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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석고대죄 (135/326)

  < 134. 석고대죄 >

  134.

  "말해라, 그나이우스. 어떤 의도로 그런 일을 저지른 거냐."

  "아버지···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목소리에 그나이우스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응접실 내부를 슬쩍 훑어보았으나 그 누구도 자신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은근히 그나이우스를 편들어 주었던 키케로마저 대놓고 언짢은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완전히 여유가 없어진 그나이우스는 저 뒤에 서있는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의 표정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그건 전부 오해입니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오해?"

  폼페이우스가 검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울레테스가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폼페이우스! 아무리 이집트가 로마의 보호국이라고 해도 내가 이런 굴욕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게 로마가 동맹국을 대하는 방식인가? 마르쿠스, 자네는 자네의 클리엔테스가 이런 치욕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생각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위대한 아문-라의 화신이시여."

  마르쿠스가 둔탁한 소리가 나도록 포도주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폼페이우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마그누스 님, 이건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위신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저로서도 대충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당연하지!"

  키케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서 방안에 울려 퍼졌다.

  "원로원은 로마의 친구에 대한 무례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위신과 존엄은 원로원의 이름으로 보장된 것. 이를 침해하는 자는 곧 원로원의 결정을 무시한 거란 말일세."

  폼페이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에서 평소답지 않은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 일은 절대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가문의 일원이 저지른 허물은 결국 가장인 제가 부덕한 탓이니 이렇게 사죄드리겠습니다."

  폼페이우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로마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인 그가 이렇게까지 나왔으니 아울레테스도 더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울레테스가 화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폼페이우스의 분노가 해일처럼 그나이우스를 향해 밀려들었다.

  동방의 군주들을 모두 무릎 꿇리고 로마의 정점까지 올라갔던 위대한 폼페이우스가, 고작 보호국의 왕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한 것이다.

  이게 평상시였다면 절대로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로원의 중진인 키케로와 이집트의 파트로네스인 마르쿠스가 동석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켜보는 이상 합리적인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폼페이우스의 위신에 심각한 흠이 가게 된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게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손실을 최소화했을 뿐, 이미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명예는 금이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보인 적이 없는 분노가 담긴 시선에 그나이우스는 사태의 심각함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생각이 난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실리보다는 명예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로마의 다른 유력자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으니 그 분노가 얼마나 격렬하겠는가.

  그나이우스는 몸 안에서 울리는 심장 고동이 응접실에 있는 모두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을 졸였다.

  폼페이우스가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나이우스, 감히 네가 무엇이기에 역대 파라오들의 개인 재산을 탐낸 것이냐. 내가 분명히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너를 잡아두기에 부족하더냐?"

  "아닙니다! 저, 저는 그러니까······."

  그나이우스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격렬하게 머리를 굴려 퇴로를 모색했다.

  '대체 어떻게 이 일이 새어나간 거지? 누군가 배신했나? 아니면 처음부터 첩자가 있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면···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선택지는 두 개였다. 그런 일은 모른다며 잡아뗄 것인가, 아니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것인가.

  협정서의 서명 따위는 가짜라고 우기면 끝까지 모른다고 버티는 건 가능하다.

  다만 배신자나 첩자의 존재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이게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높았다.

  결국 위험부담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던 그나이우스는 이걸 모두 왕자에게 덮어씌우기로 작정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왕자님께서 자신이 파라오가 되는 날에는 재산을 내어주겠다고 하시기에···공을 세울 기회라고 판단해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게 이집트의 왕실을 능멸하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왕자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서 받아들였을 뿐이다?"

  "제가 어찌 이집트 왕가의 재산을 먼저 탐했겠습니까. 이번 일로 불쾌감을 느끼셨을 파라오께는 무릎 꿇고 사죄를 올리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네 죄가 경감되지는 않는다. 도둑질을 하기로 모의했다면 그것만으로 공범이나 마찬가지니. 넌 지금 내 명예만이 아니라 로마의 명예까지 실추시킨 것이다. 이 일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그 말이 그나이우스를 한층 무겁게 짓눌렀다.

  그가 뭐라고 변명을 내뱉기도 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손길이 날아들었다.

  마르쿠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폼페이우스의 분노가 더 뻗어 나가지 않도록 가로막았다.

  "아직 젊은 그나이우스가 순간의 충동에 휘둘려 실수를 저질렀다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젊은 날의 혈기로 인한 실수를 과하게 처벌하지 않는 건 로마의 전통이기도 하고요."

