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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집트의 여인들 (99/326)

  < 98. 이집트의 여인들 >

  98.

  로마군은 단 하루 만에 아군 사망자의 시체를 매장하고 부상자들을 수습했다.

  그 정도로 아군의 피해는 미약한 수준이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전군의 1할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지만 이번에 받은 피해는 그 반의반조차 되지 않았다.

  사망자는 고작 백 단위였고 부상자들을 합해야 일천을 넘겼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적극적으로 공격을 전개한 좌익 정도였다.

  그마저도 마르쿠스의 12군단이 아닌 11군단에 집중되어 있었다.

  12군단의 사상자 수는 고작 수십.

  가장 격렬한 임무를 수행한 군단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은 피해였다.

  이 위대한 승리는 즉시 갈리아 전역과 라인강 동쪽으로 전해졌다.

  카이사르는 일부러 동맹인 갈리아 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승전보를 전하게 했다.

  아군의 사상자는 수백에 불과한데 적군의 거의 대다수는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이 전투를 직접 목격한 하이두이족과 세콰니족은 새삼 로마의 힘을 실감하고 두려움과 경외의 감정을 동시에 품었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명에 따라 부족장 회의에서 로마군의 가공한 위력을 똑똑히 전했다.

  도주에 성공한 극소수의 게르만 전사들도 믿기지 않는 패전 소식을 자신의 동포들에게 말해주었다.

  라인강 동쪽에 진을 치고 있던 수에비족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도강을 포기했다.

  그들은 챙겨왔던 무기와 식량을 가지고 도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 게 겨우 절반의 병력으로 사상자가 거의 없이 10만의 대병력을 전멸시킨 로마군의 위엄은 갈리아를 넘어 게르마니아에까지 전해졌다.

  카이사르는 이번 전쟁의 가장 큰 공로자로 마르쿠스와 그가 이끄는 12군단, 특히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제 1대대 제 2백인대를 꼽았다.

  "마르쿠스의 공이 없었다면 헬베티족과 게르만족의 싸움에서 아군의 피해는 몇 배로 불어났을 것이다. 게다가 게르만족과의 대결에서 그토록 완벽한 포위망을 구성하지도 못했을 테지.

  스파르타쿠스 역시 마르쿠스 군단장의 명령을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하며 아군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특히 게르만의 투사 헤르문트를 상대로 보인 압도적인 실력은 아군의 사기를 고취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보내는 보고서에도 마르쿠스가 세운 공을 상세히 적어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원로원은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다.

  카이사르가 공을 세운 건 찝찝했으나, 마르쿠스가 그 공의 상당수를 함께 누리게 됐으니 상관없었다.

  원로원은 마르쿠스의 공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갈리아 전쟁 첫해에 거둔 두 차례의 승리를 영웅적인 승리라 공표했다.

  8개 군단 4만8천의 병력이 큰 전투를 연달아 두 번이나 치렀는데도 4만7천 이상이 전력을 온전했다.

  마르쿠스와 스파르타쿠스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겨우 이 정도의 손실로 끝내긴 힘들었으리라.

  원로원은 일부러 카이사르보다는 마르쿠스의 공을 더욱 더 강조하여 선전하는 수법을 썼다.

  카이사르는 아직 숙영기는 아니었지만, 병사들의 공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휴식을 주기로 결정했다.

  로마군은 겨울철 숙영이라는 형태로 세콰니족의 도읍인 브장송에서 다음 해까지 머무르게 됐다.

  이는 부하들의 회복만이 아닌 라인강 서쪽 유역을 완전히 로마의 지배하에 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마르쿠스는 세콰니족에게 알자스 지역의 개발에 관한 합의를 준수하라 일렀다.

  로마군의 힘에 경도된 세콰니족은 마르쿠스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겠노라 맹세했다.

  전후 처리를 끝낸 카이사르는 원래 자신의 임지인 속주로 돌아갔다.

  전쟁으로 미뤄둔 행정과 재판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마르쿠스도 그를 따라서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로 귀환했다.

  그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나가 있는 동안 도착한 수많은 보고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밀린 행정을 처리하기에 앞서 마르쿠스와 함께 로마에서 온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했다.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참 많이도 일이 쌓였군."

