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 마르쿠스의 군단 (103/326)

  < 102. 마르쿠스의 군단 >

  102.

  "우오오오!"

  판금 갑옷을 장비한 백인대는 거침이 없었다.

  적들은 자신들을 절대 죽일 수 없다는 확신이 1만 5천의 인파를 향해 몸을 날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촤아악!

  스파르타쿠스가 전열에 선 적을 베어 넘기는 순간, 다른 병사들도 이에 뒤질세라 사나운 기세로 짓쳐 들었다.

  육신이 베이고 찢기는 흉측한 파육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로마 백인대는 벨가이 전사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창이나 작은 도끼는 그냥 몸으로 받아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무게를 실어서 내리치는 롱소드 검격 한 번에 한 명의 적이 고혼이 됐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가 사용했다는 전설의 신병 하르페가 이와 같은 위용을 자랑했을까.

  그 누구도 로마군을 막지 못했다.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백인대는 일방적으로 핏물을 흩뿌리며 쓰러지는 벨가이 전사들을 무너뜨리며 쭉 앞으로 전진했다.

  "병사들은 홀로 돌출되지 말고 대형을 지켜라!"

  스파르타쿠스는 일검에 한 명씩 정확하게 적을 격살하면서도 냉정하게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판급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혼자서 수백이 넘는 적에게 둘러싸이면 당연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마 백인대는 철저하게 혼자서 적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롱소드는 휘두르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기존의 로마군처럼 밀집대형을 펼칠 수는 없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홀로 너무 적진에 파고드는 경우가 생길 위험이 있었다.

  스파르타쿠스는 그런 부하가 생기지 않도록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

  공포에 질린 네르비족 전사가 찌른 창이 로마군의 갑옷에 튕겨 나왔다.

  온 정신을 집중해 관절 부위를 정확히 타격해도 될까 말까 한데 무차별적으로 내지르는 공격이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공격을 받은 로마 병사 한 명이 창날을 잡고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전의를 상실한 네르비 전사는 무기를 손에서 놓고 허겁지겁 뒤로 도망갔다.

  판금 갑옷을 아무리 때려도 자신들의 무기가 상하고, 어떤 방어구로 막아보려고 해도 롱소드의 검격을 두 번 이상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으아악!"

  "크악!"

  "사, 살려줘!"

  "괴물이다! 저놈들은 인간이 아니야! 괴물이라고!"

  실제로 로마군에게 베여 죽는 사람보다는 공포에 질려 도주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런 난전에서 전열의 병사들이 퇴각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네르비족의 지휘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수습해 보려고 해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스파르타쿠스는 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는 곳을 최우선으로 공격했다.

  뒤따라온 로마 군단이 아비규환이 된 벨가이 전사들을 덮쳤다.

  이들의 무장은 판급 갑옷과 롱소드로 무장한 백인대보다 아래였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벨가이 전사들의 전열은 로마군의 돌진을 막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퍼억! 촤자자작!

  로마군은 방패와 글라디우스로 일방적으로 적군을 두들기고 찔러댔다.

  기병을 거의 운용하지 않는 네르비족의 병력 편성 상 이렇게 보병이 완전히 밀려버리면 전투는 사실상 끝이나 다름없다.

  앞선 마르쿠스의 선언대로 이건 전쟁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력이자 학살에 가까웠다.

  전황이 이러니 마르쿠스는 군단을 지휘할 필요조차 없었다.

  대대장과 백인대장들이 알아서 병사들을 조율하며 일방적으로 적들을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도 훨씬 더 위력적이로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저 앞에서 적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스파르타쿠스의 백인대를 주시했다.

  엄청난 활약을 할 거라고 기대는 했으나 이건 상상 이상의 파괴력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마르쿠스가 만든 판금 갑옷은 중세후기의 판금 갑옷과 완전히 동급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긴 어려웠다.

  분명히 아직 몇 군데 어설픈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제철 기술을 끌어올렸어도 장인들의 미묘한 경험 차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들과의 상대적인 기술 차이를 고려한다면, 중세 시대의 판금 갑옷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고대 시대의 무른 철로는 어떤 무기를 쓰더라도 판급 갑옷을 부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공격에서 절대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판금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상대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가장 효과적인 건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무기로 압사시키는 것이다.

