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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연극 개막 (81/326)

  < 80. 연극 개막 >

  80.

  원로원 의원들은 매일같이 카토의 저택에 모여 카이사르의 농지법을 철저히 분석했다.

  귀족파의 거의 전원이 연일 회의에 참석했으나 마르쿠스는 그럴 수 없었다.

  안찰관의 임무도 바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할지도 모르는 일이 이제 막바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거의 2년을 투자해 준비한 은행의 개점일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내에 있는 대도시들과 속주에도 지점을 낼 계획이라 점검할 사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기존의 지식과 상충하거나, 아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 밑의 사람들에게 맡겨두는 것도 불가능했다.

  은행 개점 후에는 마르쿠스가 전면적으로 진두지휘할 수 없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원로원 의원은 직접적인 상행위를 할 수 없다는 법령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일단 셉티무스를 표면적인 책임자로 내세웠다.

  물론 은행의 지배권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마르쿠스는 로마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소키에타스 푸블리카노룸을 참고했다.

  소키에타스 푸블리카노룸이란 현대에서 말하는 주식회사의 기원이 되는 상업조직이다.

  여러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 유한책임을 지고, 주식의 일종인 파르테스를 발행해 사고파는 형태는 현대의 기업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마르쿠스는 은행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수많은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원로원을 설득했다.

  원로원은 그의 뜻대로 의원들도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법을 통과시켰다.

  물론 이건 원로원이 은행에서 막대한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원들의 상당수는 은행의 파르테스를 사들이고 수익을 배분받기 원했다.

  마르쿠스는 사실상 자신의 뜻대로 은행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로 남았다.

  그래도 평상시의 업무는 셉티무스가 봐야 하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강의를 했다.

  그는 지금도 은행의 주요 정책을 놓고 셉티무스의 질문을 들어주고 있었다.

  "예금을 받는데 보관료가 아닌 고객들에게 이자를 지급한다는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당연히 대출이자보다는 현격히 낮게 책정할 거야. 단리로 1년에 5리 정도? 그냥 생색만 내는 수준이면 돼."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보관료를 받아도 전혀 상관이 없을 텐데 그 이득을 포기하고 오히려 예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준다?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버리고 괜히 손해만 보는 게 아닐까요?"

  셉티무스는 은행에서 예금에 이자를 붙여준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보관료를 내고 금고업자들에게 돈을 맡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집안에 많은 호위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 평민들은 집안에 은화를 보관하는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안전하게 재산을 지키고 싶어 했다.

  이게 이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금고업자들은 이렇게 받은 돈을 다시 이자를 붙여서 대출로 빌려주고, 이중으로 수익을 챙겼다.

  셉티무스는 마르쿠스의 은행이 이런 작업을 훨씬 더 대규모로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예금에 이자를 붙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윤 극대화도 중요하지만 내 목적은 그것만이 아니야. 지금 로마가 겪고 있는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려면 최대한 투자와 대출을 많이 해서 돈이 순환되게 할 필요가 있어. 물론 건전한 투자와 안정적인 대출을 말하는 거야."

  "그러니 최대한 많은 예금을 확보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단순히 그것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네. 나중에 속주와 주요 거점들에 지점이 생기면 상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여러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거든."

  로마는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중세보다도 더 잘 정비되어 있고, 덕분에 가도 주변의 치안도 확실하다.

  여기에 은행까지 더해지면 다양한 금융정책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역사와는 선후 관계가 뒤바뀌었지만, 어음과 환어음 제도를 널리 퍼트릴 계획도 이미 마련해 두었다.

  이대로 가면 로마의 금융체계는 사실상 크라수스 가문, 아니 마르쿠스가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형태가 잡히려면 아직 10년도 더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쯤 시간이 소요되는 게 오히려 딱 좋았다.

  어느 한쪽만 너무 앞서 나가버리면 균형이 뒤틀릴 우려가 있다.

