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 신벌의 대행자 (129/326)

  < 128. 신벌의 대행자 >

  128.

  안티오키아로 귀환했던 마르쿠스는 2개 군단을 추가로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남하했다.

  다마스쿠스에서 대기하고 있던 2개 군단과 합류해 총 4개 군단이 위풍당당하게 행군을 개시했다.

  가도를 따라 움직이는 여행자들은 2만이 넘어가는 로마군의 위용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병사들은 주변에 눈길도 주지 않고 행군가를 부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로마군은 전통적으로 각 대대마다 행군의 박자에 맞춰 자체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만드는데 능숙한 베테랑들은 후렴구를 만들어 연신 목청을 드높였다.

  "하나 둘, 하나 둘, 예루살렘이여 징벌의 때를 기다려라!"

  "셋 넷, 셋 넷, 도시를 허물고 폭도들을 쓸어버리자!"

  "다섯 여섯, 다섯 여섯, 어리석은 유대여 심판의 때가 다가왔다!"

  커다란 대롱에 담긴 깃발이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기수의 손에서 펄럭이고, 주변 일대가 병사들의 우렁찬 행군가에 떠나갈 듯 진동했다.

  예루살렘 근처에 퍼져 사는 소수부족들은 로마군의 진로에서 몸을 피하기 바빴다.

  마침내 마르쿠스의 눈앞에 예루살렘의 전경이 보였다.

  예전에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따라 왔을 때는 높고도 험준한 성벽에 내심 감탄했을 정도로 인상 깊은 요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문은커녕 성벽조차 없는 뻥 뚫린 도시에 불과했다.

  "저항이 없군요. 폭도들의 수가 수만이 훌쩍 넘어간다고 했는데 의외로군요."

  안토니우스가 의문을 표했다. 이 정도의 대군이 왔는데도 유대인들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제압당하고 노예로 팔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르쿠스의 옆에서 말을 몰고 있는 푸블리우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께서 손을 쓰신 건가요?"

  "그래. 자포자기해서 유대인들이 전부 들고일어나면 우리 군도 피해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소중한 우리 병사들의 피가 이런 장소에서 허무하게 흘러서는 안 되지."

  마르쿠스의 설명을 들은 군단병과 군관들의 얼굴에 일순 감동의 빛이 스쳤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쌓는 것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병사들의 목숨을 살피는 지휘관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지휘관은 확실하게 공을 올릴 수 있는 자리라면 약간의 희생 정도는 쉽게 감수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언제나 일관되게 부하들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군단병들도 총사령관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봉급이나 수당도 아낌없이 지급하니 충성심이 솟아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마르쿠스가 뻥 뚫린 예루살렘의 성문 쪽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전군, 지금부터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아직 상황이 종결된 건 아니니 대열을 유지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우와아아아!"

  로마군이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진군했다.

  마르쿠스는 이번 진압 작전에서 도시의 약탈은 허용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엄연히 로마의 속주였고, 군단은 여기에서 발생한 폭도들을 제압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모를까 아직 그 정도의 단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도시의 외곽에는 예루살렘 시민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도시가 텅 비어버리기라도 한 듯한 상황이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군단장 한 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유대인 놈들이 죄다 도망이라도 간 건가?"

  마르쿠스는 굳이 답을 알려주진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었던 까닭이다.

  예상대로 도시의 중심으로 들어온 로마군은 어째서 유대인들이 보이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인파가 광장에 집결해 있었다.

  조금 과장을 섞어 도시의 인구 전체가 집결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광장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근처의 지붕 위에 올라가거나 가옥의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 공포와 분노, 혐오 등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상한데? 폭동이 일어났다더니 왜 죄다 한곳에 모여 있는 거야?"

  안토니우스가 내뱉은 의문은 모두의 궁금함이기도 했다.

  마르쿠스가 손가락을 들어 높은 단상 위를 가리켰다.

  사람들을 끌어모은 인물은 거기에 있었다.

  '저놈이 안티고누스인가.'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아르시노에에게 들은 인상착의와 판박이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지지세력을 총동원한 그는 마치 왕처럼 유대인들의 위에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두카이파와 하스몬 왕가 추종자들의 수는 의외로 굉장히 많았다.

  눈대중으로 대충 헤아려 보면 적어도 1만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주 좋아. 예상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겠군.'

