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 최후의 원정 (125/326)

  < 124. 최후의 원정 >

  124.

  카토의 충격적인 제안에 장내가 일순간 술렁거렸다.

  귀족파와는 사전에 이미 합의가 된 상태였으니 당황한 사람들은 전원 민중파 소속의 의원들이었다.

  카이사르의 장인인 피소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지혜로운 포르키우스 카토, 그대는 언제나 공화정의 법률과 제도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마르쿠스에게 임페리움을 부여한다니요. 그것도 동방 속주 전역에 5년이라는 초장기간 동안 군단을 맡기는 게 어떻게 공화정의 제도에 합치한다는 것입니까."

  민중파 의원들이 앉아 있는 곳곳에서 피소의 의견이 지당하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소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마르쿠스를 돌아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말해두지만 저는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가 이루어낸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가 임페리움을 부여받을 자격이 된다면 기꺼이 찬성할 겁니다."

  민중파 입장에서도 마르쿠스는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귀족파이긴 해도 민중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카이사르의 사위이자 폼페이우스와도 사적으로 가까운 인물이었다.

  온건한 민중파 의원들 중에는 그가 귀족파에 있는 덕분에 로마 정계의 균형이 유지되는 거라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피소의 조심스러운 견제 발언에 마르쿠스는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가벼운 웃음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카토는 달랐다.

  그는 피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가 동방 속주의 총독이 되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일단 이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 원로원은 이미 도저히 피치 못할 상황일 경우에는 특례를 인정한다는 선례를 만든 바 있습니다. 심지어 그 당사자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하죠. 안 그렇습니까, 위대한 폼페이우스?"

  카토의 날카로운 일침에 민중파 의원들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폼페이우스는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자격이 되지 않는 나이에도 임페리움을 부여받았다.

  이때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전직 집정관 자격을 부여했는데, 당시 그는 집정관은커녕 법무관조차 될 수 없는 나이였다.

  민중파 의원들이 카토의 제안을 반대한다는 건 당시 폼페이우스에게 부여된 권한이 불법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폼페이우스 본인은 다른 의원들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놀랍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조소를 흘렸다.

  "카토, 자네는 원로원에 들어온 뒤로 내가 누렸던 권한을 줄곧 비판해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난 아직도 자네가 당시 원로원에 있었다면 내가 임페리움을 부여받지 못했을 거라고 주장하던 게 기억에 생생하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인가?"

  잠시 말이 없던 카토가 이내 지극히 태연한 얼굴로 반문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당신과 마르쿠스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일단 세르토리우스의 반란 당시 당신은 법무관의 자격조차 없는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법무관의 연령 제한이 당시보다 많이 낮아졌지요. 마르쿠스는 지금 딱 법무관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동방 원정만 아니었다면 올해 이미 법무관에 당선됐을 거라 이 말입니다.

  "

  "오호라, 그러니까 자네가 당시 그토록 반대를 했던 이유는 오로지 내 나이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란 거로군."

  "···당연하지요. 그 이유 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뻔뻔하기 짝이 없는 카토의 태도에 폼페이우스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민중파 의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카토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거나 여기 계신 여러분들 모두 이게 전례가 없는 법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셨을 겁니다. 게다가 자애로운 피소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대체 뭡니까?"

  "바로 우리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막대한 양의 곡물이 들어올 거라는 전제하에 예산을 편성했다는 겁니다.

  시민들에게도 내년이나 내후년부터는 더 많은 곡물을 배급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속주가 안정되지 않아 제대로 곡물이 걷히지 않는다면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피소, 당신과 민중파의 의원들이 사비를 털어 백성들에게 곡식을 주겠습니까? 아니면 집정관 칼비누스, 당신께서 책임지고 민중들의 분노를 달래겠다고 맹세하실 수 있습니까?

  "

  피소는 당장이라도 반박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마땅한 근거가 떠오르지 않았다.

  친 카이사르파인 집정관 도미티우스 칼비누스도 머리를 긁적이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만족스럽게 좌중을 둘러본 카토가 완전히 쐐기를 박기 위해 우렁차게 포효했다.

