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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다가오는 대전쟁 (114/326)

  < 113. 다가오는 대전쟁 >

  113.

  마르쿠스의 확답이 떨어지자 사나트루케스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 그러면 언제 파르티아로 진군하실 계획이신지요? 미력한 몸이지만 저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확실히 왕자님이 계시면 지방 영주들을 구슬리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마르쿠스가 중간에 말을 끊고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사나트루케스를 바라보았다.

  사나트루케스가 어리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봐도 아직 미숙한 어린 왕족의 느낌이 풀풀 풍겼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나트루케스에 관한 정보를 모아왔다.

  사나트루케스는 몰랐다.

  그의 아버지와 거래를 하고 있던 로마 상인 타디우스가 마르쿠스의 수족이라는 사실을.

  마르쿠스는 지금까지 들었던 미트리다테스 부자에 관한 정보를 떠올렸다.

  '폭급하고 잔인한 아버지와 달리 장남은 그릇이 크고 심계가 깊다고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왕자의 모습은 듣던 것과는 영 달랐다.

  아직 14살에 불과하니 가족을 잃은 충격에 이성을 상실한 것일까.

  하지만 왠지 마르쿠스의 눈에는 그렇게 봐달라고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용하기 좋은 상대라고 여겼다가 역으로 뒤통수를 맞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실제로 마르쿠스도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이득을 취해오지 않았던가.

  누군가를 이용하는 건 몰라도 이용당하는 건 절대 사절이었다.

  마르쿠스에게 자신은 타인에게 속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어리다는 이유로 방심하지 않는다.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상대를 겉모습만 보고 넘겨짚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었다.

  '정말로 복수에 눈이 멀어 덥석 노른자위 땅을 내놓겠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마르쿠스는 짐짓 모르는 척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표시된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메소포타미아 평야가 없다면 파르티아의 농업 생산력은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그런 요충지를 타국에 넘기는 걸 귀족들이 용인할까요?"

  "그, 그건······."

  "넘기려고 했는데 반대가 극심해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니까···그건 로마군이 오로데스의 군대를 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는 걸 보여주면 귀족들도 섣불리 반대하진 못할 겁니다."

  사나트루케스의 말은 원론적으로는 옳은 소리였다.

  유리한 조건에서 강화를 맺기 위해서는 전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게 기본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사나트루케스를 파르티아의 왕위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냉정하게 고려해 봤을 때 마르쿠스는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손에 넣을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점령한 지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평야처럼 사방이 개방된 지형은 방어하기가 굉장히 곤란했다.

  동쪽만 완벽히 틀어막으면 대부분의 적을 차단할 수 있는 나일강 삼각주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메소포타미아의 서쪽이야 로마의 영역이라고 쳐도 동쪽은 파르티아, 남쪽으로는 사막지대, 북쪽으로는 카프카스 지역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이집트와는 다르게 숱하게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로마가 이곳을 차지한다고 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선제가 손에 넣은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속주를 포기했다.

  제아무리 로마라고 해도 사방이 탁 트인 평야 지대를 무한정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십 년, 이십 년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한계는 오기 마련이다.

  티그리스강 일대에 만리장성이라도 쌓지 않고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르쿠스는 사나트루케스의 노림수를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건네준다고 해도 결국에는 로마가 포기할 수밖에 없다···기회만 온다면 충분히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거로군.'

  로마의 힘을 빌려 복수를 하고 왕위에도 오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는 셈이다.

  아니, 노릴 수 있는 이점은 하나 더 있었다.

  마르쿠스가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대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곧, 사나트루케스의 반대파를 그만큼 많이 제거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논리로 남은 신하들을 설득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어차피 로마군은 저 지역을 오래 점령하고 있을 수 없을 테니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으로 얼버무리겠지.'

