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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게르만족 (95/326)

  < 94. 게르만족 >

  94.

  카이사르는 병사들에게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돌보라고 명령을 내린 뒤, 마르쿠스를 따로 총사령관 막사로 불렀다.

  마르쿠스가 막사로 들어갔을 때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오, 왔는가. 일단 여기 앉게."

  카이사르는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부하들에게 몇 가지 요깃거리를 내오게 했다.

  "자네 군단의 사상자 수는 다른 군단보다도 훨씬 더 적더군."

  "예. 아무래도 신형 갑옷과 무기를 사용했으니까요."

  "그 신형 말인데 대규모 공급은 불가능한가? 전 군단을 그걸로 무장시키면 앞으로의 전쟁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은데."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아쉽게도 물량이 따라주질 못합니다. 생산하는데 워낙 수고가 많이 가는 물건이라서요. 등자와 편자처럼 한순간에 대량으로 찍어내는 건 무리입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제 군단병 전원에게 먼저 장비를 돌렸겠지요."

  마르쿠스의 대답을 들은 카이사르가 아쉽다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

  그는 높은 지대에서 이번 전쟁의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지켜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쿠스의 12군단이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네의 군단이 적의 좌익을 돌파한 덕분에 전투 초반부터 균형이 무너졌었네. 다른 병사들도 훌륭히 싸웠지만 스파르타쿠스의 백인대가 특히 눈에 띄더군. 공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그에게는 훈장을 내릴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저도 그는 충분히 훈장을 받을만한 공을 세웠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다른 군단의 백인대장들 역시 용감히 싸웠겠지만, 스파르타쿠스의 백인대는 거의 인당 열 명이 넘는 적을 사살했으니까요."

  "그래. 놀라운 공을 세웠어. 이번 군단에서는 양 날개를 맡은 12군단과 11군단의 분전 덕분에 아군의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네."

  "11군단에도 상당히 뛰어난 백인대장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카이사르가 포도알을 입으로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키우스 보레누스와 티투스 풀로 말인가? 11군단장이 용맹한 백인대장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 다음 전투에서도 그들이 이번만큼의 공을 세우면 그들에게도 훈장을 내릴 생각이네."

  '루키우스 보레누스와 티투스 풀로라······.'

  마르쿠스는 순간 그들을 자신의 군단으로 빼내 올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렸다.

  이번 전투로 확실하게 느낀 사실인데 실력 있는 백인대장의 존재는 군단의 전투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마르쿠스는 12군단을 로마 최강의 정예 군단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에 걸맞은 우수한 백인대장들의 존재는 필수였다.

  마르쿠스가 계획을 구상하는 사이 카이사르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이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생각해야 하나? 자네의 머릿속에 있는 방침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그건 전적으로 카이사르 님의 권한이 아닙니까."

  "물론 나는 이미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렸네. 그런데 과연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말일세."

  "제 능력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어쨌든 말씀드리죠. 일단 지금 바로 군단을 움직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많지 않다고 해도 새롭게 편성한 군단병들은 이런 대규모 전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거의 반나절을 싸웠으니 기진맥진한 병사들이 상당수 있을 겁니다. 이 근방에 있는 하이두이족의 도읍인 비브라크에서 최소 사흘 정도는 머물며 병사들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

  카이사르는 묵묵히 마르쿠스의 말을 들으며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마르쿠스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헬베티족은 재기불능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으니 무리하게 추격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그들의 남은 전력으로는 그 어느 부족과도 전쟁을 벌일 수 없을 테니까요. 그저 그들이 도망간 경로에 있는 링고네스족에게 전령을 보내서 헬베티족을 지원하지 말라는 요청만 해놓으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정확한 상황판단이로군. 내 생각도 그와 같네. 어차피 헬베티족은 전쟁에서 패하고 물자도 모두 빼앗겼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아마 내일이라도 선처를 바란다는 사절을 보내오겠지. 그러면 대략적인 문제가 해결될 테니 우리도 속주로 돌아가야 할까?"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아마 갈리아 족장들이 그걸 원하지 않을 것 같군요. 외부의 위협이 오면 또 다른 외부 세력에게 부탁해 돌려막기를 하는 게 그들의 오래된 관습 아니겠습니까. 카이사르 님의 능력을 확인했으니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겠지요."

  "자네는 나와 거의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군. 역시 앞으로도 종종 자네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어."

  마르쿠스는 대답 대신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카이사르는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건넸지만, 마르쿠스는 전혀 망설임 없이 해답을 제시했다.

  그 모든 게 카이사르의 마음에는 쏙 드는 말들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르쿠스는 역사에서 카이사르가 했던 일 중 정답이었던 사실만을 추려서 이야기해준 것이었으니까.

  두 사람의 예상대로 바로 다음 날 헬베티족은 사절을 보내왔다.

  이전에 끝까지 가보자며 얼굴을 노발대발했던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로마의 자비를 호소했다.

  "저희는 이제 더 이상 로마와 대적할 마음도, 그럴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제시하는 모든 조건에 따를 테니 부디 관대한 처분을 바라옵니다."

