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 삼두정치 (75/326)

  < 74. 삼두정치 >

  카이사르는 총독 임기가 끝나자마자 배를 구해 로마로 돌아왔다.

  그가 오스티아 항에 내려서 로마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은 마르쿠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폼페이우스와 원로원도 카이사르의 도착을 알게 됐다.

  원로원에서 카토의 지긋지긋한 장광설을 듣고 있던 폼페이우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카토의 연설을 자장가 삼아서 졸고 있던 의원들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아아, 미안하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희극이 막을 내릴 때가 됐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실례를 저질렀군."

  기원전 60년의 집정관직을 맡은 아프라니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마그누스?"

  "카이사르는 개선식을 열기에 합당한 공을 세웠소. 공을 세운 지휘관의 개선식 요구에 답신을 줘야하는 것은 원로원의 의무요. 지금까지처럼 계속 시간을 끌 수 없다는 말이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시간을 끈 적이 없습니다."

  "하!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 내 두고 보겠소!"

  폼페이우스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그는 나가기 직전 마르쿠스가 있는 곳을 힐끗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순간 허공에서 마주쳤지만, 그 사실을 깨달은 의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폼페이우스가 사라지자 태연한 척하고 있던 의원들이 웅성거리며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이번 집정관 선거의 유력 후보인 비불루스가 가장 먼저 발언을 요청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 한 명에게 원로원이 이 정도로 과민반응을 해야 합니까? 그는 폼페이우스가 아닙니다."

  "폼페이우스와는 다르니까 더 위험한 겁니다."

  카토가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비불루스, 카이사르가 지금까지 원로원에서 했던 말들을 떠올려보세요.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을 무시하기는 했어도 타도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공존이 가능한 겁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지금까지 줄곧 원로원의 정당성과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 자는 폼페이우스와는 다른 자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장 민회에서 광인처럼 날뛰고 있는 클로디우스를 떠올려 보세요. 그만큼 원로원에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짜증을 일으키는 것 정도밖에 없지 않습니까. 폼페이우스 정도의 영향력과 실력을 갖춘 자라면 몰라도 카이사르 정도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조금······."

  다수의 의원들 사이에서 동감한다는 말이 솟아나왔다.

  카이사르를 심각한 위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비록 민중파의 수장으로 여겨지고 있고, 반원로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게 정말로 위협적인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엄청난 액수의 빚을 져서 속주 총독으로 떠나지도 못할 뻔했던 게 바로 1년 전의 일이었다.

  의원들에게 인식되는 카이사르의 이미지는 위험한 반동분자보다는 거액의 빚을 진 플레이보이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는 아직 집정관을 역임한 경험조차 없었다.

  이런 젊은 정치가에게 원로원 전체가 휘둘린다는 인상을 주면 의원들의 위상이 내려간다.

  특히 나이가 많은 원로들일수록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카이사르가 괘씸한 건 분명 사실이지.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건 동감하네. 하지만 그를 폼페이우스와 동급의 상대로 대우하는 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군."

  "맞습니다. 신중한 건 좋지만 너무 지나쳤다가는 세간에 원로원이 겁쟁이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을 너무 낙관하는 중진들의 반응에 카토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무른 대처를 했다가 몇 번이나 실패를 하지 않았습니까. 카이사르를 막아야 한다, 막아야 한다 제가 그렇게나 노래를 불렀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카이사르가 최고 사제가 되는 것도 막지 못했고, 법무관에도 무난히 당선됐습니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속주에서 개선식을 할 수 있는 공까지 세우지 않았습니까!"

  로마 최고 명문가인 메텔루스 씨족의 스키피오가 퉁명스럽게 혀를 찼다.

  "우리가 막지 못한 건 아니지. 카이사르를 견제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카토 자네가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우린 아직 제대로 나서지도 않았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나서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를 너무 얕보고 있는 겁니다. 비교 대상이 폼페이우스니 초라해 보이는 거지 카이사르와 동년배 중에 그와 비슷한 출세가도를 달리는 자가 있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카토는 장광설을 할 때의 과장된 말투가 아닌 간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지금이야 폼페이우스보다 다루기 쉽다고 느껴지겠지만, 이번에 그가 집정관에 취임하고 5년이 더 지난다면? 카이사르를 추종하는 민중파의 젊은이들이 대거 원로원으로 들어온 뒤에는? 그때 가서 진즉 밟아버렸어야 했다고 후회해도 늦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번만큼은 제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원로원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카토의 필사적인 호소에 중진들의 마음도 흔들렸다.

