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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원로원의 새로운 얼굴 (89/326)

  < 88. 원로원의 새로운 얼굴 >

  88.

  "언제나 한발 늦게 움직였기 때문이 아닐까···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화제를 선점하는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카이사르 님을 보십시오.

  집정관 통달에 이어서 농지법, 그리고 속주 총독안과 거기서 이어지는 게르만족과의 협정체결까지. 언제나 선제적으로 화제 거리를 생산하고 존재감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여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카이사르 님을 방해하는데 더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상 한발 늦게 상대의 행동에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남은 기간 동안은 이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

  "카이사르를 방해하는 걸 그만두자는 건가?"

  "솔직히 지금 상황을 보면 원로원은 시민들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있다고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부터 어떻게 바꾸지 않는다면 올해 선거가 아니라 내년 선거도 답이 없습니다.

  다행히 전환점의 계기는 마련된 상황입니다. 아버지께서 다시 복귀하셨고, 키케로 님도 계시니 두 분이 귀족파의 얼굴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지금과 다르다는 걸 시민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야 합니다. 카이사르 님이 하는 모든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줄건 줘야죠.

  "

  카토가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 줄건 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가는 로마를 통째로 그자에게 주는 경우가 벌어질 수도 있네."

  "그러니 신중하게 결정해야지요. 여기서 핵심은 줄건 주더라도 받을 건 확실히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농지법 때와 속주 총독의 임지를 바꾸는 바티니우스 법 때 원로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습니다. 이미 흐름이 넘어간 상황에서도 줄 수밖에 없는 걸 억지로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조금 더 유리한 조항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농지법을 원로원에서 받아들였다면 애초에 민심을 잃을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속주 총독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리아 속주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면 그걸 원로원에서 결의해주고 비불루스 님의 임지를 동방으로 수정하는 안을 밀어붙였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비불루스 님이 낙담해 자택에 칩거하는 일도 없었겠죠. 두 개를 내어주고 한 개를 가져오는 게 최선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니라면 지금처럼 상대방에게 내어주기만 하고 이쪽은 하나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니까요.

  "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네. 그렇지만······."

  카토에게는 카이사르에게 이 이상 실권과 인기를 줬다가는 그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마르쿠스의 말처럼 무작정 반대를 하는 걸로 상대를 억누를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게다가 카이사르의 옆에는 이제 폼페이우스마저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크라수스가 견제한다고 쳐도 카이사르를 막을 사람이 귀족파 중에 딱히 보이지 않았다.

  카토는 회의를 능숙하게 이끌어가는 마르쿠스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카이사르에게 실권이 가는 걸 두고 볼 수밖에 없다면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게 최선이겠지······.'

  폼페이우스를 막기 위해 크라수스를 밀어줬던 것처럼.

  카이사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귀족파가 똘똘 뭉쳐 대표자를 내세워야 한다.

  키케로는 무리였다.

  그는 일시적으로 귀족파에 합류했을 뿐, 아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신참자다.

  카토 자신은 귀족들의 신임은 두터워도 민중들의 지지가 약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공화정에 대한 충성도, 정치적인 기반도, 민중들의 높은 지지까지.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이 귀족파에 한 명 있지 않던가.

  나이가 어린 게 유일한 흠이지만 그 정도 흠이야 귀족파가 똘똘 뭉치면 채워주고도 남을 것이다.

  카토는 선거에 이길 방안을 쏟아내는 마르쿠스의 얼굴에서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귀족파가 내세울 차기 대표는 역시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결심을 굳힌 카토는 즉시 귀족파 의원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그는 마르쿠스가 안찰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를 노렸다.

  귀족파 의원들을 소집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 이후의 일도 생각해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내년은 올해보다 더욱 힘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르쿠스의 귀환으로 사기가 높아져 있던 귀족파 의원들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오늘 원로원에서 선거를 미루자는 칙령도 제대로 통과가 되지 않았습니까. 암살자를 규탄하는 저희의 선언도 시민들에게 평판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대로 지지를 회복해 가면······."

  "문제는 카이사르는 그보다 더 빠르게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거라는 겁니다. 전 카이사르를 싫어하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뼛속까지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를 경계하는 겁니다. 그자는 분명 갈리아 속주를 훌륭하게 안정시킬 겁니다.

  지금 로마에 남은 유일한 위협은 북방의 갈리아와 게르만입니다. 이곳마저 평안하게 된다면 시민들은 이제 더는 외적의 침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카이사르는 로마의 평화를 완성한 존재로 시민들에게 기억될 겁니다. 우리가 소소하게 인기를 얻는 정도로는 절대 그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

  "아···듣고 보니···그런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문제점을 인식한 귀족파 의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크라수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폼페이우스 하나만이라면 몰라도 카이사르까지 더해지면 확실히 위험할 수도 있겠군."

