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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태동 (73/326)

  < 72. 태동 >

  마르쿠스는 즉각 안토니우스를 만나보기로 했다.

  쿠리오보다 조금 더 어린 안토니우스의 나이는 내년이면 스물셋이 된다.

  로마에서 스물셋이면 이제 막 경험을 쌓아나가는 충전기로 여겨졌다.

  쿠리오는 안토니우스 같은 청년이 훗날 로마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할 수 있는지 줄기차게 떠들었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안토니우스의 미래를 쿠리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역사에 의하면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사후 로마의 권력을 쥐는 세 명 중 한 명이 된다.

  옥타비우누스, 레피두스와 함께 2차 삼두정치를 구성해 로마에 한차례 피바람을 불러오고, 나중에는 옥타비아누스와 로마를 양분하는 위치까지 올라간다.

  그 유명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관계를 맺고 옥타비아누스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이게 오히려 패착이 되어 몰락했다.

  안토니우스는 역사에 남을 대전략가나 정치력이 탁월하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용맹하고 전술적 지휘능력은 탁월했으나 황제의 자질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지휘관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인자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릇이라는 것도 마르쿠스에게는 오히려 딱 좋게 느껴졌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마르쿠스는 쿠리오에게 안토니우스를 만나보겠다고 밝혔다.

  크게 반색한 쿠리오는 함께 온 자신의 노예에게 뭐라 뭐라 지시를 했다.

  노예가 재빠르게 밖으로 달려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조금 전 사라진 노예가 풍채 좋은 사내와 함께 돌아왔다.

  이렇게나 빨리 온 것을 보니 저택 밖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평민 귀족인 안토니우스가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쿠리오에게서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토니우스라고 합니다."

  마르쿠스가 자리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선이 굵은 인상, 힘이 넘치는 눈동자, 강인함이 물씬 풍기는 첫인상이었다.

  "반갑군. 내가 마르쿠스 크라수스일세."

  마르쿠스는 잔을 한잔 더 가지고 오라 한 뒤 직접 희석한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자리에 앉은 안토니우스가 공손하게 잔을 받았다.

  도피성 유학을 후원해준다는 사람 앞에서 뻣뻣한 태도를 보일 만큼 예의가 없는 이는 아니었다.

  안토니우스는 포도주를 마시기 전 일단 감사 인사부터 했다.

  "염치없는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수한 인재를 후원하는 건 로마 귀족의 의무나 다름없지. 너무 마음 쓰지 말게. 그리고 쿠리오의 절친한 벗이라면 나에게도 남이 아니니 너무 부담 갖지도 말고."

  마르쿠스는 은근슬쩍 쿠리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예상대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쿠리오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르쿠스 님 덕분에 한숨 돌렸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그랬으면···친분이 있는 다른 분께 부탁했겠지요. 폼페이우스 님이라거나 키케로 님이라거나."

  "그런데 자네도 빚이 꽤 많다면서 친구 걱정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원한다면 수익이 나고 있는 사업에 참여를 시켜줄 수도 있는데."

  "아, 아니 괜찮습니다. 전 채무변제는 생각해둔 바가 있는지라······."

  쿠리오가 모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사실 쿠리오의 빚은 조금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동 나잇대의 카이사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엄청난 채무를 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어딘가 믿을 구석이 있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쿠리오의 이후 행보를 아는 마르쿠스는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쿠리오의 배짱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저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마르쿠스는 짐짓 모르는 척 고개를 까딱이고는 다시 안토니우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안토니우스, 자네는 그리스로 유학을 갈 계획이라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울 생각인가?"

  "지금은 일단 수사학을 배우려고 합니다."

  "수사학? 정치 쪽으로 나갈 생각인가 보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로마에서 계속 있기 힘들어져서 그리스로 가는 거라······."

  안토니우스는 솔직하게 자신의 현 상태를 실토했다.

  허세를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마르쿠스는 안토니우스에게 딱 맞는 길을 추천해주기로 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자네 같은 인재가 따분하게 그리스에서 수사학이나 배우고 있어서야 쓰겠나. 사람은 누구나 잘 맞고, 잘 맞지 않는 분야가 있네. 나도 제법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자네는 토가를 입은 모습보다는 갑옷을 입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아. 군대에서 경험을 쌓아볼 생각은 없나?"

  "군대라···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군대에 연줄이 별로 없어서 일단 그리스에서 기반을 좀 닦고 소아시아 군대에 지원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굳이 그렇게 돌아갈 필요가 있나. 나도 폼페이우스 님의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동방에 남아있는 군단장들과는 꽤 친분이 있네. 다마스쿠스에 가비니우스라는 지휘관이 있는데 그분에게 소개장을 써줄 테니 들고 가게나. 즉시 기병 장교로 삼아서 경험을 쌓게 해줄 걸세. 채무도 적당히 감면될 수 있도록 내가 힘을 써보지."