  투석기나 발리스타에 맞는다면 제아무리 판금 갑옷을 입고 있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커다란 둔기류로 타격해 내부에 충격을 주는 방법이 있다.

  한 번으로는 안 되고 다수의 병사들이 수십 번은 때려야 무력화를 시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대처는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절 부위를 정확하게 노려 갑옷의 약점을 찌르는 방법이 있었다.

  물론 격하게 움직이는 상대방의 관절을 정확히 노려 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도 다수의 병력으로 둘러싸서 운이 좋게 공격이 들어갈 때까지 무기를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뭐···판금 갑옷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자들이 바로 이런 방식을 떠올릴 수는 없겠지.'

  용맹하기로 소문난 벨가이 전사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그들이 멍청해서도, 기존의 명성이 거짓이어서도 아니었다.

  처음 접해 보는 미지의 상대에게는 어떤 수단을 써야 좋을지 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거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란 곧바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벨가이 전사들은 자신들의 무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판금 갑옷 병사들의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존의 인지를 훌쩍 벗어난 적과 갑작스레 맞닥뜨려버렸으니 그 충격과 공포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벨가이 전사들은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심리적으로 붕괴해버렸다.

  특히 미신을 많이 믿는 고대 부족의 특성상 이런 두려움은 곧바로 신화적인 요소와 결부됐다.

  그들에게는 로마의 병사들이 휘두르는 무기가 마치 신들이 내린 무구처럼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자신들의 무기로 흠집조차 내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한 번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더 싸움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졌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 때문에 전황이 예상보다 더 한순간에 기울어버린 것이다.

  처음에 기세등등하던 네르비족 지휘관은 전사들을 이끌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멍청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스파르타쿠스가 앞을 가로막는 적을 거침없이 쓰러뜨리며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은색의 궤적이 한 번 전방을 훑으면 어김없이 한 명 이상의 전사가 땅바닥에 허물어졌다.

  네르비족의 지휘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군의 본대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눈이 저 멀리 로마군의 진영으로 돌격한 동료들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처음에 비해 조금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스멀스멀 뒤쪽의 강가를 향해 밀려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여, 여기서 뭘 해야······.'

  믿었던 본대마저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른 경험이 무색할 정도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상식을 벗어난 전장의 흐름에 판단력이 마비되어 버린 까닭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스파르타쿠스의 백인대와 일방적으로 참살당하는 부하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싸움은 이미 끝났다.

  로마군은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었다.

  절대로 대적해서는 안 되는, 감히 싸울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되는 자들이었다.

  그릇된 판단으로 전사들을 개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감이 가슴을 옥죈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휘관은 땅에 뿌리라도 내린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에게 목이 베이는 그 순간까지, 경악과 충격만이 그 얼굴에 가득할 따름이었다.

  "곧 있으면 끝나겠군요."

  "그렇군."

  "군단장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 위대한 승리도 없었을 겁니다."

  마르쿠스를 보좌하는 나팔수가 잔뜩 들뜬 기색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2군단만이 아니라 카이사르가 이끄는 본대도 적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벨가이 연합의 측면은 지휘관의 사망과 함께 무력화되어 군사 태반이 전투를 포기했다.

  마르쿠스에게는 더없이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스파르타쿠스의 백인대에게 귀환하라는 신호를 보내."

  "알겠습니다."

  나팔수가 신호를 보내자 막 도주하는 자들을 쫓으려던 스파르타쿠스가 우뚝 멈추었다.

  한 번 뒤를 돌아본 그는 백인대에게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파르타쿠스의 백인대만 돌아오게 한 이유는 뻔했다.

  이제 곧 카이사르의 본대와 합류하게 되니 판금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활약을 했으니 소문으로는 다 퍼지겠지만, 실물만 보여주지 않으면 대충 얼버무리는 건 가능하리라.

  "군단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갑옷과 무기를 만드신 겁니까? 역시 불카누스 신께서 지혜를 주셨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나팔수가 다시 마르쿠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마르쿠스는 병사들이 자신을 불카누스의 아들이라 부른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글쎄···자네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오오오! 역시."

  아무리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라도 신과 연관되면 납득을 해주는 게 고대 시대의 편리함이다.

