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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도약의 발판 (104/326)

  < 103. 도약의 발판 >

  103.

  벨가이를 평정한 로마군은 월동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 숙영할 장소는 갈리아 중서부로 결정됐다.

  근방의 갈리아 부족들은 자신들이 보급을 책임지겠다고 서로 나섰다.

  현재 갈리아에서 로마군의 위상을 바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헬베티족에 게르만, 벨가이.

  갈리아 전역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용맹하기로 소문난 전사들이다.

  이런 이들이 로마군의 앞에서는 저항다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박살 났다.

  특히 기습공격까지 하고 역으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네르비족의 패전은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네르비족은 로마군은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인근 부족을 설득하고 다녔다.

  카이사르에게는 모든 게 순조로운 상황이었다.

  본디 지역의 점령이란 단순히 전투에서 이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볼모를 받고, 항복을 약속받아본들 상대에게 아직 투지가 남아있다면 언제든 반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직접적인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의 선동에 넘어갈 위험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원래 역사에서도 카이사르는 이미 항복을 약속받은 갈리아 부족들에게 수차례 배신을 당했다.

  친로마파로 분류되는 갈리아 부족들마저 로마가 불리해 보이면 곧바로 적으로 돌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각 부족들의 저항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기에 불안한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카이사르를 찾았다.

  "저는 이제 슬슬 로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후우···역시 그럴 생각인가?"

  카이사르의 입에서 아쉬움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전에 알고 있었던 일정이긴 해도 뼈아픈 손실로 느껴졌다.

  "조금 더 머물면 안 되겠나?"

  그는 마르쿠스가 어째서 로마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자세한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갈리아 원정 계획과 로마의 정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강 짐작은 갔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쫓겨나 로마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카이사르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개선식을 열망하고 있는 크라수스의 문제까지 고려하면 마르쿠스가 갈리아에 계속 머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일 것이다.

  "제가 잠깐 로마를 비웠다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불어난 상황이라서요. 이를 더 미룬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하들이 처리할 수는 없는 종류의 문제인가? 자네가 계속 남아주기만 한다면 갈리아에 이어 브리타니아까지 완전히 정복하는 것도 불가능이 아닐 것 같은데."

  "제가 없어도 카이사르 님이라면 브리타니아는 몰라도 갈리아 정도는 충분히 제패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마르쿠스의 결심은 확고했다.

  갈리아 전쟁은 어디까지나 카이사르의 이야기였다.

  마르쿠스가 제아무리 공을 세우고 개입해본들 그는 비중 있는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역할을 벗어날 때가 됐다.

  카이사르에게는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있듯이, 마르쿠스에게는 마르쿠스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부터는 그걸 써 내려갈 차례였다.

  "자네는 역시 동방으로 갈 계획인가?"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르티아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일세. 갈리아나 게르만과는 또 다를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제가 가야지요. 아버지께서는 그런 인식이 조금 부족한 듯 보이셔서요."

  크라수스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카이사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개선식을 열고 싶어 하는 그의 열망은 카이사르는 물론 폼페이우스조차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로마에서 개선식을 올릴 정도의 상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북방의 갈리아는 카이사르가 순조롭게 평정하고 있었으니 로마의 패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이제 파르티아뿐이었다.

  바꿔 말해서 파르티아만 이길 수 있다면 로마는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위대한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작업이 파르티아 원정이었다.

  크라수스의 야망과 허영심이 얼마나 크게 불타오르고 있을지는 안 봐도 훤했다.

  "자네 아버지의 군사적 재능은 정치력에 전혀 미치지 못하니까···역시 파르티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군."

  "그래서 제가 가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파르티아는 만만한 자들이 아닐세. 자네 정말로 자신이 있나?"

  "무조건 전쟁을 벌여서 그들을 무릎 꿇리려는 건 아닙니다. 적당히 힘을 보여주고 양보를 얻어내거나, 외교적인 협상으로 우위를 점하는 방법도 고려중입니다. 다짜고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갈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습니다."

  "하긴, 자네가 하는 일이니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하겠지."

