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 연극 개막 (82/326)

  < 81. 연극 개막 >

  81.

  카이사르는 법안을 가지고 충분히 토의할 수 있도록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귀족파 의원들 중 법안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카토와 키케로를 비롯해 스무 명도 채 되지 않는 듯 보였다.

  카이사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엄숙하게 회의의 시작을 선언했다.

  "자,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법안을 정독하고 보완점을 떠올릴 시간을 충분히 주었습니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해 건설적인 토론을 하고자 합니다. 어느 분이 먼저 발언해주시겠습니까?"

  카이사르가 좌중을 둘러보며 묻자 비불루스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발언권을 요청하지도 않고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저는 이런 행위가 로마에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반대하겠습니다."

  "토론을 거부하겠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토론만이 아니라 이 법안 자체에 반대합니다. 이건 통과돼서는 안 되는 법안입니다."

  카이사르가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이 법안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겁니까?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토지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으면 합니다. 대지의 여신께서 주신 축복을 많은 로마인들이 함께 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법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에 반대하신다면 반대하시는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반대하는 이유는 이 법안을 들고 온 사람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건 농민들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법안입니다. 이런 걸 통과시키면 원로원은 부정에 오염되고 저주를 받을 겁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가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한다? 근거를 갖춰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법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취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런 조문이 하나라도 있나요?"

  "이 법안의 이름이 율리우스 농지법이라는 사실부터가 그 이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걸로 자신의 명성을 날릴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겁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의 선량한 시민들은 카이사르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속기관, 제 이 말을 똑똑히 기록해두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로마는 속고 있어요!"

  카이사르는 헛웃음을 흘렸다.

  법안의 이름이 율리우스 농지법이라서 반대한다니.

  이 어이없고도 황당한 핑계에 일부 의원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로마에서 어떤 법안을 발의할 때는 발의자의 씨족 이름을 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었다.

  로마인에게 항소권을 보장하는 셈프로니우스 법, 집정관 선출에 관련한 리키니우스 법 등등, 수많은 법이 발의자의 씨족 이름을 빌려왔다.

  비불루스의 주장은 일반 로마 시민들이 들어도 코웃음을 칠 정도로 논리라는 게 아예 없었다.

  "친애하는 비불루스, 지금 당신은 감정적으로만 이 사안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간청합니다. 논리적인 반대 이유를 밝혀주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이 법안이 가결되어야 할 이유를 처음부터 다시 말씀드릴 테니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토론할 생각도 없고 비판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반대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비불루스 당신의 의견은 이 법안을 저 카이사르가 발의했으니 그냥 반대를 하겠다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결정을 두고 편협하다 비웃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건 매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사람에겐 어떠한 행동을 해도 의도라는 게 묻어나옵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의도는 한결같이 명백했습니다. 바로 원로원 질서의 붕괴입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카이사르가 목적을 이루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카이사르는 얼굴을 찡그리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발언이 끝났으면 조용히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비불루스는 귀족파 의원들의 박수갈채에 휩싸인 채 의기양양하게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원로원파의 최고 중진 중 한 명인 루쿨루스가 발언을 요청했다.

  폼페이우스에 망신을 당해 체면이 깎이긴 했어도 루쿨루스는 전직 집정관이자 술라의 밑에 있던 가장 뛰어난 장수 중 한 명이었다.

  아직 원로원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히 큰 편이었다.

  폼페이우스와는 달리 뼛속까지 술라의 추종자였던 루쿨루스는 당연히 카이사르를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긴 했어도 아직 완전히 노쇠하지 않은 맹장은 자신의 분노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농지법의 통과는 당연히 안 되는 말이오! 카이사르는 교묘하게 자신만이 로마의 퇴역병을 걱정하는 듯 발언을 하고 있소. 하지만 나 역시 대군을 이끌고 7년이나 전쟁을 했던 총사령관이오.

  그 과실을 폼페이우스가 홀로 날름 먹어버렸지만, 어쨌든 동방을 평정한 건 나의 공이란 말이 오! 그런 내가 볼 때 이 법안은 말이 되지 않는 법이오.

  카토에게 듣자 하니 이 법안에 따르면 폼페이우스를 따라 종군한 병사들이 우선적으로 국유지를 빌릴 수 있는 권한을 받는다고 하오. 어째서 폼페이우스를 따른 병사들이 우선권을 받는 것이오. 나는 이걸 반대의 이유로 삼겠소. 이 법안은 공정하지 못하오!

