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삼두정치 >
75. 삼두정치
"안찰관에 취임하고 싶다고?"
폼페이우스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전에 내가 나이 제한을 5년 낮췄어도 안찰관이 되려면 30세가 되어야 할 텐데? 물론 그런 규정이야 휴짓조각에 불과하지만 자네는 그런 법을 굉장히 잘 지켜왔지 않나."
"예. 그러니 합법적으로 안찰관이 될 수 있도록 나이 제한을 조정했으면 합니다. 카이사르 님이 집정관에 취임하시면 안찰관의 나이 제한을 27살 정도로 낮춰주시길 바랍니다."
카이사르가 팔짱을 낀 채 마르쿠스의 의도를 가늠해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나이 제한을 낮추는 법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자네가 바로 안찰관이 되면 곱게 보지 않는 이가 나오지 않겠나?"
"당연히 그렇겠죠. 그러니까 저는 스스로 입후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카이사르 님께서 평민 중 적당한 사람을 골라 안찰관으로 밀어주십시오. 그러면 원로원에서도 당연히 카이사르 님이 밀어주는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조건에 맞는 사람을 물색할 겁니다."
"당연히 자네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전 어디까지나 원로원의 제안을 받아서 안찰관이 되는 그림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겠죠."
언제나처럼 용의주도한 계획이다.
카이사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솔직히 자네가 그렇게까지 조심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 이미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되는 충분할 배경을 갖추지 않았나? 거기에 나와 마그누스 님이 힘을 보태주면 원로원의 눈치를 지금처럼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천성적으로 조심성이 많아서요.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는 부분이 아닙니다."
"뭐, 그게 꼭 나쁜 건 아니겠지. 적어도 율리아는 자네가 과하게 걱정을 해주는 걸 은근히 즐기는 모양이니까. 그래도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할 때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법이라네. 너무 과한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때를 놓칠 수도 있거든."
"명심하겠습니다."
마르쿠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너무 자신감 있게 치고 나가다가 누구처럼 암살당하는 일은 피하려고 그러는 거죠, 이 양반아.' 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는데."
대화를 듣고 있던 폼페이우스가 불쑥 끼어들며 미간을 좁혔다.
"어째서 굳이 안찰관 같은 자리에 집착하는 건가? 기왕 할 거면 법무관 정도를 노려야지. 자네가 딱히 인지도와 지지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안찰관을 역임할 이유가 있을까?"
전형적인 로마 귀족의 인식이 드러나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오히려 안심했다.
폼페이우스가 이렇게 느낀다면 원로원의 다른 의원들도 똑같은 생각을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안찰관은 로마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는 게 주 업무지만, 실제 인식은 조금 달랐다.
시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안찰관의 일은 곡물의 배급과 각종 오락 행사의 주최 여부였다.
아무리 시설의 보수나 교통정리를 잘해본들 저 두 개가 받쳐주지 않으면 냉담한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거액의 사비를 들여 곡물을 뿌리거나 검투사 시합을 뻥뻥 개최하면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다수 정치인은 안찰관을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키케로도 그랬고, 카이사르도 그런 식으로 안찰관직을 수행했다.
반면 이미 충분한 지지도를 쌓은 사람들은 안찰관직에 연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마르쿠스는 누가 봐도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민중들은 세제 개혁과 금융 제도 개편을 끌어낸 마르쿠스에게 언제든 표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재무관 선거에서 마르쿠스는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표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굳이 안찰관직에 나가 사비를 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원로분들도 폼페이우스 님처럼 생각하시겠죠. 그러니 저에게 안찰관직에 나가보라고 요구하면서도 내심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도 그런 걸로 빚을 지는 기분까지는 느낄 것 같지 않은데."
"예. 어디까지나 핵심은 제가 굳이 욕심을 부려가며 노릴 가치가 없는 관직을 맡는다는 인상을 주는 겁니다. 하지만 제게 안찰관은 그리 쓸모없는 관직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유희 사업보다는 수만 배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예정이니까요."
"안찰관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 해봐야 공공시설 정비밖에 더 있겠나. 그런 일은 별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티도 나지 않을 텐데···자네도 잘 알겠지만 민중들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에 열광하는 법이라네."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민중들이 그런 속성을 가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제가 안찰관이 돼서 할 일은 로마시민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크게 만족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자네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군."
"그건 차후의 즐거움으로 미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다 말해버리면 맥이 빠지니까요."
"뭐,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가 하는 일이니 무의미하지는 않겠지. 그럼 이제 서로의 이해관계도 모두 부합하는 것 같으니 우리의 연합은 이뤄졌다고 보면 되는 것인가?"