  "게다가 만약 파르티아가 인더스 유역을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킨다면 로마는 이를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막중한 임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은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 뿐입니다!"

  귀족파 의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카토의 의견에 찬동했다.

  민중파 의원들은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카토의 말대로 현재 동방 속주로 파견 보낼 인재가 없었던 까닭이다.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 총독에 지중해의 식량 수습을 책임지고 있으니 무리다.

  크라수스는 이제 막 총독 지위를 반납했으니 곧바로 총독으로 부임하는 건 불가능했다.

  점점 회장의 분위기는 카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유심히 상황을 살피던 키케로는 자신이 나설 때가 왔다는 걸 직감하고 카토의 주장을 이어받아 새로운 법안을 발의했다.

  아무래도 법의 인간인 그로서는 단 한 명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키케로가 제안한 법률에 마르쿠스의 이름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이 조항이 마르쿠스를 위한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개선식을 치른 지휘관은 법무관을 지낸 인사와 동등한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

  사실 이건 말장난에 불과했다.

  개선식을 치르려면 군단을 지휘해야 한다.

  하지만 군단을 지휘할 수 있는 자격은 법무관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자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법무관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 개선식을 치른 이들은 공화정의 역사에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의원들 중에 저 법안에 해당하는 이는 폼페이우스와 마르쿠스, 단 둘뿐이었다.

  그래도 바꿔 말하자면 이 법안은 마르쿠스만이 아니라 폼페이우스의 지난 특례를 합법화해주는 법안이기도 했다.

  민중파로서도 최소한의 타협점은 찾은 셈이라 할 수 있었다.

  키케로의 보완책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되었다.

  그런 뒤 칼비누스는 마르쿠스를 동방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번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결국 마르쿠스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합법적으로 임페리움을 부여받고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할 수 있게 되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견제할 심산으로 어마어마한 범위의 속주를 마르쿠스에게 집중시켰다.

  그가 담당하게 될 지역은 다음과 같았다.

  비티니아, 킬리키아, 시리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5개의 속주가 그의 임지가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로마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아시아 전체를 마르쿠스의 관할 하에 둔 것이다.

  기한은 인더스 유역을 점령하게 될 것까지 고려해 기본을 5년으로 정하고, 필요에 따라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할 수 있는 군단의 수는 12개 군단으로 1차 동방 원정에 동원된 규모와 같았다.

  마르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짤막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소임을 완수하겠노라 맹세했다.

  의원들의 아낌없는 박수갈채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시아 속주 전체에 마르쿠스의 클리엔테스인 이집트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하나의 제국이나 다름없는 세력권이 형성된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전역을 합쳐봐야 생산력에서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터.

  여기에 폼페이우스의 세력권인 북아프리카와 히스파니아를 더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쪽을 포함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지역은 아시아와 거의 인접해 있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폼페이우스가 아닌 마르쿠스의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그 어떤 로마의 총독보다 막강한 권한과 힘을 쥔 마르쿠스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속내와는 대비되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라 있었다.

  ※※※※

  마르쿠스는 자신의 총독 임기가 정해지자마자 곧바로 다시 군단을 소집했다.

  무늬만 해산했을 뿐, 다시 집결할 준비를 완벽히 하고 있었던 군단은 순식간에 원래의 위용을 되찾았다.

  마르쿠스는 로마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꼼꼼히 살폈다.

  우선 원로원의 허가를 받아 베레니케에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원로원과 로마의 시민들은 이를 이집트 왕가를 로마의 밑으로 종속시킨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클레오파트라는 키케로의 저택에 자주 드나들며 그와 우호 관계를 키워나갔다.

  키케로는 마르쿠스에게 종종 클레오파트라의 명석함을 칭찬했다.

  "세상에 그 아이···아니, 공주님 말일세. 어쨌든 클레오파트라 공주는 무려 여덟 가지 언어를 구사하더군. 거기에 최근에는 메디아어까지 배우고 있다고 하니 곧 아홉 개 언어를 사용하게 될 거라고 하던데···자네는 알고 있었나?"