  "저, 정말입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야······."

  안토니우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사실 그 역시 자신이 수사학 같은 것에 별 재능이 없다는 건 잘 알았다.

  따분하게 유학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군대에서 경험을 쌓으며 군공도 올리는 게 백배는 더 취향에 맞았다.

  동방이 로마의 손에 들어오기는 했어도 분쟁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유대와 이집트 근방에서는 아직도 크고 작은 다툼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전 경험을 쌓기에는 최적의 근무지였다.

  믿기지 않는 기회를 받아든 안토니우스는 문득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쿠리오의 부탁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정도로 호의를 베풀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안토니우스를 속인다고 해도 마르쿠스에게는 아무런 득이 될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안토니우스가 의심하는 느낌이 풍기지 않도록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어디를 보고 이런 후원을 해주시는지···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투자라고 생각하게. 원로원에 들어간 뒤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난 여전히 상인에 가까운 시선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든.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 나는 사람을 보는 안목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네. 내가 볼 때 자네는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은혜를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 놓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판단일세."

  "하지만 제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내 안목이 나빴던 거라고 깔끔하게 인정하고 넘어가야지. 대신 나도 자네에게 바라는 게 한 가지 있네. 나중에 자네의 힘이 필요하게 되면 연락을 할 테니 내 부름을 거절해서는 안 되네. 물론 평생 내 하수인으로 살라는 건 아니야. 정말로 필요할 때 한 번이면 충분해. 그 정도면 납득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일 초의 고민도 없이 즉각적인 대답이 따라왔다.

  안토니우스로서는 이렇게 조건을 걸어주는 게 오히려 훨씬 덜 불안했다.

  이유를 모르는 호의만큼 찝찝한 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자주 봐왔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마르쿠스는 안토니우스의 이런 조심성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호쾌하고 시원시원하면서도 위기를 감지하는 동물적인 감각을 갖춘 자다.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에게 미치지는 못해도, 아니 두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적합한 인재였다.

  포도주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는 마르쿠스의 얼굴 아래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 안에서 은은히 퍼져 나가는 미소는 쿠리오와 안토니우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

  안토니우스가 동방으로 떠나고, 클로디우스가 연일 원로원을 규탄하는 등 소소한 움직임은 있었으나 큰 흐름에 변화는 없었다.

  클로디우스는 끊임없이 원로원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결정적인 선은 넘지 않았다.

  좌불안석이던 키케로도 안정을 되찾았다.

  시간이 흘러 9월이 가까워지자 로마의 온 신경은 곧 있을 폼페이우스의 개선식에 쏠렸다.

  이때만큼은 원로원과 클로디우스도 신경전을 벌이지 않았다.

  로마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대규모로 개최될 개선식에 시내 전체가 흥분에 휩싸였다.

  모두가 하루빨리 개선식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반면 마르쿠스는 전혀 다른 의미로 초조해하는 중이었다.

  대다수의 로마 시민들에게 9월은 폼페이우스의 개선식을 의미했지만, 마르쿠스에게는 아니었다.

  율리아의 출산이 9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8월이 넘어가자 마르쿠스는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역사에서 율리아가 산고로 죽기는 해도 준비를 철저히 하면 괜찮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율리아가 배가 부를 시기가 되자 주변에서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같은 임산부인 셀리니가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꼈다.

  율리아가 배가 부르는 속도가 묘하게 더 빠른 것 같다는 말이 들렸다.

  처음에는 그냥 괜한 느낌이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확실히 육안으로도 뭔가가 다르다는 게 보였다.

  한 달가량 빨리 임신을 한 걸로 예상되는 셀리니와 율리아의 배가 거의 비슷하게 불러온 것이다.

  도출되는 답은 딱 한 가지였다.

  "아무래도 쌍둥이를 임신하신 것 같습니다."

  의사의 진단이 떨어지자 마르쿠스의 걱정은 문자 그대로 두 배가 되어버렸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낳는 걸 율리아가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결국 마르쿠스는 2개월마다 출산과 산모의 건강 관리법에 관한 지식을 얻어 율리아에게 알려주었다.

  이 당시에는 잘못된 민간요법 같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르쿠스가 살펴야 했다.

  "율리아,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는 특히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음식도 더 많이 먹는 게 좋대. 그리고 엽산과 철분···아니, 어차피 뭔지 모르겠구나. 하여튼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든 과일을 먹어야 해. 그리고 적정 수준의 활동량을 유지해야 하니 매일 간단한 산책을 하고 또······."

  이 외에도 위생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율리아가 쓰는 모든 물건은 펄펄 끓는 물과 비누로 소독했다.