  "

  드디어 반론다운 반론이 나오자 카이사르는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는 친절하고도 사려 깊은 목소리로 루쿨루스의 의견에 반박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밑에서 종군한 병사들에게 기회를 준 건 그들이 세운 공을 치하하는 의미가 강합니다. 올바른 논공행상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국가에 헌신하려 하겠습니까. 폼페이우스가 로마에 가져온 이득은 헤아릴 수 없이 크고, 그 밑에서 싸운 병사들은 마땅히 자신들이 세운 공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폼페이우스는 내가 세운 공을 가로채 간 까마귀에 불과하단 말이오! 정 그의 밑에서 종군한 병사들에게 우선권을 줘야 한다면 내 밑에서 싸운 자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줘야 할 거요!"

  카이사르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분노에 가득한 폼페이우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루쿨루스에게 삿대질을 하며 성난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지금 뭐라고 했소? 까마귀? 나는 당신이 7년이나 끝내지 못하고 질질 끈 전쟁을 이어받아 순식간에 마무리를 지었소. 부하들의 인망조차 얻지 못해 총사령관에서 끌려 내려온 자가 감히 동방 전역을 제패한 나를 비판하는 것인가? 주제를 아시오, 루쿨루스!"

  "자네가 폰투스와 아르메니아를 격퇴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들의 군대의 힘을 빼놨기 때문이라는 걸 부정할 셈인가! 나에게 계속 사령관직을 맡겼다면 나도 자네 못지않은 공을 충분히 세울 수 있었단 말일세!"

  "하! 또다시 병사들에게 종군 거부나 당했겠지. 그리고 루쿨루스, 당신이 당신을 따른 병사들에게 해준 게 대체 뭐요.

  나는 병사들의 봉급 외에도 두둑한 액수의 상여금을 주었소. 그리고 추가로 그들에게 토지를 얻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지.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소. 부하들을 이끄는 사령관이 보여야 할 태도는 이런 거요! 당신처럼 혼자 예술품을 독점하고 막대한 부를 쌓아 하루하루 돼지처럼 살아가는 그런 게 아니라!

  "

  "뭐라고!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보시오!"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는 한참이나 서로를 향한 인신공격성의 비방을 늘어놓았다.

  케케묵은 감정대결로 번진 말다툼에 회의는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도저히 회의를 이어나갈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잠시 휴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어수선한 틈을 타 씩씩거리며 분을 이기지 못한 루쿨루스에게 몰래 다가갔다.

  카이사르는 루쿨루스를 설득하는 대신 작은 양피지 조각을 그의 앞에 슬쩍 두고 나왔다.

  의아한 얼굴로 카이사르가 남긴 쪽지를 본 루쿨루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거기엔 루쿨루스가 속주 총독 시절 저지른 비리가 쭉 나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방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마르쿠스가 얻어다 준 정보였다.

  루쿨루스는 그다음부터는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회의장 한구석에서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다.

  귀족파 의원들은 그에게 아까처럼 용감한 발언을 하길 요구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루쿨루스의 정계 생활은 사실상 이걸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보다 못한 카토가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장광설로 회의를 마비시키려 시도했다.

  "의원 여러분, 혹시 엘레아의 제논을 아십니까? 그는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태어난 인물로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철학자입니다. 참고로 제가 신봉하는 스토아학파의 개조, 제논과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지식 설명 감사합니다, 카토. 그런데 그게 농지법과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지금부터 설명할 겁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기에 앞서 제논의 역설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카토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들먹이며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모든 건 환상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논의가 다시 스토아학파의 철학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어제 자신이 먹은 음식의 원산지에 대해 떠들더니 그곳의 역사에 대한 강의로 내용이 변질됐다.

  카토는 농지법의 농자조차 꺼내지 않고 해가 저물 때까지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분노한 폼페이우스는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나가버렸고, 다른 의원들도 슬며시 그의 뒤를 따랐다.

  마르쿠스는 태연한 표정을 가장한 채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퍼부으며 자리를 지켰고, 카이사르는 연신 하품을 하며 집정관 석에서 대놓고 눈을 붙였다.

  카토의 연설이 다 끝나자 회의장에는 집정관 카이사르와 그가 이끄는 호위대인 릭토르, 그리고 카토와 마르쿠스만이 남아있었다.

  카이사르는 내일 같은 시간에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카토는 발언권을 요청한 뒤 연설을 개시했다.

