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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위대한 자들의 회동 (132/326)

  < 131. 위대한 자들의 회동 >

  131.

  "아울레테스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게 정확히 어느 정도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하던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마에서 온 전령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가."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에게서 온 서신을 다시 훑어보았다.

  내용은 전령에게 들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악숨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협조가 필수불가결이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파라오의 건강 문제로 지원 협상에 차질이 생기는 걸 우려했다.

  그래서 직접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해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다.

  이집트는 사실상 마르쿠스의 클리엔테스나 마찬가지였기에 그에게 협조 요청이 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말이야 회담을 하자고 하지만, 사실상 이집트를 설득해 달라는 요청이나 다름없었다.

  마르쿠스의 입장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어째서 지금 이 시기에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상한데···아직 아울레테스가 죽을 때는 되지 않았을 텐데.'

  마르쿠스의 지식대로라면 아직 아울레테스의 사망까지는 2년가량 시간이 남아 있었다.

  물론 이미 역사와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으니 여러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울레테스의 수명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만한 변화는 일으키지 않았다.

  이집트에 있었던 변화라 해봐야 베레니케가 처형당하지 않은 것과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가 로마로 유학을 온 것.

  이 두 가지 정도에 불과했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있지만···그 부분은 오히려 반대파를 싹 쓸어버렸으니 문제될 건 없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정말로 아울레테스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아르시노에가 있는 이곳에 연락이 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클레오파트라와 폼페이우스가 있는 쪽에만 비밀리에 이 사실을 알려주었을 경우를 고려해보았으나, 이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아르시노에가 이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겼다고 가정하면 얼추 말이 되긴 했다.

  마르쿠스가 셉티무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르시노에 공주를 이리 모셔와."

  "예."

  알렉산드리아에 갈 때는 가더라도 정확한 상황파악은 해둬야 한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사람이 됐다고 확신한 이들이 아니라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지는 않았다.

  그 상대가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르시노에와 클레오파트라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르시노에의 경우 이제 슬슬 마음을 놓아도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긴 했다.

  이집트 왕족으로서의 입장보다는 마르쿠스에 대한 호감이 더 우선인 듯한 모습이 여러 번 관찰되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달랐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마르쿠스를 좋아하긴 해도, 가지고 있는 야망과 능력이 너무 컸다.

  개인에 대한 호감과 파라오라는 자리를 저울질한다면 아마 후자를 택할 여인이었다.

  그녀와 아울레테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마르쿠스 님, 부르셨나요?"

  셉티무스가 아르시노에를 데려오기까지는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말문을 연 그녀에게 마르쿠스가 마주 미소를 지어주며 답했다.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공주님을 모시고 알렉산드리아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일까지는 여기를 떠날 준비를 해주십시오."

  "알렉산드리아로 간다고요? 저도 같이요?"

  아르시노에의 눈이 기대와 흥분으로 반짝였다.

  아버지가 편찮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예. 폼페이우스 님이 이집트와 협상 중에 있는데 파라오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알렉산드리아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럴 리가···전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는데요?"

  "이걸 보시죠."

  마르쿠스가 폼페이우스에게 받은 서신을 그녀에게 넘겼다.

  재빠르게 편지를 훑어본 아르시노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아르시노에 님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었다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군요."

  "예? 하지만 폼페이우스 님이 직접 알렉산드리아로 갈 정도라면 심각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파라오께서 연세가 꽤 되니 조심하는 차원에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르쿠스는 내심 아울레테스가 진짜로 아픈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폼페이우스의 제안을 거절할 구실이 필요했다거나, 아니면 그를 애타게 만들려는 협상 전술일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로마의 부탁을 아예 거부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후자일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이긴 했다.

  '그러면 이쪽에 나쁠 건 없지. 이집트를 설득하는 척해서 민중파 쪽에 빚을 하나 지워 둘 좋은 기회니까.'

  어쨌든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마르쿠스는 아울레테스가 정말로 건강이 악화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따로 나눠 대응책을 모색하기로 했다.

  아르시노에는 그런 마르쿠스를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입장을 확실히 정해야 할 때를 마주한 소녀의 얼굴에 떠오른 심정은 그와 같았다.

  ※※※※

  "하하하! 이게 누구인가."

  우연의 일치인지 마르쿠스는 로마에서 온 선박과 거의 동시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고작 1년 사이에 키케로의 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제 그의 머리에도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신감과 총기로 반짝이는 두 눈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키케로 님께서도 알렉산드리아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원로원 측의 대표도 한 명이 동행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이 나와서 말일세. 거기에 클레오파트라 공주를 데리고 가야 하니 내가 가장 적임이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네."

  "그렇군요. 그런데 클레오파트라 공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혹시 먼저 왕궁으로 들어간 건가요?"

  "그래. 그녀는 파라오의 용태를 살피겠다고 한발 먼저 떠났네. 마그누스는 우리가 타고 온 배에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저기 항구에서 관리들을 닦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이제 곧 끝날 것 같으니 자네도 우리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죠."

