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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유대 폭동 (128/326)

  < 127. 유대 폭동 >

  127.

  마르쿠스는 안티파트로스와의 접견이 끝난 뒤 한 백인대만을 대동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표면상의 이유는 예상보다 심각한 예루살렘의 폭동에 관한 대처를 새롭게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안티파트로스는 마르쿠스의 명령대로 그 사실을 거리에 널리 퍼트렸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껏 긴장해 있던 예루살렘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로마 총독이 진노했다는데?"

  "2개 군단을 끌고 내려왔으면서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시 안티오키아아로 돌아갔다더라."

  "아예 6개 군단을 끌고 내려올 거라는 말도 있어."

  "예루살렘을 전부 부수고 모든 주민들을 노예로 팔겠다고 선언했다는 말도 들리던데···우리 큰일 난 거 아냐?"

  예루살렘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철통같은 방어를 자랑하던 성벽은 이미 허물어진 지 오래라 군대가 쳐들어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기세 좋게 폭동을 일으키긴 했지만, 막상 로마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니 서로 책임 전가를 하며 싸우기 바빴다.

  민중을 규합해 중심을 잡아줄 사람조차 없으니 혼란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힐카누스와 안티파트로스는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걸로만 보였다.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면 예루살렘은 이미 아비규환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공포와 혼란으로 범벅된 도시를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좋아, 생각보다 로마가 더 강경하게 나와 주는군. 이대로 가면 안티파트로스 그놈은 확실하게 실각되겠어.'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 혈통인 안티고누스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까지 유대를 다스리던 하스몬 왕조는 폼페이우스가 시리아를 정복했을 때 함께 멸망당했다.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의 성벽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자존심인 성전마저 허물었다.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아리스토불로스는 로마로 압송당했으며, 하스몬 왕조가 정복한 모든 땅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했다.

  문자 그대로 철저하게 붕괴 되었고 몰락한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불로스의 아들인 안티고누스는 이대로 왕가의 영광을 끝낼 마음이 없었다.

  그는 로마의 손아귀에서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기 위해 물밑에서 다양한 공작을 펼쳤다.

  다행히도 폼페이우스 이후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한 자들은 유대를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소란이 일어도 귀찮은 날파리가 윙윙거린다고 여겼을 뿐이다.

  안티고누스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접촉했던 대상은 파르티아였다.

  그러던 차에 새롭게 총독으로 온 크라수스가 예루살렘에서 약탈한 황금으로 군대를 편성하고 원정길에 올랐다.

  안티고누스는 제발 파르티아가 이기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로마군의 대승으로 끝났고 간신히 줄을 댔던 오로데스는 로마로 압송되어 버렸다.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페르시아의 후예는 무슨. 탐욕스럽게 황금만 밝히는 쓰레기들이."

  기본적으로 이민족들을 깔보는 유대인이라도 페르시아에는 어느 정도 경의를 표했다.

  세계 최초로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자 야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위대한 군주, 키루스 대제의 존재 때문이다.

  실제로 유대인들 가운데는 키루스를 야훼가 보낸 메시아라 생각하는 자들이 아직도 많았다.

  안티고누스조차 키루스라는 이름에는 일종의 동경과 선망을 하고 있었다.

  로마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한 자들이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한다는 게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샤한샤는 얼어 죽을···변방 이교도들의 왕 따위가. 놈들이 전쟁에서 비슷하게 싸웠어도 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일은 없었을 텐데."

  안티고누스는 잔뜩 불만에 젖어 짜증나는 정세를 곱씹어보았다. 그때였다.

  황급히 달려온 하인이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왕자님, 타국의 왕족이라는 분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왕족? 이 근처 국가에 왕족이라고 해봐야 나바테아밖에 더 있나? 혹시 사칭하는 게 아니냐?"

  안티고누스는 일단 의심부터 했다.

  나바테아의 왕족이 그를 이렇게 비밀리에 찾아올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인이 받아온 인장을 본 안티고누스는 입을 떡 벌리며 몇 번이나 인장을 촛불 근처에 가져가 확인했다.

  머릿속을 뒤져서 기억을 떠올려볼 필요조차 없었다.

  동방에서 이 왕가의 문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왕족이나 귀족은 단연코 한 명도 없는 까닭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일원이 어째서 예루살렘에······."

  안티고누스는 하인에게 가장 좋은 포도주와 음식을 준비하라 이르고 직접 나가 손님을 맞이했다.

  주황색의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문밖에 서 있었다.

  두 남성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몸이 굉장히 탄탄해 보였다.

