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첫걸음 >
77
"우선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는 지금 분위기를 좀 냉각시킬 필요가 있겠지. 양측 진영의 호민관은 상대 진영을 향한 비방을 멈춰야 하네. 이대로 가면 어느 한 쪽이 피를 볼 가능성도 있어."
"그건 나도 동감하네. 요새 서로를 향한 비방이 조금씩 선을 넘고 있는 느낌이더군."
"그래. 그리고 안찰관을 이용한 선심성 공약 남발도 서로 자제하기로 협약을 맺었으면 하네. 만약 이 상태로 내년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하지 않나?"
키케로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번째 사항만큼은 그 역시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까닭이었다.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출혈경쟁은 양측 모두에게 이로울 게 없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로마의 건전성을 해치는 제 살 깎아 먹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특히 안찰관을 수행해야 하는 마르쿠스는 상당한 자금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키케로는 이번 기회에 마르쿠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생색을 낼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지금의 대화가 전부 사전에 논의된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적어도 두 가지 제안은 원로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거로 생각하네. 경쟁은 하더라도 일정 선은 지키면서 해야지. 그런데 다른 요구사항은 없나? 지금 들은 두 가지만으로는 조금 약한 것 같은데."
키케로에게서는 처음에 보였던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반쯤 넘어왔다고 확신한 카이사르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깃들었다.
아주 잠깐 마르쿠스와 시선을 교환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물론 있네.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중요한 합의가 되겠지. 자네에게도 분명 나쁘지 않은 제안일 거야."
키케로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살짝 앞으로 기울었다.
궁금함과 호기심으로 달아오른 그의 귓가에 카이사르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우선 양측 모두 받아들일 수 없게 일이 흘러간다고 해도 사적인 무력을 동원하는 건 금지하기로 하지.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시민들은 이 당연한 일이 지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 합의해야 한다는 사실이 실로 개탄스럽지만···이건 민중파와 귀족파만이 아니라 원로원 전체가 합의했으면 싶네."
키케로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간파한 카이사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에게도 동의를 받아야지. 민중파와 귀족파가 모두 합의를 한다면 그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민중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
"성난 지지자들이 가끔 폭력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수에 가깝지. 그 모든 걸 완벽히 제어하라는 말은 아닐세. 다만 앞서 말했듯 고의적으로 상대를 도발하는 행위는 하지 말자는 거지. 이것만 자제해도 폭력사태는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겠나?"
"그래, 그 말이 맞아."
원로원이 현재 가장 두려워하는 건 폼페이우스가 술라처럼 부하들을 소집해 로마를 무력으로 뒤엎는 것이었다.
카이사르도 원로원의 과격파가 돌발행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
키케로는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의 편에 완전히 붙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이 제안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마르쿠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모두에게 이득인 제안 같습니다. 무엇보다 원로원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원칙을 강조하면 불안해하는 시민들도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래. 확실히 지금 민심은 많이 불안정하니까······."
"원로원은 폼페이우스 님을 향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고, 카이사르 님은 원로원을 향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겠지요. 시민들은 피 튀기는 혈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안심할 수 있을 것이고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실 이 협약을 카이사르에게 제안한 사람은 마르쿠스였다.
처음부터 삼두 연합은 무력을 사용할 마음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원로원은 언제든 폭주할 가능성을 지닌 집단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무력적인 측면은 폼페이우스가 있는 삼두 쪽이 우월하다.
문제는 원로원이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의 편이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다.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믿는 일부 과격분자들이 이상한 마음을 품을 가능성은 절대 0이 아니었다.
맹목적인 신념을 품은 사람은 자기 몸이 다치는 걸 개의치 않는 법이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의 이런 걱정을 기우라고 일축했지만, 마르쿠스는 이것만큼은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어차피 민심 안정 차원에서는 필요한 일이었기에 카이사르도 결국 동의해주었다.
키케로가 보기에도 카이사르의 제안은 실로 합리적이었다.
중재안을 들어보면 카이사르는 아직 원로원의 밑으로 들어올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더 믿을만한 제안으로 느껴졌다.
대립할 땐 하더라도 선은 지키면서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양측이 이 아슬아슬한 균형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키케로 자신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년이 무사히 넘어가면 그건 성공적으로 양측을 중재한 키케로의 공이라 할 수밖에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카이사르는 집정관이 돼서도 키케로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완전히 경계심을 푼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뒤, 곧장 귀족파와 회합을 가졌다.
귀족파의 중진들은 당연히 카이사르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들이 볼 때 원로원은 절대 강자의 입장이었다.
키케로가 가져온 중재안의 본질은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변수를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유리해지는 건 약자가 아닌 강자다.
폼페이우스에게 무력으로 로마를 뒤엎지 않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받아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카토만큼은 카이사르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얼핏 보면 우리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제안한 사람이 다름 아닌 카이사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분명히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겁니다."
