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 전쟁은 검으로만 하지 않는다 (118/326)

  < 117. 전쟁은 검으로만 하지 않는다. >

  117.

  수레나스는 한시도 쉬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말을 몰았다.

  중간에 말이 지치면 근처의 다른 말로 바꿔 타며 시간을 단축했다.

  크테시폰에 도착한 수레나스는 곧바로 오로데스를 찾아갔다.

  그는 대귀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당당한 목소리로 설명을 요구했다.

  "샤한샤께서는 분명 이번 전쟁에서 제게 전권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게 그런 명령서가 날아든 겁니까."

  오로데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가? 낯짝이 두꺼운 것인지 아니면 나를 바보로 아는 것인지······."

  "향간에 떠도는 괴담은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입니다. 제가 로마와 밀약을 맺을 이유가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대체 로마 놈들과 제대로 싸우지 않은 이유가 뭐냐? 놈들이 너무 강해 보여서 겁을 먹었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오로데스는 수레나스가 보낸 서신을 흔들어 보이며 역정을 냈다.

  "그러니까 그것은 제가 충분히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느냐 하면······."

  수레나스는 조목조목 자신이 느낀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로데스와 여러 귀족들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로마군과 싸운다는 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전쟁 따위가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단순히 직관 따위에 기대 전투를 회피하기엔 파르티아가 가진 기병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높았다.

  "너의 말은 잘 꾸며진 변명으로 들리는구나. 그래, 네 말에도 일리가 있을지는 모른다. 로마군이 그토록 철저히 준비를 했다면 아군이 이긴다고 해도 손해가 막심할 수 있겠지.

  어쩌면 패배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내가 아는 전략의 귀재 수레나스라면 설령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로마군에 엄청난 피해를 줬을 것이다. 그러면 제아무리 강인한 로마군이라고 해도 원정을 계속할 수는 없었을 터.

  "

  "그것은······."

  "나는 네 생각이 대충 보인다. 설령 로마군에게 꽤나 큰 피해를 줘 놈들을 협상의 자리로 끌어낸다고 해도, 네가 패배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넌 네 명성과 실권을 최대한 드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전쟁을 끝내려고 계획을 짰을 테고."

  사실 오로데스도 정말로 수레나스가 로마와 밀약을 맺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다만 수레나스의 능력을 고려하면 그가 이 기회를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려고 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았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수레나스가 로마군을 상대로 이긴다면 오로데스의 입지가 좁아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거기에 귀족들의 지지까지 잃는다면 왕좌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레나스가 배신자이든 아니든 오로데스는 그의 작전에 따라줄 수 없었던 것이다.

  수도와 주요 도시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귀족들이 동요한 이상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지혜로운 샤한샤이시여! 제 이야기를 들어주······."

  오로데스가 손을 들어 수레나스의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나는 우리 파르티아군의 목숨을 더 이상 수레나스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본다. 그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혐의가 모두 벗겨지기 전까지 구금할 것이다. 이의가 있는 자는 얼마든지 말하라."

  평상시였다면 반대했을 귀족들도 이번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미 수레나스가 빠져나갈 길은 어디에도 없는 듯 보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귀족들에게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으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귀족들 중 태반은 슬쩍 고개를 돌려 수레나스의 시선을 피했다.

  무타레스를 비롯해 수레나스의 명성을 시기하던 이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의 뜻을 밝혔다.

  "영명하신 판단이옵니다. 의심을 받고 있는 자에게 군의 전권을 맡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수레나스는 돌아가는 지금의 상황에 심각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일이 이런 식으로 흐를 수 있는 거지.'

  모든 일이 이상할 정도로 수레나스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리 파르티아 귀족들의 피해를 감수하는 전략을 짰어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다소 불만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전쟁이 끝난 뒤 보상을 해주면 되는 일이라 여겼었다.

  '그 소문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귀족들의 마음이 흔들린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귀족들 중 누군가가 함정을 판 것일까.

  수레나스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무타레스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내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결론지었다.

  수도에 퍼진 소문은 수레나스가 취할 행동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무타레스 정도가 그런 정교한 예측에 기반을 둔 모함을 계획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내가 실각되면 좋아할 자들은 로마군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로마라고 해도······.'

  순간 수레나스의 머릿속에 로마군을 이끌고 있다는 젊은 지휘관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아직 서른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로마 권력의 핵심에 올랐다는 요주의 인물.

  그가 이끄는 로마군은 이번 전쟁에서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모습을 보여 왔다.

  수레나스가 지구전으로 끌고 가려고 했을 때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보였었다.

  그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일말의 조급함조차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리 뒷공작을 해두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전황이 반전될 때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리라.

  '적에게만 신경 쓰느라 후방의 아군에게서 눈을 떼다니···뼈아픈 실책이로다.'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유형의 장수라고 여긴 게 최대의 오판이었다.

  고작 서른에 로마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이가 지휘하는 군대였다.

  온갖 권모술수와 계략을 동원해 공작을 벌일 거라는 예상을 언제나 가슴에 새겨두었어야 했다.