  카이사르는 헬베티족의 예상과 달리 이전과 완전히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헬베티족은 즉각 이동을 멈추고 원래 있던 지역으로 돌아갈 것.

  앞으로 로마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갈리아 부족을 침략하지 말 것.

  로마에 부족 유력자들의 자제를 볼모로 보낼 것.

  이 세 가지만 지킨다면 헬베티족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헬베티족에겐 당연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저···관대하신 총독 각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희는 미련이 남지 않도록 모든 도시와 마을을 불태우고 왔습니다.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이대로라면 겨울을 나기가 힘들어집니다."

  "인근의 부족들에게 당분간 헬베티족을 건드리지 말고 지원을 하라 일러둘 테니 걱정하지 말게. 대신 하루라도 빨리 도시를 재건하도록."

  "무, 물론입니다! 이토록 자비로운 결정을 내려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헬베티족은 절대 로마와 로마의 동맹 부족들과 적대하지 않겠습니다."

  사절은 몇 번이나 땅에 이마를 쿵쿵 박으며 감사를 표했다.

  사실 헬베티족은 카이사르가 훨씬 더 가혹한 요구를 해도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의 인구는 36만에서 9만으로 줄어 있었다. 그리고 사망한 인원은 대다수가 전투를 할 수 있는 성인 남성들이었다.

  이 정도면 로마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부족이 아예 멸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끝났다는 데에 사절은 일말의 은혜마저 느낄 정도였다.

  물론 카이사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자비심과 관용이 넘쳐흘러서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일관되게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거기엔 노림수가 있었다.

  헬베티족이 사는 지역을 이대로 비워둔다면 언제라도 게르만이 넘어와서 자리를 잡을 위험이 있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완전히 로마의 패권 하에 끌어들이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려면 갈리아와 게르만을 동시에 상대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갈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인강 서쪽으로 들어와 있는 게르만을 쫓아내야 한다.

  문제는 로마군이 게르만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딱히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굳이 카이사르가 억지로 건수를 만들지 않아도 게르만에게 위협을 느끼는 갈리아인들이 알아서 움직이리라 확신한 까닭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카이사르가 헬베티족을 박살 냈다는 소문은 갈리아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으나, 헬베티족은 결코 만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약탈한 세콰니족과 하이두이족은 갈리아 최강의 일각으로 꼽히는 부족들이었다, 거기에 옛날이기는 하지만 로마 역시 헬베티족에게 패배해 집정관이 전사한 적도 있었다.

  이런 헬베티족을 가볍게 패퇴시킨 카이사르의 명성이 드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갈리아의 부족장들은 자연히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부족장 회의를 열기로 했다.

  비브라크테에 주둔 중인 카이사르도 이 소문을 들었으나 딱히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어떤 말이 오갈지는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뒤 하이두이족의 장인 디비키아쿠스는 카이사르와 면담을 청했다.

  그리고 역시 카이사르가 마르쿠스와 나누었던 예상과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부탁을 해왔다.

  "위대하신 로마의 총독 각하, 현재 갈리아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급한 상황입니다. 수에비족의 수령인 아리오비스투스가 이끄는 게르만인들은 현재 레누스 강 서쪽을 자신들의 영토로 삼아 끝없이 세력을 불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만 5천밖에 되지 않았던 무리가 지금은 12만에 가깝게 불어났다고 합니다. 이들을 이대로 놔두면 갈리아 전역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대해질 겁니다.

  "

  "자네들에게는 곤란한 상황이겠군."

  "곤란한 정도가 아닙니다. 위대한 로마가 상황을 중재해주지 못한다면 저희는 헬베티족처럼 게르만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희는 수에비족과 싸워서 이길 만한 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각하라면, 각하가 이끄는 로마의 군단이라면 능히 게르만을 몰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디 아리오비스투스에게 굴욕을 강제당하는 갈리아를 해방해 주십시오. 저만이 아닌 이 근방의 부족 전원이 마음속 깊이 바라는 일이옵니다.

  "

  "그대들은 로마라면 게르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총독 각하께서는 그 용맹한 헬베티족을 단 한 번의 전투로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게르만도 이길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제발 갈리아를 파멸의 위기에서 구해주십시오."

  절절한 부탁이긴 했지만, 요약하면 자기네 대신 골치 아픈 적을 쓰러뜨려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책임 떠넘기기에 가까웠으나 카이사르는 흔쾌히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원로원에 보낼 보고서에 갈리아 부족들의 서명을 집어넣었다.

  이건 로마가 멋대로 타민족의 분쟁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한 문서로 남겨놓은 것이다.

  마르쿠스도 이 전쟁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원로원에 보내는 서신에 적어두었다.

  <게르만족이 갈리아에서 이대로 세력을 키우면 반드시 로마로 침입해 올 게 뻔합니다. 킴브리족과 벌였던 아라우시오 전투를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에비족이 세콰니족의 영토를 장악하면 로마의 속주와는 론 강을 경계로 바로 접하게 됩니다. 게르만족이 갈리아에서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쿠스의 편지는 간결하게 핵심만을 담고 있었다.