비불루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카이사르의 의도야 당연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자는 우리가 최종권고를 발동할까 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집정관을 상대로 최종권고를 쓸 수는 없지만, 카틸리나의 전례가 있으니 자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거죠."
메텔루스 스키피오도 비불루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안찰관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말자는 것도 의도가 딱 보입니다. 우리 안찰관이 누구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크라수스 가문입니다. 출혈경쟁을 했을 때 카이사르파가 어떻게 대항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자들이 가진 모든 돈을 다 긁어모아 봐야 우리 마르쿠스가 동원할 수 있는 돈의 십 분의 일도 안 될 텐데요."
귀족파 의원들 사이에서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듣고 보니 카이사르의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던 까닭이다.
"그러면 카이사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까요? 우리에게 손해 아닙니까?"
"비불루스,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어요. 일단 카이사르를 핑계로 폼페이우스의 발을 묶어둘 수 있다는 건 큽니다. 폼페이우스의 군사력만 배제하면 우리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의 부하도 아닌데 순순히 요구를 받아들일까요?"
"원로원 전체가 서약하는데 혼자 버팅기고 있으면 자신이 구린 마음을 품고 있다고 증명하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메텔루스의 확신어린 말에 비불루스도 더 반론하지 않았다.
반면 찝찝함을 떨쳐내지 못한 카토는 필사적으로 이 제안을 거절하기 위한 당위성을 찾았다.
"여러분. 카이사르의 두 번째 요구사항은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메텔루스가 말했다시피 우리는 안찰관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비불루스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부작용을 마르쿠스가 선심성 정책을 베풀어 중화시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카이사르의 요구를 들어주면 우리는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단이 하나 줄어드는 겁니다.
"
"아······!"
"그러고 보니······."
비불루스와 메텔루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눈을 치떴다.
그러나 적절하게 끼어든 마르쿠스가 흔들리려는 분위기를 다시 바로잡았다.
"원래부터 저는 곡물을 뿌리거나 검투사 시합을 개최하는 것으로 시민들의 인기를 끌 생각은 없었습니다. 로마의 공익이 시민들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이미 마련해뒀습니다."
신뢰감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비불루스가 반색하며 물었다.
"정말인가? 그런 묘수가 있다고?"
"물론 돈을 쓰긴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해 근시안적으로 주머니를 열지는 않을 겁니다. 로마의 공익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예정이니 카이사르 님의 제안과도 상충하지 않을 겁니다."
"오오, 역시 믿음직스럽군.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우리도 믿어줘야지."
삽시간에 여론이 결정되자 카토도 섣불리 더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정말로 마르쿠스가 묘책이 있다면 카이사르의 제안은 원로원에게 이득이면 이득이지 절대로 손해는 아니었다.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게 아니라면 안찰관은 당연히 원래 주업무인 공공행정에 주력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르쿠스만 획기적인 정책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면 원로원의 우위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 카토도 결국 카이사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조심성이 많은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마르쿠스에게 확인했다.
"정말로 시민들의 인기를 끌 자신은 있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만약 제가 시민들의 호응을 끌지 못한다면 마땅한 책임을 질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믿어보겠네."
카토는 불안함 반, 기대 반으로 귀족파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기원전 60년 1월 1일, 새해가 밝자마자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
안찰관의 주 업무는 공공시설의 관리와 행정의 집행이다.
현대 관료체계는 아무리 자신의 주업무가 있더라도 상부의 결재가 필요하지만, 로마는 달랐다.
담당관이 처리하는 일은 철저히 해당 담당관의 재량으로 이루어졌다.
법무관이나 집정관이 안찰관보다 상위 직책이라고 행동에 간섭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안찰관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공공시설을 손보거나,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
물론 예산을 통해 집행하려면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사비를 들이면 그런 과정조차 생략이 가능했다.
마르쿠스는 처음부터 예산을 따내는데 시간을 낭비할 마음은 없었다.
그는 다른 안찰관들과는 완전히 별개로 자신의 구상을 착착 실행에 옮겼다.
우선 매일 같이 포로 로마눔 광장에서 공청회를 열어 자신이 집행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때도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직관적인 수치를 활용하는 걸 잊지 않았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현재 로마는 보이지 않는 더러운 탁기에 감싸여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생소해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기나긴 시간을 들여 알기 쉽게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마르쿠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파르타쿠스와 셉티무스가 거대한 양피지 두루마리를 쭉 펼쳤다.
"우리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목욕탕이란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삶의 일부와도 같습니다. 당연히 저도 목욕탕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목욕탕이 질병의 온상이 되고 있다면 어떨까요?"
시민들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 로마 사람들은 물로 몸을 씻는 게 질병을 줄여주는 방법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당연히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르쿠스는 일부러 누구가가 반론을 하길 기다렸다.