  "샤한샤이시여, 그리고 현명한 귀족 동지들이여. 이미 그대들의 마음이 확고한 듯하니 구구절절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일을 꾸민 자는 로마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제가 물러난다면 그자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지금 파르티아에 없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판단을 재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로마군의 이야기가 나오자 귀족들 중 몇몇이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수레나스가 물러난다면 로마군을 격퇴할만한 명장이 딱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이 분위기를 감지한 무타레스가 재빠르게 다시 나섰다.

  혹여나 수레나스가 다시 복권되면 대놓고 그를 적대한 무타레스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니면 로마를 상대할 자가 없다. 실로 오만한 발언입니다. 저런 생각을 지니고 있으니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가 용인해줄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겁니다.

  우리 군에 로마를 상대할 자가 없다는 게 무슨 헛소리란 말입니까. 파르티아의 기병은 주변 모든 국가를 통틀어 최강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페르시아의 적통을 잇는 제국입니다. 로마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 주력은 결국 보병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알지 않습니까. 기회만 된다면 제가 당장에라도 이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

  무타레스의 호소에 다소 흔들리려던 귀족들의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로데스가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수레나스의 곁으로 몰려왔다.

  수레나스는 병사들의 손에 붙들려 나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외쳤다.

  "지휘권을 잡게 되는 장수가 있다면 명심하십시오. 로마군과 회전을 벌이는 데는 신중해야 합니다! 반드시 결전을 벌여야겠다면 아군의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도록 언제라도 퇴각할 수 있는 진용을 짜야 합니다!"

  대전의 문이 닫히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수레나스의 호소는 끊이지 않았다.

  오로데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군. 카렌과 무타레스, 두 사람에게 수레나스의 후임을 맡긴다. 아르메니아를 견제하기 위해 빼놓았던 2천의 중무장 기병을 추가로 지원해줄 테니 반드시 성과를 내보이도록."

  "맡겨만 주십시오. 파르티아에 수레나스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보겠습니다."

  무타레스와 카렌이 넙죽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오로데스는 수레나스의 충고를 철저히 무시했다.

  어설프게 수레나스의 방침을 따랐다가는 괜한 동정여론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수레나스의 의견과는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게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

  앞으로 나올 결과가 증명해줄 것이다.

  ※※※※

  "조금 이상한데······."

  "예?"

  "파르티아군 말일세. 군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 지휘계통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수레나스의 실각은 아직 마르쿠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파르티아군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건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토록 정교하게 움직이던 상대방이 갑자기 나사가 빠진듯한 움직임을 보이니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게 무리였다.

  안토니우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쿠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방침이 변하기라도 한 걸까요? 이전처럼 후방을 견제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싸우기 좋은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앙에서 압박을 넣었나 보군. 수레나스라고 해도 왕과 귀족들이 빨리 전면전을 하라고 독촉하면 배길 재간이 없었겠지."

  "그렇다면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래야지. 그래도 이게 우리를 낚으려는 기만책일 수도 있으니 정찰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마르쿠스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는 듯 보였어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승기가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야말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찰을 나간 병사들이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올렸다.

  파르티아군의 소규모 정찰대와 조우한 푸블리우스의 정찰대가 적을 전멸시키고 포로를 잡아 온 것이다.

  그 포로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곧바로 지휘관 회의가 소집됐다.

  "적의 사령관이 실각되고 새로운 장수가 지휘권을 잡았다는 말씀입니까?"

  안토니우스를 비롯한 군단장들이 입을 떡 벌렸다.

  마르쿠스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일세. 최근 파르티아군의 움직임이 이상했던 건 지휘체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기 때문인가 보더군."

  "포로가 또 무슨 말을 했습니까?"

  "그 이상의 정보는 캐내지 못했네. 사실 지휘관이 바뀌었다는 말도 자기들끼리 푸념하는 걸 파르티아어에 익숙한 병사 한 명이 엿들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병사가 너무 과한 반응을 보여서 파르티아 병사들도 자신들의 말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걸 인지했네. 그다음부터는 아예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하더군."

  "그러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

  자신들이 먼저 술술 말했다면 모를까 파르티아어로, 그것도 자신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로마군이 엿들어줄 거라고 가정하고 계획을 짜는 건 일종의 도박에 가깝다.

  마르쿠스가 파악한 수레나스라는 인물은 절대로 그런 유형의 장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회전을 서두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로마군이 아니라 파르티아 쪽이었다.

  거짓 정보를 흘리는 건 상대방이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파르티아는 로마군의 행동을 기다리기는커녕 자신들이 나서서 전투를 벌이려고 하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 고려해 봤을 때 수레나스가 실각됐을 가능성은 9할이 넘어 보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마르쿠스도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가 노리고 있던 건 어디까지나 왕과 귀족들의 압박을 못 이긴 수레나스를 전장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아예 지휘관 자리에서 해임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갑자기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전쟁 중인데 최고 사령관을 갈아치울 생각을 하는 거지? 오로데스 그놈도 정상이 아니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현 상황에 마르쿠스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반면 군단장들의 얼굴에는 경탄과 감동, 존경과 경의의 감정만이 가득했다.