  동방원정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카이사르도 약간의 흥미가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갈리아에서 마르쿠스가 보여준 활약은 놀라웠다.

  크라수스의 부족한 군사적 재능을 마르쿠스가 보충해 준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다.

  마르쿠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몇 가지 허락받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뭔가? 자네에게 도움받은 게 결코 적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들어주겠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부담 없이 부탁드리죠. 12군단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12군단 전체를?"

  "예. 그들은 이미 제 색으로 물든 지 오래입니다. 제가 제공하는 장비에도 익숙해져 있고요. 그러니 그들을 어설프게 여기 남겨두는 것보다는 제가 데리고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12군단의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군단을 편성하는 건 제가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카이사르는 곧바로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대신 미지근한 포도주로 입을 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12군단은 현재 의심할 여지 없이 카이사르의 군단 중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건 이미 지금껏 치른 전투에서 증명된 사실이었다.

  이들이 빠져나간다면 전체 전력에서 커다란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12군단이 그토록 강력했던 건 어디까지나 마르쿠스 덕분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가 제공한 강력한 장비와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백인대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활약을 보이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마르쿠스가 로마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스파르타쿠스도 함께 갈 것이고, 신형 장비들도 회수해갈 가능성이 높았다.

  동방원정을 고려하고 있다면 질 좋은 무구들은 그쪽에 더 필요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즉, 전력 누수가 아깝기는 해도 어쩔 수 없는 손실이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마르쿠스의 말대로 어정쩡하게 12군단을 놔두느니 차라리 그와 함께 내려보내고 새로운 군단을 편성하는 게 더 나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곧바로 동방원정을 시작할 마음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12군단을 데리고 로마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텐데?"

  "예. 일단 이탈리아 북부에서 훈련을 시킬 계획입니다. 물론 동방원정이 시작할 때까지 계속 놔둘 생각은 없습니다. 카이사르 님도 지금 이집트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어쩌면 그곳에 먼저 투입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그럼 12군단만 보내주면 되겠나?"

  "하나 더 있습니다. 11군단의 보레누스와 풀로의 백인대를 12군단에 합류하게 해주십시오. 물론 병력의 공백은 제가 메워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11군단에서 가장 뛰어난 백인대장들인데 두 사람을 전부 빼가겠다고?"

  카이사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무 노골적으로 인재를 빼가는 게 아닌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빼가는 건 아니고 거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대가는 확실하게 치를 의향이 있습니다."

  "그 대가라는 것부터 들어보지."

  "12군단이 사용했던 로리카 세그멘타타는 전부 갈리아에 두고 가겠습니다. 물론 갑옷 대금은 받을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지 않을까요?"

  카이사르의 입이 가볍게 벌어진 채로 멈추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안 그래도 내심 마르쿠스에게 소량이라도 갑옷의 공급을 부탁하고 싶었던 차였다.

  1개 군단의 전열을 무장시킬 정도의 양을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12군단과 백인대 둘이 빠져나가는 게 그리 아쉽게 느껴지지는 않겠지. 갑옷의 대금은 현금으로 지불하면 되나?"

  "그러려면 또 빚을 지셔야 할 테니 그냥 차후 갈리아에서 얻을 이권의 일부를 분배받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그쪽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나야 그쪽이 훨씬 편하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적당히 약식으로 계약서를 만들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로마로 돌아가더라도 가능한 대로 지원은 계속해드리겠습니다. 갑옷도 여유가 생기면 제공해 드리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온다면 곧장 서신을 띄울 테니 너무 아쉬워하시진 않으셔도 될 겁니다."

  카이사르가 더없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는 순간까지 이리 배려를 해주니 고맙군. 11군단에는 내가 일러놓겠네. 12군단이 두고 갈 갑옷을 11군단에 주겠다고 한다면 그들도 불만은 없을 거야."

  "예. 그러면 저는 12군단의 병사들에게 일러두겠습니다. 앞으로의 전쟁도 마르스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래, 자네에게도 유피테르와 마르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네."