예상대로 시민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욕탕에 가면 병에 걸린다는 소리입니까? 그런 근거가 있습니까?"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목욕탕에 가서 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 더러운 장소에 가서 병에 걸리는 겁니다. 사람의 몸은 더러운 기운이 들어오면 그 기운에 잠식당해 병이 듭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저는 많은 의사들과 함께 몇 년 동안 조사를 해왔습니다. 이걸 보시죠."
마르쿠스가 커다란 두루마리를 손으로 짚어가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욕탕에 가는 시민들 100명과 목욕탕을 전혀 가지 않고 집에서 몸을 씻는 100명을 선정해 1년 동안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서 질병의 발생 유무가 차이가 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조사집단을 구성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건 목욕탕에 가는 빈도수뿐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목욕탕에 자주 가는 이들이 같은 시기 동안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할 확률이 7배가 더 높게 나왔습니다.
"
"7배?"
"그렇게나 많이?"
조금의 차이라면 우연이라고 넘어간다고 쳐도 7배라는 수치가 제시되자 시민들은 동요를 보였다.
아까 전 반론을 했던 청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그, 그렇다면 목욕탕을 폐쇄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 목욕탕이 질병의 온상이 된 것은 그 장소가 너무나도 더럽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더러운 기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니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공중목욕탕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유지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개선책을 마련해뒀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협조도 필수적입니다. 새로운 목욕탕의 사용법을 안내 드릴 테니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반드시 가족과 친지들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마르쿠스는 일단 시민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환경부터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시각적으로 눈에 확 들어와야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일단 사비를 들여 로마 시내의 목욕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다음 효과가 확실히 입증되면 유지, 보수비를 국고에서 충당하는 방침을 설정했다.
원로원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로 목욕탕이 질병을 퍼트리는 소굴이라면 개선을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가 사비를 들여서 그 사실을 증명해주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마르쿠스는 공중목욕탕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용방법을 확실히 고지했다.
사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엄청난 개혁은 아니었다.
욕탕은 반드시 일정 시간을 주기로 물을 비우고 하루에 한 번 깨끗하게 청소를 할 것.
탕에 몸을 담그기 전에 간단하게 몸에 물을 끼얹어 씻을 것.
욕탕에서 소변을 보는 행위는 절대 엄금할 것.
공중목욕탕마다 일정량의 비누를 비치하고 이걸로 시민들의 몸과 손을 씻게 할 것.
하나하나 모아놓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항들이었으나 고대 시대에는 이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고대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위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째서 이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고대 시대가 행정가에게 좋은 점은 국가방침이 정해지면 다소 강제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걸로 간주되어 즉시 쫓겨났다.
특히 욕탕에서 소변을 보는 자들은 그 물을 도로 마시게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 방침만큼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아무리 위생관념이 부족하다고 해도 소변과 대변이 더럽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강압적으로 욕탕 이용규칙을 준수시킨 마르쿠스는 일종의 당근도 쥐어주었다.
로마인들이 목욕탕에 자주 가는 건 단순히 몸을 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목욕탕은 각종 오락거리가 많이 비치되어 있었고, 사교활동을 하기도 가장 용이한 장소였다.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담소를 나누며 오락을 즐기는 건 로마인들에게는 일종의 사회활동이었다.
마르쿠스는 공중목욕탕의 이런 기능을 좀 더 강조했다.
목욕탕의 건물을 증축해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고, 노예가 없는 사람도 마사지를 받을 수 있도록 추가로 인력을 배치했다.
효과는 금방 드러났다.
시민들은 대폭 개선된 목욕탕에 엄청난 만족감을 보였다.
질병 발생률이 떨어지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만, 깨끗해진 목욕탕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더러운 물보다는 깨끗한 물에 몸을 담그는 걸 선호하는 건 사람이 가진 본능이었다.
목욕탕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도 사라졌고, 비누로 몸을 씻으니 왠지 모르게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비누로 몸을 씻기만 해도 병에 걸릴 확률이 내려간다는 소문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일단 몸에 좋다고 하면 뭐든지 열심히 해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국가에서 인증한 거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비누로 몸을 씻기만 하면 되는 거라 따르기도 쉬웠다.
목욕탕의 개선으로 최소한의 위생관념을 주입한 마르쿠스는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로마를 개조하기로 했다.
다음에 착수하는 사업은 어쩌면 위생사업보다도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바로 로마 전역에 퍼져있는 삼포제 농사법을 4윤작법으로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고 공공행정의 영역도 아니었다.
안찰관이 적용해라 마라 할 수 있는 범위를 명백히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안찰관의 권한으로 4윤작법을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있었다.
그는 즉시 로마 전역에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겠노라 공표했다.
혁명적인 농사법의 지혜를 알려준 케레스 여신에게 감사하는 게 행사의 취지였다.
기존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생산량이 늘어나는 농사법이라는 소문이 뒤따라 퍼져 나갔다.
로마 각지의 농민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마르쿠스의 행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마르쿠스의 개혁' 으로 유명해진 천재의 대한 소문은 이제 로마 전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마르쿠스를 중심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 77. 첫걸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