  "크라수스 님이 카이사르를 억누를 수 없겠습니까? 사돈이시기도 하고, 지금까지 많은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든 제어할 수 있던 거라네. 하지만 그는 내 영향력 아래서 벗어나기 위해 폼페이우스와의 동맹을 택했지. 폼페이우스가 뒤를 봐준다면 금전적인 면에서도 여유가 생겼을 거야. 게다가 정치적인 영향력만 봐도 폼페이우스는 내 밑이 아니니까······."

  카토가 언짢은 얼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거기에 폼페이우스는 우리에게 없는 군사적인 면까지 갖추고 있으니까요. 군공까지 노리고 있는 카이사르에게는 누구보다 좋은 후원자였을 겁니다."

  메텔루스가 잠깐 말없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대로 민중파의 세상이 되도록 놔둘 수밖에 없는 겁니까?"

  카토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가 안일하게 대처하면 그 미래는 분명 현실이 될 겁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자신들의 구상을 착실하게 실현하고 있던 겁니다. 제가 이걸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습니다. 어제 마르쿠스의 냉정한 상황분석이 없었다면 계속 시야가 좁아져 있을 뻔했어요."

  "그럴 수가······."

  "역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목적은 원로원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입니까?"

  "그렇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원로원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려는 건 확실합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겁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하라는 대로 손을 드는 거수기 역할 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카토의 냉정한 판단에 원로원 의원들의 반응은 극적으로 갈렸다.

  몇몇은 분노로 몸을 떨고, 또 다른 몇몇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반쯤 얼이 빠진 듯 보였다.

  극소수만이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크라수스는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대책을 제시했다.

  "대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닐세. 우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이간질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나. 카이사르가 속주 총독으로 나가면 두 사람은 지금처럼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게 아닌가."

  "오! 그렇군요. 두 사람의 동맹을 깰 수만 있다면 우리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원로원은 지금까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려고 몇 번이나 계책을 짜냈다.

  물론 전부 헛수고로 끝났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동맹은 상상 이상으로 강고했고, 헛소문을 퍼트리거나 공작을 하는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계획 중 태반이 마르쿠스를 통해 유출됐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카이사르가 로마를 비운다면 더 쉽게 이간질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침울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그러나 카토가 그런 희망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그쪽도 이미 우리의 노림수를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미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그자들도 대책을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래도 철저하게 계획을 짠다면······."

  "일단 파고들 여지 자체가 적습니다. 차라리 그 둘이 모두 로마에 있을 때가 더 쉬울 겁니다. 카이사르가 속주 총독으로 간다면 로마에는 폼페이우스 혼자 남습니다.

  그러면 사실상 폼페이우스가 홀로 로마를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사실상 폼페이우스가 안심하고 로마를 휘두를 수 있게 밖을 지켜주는 역할을 맡은 겁니다.

  일단 저는 두 사람을 이간질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비슷한 권력을 가지고 다툴 여지가 있어야 뭔가 시도라도 해볼 텐데······.

  "

  양자동맹이 와해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이익이 충돌하거나, 신뢰가 깨져야 한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완벽하게 역할을 분담했고, 그렇기 때문에 신뢰 관계도 굳건했다.

  "그렇군요. 폼페이우스가 경계심을 품을 정도로 카이사르의 세력이 커진다면 모를까···그 이전까지는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를 쳐낼 이유가 없겠지요."

  메텔루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이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상식적으로 카이사르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봐야 폼페이우스에 비견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위협하는 해적들을 모조리 일소하고 혼란스러운 소아시아를 완전히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고작 북방 속주 3개를 안정화하는 정도로는 폼페이우스의 업적에 비견될 수 없다.

  폼페이우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카이사르에게 5년 기간의 총독 자리를 주는 걸 찬성했을 것이다.

  크라수스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혀를 찼다.

  "그럼 카토,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폼페이우스의 밑으로 들어가자는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방침을 계속 유지하는 게 무리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카이사르에게 대항하려면 귀족파도 구심점이 되는 인물을 확실히 내세워야 합니다.

  다행히도 폼페이우스에게 대항할 사람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바로 크라수스 님이죠. 안타깝게도 폼페이우스가 동방원정을 성공시킨 뒤로는 크라수스님의 지명도가 밀리긴 해도 우리 귀족파가 뒤를 밀어준다면 얼추 비슷하게는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카이사르인데······.

  "

  "카이사르가 북방 속주에 있는 기간은 5년.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면 그 인기는 폼페이우스와 나의 턱밑까지는 쫓아올 수도 있네. 이 원로원에서 누가 5년간 그 정도의 인기를 쌓을 수 있을까···아, 키케로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

  "키케로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더욱 적합한 인물이 있지 않습니까. 마르쿠스라는 아주 걸출한 인재가 말입니다."

  "마르쿠스?"

  원로원 의원들의 분위기가 일순간 술렁였다.

  메텔루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르쿠스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그를 귀족파의 중심으로 삼는 건······."

  "지금이 아니라 5년 뒤를 생각하십시오. 게다가 마르쿠스는 어리긴 해도 현재 원로원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실적도 엄청나고요. 메텔루스, 밖에서 시민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

  "시민들은 올해 비불루스가 집정관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올해를 율리우스와 카이사르가 집정관이었던 해라고 말하고 있어요."

