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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프로파간다 (131/326)

  < 130. 프로파간다 >

  130.

  마르쿠스의 설명에도 관리들의 반응은 그리 극적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인쇄'라는 게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용도가 짐작이 가지 않는 괴상한 모습의 기구로 활자에 대한 개념을 바꾸겠다고 해봐야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마르쿠스는 인쇄기의 개념과 방법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한 번 보여주기만 하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호를 받은 기술자가 손잡이가 달린 둥그스름한 도구에 꼼꼼히 인쇄용 잉크를 묻혔다.

  "자, 그럼 이 내용을 인쇄해 보도록 하지. 내가 유대 지역의 폭동을 제압하며 얻은 수확을 쭉 정리한 보고서라네."

  마르쿠스가 관리들에게 내용을 인쇄할 공문서를 한 장 보여주었다.

  눈치가 빠른 관리 한 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러니까 문서를 손으로 옮겨 쓰지 않아도 이 기구를 사용하면 복사가 가능하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다네."

  "아니, 그게 어떻게······."

  관리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기술자가 종이를 인쇄기에 넣고 압착기 쪽으로 밀어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활자를 미리 깔아놨으니 이 손잡이를 힘껏 돌리기만 하면 완성입니다."

  기술자가 압착기에 힘을 줘서 압착기에 손잡이를 돌렸다.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기본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코르크 병따개를 연상시키는 장치들이 압력으로 종이와 활자를 압착시켜 글자를 선명하게 인쇄하는 것이다.

  관리들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인쇄기에서 꺼낸 종이를 살폈다.

  그리고 종이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선명한 검은 문자의 나열을 본 순간,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떡 벌린 채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

  사람이란 정말로 놀랐을 때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법이다.

  관리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몇 번이나 인쇄물을 돌려보며 혀를 내둘렀다.

  거의 일평생 필사 작업에 매진했던 관리 한 명은 거의 이성을 잃었다.

  "총독님! 이 인쇄기라는 건 지금부터 당장 가동이 가능한 겁니까? 당장 대량 인쇄가 가능한 것이겠죠? 제발 그렇다고 해주십시오!"

  "뭐, 그럴 생각이네. 파피루스에 적힌 중요 문서들은 일단 종이로 인쇄본을 만들고 나중에 파손되면 추가로 찍어내는 식이 되겠지."

  "오오!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이건 혁명입니다. 사람이 손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데 선명함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다니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물에 관리들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현재 1분에 대략 5장 이상을 인쇄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숙달되면 이론상 10장까지도 가능했다.

  지금까지 마르쿠스의 발명품을 쭉 옆에서 봐온 셉티무스마저 이번에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 정도로 지금 시대에서 인쇄기가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님 대체 이런 물건을 어떻게 만드신 겁니까."

  "이미 이걸 만들 기술 자체는 충분히 올라온 상황이었어. 중요한 건 발상이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마르쿠스가 만든 활자와 인쇄기는 구텐베르크가 만들었던 발명품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었다.

  이미 금속을 다루는 기술은 차고 넘칠 정도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으니 어렵진 않았다.

  금속활자를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건 활자가 깨지거나 밀리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이런 방법은 이미 전부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활자를 만들 때 사용된 합금의 비율과 인쇄 전용 잉크의 제조법, 인쇄기의 상세한 설계도까지 전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초기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 사례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었기에 판금 갑옷과는 달리 개발 자체는 수월했다.

  다만 이 인쇄기의 문화적인 영향력은 판금 갑옷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이 점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아직도 조금 고민 중이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셉티무스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마르쿠스 님, 이 기술에 특허를 내고 민간에 공개하실 겁니까?"

  "글쎄···처음엔 그렇게 할까 고민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아무래도 시기상조 같아서."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이 인쇄기가 민간에 보급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솔직히 예상이 가지 않는군요."

  기록에 따르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민간에 퍼진 이후 50년 만에 1000년 동안 출판된 책보다 더욱 많은 책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책의 보급은 곧 지식의 보급과도 같은 말이다.

  실제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 유럽의 질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만약 인쇄술을 민간에 보급하면 지금도 별다르진 않을 것이다.

  못해도 1세기 내에 로마의 사회 구조가 근본부터 대변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금의 마르쿠스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관의 주도로 필요한 책만을 찍어 보급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게 상책이리라.

