀 의원들도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석해 대책을 논의했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사회 분위기 탓에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9월 23일, 카이사르가 자신의 조카딸인 아티아 발바 카이소니아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은 시큰둥하게 그러냐는 반응을 보이며 대충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아티아는 평민 기사 계급과 결혼했고 로마법에 따라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의 신분을 따랐다.

  원로원 의원들로서는 카이사르의 아들도 아니고 먼 친척에 불과한 평민 출신 남자 아이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달랐다.

  그는 로마 외곽의 별장을 선물하면서까지 아티아의 출산을 축하했다.

  이 호의에 아티아는 물론 카이사르도 크게 기뻐했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가 자신의 낯을 봐서 이런 커다란 선물을 준비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도 없는 건 아니었으나 마르쿠스가 특히 주의를 기울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어느 권력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어린 평민 아이에게 쏠려 있었다.

  카이사르의 조카딸인 아티아가 낳은 아이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로마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자 훗날 로마의 초대 황제로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이었다.

  < 66. 새 시대의 씨앗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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