  안티고누스는 유창한 마케도니아어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안티고누스입니다. 그런데···정말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에서 오신 분이 맞습니까?"

  "왕가의 인장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하스몬의 핏줄은 참으로 안목이 부족하구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한 여인이 베일을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금발이 폭포수처럼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호수를 연상시키는 푸른 눈동자가 안티고누스를 노려보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뻣뻣하고 오만한 태도가 고귀한 외모와 어우러져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왕족들이 얼마나 안하무인이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안티고누스는 소녀가 파라오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국이 어수선해 피치 못하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이리로 들어오시길."

  소녀는 별다른 대답 없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응접실로 들어간 그녀는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야 하니 주변 사람을 물리거라."

  안티고누스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아무리 몰락한 왕족이라고 해도 그 역시 일국의 왕자였다.

  그런데 소녀는 마치 그를 아랫사람 다루듯 대하고 있었다.

  짜증이 솟구쳤지만, 이집트 왕족의 지랄 맞은 성격은 유명했기에 그냥 군말 없이 따라주기로 했다.

  안티고누스가 손짓을 하자 하인이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소녀도 대동한 호위 중 한 명을 바깥으로 내보냈으나, 다른 한 명은 여전히 그녀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안티고누스는 머리를 굴려 현 프톨레마이오스 왕족의 가계도를 되짚어 보았다.

  그가 알기로는 현 파라오의 딸은 세 명이었다.

  그중 장녀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로마로 압송됐고, 나머지 둘도 로마에 볼모로 끌려갔다고 들었다 눈앞의 소녀는 나이로 봐서 장녀가 아닌 건 확실해 보였다.

  "위대한 파라오의 후손을 직접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데, 제가 공주님을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소녀가 거만하게 콧대를 세우며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아르시노에라고 부르거라."

  "예, 아르시노에 공주님. 한데 어째서 예루살렘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알기로 공주님께서는 그···로마에 볼모로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볼모가 아니라 유학을 간 것뿐이다! 누가 감히 장차 파라오가 될 나를 볼모로 잡을 수 있다는 말이냐. 지금이야 로마의 총독을 따라 다마스쿠스에 머무는 처지이지만 가까운 시기에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갈 것이다."

  총독을 따라 다마스쿠스까지 끌려왔다면 누가 봐도 볼모가 맞지만, 안티고누스는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제가 듣기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로마와 사이가 꽤 좋다고 들었습니다."

  "힘만 쎄고 야만스러운 로마 놈들을 적당히 어우르고 달래주는 것뿐이다. 그걸 사이가 좋다고 표현하는 건 조금 어폐가 있지 않겠느냐. 어쨌거나 예루살렘에 어째서 왔냐고 물었지? 로마의 총독이 잠깐 안티오키아로 향한 틈을 타서 온 것이다. 그러니 용무를 마치는 대로 급히 돌아가야 하고."

  "아, 그래서 얼굴을 숨기고 비밀리에 찾아오신 거였군요."

  "얼굴을 숨긴 게 아니라 굳이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단어를 제대로 사용해주면 좋겠군."

  안티고누스는 터져 나오려는 조소를 간신히 삼켰다.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자존심은 그저 허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안티고누스는 본심을 숨긴 채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총독이 다마스쿠스로 귀환하기 전에는 돌아가셔야 할 테니까요."

  "그래. 그럼 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거라. 네가 이번 예루살렘 폭동의 흑막이 맞느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안티고누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지금까지 얼마나 평점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해왔던가.

  그는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에겐 그럴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어째서 그런 걸 확인하러 여기까지 오셨는지 모르겠군요."

  "···아니라고? 그럼 그 흑막이 누구인지 짐작 가는 바라도 있나?"

  "당연히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걸 확인하시기 위해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기신 겁니까?"

  아르시노에는 대놓고 표정을 찌푸리며 안티고누스를 흘겨보았다.

  '사전에 들은 그대로의 반응이네.'

  둥글게 웃음 짓는 눈 뒤로 감춰진 날카로운 칼날이 느껴졌다.

  아르시노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잘 알았다.

  "틀림없이 그쪽이라고 생각했는데···그럼 예루살렘에서 암약하고 있는 세력이 두 개라는 말인가?"

  "제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고 이미 결론을 내리신 듯하군요. 대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이유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그야 너, 파르티아와 공모하고 있잖아?"

  "······!"

  이번에는 감정을 다 숨기지 못했다.

  안티고누스가 몸을 움찔하며 눈가가 가볍게 흔들렸다.