  마르쿠스는 무심코 흘러나오려는 미소를 도로 억누르며 무표정하게 말을 몰았다.

  그의 앞을 지키는 군단병들이 입을 모아 광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예루살렘의 폭도들은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얌전히 죗값을 치르라!"

  군중들은 웅성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의 눈에 비친 로마군은 너무나도 강해 보였다.

  이제 와서 그들과 맞서 싸우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먼지만큼도 들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폭동에 가담했던 자들도 많았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의 수도 상당히 많았다.

  광장에 모인 유대인들의 시선이 자신들을 불러모은 왕족의 마지막 혈통에게 집중되었다.

  구원을 바라는 민중들의 눈길을 느낀 안티고누스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기까지는 전부 계획대로였다.

  그가 지지자들 사이를 헤집고 단상 저편으로부터 뚜벅뚜벅 다가왔다.

  마르쿠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로마군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안티고누스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극적인 어조로 말했다.

  "위대한 로마의 총독님을 뵙습니다! 저는 하스몬 왕가의 일원인 안티고누스라 합니다."

  마르쿠스는 고개를 까딱이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표정 역시 미동조차 하지 않아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안티고누스가 한 차례 심호흡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째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지 의문이실 겁니다. 기존의 유대 지역을 책임지고 있던 대제사장과 행정 장관은 군중들을 통솔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 시민들은 단순히 로마에 불만이 있던 게 아닙니다. 무능한 대제사장과 행정 관료들에게 쌓여 있던 불만이 옳지 않은 형태로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는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 이 말인가?"

  마르쿠스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안티고누스는 당황하지 않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당연히 아닙니다.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불만을 핑계로 약탈과 폭력을 저지른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이미 저희 쪽에서 그런 자들을 솎아냈습니다."

  안티고누스가 몸을 돌려 한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손발이 묶이고 재갈이 물린 남자들이 줄지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경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로마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진 군중들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안티고누스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두카이파와 제사장들을 동원해 폭동에 앞장선 자들을 넘기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선동한다.

  그리고 자신이 폭동을 잠잠하게 만들었으며, 유대인들에게 널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군중을 한 자리에 모았다.

  물론 이렇게 모두가 결집해 있으면 로마군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의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포박된 사람들은 감히 로마의 시민권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들입니다. 이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라 생각했기에 이렇게 신병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래. 이유가 뭐가 됐든 로마 시민권자의 신체에 위해를 가한 건 심각한 범죄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속주민이 로마 시민을 구타했다면 최소로 잡아도 전 재산 몰수, 그게 아니면 사형이다.

  마르쿠스가 신호를 보내자 군단병들이 우르르 다가가 묶여있는 폭도들을 거칠게 연행했다.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무자비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이들에게 당한 로마 시민 중에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기회만 벼르고 있던 병사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자들은 가차 없이 다리를 부러뜨려 버렸다.

  재갈이 물린 상태라 변변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군중들은 뼈가 부서지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동포들에게서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군중심리에 휩싸여 다 함께 로마 타도를 부르짖을 때와 달리 지금은 이성이 돌아온 상태였다.

  과격파 몇몇을 넘기고 자신들이 한 행동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었다.

  아니, 군중들의 대다수는 이미 선량한 자신들이 과격파에게 선동당했던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을 대신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심판받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안티고누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새어나오려는 조소를 간신히 참았다.

  모든 게 예상과 한치도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유대의 행정장관은 안티고누스 자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아르시노에나 다른 파르티아의 귀족들과 긴밀히 협력해 로마를 몰아내면 된다.

  이집트와 유대,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폰투스가 다 함께 들고 일어나면 제 아무리 로마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터.

  그는 충성스러운 표정을 가장한 채 마르쿠스가 빨리 자신의 공을 치하하기를 기다렸다.

  수백 명의 폭도들이 전부 연행되자 마르쿠스는 안티고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티고누스도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마르쿠스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마르쿠스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안티고누스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폭도들을 잡아들였으니 이들을 뒤에서 부추긴 자들도 함께 구속해야겠지. 병사들은 들어라, 폭동의 수괴인 안티고누스와 그를 지지한 자들을 전원 포박해 안티오키아로 압송하라!"

  "······?"