  마르쿠스는 새어 나오려는 조소를 숨긴 채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메소포타미아 평야가 로마의 손에 들어온다면 파르티아는 식량난을 겪을 우려가 있습니다. 파르티아의 정세가 불안해진다면 자연히 국경을 맞대게 될 로마에도 그 혼란이 전해지겠죠. 그런 사태는 피하고 싶은데 혹시 생각해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음···비옥한 평야 지대가 없어도 파르티아는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습니다. 부족한 식량은 로마에 대금을 지급하고 구매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왕이 된다면 파르티아는 로마의 보호국이 됩니다. 보호국은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는 대신 로마 역시 보호국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를 지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식량의 제공은 저희 측이 요구할 수 있는 적법한 권리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제 생각에 잘못된 점이 있을까요?

  "

  "없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이미 미래에 대한 계획을 전부 세워두신 걸로 보이는군요."

  마르쿠스의 감탄사에 사나트루케스는 실수를 자각하고 흠칫 몸을 굳혔다.

  이용해먹기 좋은 왕족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데 너무 말을 많이 했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시선을 내리깔며 말을 흐렸다.

  "그냥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걸 말했을 뿐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가족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너무 되는 대로 말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드는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자님의 진심은 저에게도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차후 원정계획이 세워지면 알려 드릴 테니 지금은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계시길 권해 드립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전쟁에 따라오실 수 없을 테니까요."

  "소중한 충고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총독님만 믿고 물러가 보겠습니다."

  사나트루케스는 끝까지 왕족답지 않게 넙죽 고개를 숙이기까지 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마르쿠스는 멀어지는 왕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툭툭 두드렸다.

  14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계산이 확실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자존심을 굽힐 줄도 아는 인재였다.

  한없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끝까지 지키기 불가능한 땅을 협상의 재료로 쓰는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이용하기 좋은 어수룩한 모습으로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는 모습도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하지만 아직 어려.'

  마지막에 약간의 실수를 한 것도 그렇고,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로마가 무조건 지키지 못할 거라고 속단한 것은 너무 안일한 예상이었다.

  분명 사방으로 뻥 뚫려 있는 평야 지대를 방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로마군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방어선을 형성했을 때의 이야기다.

  마르쿠스는 지금은 일단 사나트루케스의 장단에 넘어가주는 척하기로 했다.

  적당히 똑똑한 인간만큼 이용하기 쉬운 상대는 없다. 뭐든지 합리적으로 생각하니 그만큼 사고를 유도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이야기.

  사나트루케스가 더욱 경험을 쌓고 성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장기 말로 쓰기에 지나치게 유능한 인재라는 것도 곤란한 법이지. 이쪽을 이용해 먹을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찬 이라면 더더욱.'

  사나트루케스와의 대담은 확실히 유익한 시간이 됐다.

  마르쿠스는 시리아로 오는 내내 고민했던 파르티아의 처우를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이번 만남을 유익했다고 여기는 건 사나트루케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총독 관저에서 나온 그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기다리는 시종과 합류했다.

  악바타나에서 그와 함께 시리아까지 당도한 믿을 수 있는 하인이었다.

  "일은 잘 풀렸습니까?"

  "대충 그런 것 같아. 마지막에 조금 실수를 하긴 했는데 다행히 저쪽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어."

  "실수라 하심은?"

  "적당히 어리숙한 태도를 보여야 했는데 너무 조리 있게 말을 해버렸어. 그래도 어떻게든 얼버무렸더니 의심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사나트루케스는 이야기를 나누며 끊임없이 마르쿠스의 안색을 살폈었다.

  그는 절대 강자인 로마 총독의 대행답게 시종일관 자신을 아래로 보는 눈치였다.

  양자의 위치와 사나트루케스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렇게 여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도 정보를 조금 모아봤는데 마르쿠스 크라수스라면 젊은 나이임에도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재차 삼차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철저하게 연기를 한 거라고. 그래도 일단 내 계획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으니 앞으로도 계속 조심하면 문제없을 거야."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될 거야. 이미 계획은 다 짜뒀으니까."