  "마르쿠스, 자네의 관대한 의견은 고맙지만 이번 일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네. 어떻게 이 폼페이우스의 아들이 저런 명예를 모르는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실수였겠지요, 단순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 겁니다. 마그누스 님의 말대로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아들이 설마 일부러 뒷골목 무뢰배들이나 할 법한 밀약을 맺었겠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나이우스의 얼굴이 휴지조각처럼 일그러졌다.

  자신을 뒷골목의 하류 인생에 빗대다니.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굴욕적인 매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꼴이다.

  그나이우스는 마르쿠스의 말이 옳다는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폼페이우스의 눈이 착잡함으로 물들었다.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삐걱거리는 의자의 소리가 공연히 방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경솔하고 생각이 짧았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고의성이 없었다면 처벌을 내릴 때 고려는 하도록 하지. 하지만 그나이우스, 네 죄는 고작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미리 말해두마. 나는 너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

  "···용서할 마음이 없으시다니 제가 그 외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번에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그나이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태도에 더욱 화가 난 폼페이우스의 어조가 점점 더 싸늘해졌다.

  "네 변명을 다 믿지는 않지만,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크라수스 가문의 클리엔테스고 이는 로마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집트의 왕자라면 몰라도 로마인인 네가 그 밀약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터. 너는 지금 크라수스 가문의 클리엔테스를 뺏어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단 말이다."

  "아버지, 그건······!"

  "물론 클리엔텔라 관계가 영원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중차대한 일을 정하는 건 가장인 나의 몫이지 결코 너 따위가 나설 일이 아니다. 지금 넌 나도 모르는 사이 크라수스 가문과 내 가문을 반목시키려 했다. 만약 이번 일이 잘못돼서 로마에 내전이 일어났다면 네가 책임을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내전이라니요. 저는 결코 그런 일을 벌일 생각이 없었······."

  "이 멍청한 놈!"

  기어코 분노를 터트린 폼페이우스의 일갈에 그나이우스가 어깨를 움찔하며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아들을 내려다보는 폼페이우스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정도 서려있지 않았다.

  "네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 몰랐다면 그건 더욱 큰 문제다! 내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고? 차라리 그럴 마음이었다면 주제를 몰랐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겠지. 그럴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면 네놈은 도대체 뭐냐? 어깨 위에 달려 있는 기관은 생각을 하기 위한 게 아니고 단지 장식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사과 따위를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대체 어떤 사고의 흐름을 따라 그런 짓을 저지른 건지 이유를 듣고 싶은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말했을 것이다. 마르쿠스는 사실상 나와 대등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니 반드시 좋은 관계를 맺어놔야 한다고. 그래서 일부러 너를 소개해 주고 내가 직접 널 잘 봐달라고 부탁까지 건넸다는 말이다. 그런데 너는 내 말을 싹 무시하고 크라수스의 가문의 뒤를 칠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내 얼굴에 먹칠을 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게냐?

  "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지고 온도가 몇 도나 올라간 것 같았다.

  그나이우스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저는···그러니까······."

  "이미 네가 오기 전에 이야기는 다 들었다. 아르시노에 공주님에게 이집트의 주인이 바뀌면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으니 생각을 좀 해보라는 말을 했다지? 네가 이집트의 왕이냐?"

  "···아닙니다."

  "네가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다. 현재 너의 가치는 나의 아들이라는 것 단 하나뿐이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자가 내 가문의 권세를 등에 업고 설치는 걸 봐줄 정도로 나는 너그럽지 않아."

  거기까지 말한 폼페이우스는 감정을 억누르고 마르쿠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멍청한 아들 때문에 자네에게는 너무 큰 폐를 끼쳤군. 이는 절대 나의 뜻이 아니었으니 부디 용서해주게. 내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절대로 섭섭지 않게 하겠네."

  "괜찮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와 마그누스 님의 사이가 이런 일로 흔들릴 리가 있겠습니까."

  "자네에게는 정말로 면목이 없네."

  이 자리에 있는 키케로 때문에 전부 말은 못 했지만, 폼페이우스는 내심 마르쿠스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정계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게 모든 길을 준비해준 이가 마르쿠스였다.

  거기에 인생 마지막 원정을 의미 있게 장식할 수 있도록 많은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폼페이우스에게 마르쿠스는 단순한 동맹 관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정치적 동반자였다.

  그나이우스를 소개해준 것도 마르쿠스가 자신에게 보여준 호의가 아들의 대에서도 변치 않았으면 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아들놈이 그런 마르쿠스의 뒤통수를 칠 모략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쿠스가 이집트에 온 이유가 폼페이우스의 원정에 사용될 군량을 얻어주기 위해서라는 걸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게 로마에 알려진다면 폼페이우스의 명예는 땅바닥을 뚫고 저 지하로 곤두박질치게 되리라.