  "그런가요? 전 오히려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매일같이 파묻혀 있던 산더미 같은 보고서에 비하면 지금 건 약과였다.

  마르쿠스는 오히려 지금 특별휴가를 받아 요양을 취하러 온 기분에 가까웠다.

  폼페이우스에게서 온 두꺼운 서신을 집어 든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우리의 친우인 위대한 폼페이우스가 어떻게 일을 처리했는지 한 번 보기로 할까요?"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 혼자서도 충분히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많은 조치를 해놓았다.

  덕분에 폼페이우스의 보고서에는 일이 잘못됐음을 하소연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얼마나 멋지게 원로원을 억누르고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냈는지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태반이었다.

  올해의 집정관은 두 명 모두가 카이사르 파의 인물이었고, 다른 선출직들도 전원 삼두의 입김이 미치는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원로원 최고의 공격수인 카토도 키프로스로 떠나 이제 막 귀환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마음먹은 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폼페이우스의 서신을 끝까지 읽은 카이사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깃펜을 빙빙 돌렸다.

  "마그누스가 행한 이 위대한 업적을 어떤 문장으로 칭송해야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이렇게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냈는데 그에 상응하는 답신이 없다면 그가 실망할 테니까."

  "이렇게 잘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는 논지로 대충 찬사를 늘어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의 서신을 한구석으로 밀어놓고 다음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셉티무스와 다나에가 작성한 사업 보고서와 크라수스가 보낸 서신이 눈에 띄었으나, 그보다 먼저 율리아가 보낸 편지를 펼쳤다.

  그녀의 서신은 첫 줄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애정으로 가득했다.

  특히 마르쿠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쌍둥이들의 근황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은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답니다. 그런데 최근 떼를 쓰는 일이 잦아졌어요. 어머님께 물어보니 원래 이 시기의 아기들은 그렇다고 하니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하루가 갈수록 더 사랑스럽게 변하고 있어요. 당신이 내년쯤 돌아오면 얼마나 기뻐할지 벌써부터 상상이 돼 웃음이 나오네요.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치지 않고 돌아오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 알고 계시죠? 언제나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위대한 신들에게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마르쿠스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편지의 내용을 살짝 훑어본 카이사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비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감상을 입에 담았다.

  "사랑이 뚝뚝 묻어나오는 아주 좋은 보고서로군,"

  "···이건 보고서가 아니라 사적인 편지입니다."

  "몇몇 표현은 참으로 인상적이라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군. 율리아는 자네를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는 건가? 언뜻 보니 나의 별이니, 나의 사자니, 나의 태양이니 하는 온갖 낯간지러운 말이 총출동했던데. 그러면서도 이 아비는 마지막에 딴 한줄 언급하고 끝나는군. 역시 이래서 자식은 키워봐야······."

  "크흠, 이 이야기는 이쯤 하도록 하죠."

  부부 사이의 애칭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마르쿠스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율리아의 편지를 내려놓고 다른 보고서를 집었다.

  다나에와 셉티무스의 서신은 평이한 내용이었다.

  사업은 순항을 보이고 있었고, 동방속주의 준비는 한층 더 완벽해지고 있었다.

  카프카스 산맥에서 채굴하는 철광석도 이제 안정단계에 들어갔다.

  덕분에 무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어마어마한 양의 강철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여기에 알자스의 철광석까지 더해진다면 적어도 강철의 공급은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철광석의 수송인데···뭐, 그 부분은 차차 고민해봐야지.'

  마르쿠스는 마지막으로 크라수스가 보낸 두루마리를 펼쳤다. 의외로 흥미로운 내용은 이쪽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다.

  크라수스는 마르쿠스의 빈자리를 대신해 원로원을 완벽히 제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기사계급의 이득을 착실하게 대변하기까지 했다.

  앞서 폼페이우스가 일을 완벽히 처리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던 것도 크라수스의 이런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폼페이우스는 그런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크라수스의 정치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마르쿠스가 서신에서 주목한 부분은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카토가 마침내 키프로스를 합병시키고 돌아왔더구나. 아직 세부작업이 다 끝나려면 몇 년은 남았지만, 적어도 재산환수는 거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다.

  카토의 보고서에 따르면 금과 은이 담긴 거대한 궤짝만 해도 2천 개가 넘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막대한 재산일지 짐작은 가겠지?