  사나트루케스의 최우선 목표는 원수인 오로데스를 처단하고 파르티아의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울뿐인 왕좌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왕중왕, 샤한샤에 걸맞은 왕권과 명예였다.

  로마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허수아비 왕으로 살아갈 마음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지원을 끌어내면서도 핵심적인 실권은 넘겨주지 않는 게 중요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되겠지만, 사나트루케스는 자신이 있었다.

  '마르쿠스라고 했던가? 확실히 만만치 않아 보이긴 했지. 그래도 그자는 나를 얕보고 있는 게 분명해. 방심하는 틈을 파고들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을 거야.'

  로마의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을 뜻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파르티아가 소아시아의 패자가 되는 것도 결코 꿈은 아니었다.

  로마가 직접 차지하고 있는 시리아나 비티니아는 무리라도 아르메니아나 폰투스는 상황에 따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나트루케스는 영광스러운 파르티아의 샤한샤로서 옛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넘어야 할 로마라는 산의 존재는 알았으나, 그 산이 얼마나 높고 험준한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사나트루케스는 이용하려고 하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치명적인 실수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마르쿠스는 실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동생 푸블리우스와 음지에서 여러 일을 떠맡아 진행해온 상인 타디우스는 기억 속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푸블리우스는 기병 장교로 경험을 쌓으며 한층 늠름해져 있었고, 타디우스는 대상단을 거느리는 거부의 위엄이 물씬 풍겼다.

  "형님, 대체 언제쯤 오시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면서도 호탕한 웃음부터 터뜨린다.

  동방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하며 성과를 거둔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 보였다.

  "건강해 보이니 기쁘구나. 몰라보게 늠름해졌어."

  "형님께서 기회를 주신 덕분입니다. 동방은 로마와는 달리 아직 치안이 제대로 잡힌 곳이 아니라 이래저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더군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안정됐습니다."

  푸블리우스는 자랑스럽게 허리를 쭉 폈다.

  그의 말대로 소아시아는 오랜 전쟁의 여파로 빈말로도 치안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과 전쟁에서 패배한 군인들은 자연스레 도적이 됐고, 이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왕위 교체로 혼란스러웠던 폰투스는 북쪽의 카프카스 지역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

  도적들은 자연히 험준한 산맥으로 숨어들었고 이는 거대한 산적집단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어차피 타국의 문제이니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었지만, 마르쿠스는 이를 훈련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전임 총독인 가비니우스는 폼페이우스의 수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삼두가 원하는 대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었다.

  마르쿠스는 황폐해진 토지를 개간해 갈 곳을 잃은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유화책과, 그래도 약탈을 그만두지 않는 도적을 토벌하는 강경책을 동시에 펼치게 했다.

  토벌을 맡은 군단은 마르쿠스가 신장비의 실험을 위해 사비로 편성한 이들이었다.

  이 병사들은 이제 사실상 크라수스 가문의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가비니우스에게 지휘권을 위임받은 푸블리우스는 압도적인 장비의 우세에 힘입어 가볍게 도적들을 뿌리 뽑았다.

  물론 갈리아에서 대규모의 전쟁을 치른 것에 비하면 경험의 질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쿠스의 목적은 병사들이 새로운 장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실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푸블리우스도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현재 로마군에서 마르쿠스를 제외하면 푸블리우스만큼 새로운 무기에 익숙한 지휘관은 없었다.

  마르쿠스는 동생이 이 경험을 바탕으로 파르티아 원정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고 보니 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었지? 크라수스 가문의 차남이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 남들이 흉을 볼 거다. 이제 슬슬 좋은 여인을 찾아보는 게 좋겠구나."

  "아, 아니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왜······."

  푸블리우스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가 아니지. 부모님도 네가 결혼에 별생각이 없어 보여 얼마나 걱정이 많으신데.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적당한 여인들을 소개해줄 테니 일단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해라. 싫으면 나도 강요는 하지 않을 테니까."

  "예, 뭐···강요를 하지 않으신다면."