  마르쿠스가 인쇄기를 만든 이유도 사실 적극적인 프로파간다 전략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지 지식의 보급이 목적이 아니었다.

  "일단 속주의 주요 도시에 인쇄소를 설치하고 공문서들을 전부 종이에 옮기도록 하자. 그다음 예전부터 구상해 두었던 언론 체계를 구축해야겠어."

  마르쿠스의 구상을 들은 셉티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인쇄기를 이용해 선전물을 출판하실 계획이신가요? 종이와 인쇄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상당한 비용이 들 텐데 그만한 효과가 있을까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효과가 있을 거야. 일단은 신문 형태의 관보부터 시작할 텐데 이게 뭔지는 돌아가면서 상세히 설명해줄게."

  이 시대 사람들은 아직 언론의 힘을 모른다.

  아니,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몇몇 있었다.

  로마는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의 특성상 고대국가임에도 언론의 힘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키케로는 펜으로 칼을 제압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하고 다녔다.

  그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친구 아티쿠스를 통해 서적을 간행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했다.

  카이사르 역시 대중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마르쿠스에게 신문에 대해 설명을 들은 셉티무스가 떠올린 것도 카이사르가 도입한 집정관 통달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스처럼 체계적으로 이를 이용하려고 발상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럴 만한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타 디우르나 같은 걸 더 광범위하게 하시려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라. 카이사르 님이 실행한 악타 디우르나는 어디까지나 원로원 의사록을 민중에게 공개하는 거였으니까. 신문은 거기에 좀 더 목적성이 들어가지."

  신문의 역사를 말할 때 그 기원을 카이사르의 악타 디우르나로 보는 시각도 있으니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르쿠스가 만들려는 건 그보다도 훨씬 더 근대 신문에 가까운 관보였다.

  마르쿠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전담할 부서를 따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본격적인 신문 제작에 착수할 때가 되자 주변 사람들과 다른 관리들에게도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적극적으로 신문을 홍보해 처음부터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율리아는 마르쿠스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신의 구상이 제대로 기능한다면 정말 엄청난 위력이 있을 것 같아요. 여론을 문자 그대로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인데···조금 아찔할 정도네요."

  "역시 당신은 이해하는구나. 그래, 이건 무서울 정도의 힘을 갖춘 도구야.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조금 긴장되기도 해."

  "일단 초기 기사들은 거의 전부 당신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 동방을 다스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새로운 총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신문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거예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일단 글자를 읽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신문을 읽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 거야. 아니,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문맹률은 90% 정도로 추정된다.

  즉,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10% 정도였으며 글을 읽을 줄 아는 것 자체가 특권의 상징이었다.

  당장 포로 로마눔 광장만 가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악타 디우르나의 내용을 설명해줄 사람의 주변을 둘러싸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마르쿠스의 목표는 이 10%의 문해가 가능한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만들 수 있다면 나머지 90%의 사람은 자동으로 자신을 따라오게 되어 있다.

  "로마에는 신문을 간행하지 않을 거죠? 동방 속주에만 배포할 건가요?"

  "물론. 로마에는 원로원 의원들이 득실거리니까 너무 심한 선전 작업은 할 수가 없거든.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야. 일단 각 속주마다 1개에서 2개의 대도시를 선정해 놨으니 거기서만 작업을 할 생각이야."

  "비용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돈을 벌려고 하는 사업은 아니니 일단 이윤은 최소로 남게 할 거야. 구독자 수가 갖춰지지 않은 초기엔 손해를 좀 볼 수도 있지만, 1년만 있어도 흑자로 전환될걸. 아, 신문에는 당신이나 아르시노에에 관한 기사도 실릴 예정이니 준비 좀 해줘. 질문지는 나중에 줄 테니까."

  "저에 대한 기사를 낸다고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마르쿠스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사람들은 의외로 엄청나게 궁금해 한다고. 총독의 아내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평소에는 어떤 삶을 사는지.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속주 주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거야. 아르시노에는 그 유명한 이집트의 왕족이니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내 권위를 세워 줄 수 있어."

  "이해가 되면서도 뭔가 얼떨떨하네요. 어쨌든 힘닿는 대로 열심히 해볼게요. 혹시 필요하다면 기사 작성도 내가 돕게 해줘요."

  마르쿠스는 대답 대신 그녀의 몸을 안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이, 참. 요즘은 툭하면 이런다니까."