  마르쿠스에게만이 아니라 로마 전체로 놓고 봐도 그랬다.

  너무 금융 제도만 발전하면 다른 사안들은 뒷전으로 밀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로마가 아무리 상업이 발전했다고 해도 고대국가의 근본은 농업에서 온다.

  게다가 지금은 위생사업도 개선을 했기 때문에 원 역사보다 인구증가율이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여기서 농업기술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는다면 상상도 못 한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역시 이탈리아에 4윤작법을 퍼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어.'

  어떻게든 농지법을 통과시키고 갈리아의 비옥한 농토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아니, 생각해보면 농지만이 아니지. 지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철의 생산량을 뒷받침하려면 광산도 추가로 발견해야 하고, 은화를 찍어낼 만한 은광산도 필요할 테니까······.'

  하나를 해결하면 추가로 처리해야 할 일이 줄줄이 엮여서 튀어나온다.

  어떨 때는 괜히 의욕적으로 일을 벌였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기, 듣고 계십니까?"

  완전히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있던 마르쿠스는 셉티무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어, 그래. 듣고 있으니까 계속해."

  "이틀 뒤에 열릴 검투사 대항전의 결승전에서 축사를 하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후 경기까지 전부 관람하실 예정이신가요?"

  "아···그랬지. 완전히 잊고 있었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보고 싶은데 일정이 너무 많아서 안 되겠어. 그냥 축사만 하고 가야지."

  "스파르타쿠스가 오랜만에 경기장에 나올 텐데요?"

  "어쩔 수 없잖아. 원로원 중진들이 그날은 제발 한 번만 나와 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스파르타쿠스에게는 미리 사과를 해둬야지."

  셉티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찰관직이 끝나면 당분간은 좀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모님께서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지금 고생을 하는 만큼 나중에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 할 수 있을 때 해놔야 해. 아직까지는 괜찮으니까 지금은 이틀 뒤에 있을 결승전을 완벽하게 치르는 것만 생각하자고. 준비는 잘 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미 로마를 대표하는 투사들에게 입힐 비단옷도 준비를 끝내놓았습니다. 여기 진행 상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셉티무스가 가져온 서류를 쓱 훑어본 마르쿠스는 크게 하품하며 눈을 감았다.

  "좋아. 문제는 없는 것 같네. 그러면 나는 잠깐 눈을 붙일 테니까 시간이 되면 깨워줘."

  "예. 잠깐이라도 쉬고 계십시오. 그리고······."

  "······."

  마르쿠스는 셉티무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서운 속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셉티무스는 완전히 곯아떨어진 주군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최근 마르쿠스의 일정은 사람이 소화해내는 게 신기할 정도로 빡빡했다.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도 셉티무스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다나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큰 도움이 되고 있던 율리아는 쌍둥이들을 돌보느라 잠시 일선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다나에나 사모님과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셉티무스는 혹시라도 마르쿠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며 잠든 마르쿠스의 앞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로마를 둘러싼 갈등이나 혼란과는 별개로 검투사 경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지역대항전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뒤로 검투사 경기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만 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검투사 시합에서 수익모델을 창출했다는 게 엄청난 성과였다.

  원래 검투사 경기는 빵과 서커스로 칭해지는 로마의 우민화 정책 중 하나였다.

  정치인들이 민중의 불만을 달래거나 인기를 끌기 위해 시합을 개최했기 때문에 그리 큰 수익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검투사 양성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외에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마르쿠스가 대대적으로 개선한 검투사 시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돌변했다.

  판돈의 중개수수료로 걷어 들이는 돈만 해도 시합을 여는데 필요한 돈의 몇 배가 되고도 남았다.

  검투사들의 대우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아졌다.

  검투사는 이제 목숨을 걸고 커다란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직업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 변화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역시 스파르타쿠스였다.

  이제 거의 일 년에 한 번 경기가 있을까 말까 했지만, 지금껏 그가 쌓은 기록은 전설로서 회자됐다.

