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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파라오 (134/326)

  < 133. 파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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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울레테스의 뒤를 이을 차기 파라오가 누가 될 것인가.

  그것은 이집트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대한 화두였다.

  이집트는 전통적으로 남매가 결혼해 공통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그리고 현재 자격이 있는 공주는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 단 둘뿐이었다.

  마르쿠스는 아울레테스가 이런 말을 꺼내리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울레테스가 건강을 핑계로 폼페이우스와 마르쿠스를 부른 건 그 나름대로 이집트의 미래를 걱정해서였다.

  로마를 도와주는 대가로 최대한 많은 이득을 약속받고, 동시에 후계구도를 로마 최고의 권력자들 앞에서 확실하게 인정받으려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이미 예상했던 질문에도 곧바로 답을 내놓지 않았다.

  "파라오의 선택에 조언을 드리는 정도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내정간섭으로 비칠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을 사람도 없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꽤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파라오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 후보를 먼저 들어보고 싶군요."

  "···나는 본래 클레오파트라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네. 아르시노에도 모자란 아이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능력만 놓고 보면 클레오파트라에게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까. 만약 자네가 이집트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클레오파트라를 차기 파라오로 삼았겠지."

  마르쿠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 올렸다.

  아울레테스는 말없이 포도주를 홀짝이는 그를 향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르시노에 그 아이가 자네와 부쩍 붙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라네. 솔직히 그 아이가 그렇게 사교성이 좋아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터라 처음에는 꽤나 당황스러웠지."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처음에 봤을 때와는 거의 다른 사람이 됐죠. 훌륭하게 성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됐네. 개인의 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네와 더 가까운 사람이 파라오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이번에 이야기를 나눠보고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네. 아르시노에가 자네를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더군."

  덤덤한 어조와는 달리 아울레테스의 목소리에서는 딸의 마음을 가져간 남성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가 멋대로 자네를 따라다니는 것 같으니. 하지만 그래서 더욱 고민이 된다네."

  차라리 마르쿠스가 아르시노에를 취했다면 아울레테스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있는 로마인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건 금기라지만, 아울레테스는 아르시노에를 굳이 마르쿠스와 결혼시킬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이집트를 통치해야 하는 입장 상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더 좋았다.

  필요한 건 남녀사이의 정, 그리고 그로 인한 결실뿐이다.

  아울레테스의 말을 이해한 마르쿠스가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그러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요."

  "딸아이의 일방적인 감정일 뿐 자네는 마음이 없다는 건가?"

  "······."

  마르쿠스는 말을 아꼈다.

  사실 그는 아울레테스와 달리 이 문제에서 남녀 사이의 정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건 정치적인 영역이었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사안이었다.

  아르시노에를 파라오로 만들고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다면 이집트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다나에와의 관계를 허락해준 율리아의 성격 상 이 문제 역시 흔쾌히 승낙을 해줄 것이다.

  그 부분은 걱정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내리기엔 사안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게다가 아직 클레오파트라의 가치도 완벽히 가늠되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는 건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본 뒤였다.

  "제 대답은 아까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공주님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정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쭉 두 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직 그 이상은 확답을 줄 수 없다는 말이로군."

  "대신 다른 부분에서 파라오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폼페이우스 님의 장자인 그나이우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최근 그가 특이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던가요? 예를 들면 왕자님과 접촉을 했다든지······."

  아울레테스는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더니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라면 꽤 예의바른 젊은이로 기억에 남아있네. 꽤 왕성하게 활동하는지 왕족들은 물론 여러 대신들과도 활발히 만나고 있다는 보고는 들어왔네. 당연히 아들과도 만났겠지."

  "아마 다른 대신들과의 만남은 눈속임에 가깝고 왕자님과 회동을 가진 횟수가 압도적으로 높을 겁니다. 그 부분을 조사해 주십시오."

  마르쿠스는 이미 심증을 굳힌 상태였다.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당장 두 공주님 중 한 분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후계구도에 관해서는 이렇게 가도록 하죠."

  그의 설명을 들은 아울레테스는 눈이 크게 뜨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나이우스는 거의 모든 게 자신의 계획대로 풀린다는 확신에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개인적으로는 전부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자만은 금물이다. 하나 정도는 자신의 구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너무 과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현명한 마음가짐이리라.

  '마그누스라······.'

  아버지가 거의 가문의 이름처럼 사용하는 단어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입가가 위로 올라가려 했다.