  푸블리우스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의 대화가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한 타디우스가 저벅저벅 다가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마르쿠스 님, 실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얼굴을 직접 보는 건 거의 8년 만인가? 그동안 명령을 수행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보상은 확실하게 지급해줄 테니 나중에 원하는 걸 말해다오."

  "워낙 지원을 충실히 해주신 터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부탁하셨던 사항을 정리해 왔습니다."

  타디우스가 품속에서 두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언제나 칼 같은 일처리였다.

  마르쿠스가 싱긋 웃으며 받아든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가 부탁했던 정보는 아르메니아와 파르티아의 동향이었다.

  아르메니아는 현재 로마의 보호국이었으나 결코 믿을 수 있는 자들은 아니었다.

  역사에서도 아르메니아는 몇 번이나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를 왔다 갔다 줄타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마에 협조할 때도 그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고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아군은 적군보다도 더 가치가 낮은 법이다.

  마르쿠스는 이번 기회에 아르메니아의 문제도 확실하게 일단락 지어서 동방의 변경을 안정시킬 계획이었다.

  "아르메니아는 만약 로마가 파르티아로 진군한다면 로마의 편을 들 생각으로 보인다···이 정보의 신뢰도는 확실한가?"

  "예. 아무래도 로마에 대패한 기억이 아직 생생할 테니까요. 속으로는 다른 꿍꿍이가 있어도 겉으로 내색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아직은 그렇겠지. 하지만 적극적으로 협력할 생각도 없을 거야. 로마와 파르티아 중 어느 쪽이 더 강한지 확신을 하고 있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 거래를 맺고 있는 귀족을 설득해 더 적극적으로 아르타바스데스를 압박하라고 할까요? 그는 올해 막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아직 기반이 충실하지 못합니다. 고위 귀족들이 로마에 붙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타디우스가 이끄는 마르쿠스의 상단은 이미 소아시아 전체의 경제를 주름잡고 있었다.

  당연히 파르티아의 귀족들만이 아니라 폰투스와 아르메니아의 고위 귀족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설탕을 한 아름 안겨다 주고 편을 들어달라고 하면 발 벗고 나설 이들은 차고 넘칠 것이다.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을 해본 마르쿠스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로마를 적극적으로 도와서는 안 된다고 왕을 부추기라고 전해. 아무리 그래도 아예 적대하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고 우리한테도 피해가 올 테니···군량 지원 같은 걸 핑계 대면서 미루라고 하면 되겠군."

  "예? 그게 대체 무슨······."

  상상도 하지 못한 명령에 타디우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푸블리우스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혀, 형님. 군량 보급이 지연되면 싸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어차피 이집트에서 어마어마한 식량이 곧 도착할 테니 군량이 모자랄 일은 없어. 물론 아르메니아에는 이걸 알려주지 않을 거지만."

  마르쿠스의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한 타디우스와 푸블리우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타디우스는 아무런 이견을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에 있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로마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마르쿠스는 신의 지혜와 축복을 한몸에 받은 시대의 주인이 될 자였다.

  그런 사람의 명령에 자신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타디우스는 짤막하게 한 마디만을 남긴 뒤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럼, 이제 오늘 할 일은 끝나신 겁니까? 오랜만에 가족끼리 다 같이 식사라도 할까요?"

  푸블리우스가 마르쿠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때였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기라도 말하는 듯.

  끼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방문이 열렸다.

  바쁜 걸음으로 들어온 행정관이 황급히 보고를 올렸다.

  "파르티아에서 온 사절단이 안티오키아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마르쿠스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는 봐야지. 그들이 원한다면 바로 대면을 해주겠다고 전하도록."

  "예."

  마르쿠스는 행정관에게 지시를 내린 뒤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껏 초조한 상태일 파르티아의 사신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충분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회담을 가지고 싶을 터.

  마르쿠스의 제안을 그들이 거부할 리가 없었다.

  사신들이 어떤 요구를 해올지도 대강 예상이 됐다.

  운명의 시간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떠났다.

  < 113. 다가오는 대전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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