  폼페이우스를 견제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카토였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의미에서 원로원은 이번에는 카토의 의견을 채택하는 걸로 합의했다.

  물론 모두가 카토의 의견에 동조하는 건 아니었다.

  키케로는 내심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원로원의 현 흐름에 불만이 많았다.

  폼페이우스를 견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그래서 키케로도 그것까지는 동의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에 이어서 카이사르까지 연달아 찍어누르는 데에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온갖 탈법과 특례의 온상이었던 폼페이우스와 달리 카이사르는 아직 법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까닭이다.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건 이번 일에서 고려할 사안이 아니었다. 착실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이를 무슨 근거로 규제한다는 말인가.

  법의 인간인 키케로는 제도를 이렇게 작위적으로 이용하는 걸 긍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세가 정해졌는데 반대를 할 배짱은 없었다.

  아무리 명망이 높다고 해도 그는 본질적으로 신참자인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

  기득권층인 옵티마테스 파벌과 척을 지면 간신히 쌓아온 기반이 한순간에 붕괴하게 된다.

  카이사르를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릎 쓸 의리는 없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들지 않는 것이다.

  은근슬쩍 마르쿠스의 옆으로 다가온 그는 소심하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자네는 지금 논의가 흘러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카이사르는 자네의 장인이 아닌가. 장인이 부당하게 탄압 당하고 있다고 여길 법도 한데 말이지."

  마르쿠스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키케로를 돌아보았다.

  "장인어른께서도 원로원에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계시니까요. 원로원이 이럴 거라는 건 예상하고 계실 겁니다."

  "호오, 돌파구가 있다는 것인가?"

  "글쎄요···장인어른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조금 동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저에게 말씀해주시지는 않더군요."

  마르쿠스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까지는 직접 들은 게 아니었다.

  정치적인 부분에서 동감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는 다른 의미로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후환의 싹이 될 요소를 어설프게 남겨두는 경향이 있었다.

  마르쿠스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자신을 적이라고 인식할 여지조차 줄 마음이 없었다.

  만약 그래야 할 때가 온다면 문제를 일으킬 틈조차 주지 않고 치워버릴 것이다.

  물론 키케로는 마르쿠스가 한 말의 진의를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열렬한 공화주의자 마르쿠스가 반원로원파인 카이사르와 맞지 않는다고만 여겼다.

  "하긴, 자네와 카이사르는 정치적으로는 상극이니까.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와 정치적으로 대립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자네도 심경이 복잡하겠군."

  "그런 일이 없도록 열심히 중재를 해봐야죠. 카이사르 님도 카토 님의 걱정처럼 원로원을 아예 배제하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 생각도 그러네. 카토는 카이사르에 대한 사적인 감정으로 너무 과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카이사르가 원로원 체제를 비판하는 건 사실이지만 아예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거든."

  원로원 중심의 과두정은 로마의 영토가 이탈리아 반도 내에 국한되어 있을 때는 극한의 효율을 자랑했다.

  그러나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의 패자가 된 뒤에는 영토가 너무 넓어져 버렸다.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 거기에 그리스까지 로마의 패권 아래에 들어오자 서서히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제국을 통치하는 데는 그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다.

  키케로 같은 사람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의 원로원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그 점을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키케로는 원로원 중심의 과두정이야말로 로마의 근본이라 생각했다.

  공화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개선해 대제국에 맞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게 그의 목표였다.

  이 점을 잘 설명한다면 카이사르와도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카토 같은 원리원칙 주의자는 기함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차이점이야 맞춰나가면 그만이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키케로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아니, 억지로 보지 못하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단순히 공화정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지탱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병폐가 쌓여가고 있는 로마의 현실을.

  ※※※※

  폼페이우스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카이사르의 귀환 소식을 들은 그는 자연스레 그와 협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폼페이우스는 결국 자존심을 접고 마르쿠스에게 서신을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히 요약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의 사위인 자네가 중간에 다리를 놔주었으면 하네. 물론 원로원 의원들에게는 철저하게 비밀로.>

  다급한 심정이 절절 느껴지는 편지에 마르쿠스는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주었다.

  시기와 장소는 마르쿠스가 정했다.

  카이사르는 세르비우스 성벽 안쪽으로는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테베레 강 동쪽 마르스 평원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개선식 행렬은 이 마르스 평원에서 출발하는지라 카이사르도 현재 이 근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로 잡았다.

  곧바로 회합을 가지지 않은 이유는 원로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카토는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에게 접촉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중이었다.