  안토니우스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르쿠스 님께서는 처음부터 여기까지 예상하고 계셨던 겁니까?"

  찰나의 침묵이 있고 나서, 마르쿠스의 입이 아주 천천히 열렸다.

  "······물론일세."

  "오오오!"

  지휘관들의 틈새에서 칭송의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전쟁을 치르기도 전부터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으셨던 거로군요."

  "그야말로 미네르바의 지혜라는 찬사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임페라토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임페라토르께서 품고 계신 구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저희가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낯 뜨거울 정도로 과한 군단장들의 찬사에 마르쿠스의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놀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깃든 표정에 거짓이라고는 없었다.

  마르쿠스는 오글거리는 걸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엄숙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다소 운이 따라줬을 뿐이네. 그리고 아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니 축배를 들긴 이르지. 제대로 된 축하는 전쟁이 끝난 뒤에 받도록 하겠네."

  "그렇군요. 아직 적의 주력과는 싸우지도 않았는데 너무 마음이 풀어져 있었습니다."

  "그래. 모두 교만은 패배의 선봉이라는 걸 앞으로도 깊이 명심하도록 하게."

  "예!"

  사기충천한 목소리가 막사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

  방심과 교만은 패배의 지름길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진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로 교만한 이들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자각이 없다는 것이다.

  파르티아군의 지휘권을 잡은 무타레스는 즉각 로마군과 일전을 벌이자고 소리 높여 주장했다.

  "궁기병만 1만 3천. 거기에 중장기병이 4천입니다. 이런 압도적인 대군을 가지고 있으면서 싸움을 피하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군이 수가 많다고 해봐야 그들 대부분은 보병이 아닙니까. 기병들의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싸운다면 패배하고 싶어도 패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로마군도 철저히 준비했다고 하지 않는가. 수레나스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어. 적들의 무기가 우리보다 우월하다면 신중하게 전투를 벌여야 하지 않겠나."

  "무기의 부족은 패배의 이유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무기의 열세는 정신력과 기동력으로 상쇄할 수 있습니다."

  무타레스와 함께 총지휘를 맡은 카렌은 골이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주장이 병사들에게 호응을 받는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무타레스의 주장이 진짜로 설득력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못한 병사들의 혈기가 폭발 직전까지 억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무타레스, 수레나스의 우려가 정말로 착각이라 단언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수레나스는 턱없이 적을 과대평가하고 있던 겁니다. 파르티아는 기마 민족입니다. 이런 광활한 지형에서 전투를 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타레스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열정적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보병이 주력인 로마군은 약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패퇴할 겁니다. 신무기에 대한 우려는 너무 과한 걱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병사들이 전투를 원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의 사령관인 무타레스도 이러니 카렌도 더 만류할 재간이 없었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군이 평야를 지나갈 때···승부를 걸기로 하세."

  "와아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로마놈들에게 기마 민족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도록 합시다. 이번에 제대로 쓴맛을 보고 나면 다시는 이 땅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요."

  무타레스의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렌도 병사들의 사기가 이토록 높으니 어쩌면 의외로 간단히 승리를 거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내린 파르티아군은 신속하게 이동했다. 병력의 전원이 기병으로 이루어진 터라 로마군보다 훨씬 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카렌과 무타레스는 메소포타미아의 평탄한 평야에서 1만 7천의 기병대군을 주둔시키고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르쿠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서 나부끼는 파르티아군의 화려한 비단 깃발과 1만 5천을 훌쩍 넘을 것 같은 기병의 대군은 실로 장관이었다.

  기병의 수만 놓고 보자면 로마군보다도 훨씬 더 많았지만, 마르쿠스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파르티아의 주력인 기병이 많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이 전장에 적들의 전력이 집중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적을 격퇴하면 예상보다도 더 수월하게 지역을 점령할 수 있다.

  결전의 때는 빠르게 다가왔다.

  먼저 움직인 건 파르티아군 쪽이었다.

  "용맹한 샤한샤의 군대여, 우리들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자. 무도한 침략자들을 단숨에 섬멸하라!"

  무타레스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르티아 기병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우와아아! 로마 놈들을 죽여라!"

  살의가 번뜩이는 함성과 말발굽이 울리는 소리가 평원을 뒤덮었다.

  중장기병들이 정면에서 시선을 끄는 사이 궁기병들이 넓게 퍼지며 자리를 잡아갔다.

  정석대로의 스웜전술을 구사하는 파르티아군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마르쿠스의 눈이 서늘한 빛을 발했다.

  천천히 뽑혀 나온 그의 검이 파르티아군을 똑바로 겨누었다.

  "전군, 한 치의 자비도 보이지 말고 철저하게 적을 짓밟아라!"

  < 117. 전쟁은 검으로만 하지 않는다.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