  오늘의 주제는 '과연 음식을 먹을 때 오른손과 왼손 중 어느 손을 사용하는 게 맞는 것인가' 였다.

  카이사르는 어제처럼 무한정 연설을 들어주지 않았다.

  삼십 분 정도 카토의 말을 듣고 있던 카이사르는 연설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릭토르단을 호출했다.

  "집정관의 권한으로 명한다. 의사진행 방해로 카토를 퇴장시키도록."

  "잠깐! 이제부터 본론을 말하려고 하는······."

  카이사르는 카토의 변명을 더 듣지 않고 그를 구금하도록 지시했다.

  카토가 풀려난 것은 그날의 회의가 다 끝난 뒤였다.

  그 후로도 카토가 장광설을 시작할 때마다 끌어내서 그의 입을 막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회의는 지지부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원로원 의원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공개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카이사르의 발목을 잡는데 몰두했다.

  하지만 원로원은 이런 방법으로 1년 내내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케레스 여신 감사제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농민들이 로마로 모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몇 번이고 파탄이 난 회의를 끈덕지게 지켜본 이유는 바로 이때를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그는 평소처럼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원로원 회의가 파할 때, 정식으로 선언했다.

  "오늘만큼은 존경하고 친애한다는 말을 붙일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래서 말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 저는 누가 보아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법안을 검토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문제점을 보완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만약 반대한다면 합리적인 근거를 동반해 생산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분은 그럴 의지가 없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제 이 법안을 평민회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

  비불루스가 이건 월권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물론 카이사르의 행동은 전부 법에 근거를 둔 합법적인 행위였다.

  카이사르는 민회의 날짜를 케레스 여신 감사제가 열리기 사흘 전으로 잡았다.

  좋지 않은 일을 축제 이후까지 끌고 가 분위기를 늘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카이사르의 이런 결정에 당연히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드디어 60년 이상을 질질 끌어온 농지법의 통과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카이사르가 지정한 날짜가 다가오자 포로 로마눔 광장은 역대 최고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전에 마르쿠스가 금융개혁을 했을 때 밀려든 사람들의 수와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았다.

  연단의 가장 앞에는 폼페이우스가 동원한 퇴역병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자리를 잡았다.

  오늘 법이 통과 되느냐, 부결되느냐로 그들의 앞으로의 생활이 결정된다.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니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토지의 분배 대상이 된 빈민들이 빼곡하게 광장을 메웠다.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끌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율리우스 농지법의 내용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민회의 의장인 카이사르가 릭토르를 대동하고 연단에 서자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이어서 원로원 의원들이 카이사르의 뒤를 따라 입장하자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다.

  민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여론이 극단적으로 나뉜 것이다.

  심약한 의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몰린 군중들이 뿜어내는 압박감에 하얗게 질렸다.

  물론 카토는 달랐다. 그는 수만이 아닌 수십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할 배짱이 있었다.

  카이사르는 귀족파의 정신적 지주인 그를 먼저 꺾어놓아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단 의례적인 인사말로 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왔습니다. 지금의 토지 체계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기 비옥한 땅에는 수백의 노예를 동원해 대규모 농장을 짓는 귀족들이 많은데, 정작 10유겔룸의 땅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감히 군에 자원한 이들이 퇴역하고 나면 농사를 지을 땅조차 없습니다. 이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그릇된 흐름을 돌리기 위해 율리우스 농지법을 발의했습니다. 이미 세간에 내용이 다 퍼져 있을테니 자세한 내용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잠시 말을 멈춘 카이사르는 시민들을 둘러보았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군중의 강렬한 열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싱긋 웃으며 연설을 이어나갔다.

  "저는 본래 원로원 의원들의 주도로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었습니다. 로마의 기득권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께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로원은 그런 제 바람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법안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포르키우스, 카토. 이 법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확실히 밝혀주십시오.

  "

  가장 먼저 지명을 당한 카토가 바라던 바라는 듯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마치 순교자 같은 표정을 지으며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의 내용은 평소처럼 의사 진행을 방해하기 위한 장광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시민 여러분, 집정관 카이사르는 지금 여론을 등에 업고 막무가내로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는 공화정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본래 공화정이란······."

  카토가 말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분노한 군중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다른 의원들이 몸으로 벽을 세워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연단 위로 날아온 오물이 카토의 얼굴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카토가 구역질을 하며 오물을 뱉어내는 동안 연단 위로 올라온 군중들이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다른 의원들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카토를 보호해주려던 비불루스마저 머리에 똥물을 뒤집어쓰고 여기저기를 얻어맞아 온몸에 멍이 들었다.