마르쿠스는 시원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카이사르가 박수를 치며 연합의 결성을 자축했다.
"기사 계급을 대표하는 크라수스, 민중파를 대표하는 저 카이사르, 군사를 상징하는 폼페이우스. 이렇게 셋이 연합을 했으니 상대가 원로원이라고 해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각 계층을 대표하는 세 거두가 결집했으니 이 동맹을 삼두연합이라고 칭하도록 하죠."
"삼두연합이라 마음에 드는 명칭이로군. 그걸로 하지."
"저도 이견 없습니다."
로마를 대표하는 세 실력자의 대화. 거기에서 탄생한 삼두정치라는 체제는 분명히 원로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원로원은 이 강고한 연합을 무너뜨릴 만한 힘이 부족했다.
무너뜨리기는커녕 연합의 결성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삼두정치의 탄생은 로마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질서의 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연합의 당사자인 폼페이우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걸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은 현재 로마에는 단둘밖에 없었다.
이 체제를 이용해 자신의 기반을 확실히 닦으려는 카이사르, 그리고 그보다 한 걸음 더 앞의 미래를 보고 있는 마르쿠스였다.
※※※※
모든 준비를 마친 카이사르는 동이 틀 무렵 백마를 타고 로마로 들어왔다.
그는 개선식을 치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듯 아주 천천히 포로 로마눔 광장으로 향했다.
로마의 공직 후보자로 입후보하는 사람들은 백악가루를 발라 희게 만든 '토가 칸디다'라는 의상을 입는다.
여기에 시민관을 쓰고 백마를 탄 카이사르의 모습은 로마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 클리엔테스들이 카이사르가 얼마나 억울하게 개선식 기회를 박탈당했는지 떠들고 다녔다.
카이사르가 개선식을 치를 거라고 기대하던 시민들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원로원이 치졸한 수를 부렸다는 걸 전해 들은 그들은 진심으로 분개했다.
딱히 공정과 정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믿어서는 아니었다.
개선식이 거행되지 않으면 개선장군이 뿌리는 은화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성난 군중들의 행렬을 몰고 위풍당당하게 광장에 도착했다.
선거 후보 등록을 담당하고 있던 아프라니우스는 카이사르를 발견함과 동시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헛것을 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그는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아프라니우스는 한참이나 더 눈을 껌뻑거린 뒤에야 눈앞의 사람이 카이사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카, 카이사르! 당신 미쳤소? 여기서 뭘 하는 거요! 개선장군은 신성 경계선을 넘어 성벽 내부로 들어오면 안 된단 말이오!"
호들갑을 떠는 아프라니우스와 달리 카이사르의 반응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원로원이 제 부재중 후보 등록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직접 신청하러 온 게 아니겠습니까. 빨리 등록절차나 끝내주시죠."
"아, 아니···아니, 아니, 아니. 자네 제정신이오? 집정관 후보로 등록하기 위해서 개선식을 포기했다고?"
"개선식을 포기했으니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거겠죠?"
"말도 안 돼······."
"당신이 놀라는 건 상관없는데 일단 제 후보 등록부터 마쳐주시지 않겠습니까?"
정신이 퍼뜩 든 아프라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요구를 거절할 핑계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반대를 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한 대처법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원로원의 그 누구도 카이사르가 개선식을 포기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아프라니우스에게 카이사르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집정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그, 그러니까 오늘 근무시간은······."
"최소 5시간은 더 남아 있겠지요."
"그...그렇지. 자네가 제출해야 할 서류가······."
"어제 전부 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도저히 거절할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달은 아프라니우스는 전략을 바꿨다.
그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카이사르의 귀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이요? 지금 집정관 선거에 나와 봤자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러는 거요. 지금이라면 무슨 착오가 있어서 그랬다는 걸로 수습이 가능하니 얼른 다시 마르스 평원으로 돌아가시오."
"착오 따윈 없었습니다. 전 후보로 등록하기 위해 개선식을 포기했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자네는 집정관이 돼도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다니까? 이번 선거에서 원로원측의 대표로 나올 인물은 비불루스라네. 그는 자네가 하는 모든 행동에 거부권을 행사할 거야."
"예, 뭐 그렇겠죠."
"그러니까 그냥 개선식을 거행하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출마하게. 자네는 아직 젊으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않나.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는 말일세."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후보등록을 포기하게 유도하려는 노림수였으나 카이사르는 한눈에 아프라니우스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너무나 얄팍한 수라 진지하게 반응해주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저는 후보등록을 한다고 했고, 당신은 그걸 받아들여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카이사르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클리엔테스들의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목격자들이 이토록 많으니 발뺌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카이사르가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는 건 이로써 기정사실이 됐다.
