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이집트의 지배자 >
136.
폼페이우스와의 협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아울레테스는 거의 매일같이 연회를 벌였다.
물론 정말로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게 기뻐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로마에서 온 최고의 권력자들과 나란히 선 자신의 모습을 과시해 왕가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려는 노림수였다.
마르쿠스나 키케로는 물론 폼페이우스도 아울레테스의 의도를 잘 알았다.
폼페이우스는 군량을 헐값에 지원받는 대가라 생각하고 흔쾌히 연회에 어울려주었다.
마르쿠스 역시 클리엔테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게 파트로네스의 역할인 만큼 매일 같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원래 로마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알렉산드리아였으나, 최근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일단 베레니케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로마와 이집트의 압도적인 힘의 우열이 드러난 게 컸다.
게다가 이집트의 두 공주가 자진해서 로마로 유학을 가기까지 했다.
이를 기점으로 로마의 우수한 신문물들이 알렉산드리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건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마르쿠스가 1년 만에 파르티아를 박살 내고 동방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것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르쿠스는 이집트의 보호자였으며, 공주들과 친밀한 사이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그가 다스리는 거대한 속주가 이집트와 바로 국경을 맞대게 된 것이다.
이제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도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
로마가 현재 다스리는 영토가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한 영역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는 소문도 들렸다.
물론 로마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재 부정할 수 없는 세계 최강의 대국이라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인정했다.
아울레테스는 이런 로마와 마르쿠스의 위상을 자신의 입지를 드높이는데 적극적으로 써먹었다.
마르쿠스는 이를 만류하기는커녕 대놓고 아울레테스를 더 밀어주었다.
아울레테스가 이집트를 장악하면 할수록 결국 그의 뒤에 있는 자신의 존재감도 자연스럽게 커지는 까닭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행사가 많은 데. 이러다가 나도 건강이 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셉티무스, 다음 일정이 뭐였지?"
"멤피스에서 온 신관들이 마르쿠스 님과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 맞아.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네."
이집트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좋지만, 그만큼 귀찮은 일도 더 많아졌다.
아울레테스는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여 알렉산드리아의 고위층을 불러 모았다.
수많은 귀족들은 조금이라도 파라오의 눈에 들고자 열정적으로 부름에 응했다.
이번에 환관들이 대규모로 숙청당했기에 비어있는 고위직을 노리는 이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들 대다수는 이집트의 진정한 실세가 될 마르쿠스에게 줄을 대고 싶어 했다.
귀족들만이 아니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를 보기 위해 찾아온 신관들은 마르쿠스에게까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위대한 로마의 장군이시여, 그대는 단순한 사람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대의 몸에는 성스러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필시 당신도 아문-라의 혈통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신의 아들이라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위대한 신탁이 내려왔으니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신관들의 어이없는 헛소리에 셉티무스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는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마르쿠스 님은 서방에서 건너온 신이에요."
"그럼요. 그분은 혼란스러운 이집트를 재건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부활한 오시리스에요."
"······."
흥미로운 상황이긴 했으나 동시에 난처하기도 했다.
신들의 지혜를 받았다는 로마식 칭송에는 익숙했으나, 아예 살아있는 신이라고 추켜 세워주는 건 아직 어색할 따름이었다.
신관들과의 불편한 만남이 끝난 뒤 셉티무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들은 왜 갑자기 마르쿠스 님을 신이라고 찬양하지 못해서 안달입니까?"
"두 공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모양이던데? 예전부터 그런 식의 말을 하긴 했어."
"그분들은 자신들도 신의 혈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마르쿠스 님을 난생처음 보는 신관들도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합리화 작업을 하는 거야. 이집트는 신들의 지배를 받는 나라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야. 그러니 그들을 다스리는 사람은 신의 피를 이어받은 이가 아니면 곤란한 거지.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유피테르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았잖아."
셉티무스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마르쿠스가 어색해하면서도 신관들의 말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다.