  나팔수는 경이로운 눈길로 마르쿠스와 위풍당당하게 귀환하는 스파르타쿠스를 번갈아 살폈다.

  "군단장님께서 이끄시는 한 어떤 적과 만나도 패배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믿어주니 고맙군. 하지만 저 갑옷도 아직 완벽한 건 아니야. 하다못해 아직 이름도 제대로 붙여주지 못했으니까."

  "이름이요? 그런 건 그냥 대강 붙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안 되지. 우선 갑옷의 심미적인 부분도 개선해야 해. 조금 더 뭐랄까···아니, 그것까지는 말할 필요 없겠지."

  나팔수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공감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이건 지극히 마르쿠스의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서 좀 더 로마스러운 느낌이 나면 좋겠는데···이름이라도 그럴싸한 걸 붙여 주면 되려나. 풀 플레이트를 직역해서 로리카 플레나 라미넴? 흠, 어째 느낌이 조금 안 사는데.'

  마르쿠스는 일단 귀환한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공을 치하했다.

  백인대의 병사들 중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병사들 중 몇몇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해 대열을 이탈했다가 꽤 많은 공격을 받아 피멍이 들었다.

  다른 갑옷을 입고 있었다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굳이 마르쿠스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파르타쿠스는 이런 부주의한 병사들을 엄하게 질책했다.

  이내 백인대 전체가 다른 갑옷으로 환복을 마치자 그는 마르쿠스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희도 다시 전선에 합류할까요?"

  "아니 됐어. 너희는 충분히 활약했으니 여기서 쉬고 있도록 해. 그런데 실제로 저걸 입고 전투를 한 감상은 어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너무 뛰어난 장비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병사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성능이 너무 좋습니다."

  "하긴···조금 전만 해도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한 자들이 나왔으니까."

  "그리고 대다수의 병사들은 저렇게 양손으로 잡는 검을 사용한 적이 없는 점도 문제입니다. 상당수의 공격이 효율적이지 못하게 들어갔습니다. 적을 일격에 죽일 수 있었던 건 그저 무기의 질이 압도적으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역시 너를 데려오길 잘했어."

  마르쿠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완벽한 갑옷이네, 신이 내린 장비네 하며 그저 찬양하는 다른 병사들과는 달랐다.

  스파르타쿠스는 언제나 냉정하게 현상을 고찰했다.

  아마도 그가 지닌 끝없는 향상심 덕분일 것이다.

  "갑옷이 방어력이 좋다고 무작정 맞아주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소소한 충격은 내부에 전해지니까요. 물론 전투 초반은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 일부러 공격을 허용해 주는 게 좋겠지만, 실제 전투가 시작된 뒤에는 지양해야겠지요. 갑옷의 방어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무기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검술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그건 너한테 맡길게. 필요한 지식은 알려줄 테니까 그걸 바탕으로 고민 좀 해봐. 좋은 도전이 될 거야."

  마르쿠스는 이번 실험을 통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역시 아직 판금 갑옷을 군단의 주력으로 채용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스파르타쿠스의 말대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들의 숙련도가 너무 떨어졌다.

  단순히 장비의 우월함만으로 적을 찍어 누르려고 하면 병사들의 질적인 하락을 피할 수 없다.

  그건 마르쿠스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현시대에서 판금 갑옷의 생산비는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중세후기에도 판금 갑옷은 돈 잡아먹는 하마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그게 한층 더 심했다.

  실험에 쓸 장비 100개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갔다.

  이번에 포로로 잡은 벨가이인에게 전부 몸값을 받아내도 충당이 안 될 정도로 소모가 컸다.

  기밀유지에 신경을 쓰느라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런 고가의 장비를 미숙련 병사들에게 입히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돈 낭비에 가까웠다.

  '역시 판금 갑옷은 엄격한 훈련을 거친 소수 정예에게 주고 군단의 주력은 로리카 세그멘타타로 가야겠어.'

  마르쿠스는 착실하게 적을 무너뜨리는 12군단의 병사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가 도입한 트랜지셔널 아머의 일종은 이미 로리카 세그멘타타라는 이름까지 붙은 상태였다.

  단순한 실험용 갑옷이라기에는 굉장히 효과가 좋았다.