  마르쿠스가 저 멀리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폼페이우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시노에라도 먼저 왕궁으로 보낼까 물어보았으나, 그녀는 일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마르쿠스와 함께 가겠다고 답했다.

  그런 두 사람의 옆에서 셉티무스는 쉬지 않고 종이 수첩에 깃펜으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보던 키케로가 물었다.

  "자네는 뭘 그리 열심히 적고 있는 것인가?"

  "<이번 주의 총독님>에 실릴 마르쿠스 님의 언동을 기록 중입니다."

  "이번 주의 총독님?"

  "예, 신문 1면에 실리는 기사의 이름입니다. 매주 정기적으로 올라가는지라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죠. 동방 신문에서 최고의 인기 꼭지입니다."

  셉티무스는 설명을 하면서도 펜을 멈추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알렉산드리아에 가는 건 이미 어제 신문에서 보도가 되었다.

  그마저도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걱정해 문안을 가주는 듯한 뉘앙스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마르쿠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귀환하면 이걸 집중적으로 조명해 신문 1면을 가득 장식할 예정이었다.

  그가 없는 동안에는 대신 율리아의 생활을 설명해주는 특집 기사가 게재될 것이다.

  지금쯤 셉티무스와 마찬가지로 다나에가 율리아의 곁에서 엄청난 속도로 펜을 휘두르고 있으리라.

  키케로가 신문 기사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듯 하자 마르쿠스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키케로 님, 클레오파트라 공주의 교육은 순조로우신가요?"

  "아아, 그래. 안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네. 아주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학생이더군. 하나를 가르치면 셋, 넷을 이해하니 교사인 내가 흥이 나서 이것저것 더 떠들게 된다는 말이지. 공화정의 정치체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게 특히 마음에 들어."

  "정확히 공화정의 어떤 부분을 궁금해하던가요?"

  "어느 특정 부분을 하나 콕 집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왕정과 다른 부분을 신기하게 여기는 듯 보였네. 정무관들이 선거로 뽑히는 과정이라든지 로마 시민들의 행동원리와 통념, 그리고 원로원의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으니 말이야."

  키케로의 표정에서는 흐뭇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그는 공화정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체제라는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타국의 왕족인 클레오파트라가 적극적으로 공화정을 배우려는 자세는 키케로를 흡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역시 키케로 님에게 부탁드리길 잘한 것 같군요. 클레오파트라 공주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하하하, 나야말로 아주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있네. 로마에 감화된 그녀가 나중에 파라오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로마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키케로가 알렉산드리아의 행정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르시노에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그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자네와 함께 있는 저 공주는 어떤가? 로마에 우호적인 사람인가?"

  "예. 클레오파트라 공주 못지않게 호의적인 왕족입니다. 순수하고 복잡한 계산을 못하는 성격이라 로마에 해가 되는 짓은 하지 못할 겁니다."

  "아주 좋군. 누가 차기 왕이 되더라도 이집트의 안정이 흔들릴 일은 없겠어."

  마르쿠스는 미묘하게 고개를 까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르시노에에게서 시선을 뗀 그가 다시 폼페이우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마그누스 님과 함께 있는 청년은 누구입니까? 보아하니 아까부터 계속 옆에 붙어 다니는 것 같은데."

  "자네는 처음 보나? 저 청년이 마그누스의 장남인 그나이우스일세. 자네보다 10살가량 어린 걸로 아는데 제법 능력이 괜찮아 보이더군. 마그누스 입장에서는 장남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을 테니 최근 부쩍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모양이라네. 아마 악숨 원정에도 데려가지 않을까?"

  "위대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장남이라······."

  마르쿠스는 예전에 읽어두었던 폼페이우스의 장남에 관한 기록을 떠올려 보았다.

  그나이우스는 그의 아버지가 카이사르에게 패한 뒤에도 항복하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병사들을 규합해 저항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 폼페이우스도 이기지 못한 상대를 그가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탑수스 전투에서 대패한 그나이우스는 동생과 함께 히스파니아로 도주하고, 거기서 또 군사를 모아 카이사르와 대적했다.

  결국 히스파니아로 진군해온 카이사르에게 또다시 패배한 그는 도주 중에 붙들려 처형당했다.

  능력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버지만 못했으나, 근성이나 승부욕만큼은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폼페이우스의 후계자는 제법 뛰어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기엔 아버지의 후광이 지나치게 강렬했고, 사람들의 기대도 높았다.

  빤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느낀 것일까.

  폼페이우스가 장남을 대동하고 마르쿠스 쪽으로 걸어왔다.

  나직하면서도 위엄이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우리가 타고 온 배에 침수가 심하게 든 것 같아 노파심에 확인해 보고 오는 길일세. 그나저나 마르쿠스, 자네를 항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반갑군."

  "저도 같은 날 도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도 유피테르 신의 인도겠지요."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만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폼페이우스도 활짝 웃으며 자신의 뒤편에 서 있는 청년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마침 좋은 기회니 소개하겠네. 우리 가문의 장남인 그나이우스일세. 둘째 섹스투스도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아이가 군사훈련을 받다가 다리를 삐끗해서 오지 못했다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입니다. 아버지의 과분한 이름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크라수스입니다."