  본래 로마에서는 어떤 해를 말할 때 집정관을 지낸 두 명의 이름을 따서 표기한다.

  원래라면 올해는 카이사르와 비불루스가 집정관이었던 해라고 불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로마 시민들 누구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굴욕적인 표현인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카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 희망을 보았습니다. 몇몇 시민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더군요. 올해 집정관은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아니었느냐고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 정도로 마르쿠스가 안찰관직을 인상적으로 수행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설프게 정쟁을 벌이는 동안 마르쿠스가 얼마나 많은 공적을 쌓았습니까.

  게다가 올해 그가 벌인 사업 중 태반은 내년에 그 결과가 나올 겁니다. 위생의 개선과 새로운 농법의 도입이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낸다면 마르쿠스의 명성은 카이사르 못지않게 치솟을 겁니다. 우리는 그를 귀족파의 새로운 얼굴로 내세워야 합니다.

  "

  "확실히···지금 시민들에게 인기가 가장 좋은 건 마르쿠스입니다."

  "예. 그리고 젊음은 원로원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어도 시민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원로원이 경직된 체제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요."

  의원들의 시선이 현재 귀족파의 중심인 크라수스에게 쏠렸다.

  그는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답을 유보했다.

  "마르쿠스는 아무래도 내 아들이니 말이지···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네. 그러니 이번에 한해서만큼은 나는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을 걸세."

  크라수스를 제외한 의원들은 이후로도 토론을 계속했다.

  하지만 의견을 나누면 나눌수록 해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귀족파는 결국 카이사르를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로 마르쿠스를 선택했다.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를 권력의 중심에 올리는 건 원로원의 정신을 부정하는 일이었으나,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극렬한 공화주의자인 카토가 이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봐온 마르쿠스라면 훗날 권력의 중심에 선다고 해도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올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실제로 안찰관을 맡으라고 했을 때도 마르쿠스는 공화정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았는가.

  그의 행동은 언제나 일관되게 공화정을 위한다는 가치에 맞춰져 있었다.

  카토는 마르쿠스가 자신이나 키케로, 브루투스와 완벽히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확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그를 권력의 중심에 올릴 생각을 한 것이다.

  다른 귀족파 의원들의 동의까지 떨어졌으니 이제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카토는 즉각 키케로와 함께 마르쿠스에게 귀족파의 대표를 맡아달라는 요구를 건넸다.

  마르쿠스는 완강히 거부했다.

  "아무리 귀족파를 위해서라고 해도 이건 공화정의 가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공화정을 훼손하는 건 술라 님이 한 행동과 별반 다를게 없지 않습니까."

  예상대로의 거부반응이 나오자 카토는 도리어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자네에게 독재관까지 되라는 게 아닐세. 그저 귀족파의 대표로서 원로원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지."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십시오."

  "그러지. 하지만 자네가 승낙할 때까지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걸세."

  마르쿠스는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겼다.

  물론 공화정의 가치 같은 건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이런 제안이 올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었으나 예상보다 조금 더 빨랐을 뿐이다.

  지금 이 제안을 받는다면 사전에 구상했던 계획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마르쿠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공화정에 해가 된다고 생각된다면 저는 언제라도 귀족파의 대표를 그만두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겠죠?"

  "물론이지. 역시 자네가 있어줘서 다행일세. 이걸로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겠어."

  카토는 간신히 고비를 하나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르쿠스라면 카이사르 못지않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그런 카토의 기대에 충실히 응했다.

  선거 연기로 시간을 번 귀족파는 시민들에게 환호를 받을 만한 법을 잇달아 통과시켰다.

  원로원의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는 마르쿠스는 사실상 또 한 명의 집정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압도적인 패배가 예측됐던 정무관 선거에서도 예상보다 훨씬 더 선방할 수 있었다.

  물론 집정관은 두 자리 모두 카이사르파에게 넘어갔다.

  카이사르의 장인인 피소와 폼페이우스의 오른팔인 가비니우스가 차기 집정관으로 선정된 것이다.

  뼈아픈 결과였지만 이건 이미 예정된 미래나 다름없었기에 원로원파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8명의 법무관 중 3명, 4명의 안찰관 중 3명, 그리고 호민관은 무려 5명이나 당선시킬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내년에도 귀족파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이 가능했다.

  역시 마르쿠스를 전폭적으로 밀어준 자신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그러나 원로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무관 선거에서 뽑힌 인물 전원이 삼두 연합의 회의에서 결정됐었다는 사실을.

  카토는 물론 키케로조차 순수한 의미의 귀족파 후보는 단 한 명도 당선돼지 못했다는 현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원로원파가 철석같이 자신들의 편이라 믿고 있는 귀족파 정무관들은 대부분 크라수스 가문의 클리엔테스들이었다.

  그들은 원로원보다는 크라수스와 마르쿠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이런 잔혹한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손쓸 수 있는 방도는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 88. 원로원의 새로운 얼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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