  그나이우스는 지금의 자신에게는 과분한 호칭이라 생각해 마그누스라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자신도 당당히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게 될 것이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거야. 계획은 완벽하니까. 최소한 원정금을 두둑이 뜯어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지.'

  그나이우스는 차기 파라오의 어수룩한 얼굴을 떠올리며 조소를 흘렸다.

  처음에는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존심만 쎈 꼬마라 설득에 난항을 겪었다.

  다행히 그를 모시는 환관이 이야기가 잘 통하는 상대라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를 차기 프톨레마이오스로 세우고 클레오파트라를 공동 통치자로 삼는다면 계획은 완성이다.

  아무리 마르쿠스가 이집트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파라오 두 명이 전부 그나이우스의 편이라면 순식간에 구도가 뒤집히게 될 것이다.

  '아버지나 키케로 님이 그토록 칭찬을 해서 내심 긴장했는데 마르쿠스 그 자도 생각보다 대단치 않나보군. 이미 이집트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해 방심한 건가?'

  차기 프톨레마이오스가 될 테오스 필로파토르는 마르쿠스에게 상당한 불만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어린 왕자보다는 그의 측근들의 불안감이 심한 상태였다.

  클레오파트라든 아르시노에든 둘 다 마르쿠스와 일정 이상의 친분이 있었다.

  특히 아르시노에는 동방에서 마르쿠스와 내내 붙어 있기까지 했다.

  두 사람 중 누가 파라오가 되더라도 테오스 필로파토르는 누나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약 아르시노에가 마르쿠스의 정부라도 된다면 왕자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왕자의 측근들과 그나이우스는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을 구워삶아 현실을 파악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왕이 되어도 허수아비에 불과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반기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테오스 필로파토르와 그 세력은 즉각 그나이우스에게 가담하기로 했다.

  그나이우스는 서로간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왕자들의 측근과 자주 회의를 가졌다.

  물론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다른 대신들과도 적절히 만나고 다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제 클레오파트라 공주를 끌어들이는 겁니다. 아르시노에와 마르쿠스 사이를 이간질 시킬 수만 있으면 최고겠지만, 객관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아직 5할이 채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 공주 님이 저희 쪽에 붙을까요?"

  "그건 걱정 마십시오. 이미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분은 냉정하게 어느 쪽에 붙는 게 이득일지 가늠해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이대로 가면 아르시노에 공주에게 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막말로 아르시노에 공주가 침대 위에서 송사하면 마르쿠스도 남자인데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공주님의 미색이 워낙 출중하시니 효과는 더 극적일 테고요.

  "

  "확실히···클레오파트라 공주님은 이성적이시죠. 우리 쪽에 붙는 게 더 기회가 많을 거라고 판단하실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악숨 정벌이 완료됐을 때의 판도와 왕자님까지 저희 편이라는 걸 알려드렸으니 9할 이상은 마음이 기울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측근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파라오에 즉위하는 왕자나 공주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를 따르는 환관들이 권세를 누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지나치게 총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나이우스가 뒤를 봐준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그나이우스 역시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걸 단숨에 만회할 절호의 기회다.

  왕자의 최측근인 포티우스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양피지 조각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나이우스 님, 그럼 동맹을 맺는 건 이 조건으로 괜찮으신 겁니까?"

  "예.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한 것 같아 기쁘군요."

  그나이우스는 보안을 기하기 위해 일단 약식으로 서명만 했다.

  대신 테오스 필로파토르는 거리낌 없이 협정서에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두 사람이 체결한 협정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나이우스는 테오스 필로파토르가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는 걸 적극 지지한다.

  그리고 이후로도 가문의 힘을 총동원해 그가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다.

  그 대가로 새로운 프톨레마이오스가 될 왕자는 로마의 악숨정벌에 소모될 군비를 전부 부담한다.

  자금의 출처는 멤피스에 보관되어 있는 역대 파라오들의 개인 자산에서 충당하기로 정했다.

  다만 왕자에겐 아직 그 재산에 손을 댈 권한이 없으므로 파라오가 된 뒤에 청구된 액수만큼 돈을 내어주기로 했다.

  즉, 폼페이우스는 이번 전쟁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행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놀라운 성과를 듣게 된다면 폼페이우스 역시 장남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것이다.