  이제 헤어지면 최소로 잡아도 5년 이상은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만날 때는 서로의 입장도, 상황도 많이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변치 않을 우호를 약속하며 두 영웅은 이별을 결정했다.

  ※※※※

  "하하하하! 이게 누구냐! 갈리아의 영웅, 마르쿠스 크라수스의 귀환이로구나!"

  크라수스는 식솔들을 이끌고 성문 앞까지 나와 직접 아들을 맞이했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반가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전쟁에서 공을 쌓고 오니 한층 더 늠름하게 보이는구나."

  "아버지도 정정해 보이시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사실 마르쿠스보다는 크라수스 쪽이 더 많이 변했다.

  불과 2년 사이에 그의 머리엔 흰머리가 더 많이 보였다.

  얼굴에도 이전보다 주름이 더 많아진 듯했다.

  그래도 표정은 오히려 한층 좋아 보였다.

  "원로원에서는 네가 세운 공적을 연일 포로 로마눔 광장에서 떠들고 있단다. 저번 16일 감사제에서는 카이사르와 네 이름을 거의 나란히 올려두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지."

  이전까지 원로원에서 드린 감사제는 폼페이우스가 미트리다테스를 쓰러뜨린 해에 치러진 12일 감사제가 최장 기간이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무려 3할이나 더 늘어난 전대미문의 감사제가 열린 것이다.

  원로원이 얼마나 마르쿠스의 공을 강조하며 돌아다녔을지는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전 일개 군단장으로 참가했을 뿐인데···너무 과하다는 여론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이 나올 리가 없지. 지금 네가 로마에서 어떻게 불리는지 아느냐?"

  "케레스의 지혜를 받은 자라는 부끄러운 별명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율리아가 생긋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아버님, 그런 이야기는 저택에 돌아가서 하고 지금은 가족들과 인사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 아이들도 아빠에게 인사를 할 차례만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오오, 그래, 그래. 미안하다. 우리 손주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지."

  크라수스가 재빠르게 옆으로 비켜섰다.

  마르쿠스는 그제야 2년 만에 만나는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두 아이를 낳았음에도 눈부신 미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모성까지 더해져 오히려 이전보다 한층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보다도 마르쿠스의 눈길을 끄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율리아의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여자아이와 어머니 테우토리아가 안고 있는 작은 남자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율리아가 온화한 목소리로 두 아이에게 속삭였다.

  "자, 아버지에게 인사해야지?"

  이제 막 여러 단어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된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했다.

  딸 소피아는 율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심스럽게 마르쿠스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아들 트라야누스도 할머니의 품에서 좀처럼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마르쿠스의 입가에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율리아가 마르쿠스의 코앞까지 걸어가 소피아를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자, 아빠는 언제 돌아오냐고 매일 같이 물어봤었지? 이제 아빠가 왔으니 예쁘게 인사해보렴."

  "어···어어···그니까······.."

  소피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치명적인 귀여움이었다.

  마르쿠스는 하늘로 승천하려는 광대를 간신히 제자리로 돌려놓고 무릎을 숙여 딸과 눈을 맞추었다.

  "벌써 이만큼이나 컸구나. 그동안 엄마 말 잘 듣고 있었니?"

  "네, 네···그···안녕하세요. 아빠······."

  처음으로 자식에게 들은 아빠라는 말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소피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잽싸게 마르쿠스에게 안겨들었다.

  트라야누스는 누나에게 선수를 빼앗기자 자신도 후다닥 내려와 마르쿠스에게 다가왔다.

  "저, 저는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어요! 누나는 맨날 싫다고만 해서 엄마에게 혼났어요."

  "아, 아니거든! 바보야!"

  "맞거든!"

  마르쿠스는 피식 웃으며 두 아이를 각각 한쪽 팔로 안아 들며 율리아에게 말했다.

  "당신이 고생 좀 했겠네."

  "고생은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했죠. 아, 다나에도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특히 트라야누스는 그 아이랑 무척 잘 논답니다."

  "그래?"