  원로원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위장공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르쿠스는 일단 폼페이우스에게 자신의 계획에 확실히 따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가 쓴맛을 본 폼페이우스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다음부터는 계획대로 흘러갔다.

  폼페이우스는 평소처럼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는 척했다.

  원로원에서 카이사르를 옹호하는 발언을 몇 번 했으나 당연하게도 무시당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에게도 폼페이우스와 똑같은 방침으로 나가기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의 개선식은 8월의 다섯 번째 날, 그러니까 8월의 노나이로 확정하겠습니다. 그때는 이미 집정관 선거도 끝났을 테니 모두가 흥겹게 개선식을 즐길 수 있겠지요. 혹시 반대하는 분 계십니까?"

  아프라니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폼페이우스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개선식을 8월로 잡는다면 카이사르는 집정관 후보로 등록할 수 없지 않소! 이건 원로원의 횡포요! 개선식을 8월에 치를 거라면 카이사르의 부재중 후보자 등록을 받아줘야 하오."

  아프라니우스와 카토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의 편을 들고 나설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아프라니우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준비된 답변을 들려주었다.

  "안타깝지만 저번에 폼페이우스 님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여기서 카이사르만 특별 대우할 수는 없지요.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원로원에 대한 신뢰가 붕괴할 테니까요."

  "호오, 아직 더 무너질 신뢰가 있었다는 게 오히려 놀랍구려."

  폼페이우스의 비아냥에도 아프라니우스는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로원의 노림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내년에도 카이사르의 집정관 후보 등록을 받아줄 계획이 없었다.

  히스파니아에서 속주민들을 매수해 선거 전에 카이사르를 부정혐의로 고발할 계획이었다.

  물론 재판은 무죄가 될 테지만 피고인 신분으로는 집정관 후보가 될 수 없다.

  이 악랄한 계획을 귀띔해준 사람은 놀랍게도 마르쿠스였다.

  그는 2년 연속으로 집정관 선거에 나가지 못한다면 카이사르도 원로원에 대항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카이사르가 굽히고 들어온다면 원로원도 관대하게 그를 받아줄 마음은 있었다.

  마르쿠스는 카이사르를 길들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동시에 마르쿠스를 향한 원로원의 신임도 한층 더 두터워졌다.

  제아무리 장인이라도 정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표명한 것이다.

  원로들은 마르쿠스야말로 공화정의 가치를 지켜나갈 희망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크라수스 가문이 카이사르를 도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카이사르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자는 폼페이우스밖에 남지 않았다.

  회의장의 모두가 그렇게 판단했다.

  그 폼페이우스에게도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일주일가량 카이사르를 줄기차게 옹호해보았으나 원로원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런 비열한 정치판에는 더 볼 일이 없다며 로마를 떠났다.

  폼페이우스가 알바에 있는 별장으로 들어가 버리자 원로원은 자신들의 완전승리를 선언했다.

  의심이 많은 카토는 보름가량을 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동향을 감시했다.

  그래도 의심스러운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연합 가능성은 적어도 지금은 없어 보입니다."

  카토조차 이제는 상황을 낙관했다.

  집정관 후보 등록일은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모두가 카이사르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안심하는 찰나, 마르쿠스는 때가 왔다고 확신했다.

  그의 연락을 받은 폼페이우스가 새벽에 몰래 별장에서 출발했다.

  마르쿠스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마르스 평원에 당도했다.

  카이사르는 대다수의 파트로네스가 그렇듯 아침마다 수많은 클리엔테스들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폼페이우스와 마르쿠스는 이 클리엔테스들의 틈새에 섞여 자연스럽게 카이사르와 접촉했다.

  "마그누스, 어서 오십시오. 마르쿠스도 반갑네. 내 귀여운 손주들은 잘 있나?"

  "그럼요. 이제 몸을 뒤집기도 할 정도로 컸답니다. 율리아는 감격해서 거의 울려고 하더군요."

  "빨리 로마에 돌아가야 나도 그 귀여운 아이들을 볼 텐데. 트라야누스와 리키니아라고 했지?"

  "딸아이는 소피아라는 애칭을 따로 지어줬습니다. 로마는 여자 이름을 너무 대충 짓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르쿠스는 첫째 딸의 이름을 리키니아 크라시스 소피아라고 지었다.

  로마의 여성 이름은 씨족의 이름 뒤에 ia를 붙여서 적당히 짓는 경향이 강했다.