  사태가 너무 심해지는 것 같자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끼어들어 제지했다.

  간신히 화를 삭인 군중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시민들의 엄청난 분노를 목격한 의원들은 기가 팍 죽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이사르는 다음 발언자로 폼페이우스를 지명했다.

  폼페이우스가 연단 위에 서자 분노의 함성과 야유는 마치 마법처럼 우레와 같은 환호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시민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폼페이우스는 잔뜩 흥분했다.

  그래도 자신이 연설에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간결하게 법안을 지지하는 이유를 입에 담았다.

  카이사르는 쐐기를 박기 위해 폼페이우스의 옆에 서서 물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이 법안을 지지하는 만큼 앞으로도 저를 도와 이 개혁 법안이 잘 완수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겠습니까?"

  "물론이오! 누구든 감히 이 법안에 칼을 들이댄다면, 내가 방패가 되어 막아설 것이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곁에는 이 순간부터 언제나 내가 있음을 선언하겠소. 그 누구도 나를 넘지 않고는 이 법안과 현 집정관에게 이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동맹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둘이 모종의 합의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던 원로원이지만, 이런 사태는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폼페이우스가 하는 말은 이게 단순히 농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연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로도 카이사르를 적대하는 자는 자신의 적이 될 것이라 선언했다.

  원로원은 지금까지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비불루스는 충격으로 비틀거리며 마르쿠스에게 속삭였다.

  "지금 저 광경 보이나? 우리는 지금까지 엉뚱한 자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카이사르 님이 이 일을 전부 주도한 게 아닐 수도 있겠어요"

  "아닐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거의 확실하네. 카이사르를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하는 카토 때문에 모두의 눈이 멀었던 거야.

  폼페이우스는 우리에게 당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카이사르를 포섭하고 계속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였네! 생각해 보면 카이사르는 이전부터 줄곧 폼페이우스의 편을 들지 않았나. 폼페이우스가 동방에서 쌓은 부로 카이사르가 진 빚의 일부를 갚아주기로 했고,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의 하수인이 되었다면 지금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

  비불루스가 이어서 무슨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귀가 먹을 것 같은 환호성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다음 차례로 비불루스를 지명했다.

  그가 연단 위에 서자 카이사르가 친절히도 시민들에게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저와 함께 올해의 집정관을 맡은 비불루스는 줄곧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도록 하죠."

  방금 전 카토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본 비불루스는 군중들의 야유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핑곗거리를 찾던 그는 하늘 위의 새를 바라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는 날아가는 새를 통해 신의 뜻을 읽어내는 조점관입니다. 제가 본 바에 따르면 올해는 토지에 관한 법을 논의하기에는 기일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대한 겁니다."

  흥분한 시민들의 야유 소리가 광장을 뒤덮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카이사르가 웃으며 되물었다.

  "비블루스, 제가 집정관 외에도 어떤 직책을 맡고 있습니까?"

  "···최고 사제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조점관들에게 문의해보니 올해의 운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최고 사제로서 선언하건대 올해는 농지법을 통과시키기에 가장 운수가 좋은 해입니다."

  종교의 권위를 빌려보려던 비불루스는 결국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연단을 내려왔다.

  시민들의 조소와 야유가 그의 등에 한가득 꽂혀 들었다.

  원로원은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편인 호민관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체불가침권이 있는 호민관들이라도 저런 분위기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결국 카이사르는 농지법안을 민회의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율리우스 농지법은 열여덟 개의 선거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원로원은 성난 시민들에게 맞아 죽지 않도록 한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동맹을 맺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소득은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정신적 위안으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잔뜩 오물을 뒤집어쓴 카토는 입안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퉤 뱉으며 이를 갈았다.

  "아직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어차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동맹은 끝까지 가지 못해요. 지금이야 폼페이우스가 압도적인 위치에 있으니 카이사르가 순순히 따르겠지만, 그의 힘이 커지면 바로 파국이 일어날 겁니다."

  카토의 말대로 정치에서 양자연합은 언제나 예외 없이 둘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었다.

  지금이야 잠깐 서로의 이해가 맞아 결집했어도 이익이 충돌하는 순간 바로 갈라설 수밖에 없다.

  원로원은 방침을 바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사이를 이간질하기로 했다.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연합의 구성원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두 사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연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어느 때보다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마르쿠스는 한없이 가라앉은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81. 연극 개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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