  율리아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면서도 마르쿠스의 품에 안겨왔다.

  부부 사이의 진한 입맞춤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

  마르쿠스는 신문의 창간호에 실릴 축사를 키케로에게 부탁했다.

  자신이 간행할 신문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로마 최고의 문호인 키케로의 문장으로 창간호를 장식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키케로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그는 마르쿠스의 천재적인 발상을 극찬하며 기꺼이 이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로마에서 날아든 키케로의 편지는 총 3장이었다.

  하나는 마르쿠스의 신문에 실릴 기고문이었고, 다른 두 장은 로마의 동태와 마르쿠스의 서신에 대한 답장이었다.

  <내가 동방에서 자네와 함께 있지 못해 참으로 유감이네, 친애하는 마르쿠스. 자네의 행보는 언제나 나를 좋은 의미로 경악하게 만드는군. 신문이라니, 나는 자네의 편지를 받고 흥분으로 몸이 떨려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네. 만약 자네의 말대로 언젠가 매일매일 이 신문이 집 앞까지 배달이 온다면 대체 어떤 사회가 펼쳐질까.

  로마의 상류층은 매일 아침마다 희석한 포도주에 간단한 식사를 곁들이며 신문을 펴두고 오늘의 시사에 대해서 가족과 토론을 하겠지? 그야말로 내가 꿈꾸는 이상향의 사회일세. 지식과 교양이 온 도시를 뒤덮고 이내 무지한 이들도 하나둘씩 이 위대한 흐름에 동참하겠지.>

  "역시 태생이 문인이라 그런가? 흥분한 기색이 여기까지 느껴지는군."

  편지에서 느껴지는 키케로의 감정은 평소보다도 더 정제되지 않았다. 그가 이 편지를 작성하며 얼마나 들떠 있는 상태였는지 문장만 보아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도 키케로의 안목은 과연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는 신문이 대중에게 끼칠 영향력을 누구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다.

  딱 한 가지 틀린 점을 지적하자면 아침에는 희석한 포도주보다는 커피가 더 어울린다는 것 정도일까.

  '뭐, 커피의 생산과 일일 신문을 찍어내는 건 최소한 몇 년 뒤의 일이 되겠지만.'

  마르쿠스는 피식 웃으며 키케로의 편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그나저나 지금 로마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붕 떠 있는 상태일세. 왜 그러는지 이유는 짐작이 가네.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에서 놀라운 전과를 보내오고 있고, 자네도 동방을 효과적으로 진정시키고 있지.

  거기에 폼페이우스까지 마지막 원정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으니 시민들은 매일을 축제 속에서 사는 기분일 거야.

  자네의 제안대로 원로원도 폼페이우스의 원정에는 협력을 아끼지 않기로 했네. 로마의 영광을 전 세계에 떨친 위대한 용장의 마지막 출진이니 예우는 해야 하지 않겠나. 카토나 비불루스도 여기엔 이견이 없었네. 폼페이우스가 악숨을 정벌한다면 민중파가 한동안 득세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아, 그리고 내 친우인 아티쿠스가 자네의 인쇄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네. 그가 자네와 제휴를 맺고 필요한 책을 대량으로 로마에 들여와 판매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신을 좀 보내주게나.>

  "확실히 로마에 서점을 여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마르쿠스는 키케로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기로 했다.

  신문에 실릴 기고문을 받았으니 그 역시 나름대로 보답을 해서 키케로의 기를 살려줄 필요가 있었다.

  키케로가 적어준 축사를 살펴본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문을 만드는 부서에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쇄소에서 찍어낸 신문이 처음으로 민중에게 배부되는 날이 찾아왔다.

  사전에 적극적으로 홍보한 덕분에 안티오키아와 다마스쿠스에서는 시작부터 상당한 예약이 밀려들었다.

  무엇보다 사전 샘플을 받아본 현지 귀족들과 상인들은 인쇄물의 품질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도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저렴하니 흥미가 동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마르쿠스는 기사의 검수는 율리아와 셉티무스에게 맡긴 채 신문의 인쇄와 배부 작업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바빴는지 신문이 발간되는 날까지도 최종 완성본을 제대로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인쇄와 배부 작업은 순조롭게 끝났다.

  마르쿠스도 오늘 발행된 기념비적인 창간호를 집무실에서 찬찬히 읽어보기로 했다.