"그 뜻은 다시 말해······"
"이집트가 나를 자신들의 지배자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미리 작업에 들어가는 거야. 유대에서도 나를 신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띄워줬잖아. 말은 조금씩 달라도 결국 본질은 똑같아. 지배당하는 입장이지만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거지. 일종의 정신승리라고 보면 될 거야."
"재미있는 표현이로군요. 그나저나 오늘 밤에도 연회가 있으니 파라오께서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슬슬 준비하러 가시죠."
"미치겠네···빨리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든가 해야지."
마르쿠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투덜거렸다.
그는 잠시 방에 들려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파라오의 궁으로 향했다.
마침 반대쪽 회랑을 통해 걸어오고 있던 클레오파트라가 마르쿠스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아침에 이어서 또 뵙다니 이거 참 반가운 우연이네요. 마르쿠스 님도 연회에 가시는 길인가요?"
"예. 그런데 오늘은 좀 피곤해서 아마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최근 엄청나게 가혹한 일정에 시달리고 계신다는 말은 들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귀찮게 하죠?"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바쁜 건 사실입니다."
마르쿠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건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익히 겪었던 일이었다.
그때도 온갖 귀족들이 마르쿠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짜증나긴 해도 자신을 지배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니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마르쿠스의 표정을 살핀 클레오파트라가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잠깐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눈치 빠른 그녀의 호위병들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마르쿠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호위들도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클레오파트라는 단둘만 남은 상황에서도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번에 드렸던 제 선물은 어떠셨나요? 이렇게 자리를 만들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아 평가를 받는 게 늦어졌네요."
"아주 만족스러운 선물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협조를 부탁드리기도 전에 먼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요? 그건 조금 서운한데요. 제가 설마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젊은 귀족에게 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부탁하면 무조건 제 편에 설 거라는 확신은 있었으니까요."
클레오파트라가 살짝 볼=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볼멘소리를 냈다.
"믿음이 부족하시네요. 부탁하기도 전에 찾아올 거라고 확신하셨어야죠. 제가 아니라 아르시노에였다면 그렇게 생각하셨겠죠?"
"아르시노에 공주님은 제가 바로 옆에서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이니까요."
"뭐, 상관없어요. 어쨌든 이번 일로 저도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했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공주님의 진심은 확실히 전해졌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이 그제야 환하게 피어났다.
솔직히 마르쿠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이 정도로 협력해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녀는 그나이우스가 접촉해 왔을 때 일부러 그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척 가장하며 정보를 모조리 빼냈다.
아르시노에에게 권력을 넘겨줄까봐 불안해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그녀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를 자신의 편이라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그나이우스는 완전히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 됐다.
심지어 그는 아직도 어째서 자신의 계획이 들켰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파라오가 되더라도 마르쿠스 님을 향한 충심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하고 싶었어요."
"충심이라니 너무 황송한 표현입니다."
마르쿠스는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히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믿음을 굳히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진심을 믿는 게 아니라 판단력을 신뢰하게 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이번 사건에 어떻게 임했는지 그 심리는 대강 짐작이 갔다.
총명한 그녀는 그나이우스와 잠깐 이야기를 해본 것만으로도 그가 지니고 있는 열등감을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나이우스를 밀어준다고 해도 마르쿠스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도 간파했으리라.
그녀는 이 상황을 자신의 능력과 충성심을 한 번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즉, 이미 클레오파트라와 이야기가 잘 풀리고 있다고 착각한 시점에서 그나이우스는 함정에 빠졌던 셈이다.
역사에서도 클레오파트라는 충분히 총명하고 지혜로웠지만 시야가 좁은 게 흠이었다.
그건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살아온 환경의 탓이라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클레오파트라는 어렸을 때부터 외부로 눈을 돌렸고, 로마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순조롭게 능력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아르시노에처럼 그녀도 역사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성장해가고 있다.