  "예. 제가 총명한 여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그녀는 무언가를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리고 왕족답게 나름 야망도 있습니다. 키케로 님이라면 걱정할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주의를 기울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럼 내가 더더욱 그녀에게 공화정의 위대함을 설파해줘야겠군. 자네가 로마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이집트를 공화국으로 만들고 싶다고 해도 놀라지 말게.

  "하하, 정말로 그렇게 되면 제가 키케로 님의 놀라운 수완을 찬양하는 시문을 써서 바치겠습니다."

  키케로와 헤어진 마르쿠스는 마지막으로 폼페이우스를 찾았다.

  요새 부쩍 서재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폼페이우스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마르쿠스. 아니 이제 위대한 메소포타미쿠스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평소처럼 불러주십시오. 폼페이우스 님께서도 절 그렇게 부르시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겁니다."

  "이런, 자네는 사람이 너무 겸손한 게 흠이라니까. 자네는 이미 나나 카이사르를 제외하면 로마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위업을 세웠으니 좀 뻔뻔하게 나가도 되지 않겠나."

  위대한 자라는 뜻인 마그누스를 거리낌 없이 별칭으로 쓰고 다니는 사람의 말이라 그런지 과연 무게가 남달랐다.

  마르쿠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부족합니다. 이번 속주 편성을 완벽하게 마친다면 그때는 메소포타미아를 완벽히 정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그런데 듣자 하니 파르티아측의 최고 명장을 포로로 잡았다는데 그는 로마로 끌고 오지 않았나? 왜, 내가 저번에 말했던 수레나스 말일세."

  "예. 아무래도 충성을 바친 왕이 개선식에서 끌려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할 테니까요. 크테시폰에 계속 놔둘 수는 없으니 일단 안티오키아에서 지내게 조치해두었습니다."

  "아쉽군. 어떤 자인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훌륭한 인물이더군요. 전략에만 능통한 게 아니라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받고 로마의 귀족이 되라고 열심히 설득해볼 생각입니다."

  순간 마르쿠스의 시선이 폼페이우스가 방금까지 읽고 있던 책에 닿았다.

  그것만으로도 폼페이우스의 심경을 읽은 마르쿠스가 슬쩍 물었다.

  "인도 원정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정곡을 찔린 폼페이우스가 머쓱하게 웃으며 덮어두었던 책을 한쪽 구석으로 치웠다.

  "크라수스에게 내가 마지막 원정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들었겠지? 그래서 지금 진지하게 원정지를 검토해보는 중이라네."

  "그 첫 후보가 인도라니 역시 폼페이우스 님이라고 해야 할지···범인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규모로군요."

  "그 알렉산드로스 대왕마저 성공하지 못한 게 바로 인도 원정이 아닌가. 만약 내가 인도를 손에 넣는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재림을 넘어 그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

  "예. 성공만 하신다면 그런 평가를 받으시겠지요."

  마르쿠스의 어조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기색을 느끼지 못할 폼페이우스가 아니었다.

  그가 애꿎은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나도 이게 현실성이 없는 원정이란 걸 알고 있네. 파르티아는 물론 인더스 유역까지 완전히 정복된 상태가 아니라면 인도 원정은 꿈도 꿀 수 없겠지. 보급선 자체를 확보할 수 없으니까."

  "그것만이 아니라 인도의 군대는 지금까지 로마가 상대해온 자들과는 또 다릅니다. 병사들을 새로 훈련 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래, 현실적으로 고려하면 자네 말이 맞네. 나도 무조건 인도로 가겠다는 건 아닐세.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지막 원정인데···최소한 그 정도 가치가 있는 땅을 정복해야 하지 않겠나."

  "그 부분은 저도 동감합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마지막 원정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땅으로 향해야지요."

  마르쿠스의 동의를 얻은 폼페이우스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이제 로마의 영역이 되지 않은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폼페이우스는 탁자 위에 지도를 쭉 펼쳐놓고 원정 후보지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나갔다.

  "일단 로마와 가장 가까운 지역은 게르마니아가 있지만, 여기는 일단 제외하고 싶네. 갈리아처럼 땅이 비옥하다면 모를까 여긴 피를 흘리면서 손에 넣을 가치가 없는 땅이니까. 게다가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에서 돌아오면 추가로 이 지역을 노릴 가능성도 있으니 나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거라 판단했네."