  '자, 그럼 얼마나 완성도 높게 뽑혔을지 한 번 볼까?'

  그가 내용을 미리 확인 안 한 건 그럴 틈이 없기도 했지만, 율리아와 셉티무스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틴어로 쓰인 '디우르나 오리엔템(동방 신문)'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루크스의 입가가 무심결에 긴 호선을 그렸다.

  신문 1면의 제일 위에는 창간을 기념하고 마르쿠스를 칭송하는 키케로의 유려한 문장이 올라가 있었다.

  키케로의 축사는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은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야말로 동방의 유구한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인재라는 데에 한 치의 의심을 품지 않는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아래에 실린 기사를 본 마르쿠스는 순간 입안에 머금은 포도주를 도로 뱉어낼 뻔했다.

  "뭐, 뭐야 이거?"

  신문의 1면은 낯 뜨거울 정도의 노골적인 마르쿠스 찬양가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아아! 위대하신 총독 각하!> <우리들은 로마 공화정의 속주민으로서 위대한 총독 각하께 변치 않는 충성을 맹세합니다.>

  사람의 상상력은 원래 비슷한 법인지 어디선가 본 듯한 문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기사의 제목만 과장이 심했고 내용은 그럭저럭 봐줄 만 했다.

  물론 내용에도 과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예루살렘 폭동진압은 기사를 읽는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난공불락을 자랑하는 천혜의 요새 예루살렘도 위대한 총독께서 이끄시는 정예군 앞에는 태풍 앞에 촛불과 다름없었다.

  전면적 진압 작전을 편 지 며칠 만에 유대인들의 항복을 받아낸 건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와 같은 위대한 업적은 전적으로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 총독의 탁월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마르쿠스 총독의 위광에 지레 겁을 먹은 수십만의 유대인들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무기를 버리고 주모자를 바친 뒤, 눈물로 자신들의 죄를 고했다. 그리고 관대한 처분에 감격한 이들은 총독을 자신들의 왕이라 이름 높여 칭송하였다.> '이건 뭐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는 것도 아니고···과장도 적당히 해야지. 무슨 수십만의 군중이 눈이 마주쳤다고 무기를 버리고 항복을 하냐.'

  기사를 읽을수록 이건 아니다 싶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율리아를 믿고 검수를 맡긴 건데 이런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조금 더 세련된 찬양과 선동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쿠스는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자극적인 선동 문구와 낯 뜨거운 찬양이 말도 못 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던 것이다.

  사실 현대에서도 1900년대 초반까지는 저런 식의 기사가 판을 치는 곳이 많았다.

  게다가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매체를 완전히 처음 접하는 상황이었다.

  선동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게 당연했다.

  사람들은 오히려 자극적인 문구와 내용을 더 즐겁게 받아들였고 정말로 사실이라 믿었다.

  파급력은 엄청났다.

  마르쿠스의 예상보다도 더 극적인 효과가 곧바로 드러났다.

  신문 1면에는 마르쿠스가 그날 먹은 식사의 메뉴와 요리법까지 실리게 됐다.

  이러면 그다음 날 귀족들의 식사에는 어김없이 마르쿠스가 먹었다는 음식이 올라왔다.

  행동 하나하나와 말 한1마디가 전부 특종으로 보도되었다.

  마르쿠스가 입안한 새로운 제도는 이틀도 못가 도시 전역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위대한 총독의 일상에 열광했고, 그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마르쿠스는 시리아 속주의 안정화는 끝났으니 슬슬 크테시폰으로 거점을 옮길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찰나, 로마에서 날아든 급보가 마르쿠스의 발목을 잡았다.

  "총독님, 폼페이우스 님께서 악숨 원정을 위해 회담을 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회담 장소는 다음 달 이두스에 알렉산드리아가 좋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알렉산드리아에서 회담을 하자고? 그러면 나야 좋지만 당연히 브룬디시움에서 할 줄 알았는데?"

  속주 총독인 마르쿠스는 이탈리아반도로 가더라도 총독직을 내려놓기 전에는 로마 근처로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회담을 한다면 당연히 항구도시인 브룬디시움이 낙점되리라 생각했다.

  그의 의문은 이어지는 부하의 보고로 단숨에 풀렸다.

  "현 파라오 아울레테스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합니다."

  "···뭐라고?"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마르쿠스의 얼굴에서 일순간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 130. 프로파간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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