마르쿠스는 신이 아니었기에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양자의 절대적인 힘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이상 클레오파트라가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다는 건 확실했다.
어설픈 충성심을 지닌 이보다는 이렇게 정확한 판단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훨씬 믿음이 간다.
일단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저녁 만찬회는 여느 때처럼 수많은 고위 귀족들로 붐볐다.
마르쿠스는 이전에 한 번 인사를 나누었던 귀족의 이름을 다시 묻는 참사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여어. 보아하니 오늘도 엄청 시달렸나 보군."
10명쯤 되는 귀족들의 아부를 듣느라 귀가 피로해지려는 찰나 키케로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사모스산 포도주를 가득 따른 잔을 든 채 마르쿠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키케로 님은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신가 보군요."
"나는 이집트에 실질적인 무언가를 가져다주기 어려운 입장이니까. 자네나 폼페이우스와는 다르지. 그래도 덕분에 아주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정말 인류에게 내린 신의 축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난 할 수만 있다면 거기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여기에 머물고 싶은 심정일세."
"평생을 여기 머물러도 다 읽긴 쉽지 않을 겁니다. 사실 로마에도 페르가몬이나 여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못지않은 시설을 지을 마음이 있는데 키케로 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해야지! 자네는 현재 로마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니 필요하다면 내가 자네의 대리인이 돼서 이 일을 추진할 수도 있네. 사실 지금까지 우리 로마에 이런 연구시설이 없다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모두 육체적인 쾌락과 허영을 충족하느라 중요한 정신적인 연마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
키케로가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며 포도주를 들이켰다.
로마 최고의 지식인인 그는 로마가 무력만이 아니라 지성에서도 세계 최고로 군림하길 원했다.
마르쿠스도 슬슬 도서관을 건설할 적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종이도 마음대로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놨으니 대량으로 책을 찍어낼 수 있는 여건도 갖춰졌다.
다만 일단 짓는다면 단순한 도서관으로 끝낼 마음은 없었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처럼 세계의 지식을 총 망라한 연구시설을 지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고 싶었다.
'문제는 이걸 어디에 짓느냐 하는 건데······.'
키케로는 당연히 로마에 지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마르쿠스는 딱히 그럴 마음은 없었다.
일단 마르쿠스가 현재 로마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지역은 현재 동방이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원히 동방에만 머물 마음도 없었기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쿠스 님, 잠시 이걸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득 셉티무스가 상념에 잠겨 있던 마르쿠스를 불렀다.
퍼뜩 정신이 든 그가 정신을 차리고 셉티무스가 건넨 걸 넘겨받았다.
"이게 뭔데?"
"방금 안티오키아에서 도착한 서신입니다. 꽤나 중요한 내용인지 총독님만 개봉할 수 있도록 봉인을 찍었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편지가 두 장이 들었네."
한 장은 율리아가 작성한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그가 사전에 조사를 부탁한 일에 대한 보고서였다.
율리아가 보낸 편지부터 빠르게 읽어본 마르쿠스의 표정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빛으로 물들었다.
곁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키케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나쁜 소식이라도 들어왔나?"
"아니요. 이걸 경사라고 해야 할지···아니면 올 것이 왔다고 해야 할지······."
"혹시 율리아 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마르쿠스의 반응에 셉티무스마저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마르쿠스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러니까···다나에가 애를 가졌다는군."
"예? 애를 가져요? 누구의 애를? 어떤 간 큰 인간이 그 아이를 건드린 겁니까?"
"······나."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공기가 싸해졌다.
셉티무스가 다급히 숨을 고르며 사죄를 건넸다.
사실 몸종과 정을 통해서 아이를 보는 게 흔치 않은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로마 귀족이라면 몇 번쯤은 흔히 겪는 일이기도 했다.
다만 다나에는 법적으로 자유민인 해방노예였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 미묘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일로 수도 없이 많은 상담을 받아왔던 최고의 법학자 키케로가 물었다.