  리키니우스 씨족이면 리키니아, 율리우스 씨족이면 율리아, 코르넬리우스 씨족이면 코르넬리아가 되는 식이다.

  마르쿠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이름을 그렇게 대충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라는 애칭을 따로 붙여준 것이다.

  아들의 이름은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룩했던 황제 트라야누스에게서 따왔다.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를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어도 메소포타미아를 합병하고 수도까지 점령한 눈부신 공을 세운 황제였다.

  동방에서 전사했던 아버지와 동생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물론 그런 속사정을 아는 건 마르쿠스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잠깐 동안 손자와 손녀 이야기로 분위기를 푼 카이사르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모두 알겠지만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원로원은 이번에도 치졸하게 개선식과 집정관 후보 등록 중 하나만을 고르라는 양자택일을 요구해왔죠. 물론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원로원은 자네가 집정관을 포기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더군. 뭐, 당연한 일이지. 세상 모든 로마인이 그렇게 할 테니까. 자네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솔직히 나도 자네의 결단이 놀랍네.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집정관 선거는 매년 열리지만 개선식은 평생 한 번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카이사르에게는 이번이 첫 개선식이었다.

  원로원은 물론이고 카이사르를 지지하는 민중들 역시 그가 개선식을 택하리라고 예상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마르쿠스와 이미 서신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마르쿠스는 제가 이번에 개선식을 포기한다는 걸 전제로 계획을 세웠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원로원은 제가 내년에 집정관 후보 등록을 할 거라고 예상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의표를 찌를 기회는 지금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선식을 포기하다니···너무나 뼈아픈 희생을 치르는 걸세."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다란 공을 세워 개선식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저는 당장 내일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가 집정관 후보 등록을 할 겁니다. 마르쿠스, 내가 부탁한 것들은 준비됐나?"

  "네. 백마와 은으로 만든 시민관을 가지고 왔습니다."

  개선장군은 보통 백마를 타고 개선식을 거행한다, 로마로 들어갈 때 탈 말로 굳이 백마를 고집한 것은 카이사르도 아쉬움을 다 떨쳐내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웃음기가 서린 마르쿠스의 눈빛을 본 카이사르가 헛기침을 하며 묻지도 않은 말에 변명했다.

  "시민들이 내가 부당하게 개선식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것뿐이네."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크흠, 어쨌든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다는 것만으로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네. 원로원은 비불루스를 강력하게 밀고 있으니 아마 집정관은 나와 비불루스 이렇게 두 사람이 될 거야. 마그누스, 비불루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계십니까?"

  비불루스의 이름을 들은 폼페이우스가 표정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원로원의 충실한 앞잡이가 아닌가. 내가 제안한 모든 요구에 반대표를 던진 놈이라네. 그런 자와 함께 집정관이 된다면 자네의 행동도 크게 제약을 받을 걸세. 아마 자네가 발의한 모든 법안에 반대표를 던질 걸?"

  "충분히 예상이 갑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야지.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 셋이 힘을 합칠 이유가 없으니까."

  폼페이우스가 마르쿠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크라수스는 음지에서 우리에게 전폭적인 협력을 건넨다고 기대하면 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원로원의 주의를 끌기 위해 대규모 연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폼페이우스 님과 아버지는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니 앞으로도 회의에는 제가 대리인으로 참가할 겁니다. 제 뜻이 곧 크라수스 가문의 뜻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훨씬 더 마음이 편하다네. 좋아. 그러면 이제 가장 중요한 걸 논의해야지. 이 동맹으로 각자가 원하는 게 있을게 아닌가. 내 바람부터 말하자면 나를 위해 싸운 병사들에게 토지를 얻어주는 것일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로원 놈들에게 본때를 한 번 보여줬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군."

  카이사르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갈리아 속주입니다. 그리고 최소 3년 이상은 총독의 지위를 보장받으려 합니다."

  "갈리아에서 3년이나 있겠다고? 설마 자네······."

  "이번 개선식을 포기한 보상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자네 좋을 대로 하게."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포부를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갈리아 야만인들과 아무리 드잡이질을 벌여도 폼페이우스가 세운 위대한 전공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르쿠스의 차례가 됐다.

  "우선 저희 가문을 따르는 기사계급의 이득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최근 그들에게 약간 희생을 강요한 부분이 있어서요. 물론 보상을 해주긴 했지만, 보상을 넘는 이득을 안겨줘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원하는 게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과 한 번씩 시선을 마주치고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로마의 일반 행정을 관리할 수 있는 안찰관에 취임해야겠습니다."

  < 74. 삼두정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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