아프라니우스는 허겁지겁 자신의 수행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카토와 키케로, 그리고 비불루스와 크라수스를 당장 데려와. 만약 일이 바쁘다고 거절한다면 카이사르가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다고 말해주면 될 거다."
아프라니우스의 예상대로 수행원의 보고를 받은 의원들은 하는 일을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특히 카토는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프라니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 선거에 나온다니요!"
차기 집정관이 유력한 비불루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무슨 신종 농담 같은 겁니까? 어떻게 카이사르가 후보등록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프라니우스가 앙다문 이 사이로 짙은 한숨을 흘려냈다.
"일단 모두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크라수스와 함께 온 마르쿠스는 애써 태연하게 보이려는 표정을 가장한 채 자리에 풀썩 앉았다.
크라수스는 자못 놀랐다는 얼굴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카이사르는 마르스 평원에 있었을 텐데 어떻게 성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거요. 설마 그가 개선식을 포기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럼 그 외에 뭐가 있겠소이까. 카이사르가 오늘 자신의 클리엔테스를 잔뜩 이끌고 와서 정식으로 후보등록을 했소.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거요."
카토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래서 그걸 순순히 받아주신 겁니까? 당연히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어야지요."
"어떻게 거절을 한다는 말인가. 카이사르가 끌고 온 사람들만 해도 못 해도 백 명은 훌쩍 넘었네. 목격자가 그렇게 많은데 억지를 부려봐야 나만 망신당할 뿐인 상황이었어."
"···그렇군요. 그럼 카이사르 그자는 분명히 집정관께서 자신의 후보등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조성한 겁니다. 젠장! 그러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다르단 말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너무나도 안일했단 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나."
크라수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대체 어느 로마인이 매년 열리는 선거 따위를 위해 개선식을 포기하겠나. 자네는 이해할 수 있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네."
크라수스의 이 말은 연기가 아닌 순도 10할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마르쿠스를 제외한 모두가 진심으로 크라수스의 말에 동감했다.
키케로가 한 마디 감상을 툭 내뱉었다.
"카이사르는 우리와는, 아니 보통의 로마 사람과는 다른 구조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카토가 분개하며 쏘아붙였다. 그가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얼굴을 찌푸렸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그자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더 답답한 느낌이에요."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반응을 보이는 카토와는 달리 비불루스는 비교적 평온한 어조로 상황을 진단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원로원에서 확실하게 지원해준다면 제가 집정관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제가 카이사르가 어떤 황당한 법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전부 거부권을 행사하겠습니다. 이 전략으로 가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생각에 카토가 두통을 억누르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카이사르의 법안에 전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건 또다시 로마 정국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미 폼페이우스에게 비슷한 수를 써서 1년이 넘게 의정활동이 멈춘 상황이었다.
여기서 또 1년을 그렇게 끈다고 하면 민심에 얼마나 큰 악영향이 가겠는가.
그런 기본적인 고려도 없이 거부권을 남발하겠다는 비불루스의 말에 카토는 비판을 할 기력도 없어졌다.
이번 사안에 크게 관여할 생각이 없던 키케로는 히죽 웃으며 마르쿠스에게 속삭였다.
"자네의 노림수도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았군. 어쩌면 자네도 처음으로 실패라는 걸 경험해 볼지도 모르겠어."
"처음이라니요. 저는 그렇게까지 완벽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습니다."
"흠···내가 볼 땐 완벽 그 자체였던 걸로 보였네만. 아무튼 카이사르가 집정관이 된다고 해도 크게 뭔가를 할 수는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수치를 모르는 우리 비불루스가 자신의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면서까지 카이사르를 막아서겠다고 하니까."
"그야말로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전법이로군요."
키케로가 마르쿠스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거참 적절한 비유로군. 하지만 비불루스나 다른 의원들은 그런 자각조차 없을 거라는 게 문제일세. 뭐, 나는 카이사르 건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망할 거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자네도 똥물을 같이 뒤집어쓰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할 수만 있다면 나처럼 이번 일과는 살짝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
"소중한 충고 감사드립니다. 마음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키케로와 마르쿠스는 한 발짝 물러선 채로 카이사르를 막기 위한 열띤 토론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이거다 싶은 묘수는 나오지 않았다.
카토는 터무니없는 비불루스의 말에 속만 부글부글 끓이며 포도주를 연신 들이켰다.
기나긴 회의를 통해 그가 얻은 건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 몇 점이 다였다.