  이번 결승전에도 스파르타쿠스가 로마의 대표로 나온다고 하니 사흘 전부터 매표소 앞에 긴 줄이 늘어설 정도였다.

  "이제는 크릭수스에게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나름대로가 아니야. 네가 아니었으면 절대 이렇게까지 판이 커질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결국 이 일을 해낸 사람은 주군이십니다."

  마르쿠스가 쌍둥이를 낳은 뒤부터 가문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셉티무스도, 다나에도, 스파르타쿠스도, 가문의 모두가 이제 모두 마르쿠스를 주인이라고 칭했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크라수스 가문의 가장은 크라수스였지만, 구성원들은 마르쿠스가 실질적으로 가문을 끌어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럴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없다면 계획을 진행할 수 없어. 지금 너의 위치는 네가 스스로 쟁취한 거야. 조금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해. 어쨌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킨 거잖아?"

  "예. 하지만 이제 검투사로서 목표했던 바는 다 이루었으니···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서서히 정리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고인물은 슬슬 빠져줘야죠."

  스파르타쿠스의 말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10년 동안 무패의 검투사로 신화를 써 내려가며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루었다.

  그러나 결과가 너무 뻔히 보이는 승부는 관중들도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마르쿠스는 그 문제를 스파르타쿠스의 시합 주기를 최대한 늦추고, 지역대항전의 대표로 내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이제는 슬슬 물러나야 할 때가 왔다.

  스파르타쿠스가 물러난다면 10년 동안 굳건했던 왕좌가 한순간에 비게 된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특급 검투사들의 쟁탈전은 로마를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진심을 헤아린 마르쿠스는 그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10년째 무패인 전설 검투사의 은퇴라···화려하게 해줘야겠는걸? 그런데 은퇴하면 이제 뭘 하고 살 거야? 달리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예. 우선 정식으로 군에 관한 걸 배워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전쟁에 참여했을 때 느낀 거지만 제가 알고 있는 군략은 그리 대단한 게 되지 못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총사령관을 맡을 그릇이 아니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주군께서도 분명 군대를 이끄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때를 대비해 저도 백인대장 임무 정도는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습니다.

  "

  "네 뜻이 그렇다면 알겠어. 폼페이우스 님에게 부탁해서 수석 백인대장을 역임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할게."

  "감사합니다."

  마르쿠스는 마지막으로 스파르타쿠스를 격려해준 뒤 경기장을 떠났다.

  객석을 가득 메우고 경기장의 바깥에 임시로 올린 망루에도 사람이 가득한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검투 시합의 인기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마상창 시합이나 투우 같은 새로운 유흥거리도 구상 중이었다.

  지금의 경기장으로는 앞으로 늘어날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르쿠스는 자연스레 새로운 경기장을 건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로마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콜로세움은 아직 이 시기에는 지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역사보다 더 빠르게 착공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르쿠스는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며 마차에 올랐다.

  방패 문양의 독수리가 새겨진 마차는 부드럽게 길을 가로질러 카토의 저택으로 향했다.

  마르쿠스는 도착하자마자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이제 막 회의가 시작했는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바깥까지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마르쿠스의 목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던 원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르쿠스에게 돌아갔다.

  저택의 주인인 카토가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게, 일정으로 바쁜 사람을 이렇게 오게 해서 미안하네. 크라수스 님의 병세는 좀 호전되었나?"

  "예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안정을 좀 취하면 좋아질 거라고 의사가 말하더군요."

  "후···하필 이런 시기에 그분께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다니. 아니, 역으로 생각하면 크라수스 님께서 편찮으시니 제어할 사람이 없어진 카이사르가 날뛰는 건지도 모르겠군."

  마르쿠스는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크라수스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펄펄했다.

  마르쿠스가 이런 거짓말을 한 이유는 크라수스가 합법적으로 회의에 빠질 수 있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크라수스는 몇 달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억지로 버티다가 지금 크게 앓아누운 것으로 알려졌다.