  동시에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라면 몰라도, 볼모로 잡혀 있는 이집트의 공주가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저는 공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짜증나니까 발뺌은 그쯤 하지? 오로데스의 심복이던 귀족에게 직접 들은 사실이니까."

  잡아떼도 소용없다는 걸 느낀 안티고누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떨리는 손을 숨기기 위해 자연스레 탁자 아래로 팔을 내리며 물었다.

  "설마 로마의 총독도···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았다면 네 목이 지금까지 붙어 있었을까?"

  "그, 그것도 그렇군요. 그런데 공주님은 어떻게 파르티아의 귀족들과 그런 깊은 교류를 맺고 계신 겁니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텐데······."

  "당연히 가증스러운 로마 놈들을 몰아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로마가 지금이야 이 지역을 전부 점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터져 나오려는 불만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을 뿐. 나는 이미 폰투스,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파르티아의 귀족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놓은 상황이니라."

  자부심이 듬뿍 느껴지는 목소리다.

  아르시노에의 말에 안티고누스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어깨 위에 사고기관이 달려 있다면 생각이란 걸 해보아라. 이집트는 3천 년 전부터 살아있는 신의 통치를 받은 국가다. 그런 유서 깊은 나라가 로마 따위에게 언제까지나 고분고분할 줄 알았더냐? 파르티아도 마찬가지다.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들이 전쟁에서 한 번 패했다고 로마에게 계속 숙이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티고누스는 아르시노에의 말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나 자신을 신이라고 자칭하는 신성모독은 굉장히 거슬리긴 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더욱 신뢰가 갔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로마의 밑에서 복종하는 게 얼마나 굴욕적이겠는가.

  아르시노에는 아직 파라오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그런 굴욕을 맛보기 전에 로마에게서 독립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그대로 전해졌다.

  로마에게 당한 피해자라는 측면에서 안티고누스는 그녀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럼 공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이유는 폭동을 일으킨 흑막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입니까?"

  "그래. 그리고 파르티아와 공모하고 있는 그쪽이라면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괜한 헛걸음을 했어."

  아르시노에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다급해진 안티고누스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도 저는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유대 왕국을 통치하던 하스몬 왕가의 핏줄입니다."

  "글쎄? 굳이 그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데. 너는 아까 로마에게 대항해 폭동을 일으킬 능력은 물론 의지도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줄곧 파르티아와 공모하며 반로마파 활동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번 폭동의 흑막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

  나는 그런 무능력한 사람은 필요 없느니라. 괜히 발목만 잡을 게 뻔하니. 아, 그리고 네가 어디 가서 이 일을 떠벌여도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이 일로 날 협박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

  "협박이라니요! 그런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안티고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을 서성거리며 고뇌에 빠졌다.

  동방을 아우르는 거대한 반로마 연합이 형성되어 있다면 자신도 반드시 합류하고 싶었다.

  아니, 정황을 보아하니 이미 유대 지역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국가가 동맹을 맺은 듯 보였다.

  여기서 소외된다면 안티고누스가 유대의 왕좌에 오르는 건 한낱 꿈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덥수룩한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내 마음을 정한 안티고누스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속삭이듯 말했다.

  "폭동을 뒤에서 주도한 사람은 접니다.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인지라 본의 아니게 공주님께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아르시노에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그녀는 도로 의자에 앉아 비어있는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화를 계속 나누겠다는 의미였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안티고누스는 재빠르게 희석한 포도주를 그녀의 잔에 채워주었다.

  만족스럽게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혀로 입술을 살짝 훑으며 미소를 지었다.

  "뒤늦게라도 주모자를 찾아서 다행이군. 그런데 설마 되는 대로 일단 내뱉고 본 건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이후의 행동으로 증명해보이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굳이 사람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킨 이유가 뭔가? 힐카누스와 안티파트로스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안티고누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 똑똑해 보이지는 않았는데···이상할 정도로 가끔 핵심을 찌르고 들어오는군. 역시 파라오의 핏줄은 다르다 이건가.'

  폭동을 일으킨 이유는 그녀의 말대로 대제사장과 행정 장관을 축출하기 위해서였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면 치안을 안정시킬 의무를 지고 있던 저 두 사람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 안티고누스가 등장해 혼란스러운 민중을 수습하고 자신이 예루살렘을 안정시킬 적임자라는 걸 강조할 계획이었다.

  모든 일의 전모를 들은 아르시노에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정신인가? 로마군이 예루살렘으로 진입할 때까지 이 혼란을 그대로 놔두겠다고? 그러면 최소 수만의 사람이 죽고 노예로 팔려갈 텐데? 어쩌면 예루살렘의 기둥뿌리 자체가 뽑혀나갈 수도 있어."