  쌍둥이는 조산할 확률도 높다고 해 8월부터는 의사와 산파들을 아예 저택에 상주시켰다.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놨는데도 9월이 되자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곧 있으면 개최될 개선식에 후끈 달아오른 거리의 열기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9월 초의 로마는 맹렬한 무더위가 살짝 꺾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더운 날씨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기다렸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찾아왔다.

  율리아가 산통을 겪기 시작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산파들은 곧바로 그녀를 침실로 데려갔다.

  "······."

  마르쿠스는 원로원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침실 앞의 아트리움을 우왕좌왕 돌아다녔다.

  "괜찮을 겁니다. 도련님, 셀리니도 저번 달에 무사히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까."

  옆을 지키고 있던 스파르타쿠스가 위로를 건넸지만, 마르쿠스는 저번 달 그가 보였던 추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는 나보다 더 심하게 초조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그거야 뭐······."

  "게다가 율리아는 쌍둥이를 출산하는 거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마르쿠스는 불안, 초조, 일말의 무력감이 뒤섞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다나에가 수건을 가져와 내밀었다.

  "도련님, 땀을 너무 심하게 흘리고 계세요."

  "아, 그래?"

  자신이 땀범벅이 됐다는 자각조차 없던 마르쿠스가 수건을 받아들고 대충 얼굴을 닦았다.

  "저번 달에도 스파르타쿠스 님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여기서 안절부절못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기다리더라도 일단 조금 쉬시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아, 그래. 그렇지. 그럼 조금 쉬면서 기다릴까?"

  다나에의 충고를 받아들인 마르쿠스가 몸을 막 돌리려 했을 때였다.

  침실 쪽에서 들려온 아기의 울음소리에 마르쿠스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태, 태어났나?"

  만면에 화색을 띠며 반사적으로 침실로 가려는 그의 옷자락을 다나에가 살짝 잡았다.

  "도련님, 아직 출산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쌍둥이니까······."

  그래도 한 명이라도 무사히 분만했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이긴 해도 긴장이 누그러졌다.

  보통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나오면 다른 한 명의 분만은 빠르게 진행된다.

  짧으면 몇 분 안에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에라도 침실에 들어가 아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누르며 아트리움을 빙빙 도는 마르쿠스의 거동은 두 번째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됐다.

  분만이 끝난 뒤에도 마르쿠스는 바로 침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의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안으로 들어선 마르쿠스의 눈에 누워있는 율리아가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하루 만에 이 세상의 모든 고초를 다 겪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핼쑥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가장 눈부신 미소가 입가에 떠올라 있었다.

  "율리아! 몸은 어때? 괜찮아?"

  "마르쿠스 님···몰골이 말이 아니시네요."

  땀으로 흠뻑 젖은 율리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그 정도의 기력이라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마르쿠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역사와는 다르다.

  율리아도 아이도 무사했다.

  그제야 냉정하게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된 마르쿠스는 산파가 안고 있는 아기에 시선을 주었다.

  "저 아이들이······?"

  "네. 제가 낳은, 우리 두 사람의 아이에요."

  "내가 정말로 아버지가 된 건가······."

  마르쿠스가 다가가자 산파가 아이들의 얼굴이 잘 보이게끔 살짝 팔을 앞으로 향했다.

  "경하드립니다. 두 분 모두 굉장히 건강하세요. 그리고 놀랍게도 쌍둥이인데도 성별이 다르답니다. 처음으로 태어난 쪽이 여자아이, 그다음에 태어난 쪽이 남자아이였어요. 저도 지금까지 굉장히 많이 애를 받아봤지만 성별이 다른 경우는 한 손으로 꼽는답니다."

  "이란성 쌍둥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과에 마르쿠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 둘, 아들 둘의 경우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딸, 아들이 모두 생길 줄은 몰랐다.

  마르쿠스는 몸과 손을 깨끗하게 씻고 산파에게서 딸을 받아 안았다.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아들과 딸이 모두 생겼으니 앞으로의 후계구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품에 안겨 있는 아이와 산파의 품에서 눈을 감고 있는 다른 한 명의 아이가 사랑스러울 뿐이다.

  특히 품에 안고 있는 딸아이는 잘못을 하더라도 엄하게 혼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딸바보가 되는 건가?'

  자신이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줄 몰랐던 마르쿠스는 피식 웃으며 아이를 다시 산파에게 건넸다.

  의사는 율리아에게 하루 동안 절대안정을 취하라고 당부했다.

  혹시라도 몸을 일으킬 일이 있다면 반드시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일렀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마르쿠스와 율리아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쿠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로 더 고생한 아내에게 아낌없이 사랑과 감사의 말을 속삭였다.

  내일부터는 다시 평상시의 그로 돌아가겠지만 오늘만큼은 진하게 밀려오는 감정의 여운에 취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결국 마르쿠스는 의사가 그만 물러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 자신의 두 아이와 율리아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72. 태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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