  다소 어색한 통성명이 짧게 오고 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키케로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며 과장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 보니 그나이우스와 마르쿠스 둘 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자질을 갖췄다는 공통점도 있고 말일세."

  "마르쿠스는 몰라도 그나이우스는 아직 갈 길이 멀다네. 내가 저 나이 때는 이미 개선식을 치렀어."

  "이십 대 초반에 개선식을 치른 사람은 공화정 역사상 마그누스, 당신밖에 없을 거요. 마르쿠스 역시 삼십이 넘어서 개선식을 치르지 않았소?"

  "하지만 마르쿠스는 고작 삼십의 나이에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평정하고 아르메니아까지 속주로 병합하지 않았나. 그의 군사적 업적은 나와 대등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세. 아직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이 아이와 동일 선상에 놓는 건 마르쿠스를 모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네."

  "이거 참 엄격한 아버지로군."

  키케로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폼페이우스의 말은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었다.

  나이는 10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나이우스와 마르쿠스의 차이는 논하는 게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비슷한 거라고는 로마 최고의 권력을 지닌 가문을 이을 후계자라는 점 정도였다.

  그러고 그런 비슷한 위치 때문에 더 적나라하게 비교가 됐다.

  키케로라고 그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당사자의 앞이었으니 조금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슬쩍 그나이우스의 표정을 살피니 과연 미묘하게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말을 인정했다.

  "맞습니다. 전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기엔 아직 많이 모자란 몸입니다. 이미 일가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르쿠스 님과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마르쿠스가 겸양의 의미로 손을 내저으며 자연스레 덕담을 건넸다.

  "저도 10년 전에는 별다른 군사적 업적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로마인은 서른부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나이우스 님도 10년만 지나면 폼페이우스 님의 기대에 훌륭히 부응하는 인재로 성장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이우스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흠잡을 데 없는 공손한 태도였으나 마르쿠스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키케로에게 말할 때와 자신에게 말할 때의 어투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걸 감지한 까닭이다.

  사소한 표정 변화나 몸짓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마르쿠스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미묘한 차이였다.

  그래도 마르쿠스는 자신이 착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한 번 떠볼까?'

  마르쿠스는 다시 그나이우스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폼페이우스를 살짝 나무랐다.

  "마그누스 님, 이전에 저에게 가문을 이을 사람이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불만을 가장한 자랑이었나 봅니다. 아드님께서 이토록 훌륭한 성품과 자질을 갖고 계신데 만족스럽지 않다니요. 엄격한 것도 좋지만 너무 심하면 아드님께서 서 운해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한 건 어디까지나 자네나 나에 비해서이지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닐세. 뭐, 그래도 카이사르처럼 뒤늦게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으니 자네 말대로 10년은 기다려 봐야겠지."

  "그나이우스 님, 마그누스 님께서 말씀은 이렇게 하셔도 사실 누구보다 아드님을 자랑스레 여기고 계실 겁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나이우스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호감이 갈 법한 싱그러운 미소였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분명히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의 눈가에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아무리 표정관리에 능통해도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눈을 통해 드러나는 본심을 숨기긴 쉽지 않다.

  그나이우스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간 감정은 마르쿠스가 지금껏 많이 접해본 익숙한 감정이었다.

  분노, 그리고 질투라고 불리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분노가 수반된 시기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감정은 명백하게 마르쿠스를 향하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잘 감추고 있다고 여겼겠지만, 마르쿠스에게는 뻔히 보였다.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나이우스의 심리 상태는 대충 예상이 됐다.

  폼페이우스 가문을 이끌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과 그로 인한 부담감.

  거기에 라이벌 격인 크라수스 가문의 후계자는 역대 최고라는 평이 자자한 상황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폼페이우스도 끊임없이 마르쿠스의 이야기를 해댔을 테니 좋은 감정이 생길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경쟁상대로 여기기에는 그나이우스와 마르쿠스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나이우스의 입장에서 폼페이우스는 평생을 바친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런데 고작 자신과 10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 세대의 인물이 이미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르쿠스는 거기서 멈춰 서지 않았다.

  그나이우스가 아무리 노력을 해서 따라잡으려고 해도 해가 갈수록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벌어지기만 하는 게 체감이 됐다.

  귀족파 원로원 의원들은 대놓고 세대교체가 일어나면 자신들의 낙승일 거라는 이야기를 해댔다.

  결국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축적되고, 자연스레 질투는 증오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증오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아 보였으나, 이미 그나이우스의 마음속은 마르쿠스를 향한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저놈만 없었다면······!'

  이런 감정이 마르쿠스에게는 손에 잡힐 듯 훤하게 느껴졌다.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뱃속에는 날카로운 한 줄기 칼날을 품었다.

  그나이우스를 바라보는 마르쿠스의 눈도 자연스레 착 가라앉았다.

  '이놈. 가만히 놔두면 거하게 사고를 칠 것 같은데.'

  < 131. 위대한 자들의 회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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