  "제가 다시 온전한 자리를 찾으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그런 일을 겪는다면 로마를 향한 유대의 증오도 더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감수해야 할 피해라고 봅니다."

  수만 명이 죽을 거라는 소리에도 태연히 응수하는 목소리에는 명백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르시노에는 목구멍 위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억눌러 삼켰다.

  대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본심과는 다른 충고였다.

  "너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군. 그쪽은 로마의 현 총독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자가 안티오키아로 돌아가 추가 군단을 편성하는 걸 논의하는지 잘 생각해보도록.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아예 풍비박산 나고 주민들 전원이 노예로 팔려간 뒤에 후회해봐야 늦을 걸?"

  "설마 그렇게까지······."

  "과거 카르타고를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린 게 어느 나라의 소행인지 잊어버린 건가? 게다가 놈들은 이번에도 파르티아의 왕을 개처럼 로마에서 끌고 다니며 구경거리로 삼았다. 예루살렘을 밀어버리고 널 포로로 잡아다가 로마에서 행진시킬 가능성이 정말로 낮다고 보는 건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안티고누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루살렘 전체가 괴멸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그의 목소리가 절로 다급해졌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로마가 오기 전에 폭동을 진정시켜야지. 그리고 네가 대표로 나서서 총독과 협상을 하도록 해. 나도 일단 현 총독과 밀접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니 옆에서 거들어 줄 수 있을 거야."

  "제가 처음부터 전면에 나서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야 이 사태를 완만하게 수습할 수 있을걸."

  "······."

  안티고누스는 즉답을 내릴 수 없었다.

  힐카누스와 안티파트로스가 실각되기 전까지는 절대 나서지 않으려고 했던 까닭이다.

  아르시노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반쯤 남아있는 희석한 포도주를 한 번에 쭉 들이켰다.

  그리고 뒤편에 서있는 장한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남성이 품에서 커다란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 아르시노에에게 건네주었다.

  두루마리를 쫙 펼치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선택을 내리는지는 네 마음이고 일단 여기에 서명을 해서 우리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표명하도록."

  "···굳이 서명을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럼 우리가 뭘 믿고 너와 행동을 함께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유출될 위험이······."

  "이게 유출되면 내 목부터 날아가는데 관리를 그렇게 소홀히 하겠느냐.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자."

  아르시노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려 하자 안티고누스는 황급히 두루마리에 서명을 하고 인장을 찍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아르시노에는 끝까지 도도한 태도로 몸을 돌려 안티고누스의 저택을 나섰다.

  저택의 정문까지 따라온 안티고누스가 깊숙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다마스쿠스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아르시노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했다.

  "제가 잘 한 거 맞나요?"

  "아주 훌륭하셨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건을 벗은 스파르타쿠스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쿠스 님이 한없이 오만하고 방자한 태도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었는데······."

  "처음 공주님을 봤을 때가 연상될 정도로 오만이 가득한 왕족 그 자체였습니다."

  마르쿠스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 아르시노에의 얼굴이 수치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 때는 철이 없었던 때라······."

  "어쨌든 그 덕분에 훌륭한 성과를 거두지 않으셨습니까."

  "저야 사전에 지시받은 말을 읊었을 뿐이니까요. 이런 역할은 원래 언니가 더 잘했을 텐데."

  "오히려 그랬으면 안티고누스가 더 의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조심성 많은 저 자를 완벽히 속여 넘긴 것만으로도 공주님은 훌륭히 역할을 수행하신 겁니다."

  "그거야 파르티아 언급이 결정적이었죠. 그전까지는 그자는 저를 믿는 눈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마르쿠스 님은 대체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와 공모한다는 걸 어떻게 알고 계셨던 걸까요?"

  스파르타쿠스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분께서 모르고 계셨다면 오히려 더 놀라운 일이었겠지요. 전 이제 이 정도의 일은 전혀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아르시노에 역시 비슷한 심경이었다.

  마르쿠스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아르시노에는 마음 한켠에 알 수없는 열기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이내 점점 멀어지는 예루살렘의 전경을 돌아보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이제 조금 뒤면 피바람이 불겠네요.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요. 마르쿠스 님은 기본적으로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처벌이 필요할 때는 결코 망설이는 법이 없으니까요."

  밤이 됐는데도 횃불을 든 유대인들은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뭐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리의 혼란은 조금도 수습되지 않았고,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아르시노에의 눈에는 허물어져 있는 예루살렘의 성벽터가 마치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 127. 유대 폭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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