  '이집트를 빼앗겼다는 걸 눈치챘을 때 마르쿠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군. 경쟁상대로도 보지 않던 자에게 뒤통수를 맞았으니 얼마나 분하고 치가 떨릴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줄곧 굴욕감을 심어준 상대에게 크게 한 방 먹였다는 실감은 자연스레 극치의 희열로 이어졌다.

  순간 군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폼페이우스의 태도가 떠올랐다.

  그는 아들에게 너무 무리해서 나서지 말고 적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는 충고를 건넸다.

  이유는 뻔했다.

  아들의 능력을 그 정도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마르쿠스에 관해서는 그토록 찬사를 늘어놓더니 친아들이 하는 일은 믿어주지 않는 게 야속했다.

  '아버지, 두고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은 절대 크라수스 가문 따위에 밀리지 않습니다.'

  위대한 아버지에 비하면 언제나 조금 모자라다고 여겨졌던 자신이 두각을 드러낼 날이 머지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그나이우스를 지배했다.

  '두고 보아라. 내가 바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다. 이 위대한 이름을 이어 로마의 정점에 서게 될 사람의 진면목을 똑똑히 보여주마.'

  자신감에 도취된 그나이우스는 이후로도 테오스 필로파토르와 만나며 이후의 계획을 의논했다.

  클레오파트라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그나이우스의 편에 서겠다고 확실히 못을 박았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이집트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모든 회의를 끝마친 그나이우스가 승자의 기분에 휩싸여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테오스 필로파토르는 이미 내 수족이고, 남은 건 클레오파트라를 확실히 파라오로 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럼 일단 아르시노에와 마르쿠스를 이간질 해봐야겠군. 마르쿠스가 아르시노에를 믿지 못하게 되면 자연스레 클레오파트라를 밀게 되겠지.'

  이간질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놓고 아울레테스를 압박하기엔 아직 마르쿠스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대립할 상대라고 해도 지금은 이빨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어쨌거나 선공권은 자신에게 있으니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려보면 좋은 수가 떠오를 것이다.

  그나이우스는 나름대로 즐거운 고민을 하며 자신이 묶고 있는 으리으리한 건물에 도착했다.

  문을 열려던 그가 잠깐 손을 멈추었다.

  문 건너편에 사람들이 쭉 도열해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로마에서 데려온 병사들이야 언제나 이 근처를 지키고 있었으니 새롭지 않았다.

  다만 처음 보는 로마 병사들과 이집트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로마 병사는 마르쿠스가 시리아에서 데려온 이들일 것이고, 이집트 병사들은 파라오의 호위들일 것이다.

  이들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삼자 회담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그나이우스는 찝찝한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한 가문의 해방노예가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돌아오셨습니까, 도련님."

  "그래, 오늘은 주변이 소란스러운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

  "예. 마르쿠스 님과 키케로 님, 그리고 이집트의 파라오께서 폼페이우스 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키케로 님까지 오셨다고? 이유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나이우스 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최대한 빨리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꺼림칙한 느낌이 그나이우스의 등골을 스쳤다.

  철저하게 비밀리에 움직였으니 움직임이 노출되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모종의 의심을 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 의심을 받으면 그냥 잡아떼면 그만이다. 최악의 경우 협정서가 노출 됐어도 서명이 가짜라고 우기면 그만이야.'

  아직 파라오도 아닌 왕자와 타국의 국민이 역대 파라오들의 개인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기로 한 건 엄청난 중죄였다.

  그나이우스도 당연히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협정서에도 약식으로 서명만 한 것이다.

  애초에 자신을 호출한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나이우스는 심호흡을 하고 응접실로 향했다.

  그가 도착하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느릿느릿 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폼페이우스와 줄을 대기 위해 찾아오는 귀족들을 맞이하는 방은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응접실 내부에는 수많은 호위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네 명에 불과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울레테스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키케로 역시 언짢은 기색이 팍팍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그나이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포도주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죄송합니다. 잠깐 볼 일이 길어지느라 늦어졌습니다."

  그나이우스는 최대한 태연한 어조로 자신이 가장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로마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이자 공화정 역사상 손에 꼽히는 전략의 천재.

  최후의 원정을 앞두고 전성기의 위용을 되찾은 폼페이우스가 천천히 아들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은 그나이우스가 한 번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서늘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에 그나이우스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그에게 폼페이우스의 싸늘한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변명할 기회를 주마.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전부 털어놓아라."

  그나이우스의 눈이 혼란과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 133. 파라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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