  "동감입니다. 그러면 다키아는 어떤가요?"

  다키아는 현대의 루마니아와 몰도바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다키아인과 게타에인이 거주하는 영역으로 이곳 역시 문명권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강했다.

  "글쎄···다키아도 게르마니아와 별다를 게 없지 않나? 굳이 로마가 정복해야 할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는 땅이야."

  "그건 그렇죠."

  사실 다키아에는 풍부한 금광과 은광이 매장되어 있었으나 아직 로마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걸 알기만 한다면 폼페이우스도 당장 다키아 원정을 추진할 테지만, 마르쿠스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다키아를 병합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였고, 그 역할을 폼페이우스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대신 손가락을 들어 이집트의 남쪽 부근을 짚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여기밖에는 없군요."

  폼페이우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마르쿠스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유심히 지도를 살피던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찼다.

  "허허···악숨 왕국을 치라고?"

  마르쿠스가 제안한 원정지는 현대의 에티오피아, 로마 시대에는 악숨 왕국으로 불리던 지역이었다.

  악숨은 최고 전성기에는 로마나 사산 왕조마저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악숨 왕국의 국력이 최고조를 맞는 건 기원후 1세기 이후로 아직은 그리 강대한 수준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지역을 병합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폼페이우스는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저곳은 그래도 문명권이니 게르마니아나 다키아보다는 낫지만···정말로 군단을 일으켜 정복할 가치가 있는 땅인가?"

  "물론입니다. 악숨의 지리적인 가치는 결코 낮지 않습니다. 우선 저 지역을 정복한다면 지중해에 이어 홍해마저 완벽히 로마의 바다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인도와 해상으로 교역할 수 있는 길이 뚫리는 겁니다."

  아직 이 시대에는 수에즈 운하가 뚫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홍해의 가치는 엄청났다.

  거기에 에티오피아는 나일강의 원류가 시작되는 국가라 농업 생산력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지금 시기에는 현대와 달리 강우량도 제법 풍부해 농사를 짓기에 최적인 땅이 많았다.

  마르쿠스의 설명을 들은 폼페이우스도 점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가능성 없는 인도 원정보다야 실리와 명예를 둘 다 챙길 수 있는 악숨 원정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결정적으로 마르쿠스의 마지막 한 마디가 폼페이우스의 허영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지중해의 수호자인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이제 지중해를 넘어 홍해의 지배자가 될 차례가 온 것입니다."

  "홍해의 지배자라······."

  "네. 그리고 나일강의 원류를 정복한다는 것은 곧 인류 문명의 원초를 손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문명의 요람. 나일강의 근원에 다다라 불멸의 명성을 손에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문명의 요람. 나일강의 근원 이 두 단어를 들은 폼페이우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마음에 드는군. 그 정도라면 내 최후 원정길의 목표가 될 자격이 있겠지. 역시 자네와 말을 나눠보기를 잘했어. 그나저나 저 지역을 치려면 필연적으로 이집트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자네에게 중재를 부탁해도 되겠지?"

  마르쿠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대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저도 한 가지 바라는 게 있습니다. 저 지역의 고원 지대에서 신기한 씨앗이 자란다고 하는데 그 식물의 독점권을 가지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씨앗 한 종류쯤이야 얼마든지 가지게. 그런 걸로 이집트에서 군량을 아낌없이 지원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는 없을 테니."

  에티오피아의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콩을 닮은 이 씨앗은 훗날 커피라고 이름 불리게 된다.

  마르쿠스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 커피콩을 자신이 손에 넣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 지역이야 당분간은 폼페이우스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에티오피아로 향하려면 이집트를 거쳐야 하는데 이집트는 마르쿠스의 클리엔테스였다.

  차기 파라오가 아르시노에나 클레오파트라가 된다면 마르쿠스의 영향력은 더욱더 공고해진다.

  과연 그때가 오더라도 폼페이우스의 영향력이 에티오페아에 미치고 있을까.

  마르쿠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마지막 원정을 최고로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으니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양자의 이해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현재 로마의 최고 실권을 쥐고 있는 두 거물의 얼굴에서 한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124. 최후의 원정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