  크라수스의 올해 나이는 오십 하고도 다섯이었다. 고대인들은 그쯤 되면 잔병치레를 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카이사르가 적극적인 행동을 개시하는 게 크라수스의 건강악화에 신빙성을 더했다.

  지금까지 원로들은 크라수스가 민중파인 카이사르를 나름대로 제어하고 있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라수스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안 카이사르는 나름대로 조용히 지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르쿠스에게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그는 너무 젊었다.

  그래도 비불루스는 일말의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자네는 그래도 카이사르의 사위가 아닌가? 아내와 함께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카이사르도 조금은 흔들리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이미 그렇게 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더군요. 그래도 일단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니 민중파와 귀족파가 무력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인정하네. 카이사르는 그리 두렵지 않지만, 그가 폼페이우스를 부채질해서 퇴역병을 소집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정말로 골치가 아팠겠지. 서로 무력을 쓰지 않기로 협약을 맺은 건 분명히 잘한 일이었어."

  "그 중재를 이끌어낸 사람이 저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법조문을 읽고 있던 키케로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비불루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직 집정관 키케로의 눈부신 업적이죠."

  "그러면 제 의견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면 어떨까요? 전 로마에서 저보다 법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볼 때 이 농지법은 정말로 훌륭한 법안입니다. 진지하게 가결하는 걸 검토해 봐야 해요."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찬성하더라도 저는 집정관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겁니다."

  키케로가 답답하다는 듯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어루만졌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란 겁니다. 저번에 회의에서 카이사르가 말한 모든 내용이 포로 로마눔 광장에 떡하니 붙어있습니다. 대부분 로마 시민들은 지금쯤 농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인지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억지로 반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당장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퇴역병들이 이 소문을 듣는다고 상상해보세요.

  "

  "···그건 그렇지만······."

  비불루스는 딱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는지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낀 마르쿠스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다.

  다행히도 카토가 먼저 키케로의 말에 반론을 던졌다.

  "키케로의 말이 옳습니다. 분명히 이 제안을 반대하면 원로원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더더욱 반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까?"

  "이 법안의 이름을 보세요. 율리우스 농지법입니다. 키케로는 이 법안을 반대하면 전국을 떠도는 퇴역병과 도시의 빈민들이 원로원에게 분노를 보일 거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결된다면? 그들은 이 농지법을 발안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구세주로 떠받들게 될 겁니다.

  안 그래도 민중파의 수장인 카이사르가 추가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크라수스 님이 건강을 회복한다고 해도 더는 카이사르를 제어할 수 없을 겁니다.

  "

  키케로의 의견에 혹했던 원로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다시 카토 쪽으로 기울었다.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해도 나중에 곡물을 뿌리거나 원로원 주도로 농지법을 만들면 수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에게 대중의 인기를 헌납하면 다시는 만회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토가 지금까지 부추긴 카이사르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다.

  아직 카이사르를 폼페이우스 정도의 위협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인재라는 데에는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카토의 지지에 힘을 얻은 비불루스가 당차게 선언했다.

  "다음에 있을 회의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카이사르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힐 겁니다. 민중들의 두려움을 받는 게 두려운 분이 계신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비불루스가 명예를 걸고 가장 먼저 반대의 의사를 밝히겠습니다!"

  반대는 하고 싶어도 총대를 메긴 꺼려했던 의원들이 비불루스의 각오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키케로는 어쩐지 점점 늪에 잠기고 있다는 꺼림칙한 느낌에 한 차례 몸을 떨었다.

  마르쿠스는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표정으로 비불루스를 향해 박수를 쳤다.

  방침이 결정되자 원로들은 홀가분한 얼굴로 해산했다.

  그들 중 태반은 결국 법안의 초고를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카이사르가 지정했던 원로의 회의 날이 밝아왔다.

  < 80. 연극 개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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