원로원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카이사르는 착실하게 자신의 노림수를 풀어나갔다.
그는 마르쿠스와의 약속을 굳이 집정관이 돼서 지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포섭한 호민관 바티니우스를 통해 민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마르쿠스의 바람대로 안찰관의 나이 제한을 현재의 30살에서 27살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시민들이 허락해줄 이유가 부족하니 카이사르는 그럴싸한 이유를 덧붙였다.
안찰관은 평민 둘, 귀족 둘을 선출하게 되어 있는데 평민에게 이 나이 제한은 너무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평민 안찰관은 평민의 권위를 돌보아야 하는데 30살이 넘을 때까지 순수한 평민으로 남아 있는 유력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 이미 원로원에 한 자리를 얻은 평민 귀족이 되어 있었다.
"술라는 이런 점을 노리고 나이 제한을 저렇게 엄격하게 만들어놓은 겁니다. 이건 전형적으로 귀족들에게만 유리한 제도입니다. 당장 제가 아는 젊은 청년 중에도 시민들에게 곡물과 축제를 선물하고 싶다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 원로원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안찰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티니우스의 선동에 시민들은 당연히 쌍수를 들고 찬성했다.
지금까지 클로디우스에게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원로원은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
바티니우스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마르쿠스는 클로디우스를 잠시 쉬게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공격적인 활동을 오래 하면 시민들이 피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클로디우스를 통해 안찰관직의 나이를 낮추지 않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로원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또다시 대책을 논의했다.
바티니우스가 카이사르의 앞잡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도 어렵지 않게 예측이 됐다.
원로원에서 카이사르 전문가로 통하는 카토가 이번에도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했다.
"카이사르는 집정관이 되면 민회를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고 이미 클로디우스와 바티니우스라는 두 호민관을 자신의 수족으로 삼았습니다. 거기에 자신을 추종하는 젊은 세력을 안찰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인기를 더욱 끌어모으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건 실로 위협적인 공격입니다."
"그럼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습니까?"
"법안이 민회에서 통과되었으니 이제 와서 저걸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카이사르가 내세우는 후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안찰관 후보를 내세우는 겁니다. 저쪽의 평민 안찰관 둘보다 이쪽의 귀족 안찰관 둘이 훨씬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면 시민들의 지지는 원로원을 향하지 않겠습니까."
"아, 저쪽의 활동이 초라해질 정도의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고, 곡물을 뿌리자는 거군요. 좋은 의견 같습니다. 다소 출혈 경쟁이 되긴 하겠지만······."
다소 나이가 든 의원들이 아직 안찰관직을 역임한 적이 없는 젊은 의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 의원들은 슬쩍 눈길을 피했다.
빚을 내서라도 하고 싶은 게 안찰관직이지만 이번에는 부담이 너무 강했다.
민중파와 대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자금이 소모되겠는가.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자 답답해진 건 중진 의원들이었다.
전직 집정관 실라누스의 한탄이 회의장을 울렸다.
"허허···원로원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거늘 어찌 나서는 청년이 없다는 말인가. 이다지도 기개가 부족해서야······."
대놓고 압박을 줘도 자원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원로원에서 돈을 지원해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번 안찰관은 독박을 쓰는 게 확정된 자리다.
당연히 중진 의원들도 본인들의 사비를 털어서 지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돈을 써서 행사를 개최하면 그 인기는 해당 안찰관이 가져간다.
자기 돈으로 남 좋은 일을 시키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서로 간의 이기심이 맞물리니 그저 어색한 침묵만이 회의장을 감쌌다.
후보등록일은 바로 내일이 마감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초조해진 의원들은 대놓고 마르쿠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구의 지원도 받을 필요가 없는 막대한 자금력을 갖췄고, 시민들의 인기도 높은 그가 나서준다면 걱정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간절한 시선을 느낀 마르쿠스가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로마의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안찰관의 나이 제한은 30살인데 저는 아직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번에 나이 제한을 낮춘다는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민회에서 억지를 부린 결과물이라······."
"억지든 뭐든 일단 통과되었으니 자네는 자격이 있는 걸세!"
"그럼, 그럼. 자네가 나가주기만 한다면야 감히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야말로 카이사르의 앞잡이일 걸세!"
마르쿠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옵티마테스의 중진들이 한마디씩 말을 늘어놓았다.
이미 분위기는 마르쿠스가 안찰관이 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의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직 부족한 몸이지만 원로원에서 제가 안찰관직을 수행하는 것을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임해 보겠습니다."
마르쿠스의 머리 위로 원로원 의원 전원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르쿠스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승리의 미소였다.
< 75. 삼두정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