  로마 원로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아라우시오 전투는 고대 로마가 겪었던 패전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손해를 보았던 악몽이었다.

  무려 8만에 가까운 로마 시민들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끔찍한 패배가 있었기에 마리우스는 로마군의 체제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개혁을 실행할 수 있었다.

  이후 게르만의 침입을 이겨내긴 했으나, 로마의 귀족들에게 게르만족이란 여전히 존재만으로도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자들이었다.

  원로원은 이번만큼은 카이사르가 마음대로 하게 해주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원로원의 허가를 받은 카이사르는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아리오비스투스에게 사절을 보내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지금 즉시 라인 강 동쪽으로 돌아가라는 터무니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차지하고 있는 영토로부터 단 한 걸음도 론 강 유역으로 접근하지 말 것.

  지금까지 붙잡아둔 갈리아 부족의 볼모를 돌려보낼 것.

  로마와 우호 관계에 있는 갈리아 부족들에게 더 이상의 도발 행위를 삼갈 것.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카이사르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 제안을 수락한다면 아리오비스투스와 그의 부족은 앞으로도 로마의 친구라는 칭호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로마의 방위를 책임지는 나 카이사르는 이걸 로마의 동맹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이건 아리오비스투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그는 즉각 로마의 일방적인 요구에는 따를 생각이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게르만도, 로마도 갈리아에서는 똑같은 외지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게르만 역시 로마처럼 갈리아인이 넘어와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황이 좋지 않아졌으니 돌아가 달라고 하면 누가 말을 듣겠는가.

  아리오비스투스는 로마라는 이름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게르만인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언제나 무술 수련에 매진해 전사 개개인의 전투력이 굉장히 높았다.

  지금까지 갈리아의 그 어떤 부족도 아리오비스투스를 막아내지 못했다.

  로마와 자웅을 겨루기로 결심한 아리오비스투스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즉각 부족의 전사들을 소집하고 라인강 동쪽으로 사람을 보내 더욱 많은 전사를 보강하려 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군단을 움직였다.

  아리오비스투스가 세콰니족의 본거지인 브장송으로 향한다는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에 행군속도를 올렸다.

  헬베티족과의 전투 이후 푹 휴식을 취한 군단병들은 아무런 불만 없이 카이사르의 명령에 따랐다.

  덕분에 아리오비스투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 카이사르는 브장송을 쉽게 손에 넣었다.

  브장송은 세콰니족의 본거지라는 것 외에도 삼면에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요새였다.

  이 전략적 요충지를 피해 없이 손에 넣은 것은 의미가 컸다.

  세콰니족은 사실 게르만과 갈리아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을 타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 이기는 쪽의 편에 붙을  생각이었으나, 카이사르의 빠른 행군이 그런 잔머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당장 로마군을 눈앞에 마주한 그들은 수에비족과의 관계를 당장 끊겠다고 맹세했다.

  카이사르는 강행군의 피로를 풀고 군량을 보급하기 위해 브장송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브장송에 머물고 있는 게르만 상인들과 접촉한 게 문제의 근원이었다.

  로마 병사들은 게르만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과거에 전쟁을 벌여 패배한 적도, 승리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였다.

  병사들은 자신들 나름의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게르만 상인들을 찾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이 게르만 상인들은 체구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평균적인 로마인들보다도 더 건장한 갈리아인보다도 더 체구가 크고, 눈도 부리부리했던 것이다.

  심지어 게르만 상인은 게르만의 병사들은 자신보다도 더 체격이 좋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게르만 전사들의 용맹은 갈리아인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놈들은 우리와 전투를 할 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더군요. 그러니 제대로 된 싸움이 될 리 있겠습니까? 그냥 일방적으로 유린했다고 하더군요. 갈리아 최강이라는 하이두이족도 게르만의 막강한 전사들 앞에서는 그저 어린아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이 생생한 묘사는 즉각 로마군 사이에 퍼져나갔다.

  경험이 부족한 신병들이 가장 먼저 공포에 잠식당했다.

  이건 마르쿠스가 이끄는 12군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병사들의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스파르타쿠스가 즉각 보고를 올렸다.

  "병사들의 사기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카이사르 님께 보고는 드렸으니까 그쪽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릴 방법을 생각하겠지. 그런데 너는 딱히 그런 기색이 없어 보이는데 게르만족과 싸워도 아무렇지도 않아?"

  "당연하지요. 저는 검투사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게르만의 투사들과 싸워봤습니다. 확실히 건장하고 힘이 좋은 검투사들이 많았던 것 같지만, 그냥 딱 그 정도의 기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이야기를 너희 백인대한테는 해줬어?"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 백인대의 병사들은 게르만인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쭉 폈다.

  그 확신 어린 말을 들은 마르쿠스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거 잘하면 군단의 사기를 한층 더 높일 수도 있겠는데?'

  < 94. 게르만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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