  갑옷의 모양은 원 역사에서의 로리카 세그만타타와 비슷하게 보였으나, 방어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것도 단가가 제법 나가긴 했어도 판금 갑옷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가성비를 아예 따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갑옷의 디자인에서 로마스러움이 듬뿍 느껴진다는 게 가산점이 붙었다.

  마르쿠스가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전투는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사기가 바닥을 친 벨가이 전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벨가이인, 그중에서도 네르비족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그간의 통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비스 강가에 가득하던 병장기의 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

  무기가 충돌하는 소음과 적들의 비명소리가 잦아드는 가운데 점점 커져가는 건 승리를 의미하는 나팔 소리였다.

  로마군의 상징인 군기가 펄럭이고, 군단의 함성 소리가 사비스 강가를 가득 뒤덮었다.

  "우오오 로마 인빅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께 승리의 영광을!"

  "12군단장 마르쿠스에게 경의를!"

  피해가 너무나도 경미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군단을 수습하는데 딱 하루만을 소비했다.

  그 뒤에 로마군은 거침없이 네르비족의 영역을 향해 북동쪽으로 진군했다.

  성인 남자 5천 명 정도가 남은 네르비족은 사절을 보내 무조건적인 항복 의사를 밝혔다.

  그들에게 동조한 아투아키족도 마찬가지였다.

  1만 정도의 전사들이 남았으나 그들은 이미 전의를 전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로마와의 싸움은 그들에게 있어서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었다.

  벨가이인의 무기는 판급 갑옷은커녕 로리카 세그멘타타조차 제대로 뚫지 못했다.

  이런 무기를 운용하는 로마군은 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신들의 축복을 받는 자들과 싸우면 돌아오는 건 파멸뿐이다.

  인간을 상대로는 전의를 불태울 수 있어도 상대가 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네르비족과 아투아키족은 자진해서 볼모를 바치고 로마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네르비족의 전면적인 항복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벨가이 인들도 허겁지겁 사절을 보내왔다.

  베네티족을 필두로 9개 부족이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고 족장의 아들들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이로서 벨가이인이 사는 지역은 완전히 로마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카이사르는 알지 못했지만, 이건 후일 갈리아에서 일어날 중대한 반란의 싹을 미연에 자르는 효과가 있었다.

  벨가이인은 카이사르에게 패배하기는 했어도 로마에 대한 분노를 완전히 버린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치밀한 기습 작전을 세웠는데도 돌아온 건 절망적인 결과였다.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처참한 패배와 무력감만을 맛보았다.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전사들은 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로마와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로마는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들의 뒤에는 어떤 강대한 신이 있습니다. 싸운다면 그냥 개죽음을 당할 뿐입니다···아예 이길 가능성 자체가 없단 말입니다!"

  이들은 원래 목숨을 걸어서라도 로마와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이들이었다.

  단 한 번의 전투로 가치관이 변해버린 것이다.

  마르쿠스가 도망가는 병사들을 쫓아가 전멸시키지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가 갈리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다 끝났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지 차지한 지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들은 취하는 데 성공했다.

  세콰니족은 이미 마르쿠스의 하수인이었고, 벨가이인들은 로마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다.

  카이사르도 갈리아 제패를 완수하는데 한결 수월해졌을 테니 이제 걱정거리는 거의 다 사라졌다.

  "남은 건 12군단의 소속 문제인가······."

  2년 동안 전쟁을 거치며 12군단은 완전히 마르쿠스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됐다.

  애초에 군단 편성도 마르쿠스의 사병으로 했고, 장비도 마르쿠스가 지원해준 것이었다.

  이들을 갈리아에 계속 남겨두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했다.

  정보의 유출도 그렇고, 기껏 훈련해놓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남에게 넘기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그래도 갈리아 전역의 총책임자는 카이사르였다.

  군단장은 마르쿠스라도 군단의 최고통수권은 카이사르에게 있었다.

  12군단을 빼내 가려면 그럴 만한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다행히 마르쿠스에게는 그럴 만한 명분이 있었다.

  바로 로마에 망명하고 있는 아울레테스와 한창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남쪽의 이집트였다.

  < 102. 마르쿠스의 군단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