  그는 아울레테스 때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이우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마르쿠스와 자신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실감이 됐기 때문이다.

  마르쿠스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아직 가문을 물려받지 않은 후계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똑같이 폼페이우스 가문의 후계자인 자신이 위치상으로는 꿇릴 게 없다고 내심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마르쿠스의 권위와 힘은 크라수스 가문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순수하게 그가 이룬 성취와 그로 인해 가지게 된 권력과 힘이 마르쿠스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크라수스 가문을 물려받지 않아도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와 대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폼페이우스의 태도만 봐도 그 사실은 명백했다.

  그나이우스는 침을 삼켰다.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를 상대하려 했는지 실감이 갔다.

  "···제가 너무나도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부디 용서를······."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나는 너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 로마로 돌아가는 즉시 너를 가문에서 쫓아내고······."

  "폼페이우스 님, 그건 너무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나이우스를 구원해준 건 다름아닌 마르쿠스였다.

  예상치 못한 그의 제지에 폼페이우스가 의문 섞인 시선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자네니 자네의 의견을 따르겠지만···저게 정말로 과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로 일을 저질렀다면 저도 상응하는 벌을 내리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미수에 그쳤으니까요. 아이들이 불장난을 저지르면 따끔하게 혼을 내지만 실제 방화범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그 불장난이 거대한 화재로 발전할 수도 있는 법이 아닌가."

  "예. 정말로 위험한 장난이었다면 저도 등골이 서늘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아닙니다. 호들갑을 떨 만큼의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위협적이지 않은 '사소한' 사고에 불과했을 뿐이니까요."

  마르쿠스의 뼈있는 한마디에 그나이수스의 심정은 더욱 참담해졌다.

  지금껏 물밑에서 비밀리에 해온 일이 어떻게 들통났는지도 모르겠는데, 추가로 아무 위협도 못 되는 어린애의 불장난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들은 것이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폼페이우스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쿠스가 그나이우스를 감싸준 건 결코 그를 좋게 봐서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폼페이우스의 체면이 필요 이상으로 깎이는 걸 방지해주기 위해서였다.

  안 그래도 아들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해 폐를 끼쳤는데, 또 한 번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럼 그나이우스에게 저지른 실수에 대한 처벌을 내리겠다. 비록 실수였다고는 하나 이번에 저지른 죄가 결코 작지 않으니 너에게 준 모든 권리를 회수하겠다. 그리고 당연히 원정에 막료 자격으로 참석할 수 없다.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병사로 종군하도록 해라."

  "···기병으로 종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너는 일반 보병으로 전장에 서게 될 것이다. 만약 귀족이라는 이유로 군율을 어지럽힌다면 즉결 처분할 것이니 특권을 누리려는 생각은 일체 버려라."

  "그, 그렇지만 일반 보병이라니요! 하다못해 백인대장으로라도······."

  "백인대장? 네놈의 뭘 믿고 내 소중한 병사들의 목숨을 맡기겠느냐. 이 처벌에 승낙할 수 없다면 그렇다고 말해라. 널 가문에서 파하고 평민으로 만드는 걸로 끝내줄 테니까. 둘 중 어느 쪽을 고를지는 네 마음이다."

  그나이우스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파르르 몸을 떠는 그의 귓가에 폼페이우스의 냉엄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박혀들었다.

  "알아들었다면 무릎을 꿇어라."

  그나이우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무릎을 꿇고 폼페이우스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려 했다.

  "내가 아니라 마르쿠스를 향해 사죄를 해야지. 네가 저지른 죄를 고하고 관대한 처분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려라."

  "···알겠···습니다."

  그나이우스는 살짝 무릎을 틀어 의자에 앉아 있는 마르쿠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제 짧은 판단으로 너무나 큰 실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실수를 관대하게 눈감아주신 데에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마르쿠스가 천천히 고개를 까딱이고는 옆에 앉아있는 아울레테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사과는 나 말고 이분들에게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일로 누구보다 마음이 상하셨을 파라오와, 자네의 말에 괜히 불안감을 느꼈을 아르시노에 공주님에게도 사죄를 올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 싶은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나이우스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무릎을 꿇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 치기 어린 행동으로 불쾌함을 느끼셨을 파라오와 공주님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나이우스는 마르쿠스가 다시 고개를 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줄곧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양자 간에 존재하는 막대한 능력과 힘의 차이를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이 한 번의 실패로 그나이우스는 거의 모든 걸 잃어버렸다.

  실패라는 경험을 배운 수업료라고 치부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컸다.

  딱딱한 바닥에 꿇어앉은 무릎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커다란 고통이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 134. 석고대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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