"자네 아내가 보낸 서신이라면 그녀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겠군. 어떤 반응이던가?"
"다나에와의 관계는 율리아의 허락을 받은 일입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가문을 이을 아이가 잘 크고 있으니 불편해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축하할만한 일이로군. 내가 지금까지 숱한 사례를 봐서 잘 아는데 이때 중요한 건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는 거라네. 아무리 겉으로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아도 약간이라도 찝찝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어.
그건 질투나 시기가 아니라 배우자로서 당연한 마음이네. 그러니 가장 먼저 가문을 이을 사람은 자네의 아내가 낳은 아들이라고 공식적으로 확실히 밝히게. 그리고 이번에 태어날 아이는 일체의 상속권을 갖지 못한다고 못을 박고 양자로 들이면 깔끔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만약 아내가 불편해한다면 자네가 아니라 자네 동생의 양자로 들이도록 하게.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키케로에게 감사를 표한 마르쿠스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율리아의 편지를 보고 있었다.
아직 뭔가 더 남았음을 직감한 셉티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다나에의 일 외에도 또 뭔가 사건이 터진 겁니까?"
"그래.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문제야. 베레니케가 푸블리우스의 아이를 가졌다는군."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요새 두 사람의 사이를 봐서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어. 거의 매일 같이 붙어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지."
"잠깐, 베레니케라면 그 베레니케인가? 이집트의 전대 파라오였던? 로마 시민으로 귀화시킨 그 여자가 자네 동생의 아이를 가졌다고?"
키케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하면 호재로 이용할 수 있을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이건 엄청난 호재로군. 이번에 로마로 돌아가면 전할 소식이 아주 한 가득이겠어. 그나이우스가 저지른 외교적 결례를 자네가 훌륭히 해결해 이집트와의 관계가 더욱 좋아졌음은 물론, 전 파라오인 베레니케가 완전히 로마에 동화되어 로마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자네가 로마로 오지 못하는 상황이니 결혼은 동방에서 해야겠지만···당연히 결혼식은 로마식대로 하겠지?"
"물론입니다. 베레니케도 이제 로마인이니까요. 결혼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로마식대로 할 겁니다."
"아주 좋아. 파라오의 혈통마저 로마인이 되었으니 동방에서 자네와 우리 원로원의 위상이 한층 더 솟구치겠군. 로마에 돌아가는 즉시 정식으로 축하 사절단을 보내라고 하겠네."
"예.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나에와 베레니케의 임신 소식은 순식간에 연회장에 펴졌다.
뒤늦게 자리에 합류한 폼페이우스는 진심을 담아 축하를 해줬다.
"원정 준비 때문에 내가 직접 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 대신 둘째 섹스투스와 장녀 폼페이아를 보내겠네. 사전에 철저히 일러둘 테니 그나이우스 때와 같은 일은 없을 거야."
클레오파트라도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티오키아로 향하기로 했다.
반면 아울레테스는 아직도 앙금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베레니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마르쿠스에게만 자식 축하한다고 덕담을 건넨 그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 대신 참여하는 걸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르쿠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이집트 귀족들도 앞다투어 찬성의 의사를 밝혔다.
베레니케가 로마인과 결혼한다는 건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그리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본래 파라오가 평범한 인간과 결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이미 신의 혈통이라는 신탁을 받았으니, 그의 동생도 신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가 참석하는 이상 이미 왕가의 허락은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귀족들도 참석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마르쿠스는 두 번째 편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서신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메소포타미아의 귀족들 중 상당수가 비밀리에 세 차례 이상의 회동을 가졌음. 친로마파 귀족들은 이 회동에서 배제된 걸로 확인.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사료됨.>
마르쿠스는 서신을 고이 접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가 왁자지껄한 연회장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이번엔 꽤나 시끄러운 결혼식이 되겠군.'
< 136. 이집트의 지배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