  율리아의 뒤편에 서 있던 다나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르쿠스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어서 스파르타쿠스와 한창 애정행각을 벌인 셀리니와 기회를 엿보고 있던 셉티무스와도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율리아와 다나에는 마르쿠스의 옆에 찰싹 붙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소소한 신변잡기부터 육아에 대한 경험담, 그리고 로마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들까지 화제가 끊임없이 변했다.

  개중에는 조금 전 크라수스가 꺼냈던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율리아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아버님께서 그러셨잖아요. 당신이 지금 로마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아느냐고."

  "나도 안다니까. 케레스 여신과 연관된 호칭이잖아."

  "그건 농민들이 부르는 거고요. 로마의 시민들은 당신을 다르게 부르고 있답니다."

  "그래? 뭔데?"

  "당신이 안찰관으로 지내면서 벌인 사업의 성과가 이제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거든요. 목욕탕 개선과 인분의 퇴비화, 식사하기 전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 씻기, 그 외에도 수많은 위생개선의 성과에 온 로마가 열광하고 있어요. 원로원에서도 이걸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고요."

  다나에가 끼어들어서 한 마디를 보탰다.

  "제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열심히 통계를 정리했답니다."

  "고생했어.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었던 거야? 통계를 조사했으면 수치로 확인이 가능할 텐데."

  "네. 정말 놀랍게도 제가 조사한 구역의 질병 발생률은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어요.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는데 다른 구역도 다 비슷하더라고요."

  병이 조금 덜 걸리는 수준도 아니고 발생률이 10프로 이하가 됐다면 확 체감될 수밖에 없다.

  로마인들은 이제 손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충 씻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 복통을 달고 다니던 사람들은 마르쿠스를 구세주라 칭송했다.

  항상 깨끗하게 유지된 목욕탕을 사용하니 피부병을 호소하는 사람도 적어졌다.

  당연히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도 이전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감소했다.

  율리아가 마르쿠스의 귓가에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민들은 당신을 맑은 물의 여신 테티스와 관련짓고 있어요. 테티스의 사도 마르쿠스, 어감이 어때요?"

  "이것 참···과분한 별명인데."

  농민들에게서는 케레스의 축복을 받았다는 칭송을, 병사들에게서는 불카누스의 지혜를 받았다는 감탄을 사고 있는 실정이었다.

  여기에 테티스의 사도라는 또 하나의 칭호까지 추가된 것이다.

  '이러다가 나중에 내 이름 앞에 온갖 신의 이름이 다 붙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이러다가 동방원정까지 성공하며 군신 마르스에 빗대는 호칭도 하나 생길지 모르겠다.

  굳이 원해서 신들의 이름을 수집하고 다닌 게 아니었는데 묘한 기분이었다.

  팔라티노 언덕을 오르는 와중 옆에서 들려오는 크라수스의 목소리가 마르쿠스의 상념을 깼다.

  "아, 서신에 적는 걸 깜빡했는데 지금 저택 별관에 손님이 한 명 머물고 있단다. 네가 오자마자 곧바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더구나."

  굳이 더 말을 듣지 않아도 누구인지 익히 짐작이 갔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가 별관에 머물고 있는 겁니까? 파라오에게는 조금 좁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잘 참고 있나 보군요."

  "안 참으면 뭐 어떻게 하겠느냐. 여기서 나가면 오히려 더 궁색한 신세가 될 텐데. 그런데 저택에 가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느냐?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면 내가 핑계를 대고 내일이나 모래로 미루자고 하마."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문제를 처리하려고 일찍 돌아온 거니까요."

  마르쿠스는 오히려 대환영이라는 듯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원정을 하는데 안정적인 군량의 보급은 필수였다.

  소아시아의 밀 생산량은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이중 상당수의 양은 로마로 보내야만 했다.

  수만이 넘는 대군을 5년 이상 무리 없이 유지할 군량을 확보하려면 식량 공급원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 계획의 핵심적인 열쇠가 되는 지역이 바로 이집트다, 어느새 마르쿠스의 시선은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의 별관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나일강의 비옥한 토지가, 그 너머로 펼쳐져 있는 파르티아의 작열하는 사막이 서서히 비쳐들고 있었다.

  < 103. 도약의 발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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