  거기에 키프로스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사고까지 있었단다. 키프로스 합병안을 제출한 클로디우스는 그 사실에 오히려 의기양양한 듯 보였다.

  시민들은 저 어마어마한 재산 일부가 자신들을 위한 지출에 사용된다고 하니 조금도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고. 원로원은 어차피 자신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유유자적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물론 이집트의 상황은 조금 다른 듯했다. 듣자 하니 알렉산드리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구나. 얼마 전에 프톨레마이오스 아울레테스의 사절이 로마로 망명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에 그렇게 하라고 말해줬다. 너는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였으니 이 이후의 구상도 가지고 있겠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너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마.>

  "이집트라······."

  이전에 보았던 아울레테스의 근심 어린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의 재잘거리던 수다가 아직까지 귀에 선명한 느낌이었다.

  파라오의 계승권 문제는 허투루 처리할 만큼 간단한 사안이 아니었다.

  원로원과 폼페이우스에게 끝까지 맡겨둬서는 괜히 일을 더 꼬아놓을 우려가 있었다.

  마르쿠스는 즉각 양피지를 가져와 크라수스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머나먼 갈리아 속주에서도 로마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

  크라수스의 편지에 적힌 내용대로 이집트의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원인은 역시 눈뜨고 키프로스를 빼앗긴 아울레테스의 실정이었다.

  사실 친 로마파인 아울레테스가 로마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는 없으니 그로서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울레테스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왕권을 보장해준다고 해놓고 갑자기 키프로스를 뺏어가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다급히 마르쿠스와 연락을 취해보려 했으나, 마르쿠스는 이미 갈리아로 떠난 뒤였다.

  결국 키프로스에 있는 막대한 재산은 고스란히 로마의 국고로 들어가게 됐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남동생은 자결했다.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분노한 사람은 아울레테스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토를 빼앗긴 다음에 이런 핑계를 대봐야 먹힐 리가 없다.

  분노에 가득 찬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은 연일 무능한 왕을 규탄했다.

  이 분위기를 감지한 알렉산드리아의 기득권층은 새로운 파라오를 옹립하기로 했다.

  친로마파인 아울레테스와 그의 측근들을 밀어내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현 파라오의 딸인 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에게 접근했다.

  원래부터 사치와 향락, 권력을 탐하던 그녀는 넙죽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왕좌를 두고 다투는데 혈육의 정이 끼어들 여지 따위는 없었다.

  베레니케 4세는 자신을 지원하는 신하들의 병력을 이끌고 재빠르게 왕궁을 점령했다.

  지지기반이 붕괴한 아울레테스는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바로 얼마 전까지 아버지가 앉아있던 왕좌를 차지한 그녀는 오랜 숙원을 이루었다는 기쁨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베레니케 4세는 평소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보석과 황금을 좋아했다.

  그런 그녀에게 파라오의 왕좌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에 빠질 것 같은 자리였다.

  "그래, 도망간 아버지···아니, 선왕의 신병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송구합니다. 이미 사전에 낌새를 눈치채고 항구에 배를 준비시켜두었던 듯합니다."

  "빠르기도 해라. 뭐, 원래부터 겁쟁이였으니까."

  베레니케는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조소를 흘렸다.

  무능력자에 겁만 많은 아버지가 어디를 가던 자신에게 위협이 될 거라는 판단은 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식견이 떨어지는 그녀에게 파라오란 아직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신의 대행자였다.

  로마가 이집트보다 강하다고는 해도 파라오인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멍청한 아버지는 이 권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자리에서 쫓겨났을 뿐이다.

  그녀는 평소보다도 더 화려한 보석과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궁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디를 가더라도 신하들이 극도의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왕좌가 가져다주는 권위에 흠뻑 취한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들을 소집했다.

  평상시라면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았을 두 사람도 파라오의 명에는 거역할 수 없었다.

  베레니케는 긴장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내 말을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건 정말 오랜만이구나."

  "어찌 파라오의 명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클레오파트라의 정중한 답변을 들은 베레니케는 한층 더 기고만장해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였더라? 나는 파라오로서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었는데 말이야. 아르시노에였지, 아마?"