  안티고누스는 순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가 마르쿠스의 입에서 떨어진 명령을 완벽히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에게 붙들리고 나서야 뒤늦게 정신이 든 안티고누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이게 대체 뭐하는 겁니까! 어째서 제가 폭도들과 함께 연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네가 이 일을 뒤에서 꾸민 주범이니까. 선동당해 일을 저지른 잡범들만 구속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가."

  "···내가 주범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안티고누스는 순간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군중들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이대로 끌려가면 죽는 건 확실하다.

  이렇게 된 이상 전면적인 봉기를 일으켜 자신이 도주할 틈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이 자리에는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가득 집결해 있었으니 충분히 선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티고누스가 뭐라 입을 채 열기도 전에 마르쿠스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여기 안티고누스가 예루살렘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는 증거가 있다! 저자는 간악하게도 시민들을 선동해 치안을 엉망으로 만든 뒤, 그 책임을 물어 대제사장과 행정 장관을 끌어내리려는 계략을 세웠다.

  만약 로마군이 폭도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그건 자신의 집권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는 발언까지 한 게 확인되었다. 여기 그의 인장이 찍혀 있으니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직접 와서 보아라!

  "

  마르쿠스가 미리 앞 열에 배치해둔 통역관들이 능숙한 히브리어로 마르쿠스의 말을 번역해주었다.

  유대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사태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믿었던 믿음직한 지도자가 사실은 음모를 꾸민 원흉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몇 성질 급한 이들은 믿을 수 없다고 외치며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다.

  마르쿠스는 그런 그들에게 친절히 안티고누스의 서명과 인장이 찍힌 두루마리를 보여주었다.

  대제사장 힐카누스가 신의 이름에 맹세코 안티고누스의 인장은 진품이라고 증언했다.

  여론은 순식간에 급반전됐다.

  배신감에 치를 떤 유대인들은 안티고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몇몇 사람들은 사두카이파들을 향해 침을 뱉기까지 했다.

  군중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놨으니 이야기가 퍼지는 건 몇 분이면 충분했고, 군중심리 역시 한 번에 달아올랐다.

  안티고누스로서는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를 결집시킨 게 역효과를 낸 셈이다.

  '이놈 설마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상황을 연출한 것인가? 하지만 저 서명이 대체 어떻게 저놈의 손에······.'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르시노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였다.

  그녀가 배신했거나, 아니면 계획이 들통나 이미 구금당한 상태거나.

  '이런 개 같은···그때 섣불리 서명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던 안티고누스가 마르쿠스와 성난 군중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 상황에서 무사히 몸을 빼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무작정 필사적으로 양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 버텨 섰다.

  "잠깐! 그 증거는 조작된 것이오! 나는, 나는 억울하오! 그건 필시 누군가의 음모가 틀림없소. 나는 정식 재판을 통해 내 무죄를 밝히길 청하는 바이오!"

  "재판?"

  마르쿠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건 흥미나 관용과는 거리가 먼 비웃음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안티고누스, 내 눈앞에 있는 너는 로마 시민권자인가?"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어째서 내가 로마 시민도 아닌 너 따위에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거지? 총독에게는 속주의 안정을 위협하는 자들을 즉결처분할 권한이 있다. 너는 지금 현행범으로 붙들린 것이다. 당연히 재판을 받을 권리 따위가 있을 리 없지."

  마르쿠스는 안티고누스에게 시선을 떼고 병사들을 둘러보며 목청을 높였다.

  "시리아 속주를 총괄하는 나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가 이 자리에서 폭동을 주도한 안티고누스와 그 일파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겠노라.

  죄인 안티고누스는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해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부풀리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속주민과 로마인이 피해를 보았고 많은 재산이 손실되었다. 여기에 타국의 귀족과 공모해 로마의 통치체제를 전복하려 한 정황까지 발각되었으니 죄질이 특히 나쁘다고 할 것이다. 이에 죄인 안티고누스와 그를 따른 모든 추종세력은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강제노역을 하며 자신의 죄를 참회해야 할 것이다.

  "

  마르쿠스의 냉엄한 선고가 떨어지자 안티고누스는 물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버렸다.

  죽을 때까지 강제 노역을 하는 건 사실상 노예가 되는 것보다도 더 가혹한 처벌이다.

  어떻게 보면 사형이 훨씬 더 인도적인 형벌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별다른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벌이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솟구쳤다.

  로마 입장에서는 합법적으로, 그것도 별다른 불만 없이 1만 이상의 건장한 성인남성을 노예로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르쿠스는 이들을 전부 카프카스 산맥의 광산으로 보낼 예정이었다.

  안 그래도 아르메니아를 속주로 병합한 뒤, 눈치 보지 않고 광산을 개발한 덕분에 일손이 굉장히 많이 모자라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걸로 단숨에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다.

  반란세력을 잠재우고 광산 개발에도 탄력을 받는 일거양득의 결과였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치가 높았던 사두카이파는 이런 처분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차라리 사형을 당하면 당했지, 노예처럼 죽을 때까지 혹사당하라니!"

  "아무리 로마의 총독이라고 해도 이건 우리 유대 전체를, 아니 우리가 믿는 신을 무시하는 것이외다!"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반항하는 자들에게 다가가려 하자 마르쿠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무력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수단이 있었던 까닭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냉혹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희들 가운데 너희가 믿는 신이 내린 계명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이렇게 쓰여 있지.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적질하지 마라, 거짓을 증언하지 마라, 네 이웃의 재물을 탐하지 마라. 그런데 애석하게도 너희는 이 계명을 전부 어겼구나. 자신들이 믿는 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 감히 신의 이름을 입에 담아? 너희같이 신의 이름을 파는 간교한 자들이 있으니 너희의 신이 나를 보내 대신 너희들을 징벌케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과거 선지자들에게 받은 예언을 떠올려 보아라.

  "

  사두카이파는 한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르쿠스는 이후에도 유대인들의 어긴 종교적인 교리를 몇 가지 더 짚어주었다.

  군중들은 침묵에 휩싸여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멍하니 마르쿠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로마의 총독이 십계명만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에도 정통한다는 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몇몇 유대인들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럽게 울며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유대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바빌론에게 정복당한 걸 불순종에 대한 벌이라 여겼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중들은 점차 마르쿠스의 군대를 단순한 이민족의 침략자가 아니라, 자신들을 채찍질하기 위해 신이 보낸 징벌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민족의 장수가 어찌 모세오경과 예언서의 내용에 저토록 해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마르쿠스의 말 한마디에 몸을 떨고 눈물을 보였다.

  이후로 포로들의 연행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놀랍도록 순순해진 유대인들의 반응에 도리어 놀란 쪽은 로마군이었다.

  푸블리우스가 감동에 겨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다가와 물었다.

  "아니, 대체 유대교의 교리는 언제 공부하신 겁니까? 저들의 경전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냥 써먹을 데가 있을까 싶어서 외워놓았던 것뿐이야."

  "역시 형님께서는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심각하게 격화될 수 있었던 예루살렘 폭동도 이리 간단하게 진압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1만이 넘어가는 포로를 덤으로 잡았고, 유대인들도 앞으로 순종적으로 될 테니 이보다 더 좋은 결과는 없을 겁니다."

  "글쎄···이 상태가 쭉 지속할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

  마르쿠스는 가슴을 두드리며 회개하는 유대인 군중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지금이야 잠잠해졌을지 몰라도 지난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저들은 반드시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분쟁은 반드시 일어날 필연과도 같았다.

  마르쿠스는 이들을 방관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 그의 권한으로는 유대인 전원을 추방한다든가,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취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유대인의 반발도 너무 크고 오히려 이들의 결속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이 그렇게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핍박받는다는 의식도 한몫을 했다.

  주변의 모두가 적이니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 유대감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할 생각이 없었다.

  헤로데처럼 순혈 유대인이 아닌 자들을 지배자로 세우고, 각 지파들을 분열시켜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그렇게 분열된 부족들을 하나하나 다른 민족과 동화시켜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발현을 억누른 뒤에, 본격적인 행동에 착수하는 게 최선이리라.

  그 때가 온다면 예루살렘은 더 이상 유대인들만의 도시가 아니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이 삼대종교의 성지라 불리게 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떠나는 마르쿠스의 머리 위로 더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앞으로 원역사와는 달리 이 바람에 짙은 피 냄새가 섞이는 일이 없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 128. 신벌의 대행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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