  베레니케의 시선을 받은 아르시노에는 어물쩍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실언이었습니다.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호호호, 그래. 그렇게 솔직하게 사죄를 하면 나도 용서할 마음이 있단다. 나는 파라오니까 그에 합당한 그릇을 보여야지. 어차피 아직 한참 어린 너희 따위야 경쟁상대도 되지 않는데."

  고개를 숙인 아르시노에는 굴욕감으로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베레니케의 기분에 따라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는 오늘 당장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저 변덕스러운 언니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는 게 중요했다.

  클레오파트라가 극도의 공경심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파라오께서는 앞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어떻게 이끌어나가려고 하시나요? 로마와의 관계도 생각하셔야 할 텐데요."

  "로마? 뭐···그 힘만 센 야만족 놈들은 적당히 구워삶아야겠지?"

  "로마 원로원은 이전에 선왕의 권위를 보장하겠다는 결의안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도주한 선왕이 이 결의안을 지켜달라고 원로원에 요구하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질 수도 있어요."

  "흥,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이미 대처법을 다 생각해 두었어."

  베레니케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클레오파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로원과 협상하실 생각이신가요?"

  "협상이라면 협상이겠지. 저번에 원로원의 대표로 온 그놈이 누구였지? 선왕과 원로원의 사이에 다리를 놔줬다는 그 하찮은 귀족 놈."

  아르시노에가 눈살을 찌푸리며 베레니케의 말을 정정했다.

  "마르쿠스 님이에요. 로마의 실권을 잡고 있는 귀족이니 절대 하찮은 사람은 아니죠."

  "오, 우리 동생이 언제부터 로마의 정계에 그리 관심이 많았니?"

  "저번에 사절단이 알렉산드리아에 왔을 때 직접 봤으니까요. 절대 만만한 분이 아니에요."

  "아아···그래, 그래. 너희 둘은 그때 로마 사절단과 꽤나 붙어 다녔었지?"

  베레니케는 사절단이든 뭐든 연회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쿠스가 누구인지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물론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최대한 표정관리에 힘쓰며 충고를 건넸다.

  "알렉산드리아에 혈풍이 불지 않으려면 최대한 신중하게 협상을 하셔야 할 거예요. 아르시노에의 말처럼 절대 만만한 분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해요."

  "흠···자기 잘난 맛에 사는 너희 둘이 그렇게까지 평가할 정도면 꽤 괜찮은 남자인가 보지? 그러면 나야 더 좋지."

  "파라오께 더 좋다니요?"

  "협상 말이야, 협상. 나한테 다 계획이 있다고 했잖아? 요지는 그 마르쿠스란 인간만 구워삶으면 원로원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는 거 아니야? 그러면 간단하지."

  아르시노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니까요."

  "쯧, 아직 여자라고도 할 수 없는 너희들에게나 쉽지 않겠지. 상대가 남자라면 나는 하루 만에 완전히 홀릴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예? 서, 설마······."

  베레니케의 말뜻을 이해한 아르시노에의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그, 그런 게 먹힐 리가 없잖아요."

  "어째서? 남자라면 누구나 다 권력욕과 성욕에 환장하는 법인데. 이 나를, 파라오를 하룻밤 동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데 넘어오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베레니케는 고혹적인 표정으로 술이 담긴 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런 사소한 동작에서조차 요염함이 묻어나왔다.

  확실히 남자라면 한 번쯤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출중했다.

  외모만이 아니라 날씬하고도 육감적인 몸매는 남심을 끓어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파라오라는 자리까지 더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을 남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그래도 그분은 저나 언니와 있을 때 여자를 탐하는 듯한 기색은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어요."

  "그거야 너희 꼬맹이들을 상대로는 아무런 정욕도 일지 않을 테니까. 상식적으로 누가 너희 같은 아이들을 보고 욕정이 생기겠니?"

  "그, 그건······."

  아르시노에는 울상이 된 채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여전히 담담한 신색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계획 같네요. 물론 성공한다면 말이에요."

  "성공할 게 확실하니 나쁘지 않은 계획이 확실하지. 뭐, 두고 보면 알 거야. 누구 말이 맞았는지."

  자신만만한 베레니케의 미소에 클레오파트라도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예. 지켜보면 알겠지요. 누구의 생각이 옳았는지."

  < 98. 이집트의 여인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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