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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후계자들 (138/326)

  < 137. 후계자들 >

  137.

  수많은 부속항만과 연결된 항구도시 브룬디시움은 평소보다도 더 많은 행렬로 북적이고 있었다.

  정규군단이 출병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로 한 번에 배가 많이 출항하는 날은 흔치 않았다.

  노가 서로 닿지 않도록 간격을 유지한 배들이 이내 물밀 듯이 항구를 빠져나갔다.

  햇빛은 화창했고 물살도 잔잔해서 항해를 하기엔 최적의 날씨였다.

  동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를 젓는데도 배에는 거의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넵투누스께서도 우리의 항해를 축복하시나 보군요. 제 평생 배를 타면서 이렇게나 날씨가 완벽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돛대 뒤편에 있는 좁은 공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소년이 감탄사를 흘렸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폼페이우스 가문의 장녀, 폼페이아가 마그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네가 배를 탄 경험이라고 해봐야 시칠리아에 한두 번 왔다 갔다 한 게 전부지 않니?"

  "누님, 어쨌든 그것도 경험은 경험입니다."

  이제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멋쩍게 웃었다.

  그가 바로 폼페이우스 가문의 차남인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피우스였다.

  젊은 시절 폼페이우스의 외모를 물려받아 훤칠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폼페이아 역시 화려한 외모와 우월한 가문의 위상 덕분에 사교계에서 가장 화려한 존재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이 가문을 대표해 축하사절로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이탈리아반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폼페이아는 결혼식보다는 동방의 대도시 안티오키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의 말씀대로라면 동방은 황금을 짚고 헤엄쳐도 될 만큼 엄청난 부를 자랑한다는데 정말일까? 그러면 그쪽의 사교계는 로마 이상으로 화려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내 장신구나 보석들이 촌동네의 졸부처럼 보이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시죠. 전부 크라수스 가문에서 물품을 받는 상인들에게 구한 특급품 아닙니까. 비단옷부터 귀걸이에 팔찌에 전부 동방에서도 최첨단 유행을 달리는 것들뿐이라고 자랑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누님입니다."

  "그렇겠지? 크라수스 가문의 상인들이 설마 나한테 사기를 쳤겠어?"

  "그런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마르쿠스 총독님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게 어떨까요?"

  폼페이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진짜 어이가 없어. 왜 그나이우스가 뿌려둔 오물을 우리가 치워야 하는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아버지에 마르쿠스 님과 키케로 님까지 있는 곳에서 외교적 결례를 일으키는 게 말이 되긴 해? 걘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지른 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

  "너무 잘해보려다가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도 주의를 해야겠죠."

  그나이우스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로마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폼페이우스 가문의 체면을 고려한 마르쿠스와 키케로가 이를 비밀에 부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나이우스는 단지 이집트의 반란 세력에 꼬드김에 혹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만 알려졌다.

  섹스투스는 자신의 연줄을 사용해 상세한 내막을 알아보려 했으나,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키케로를 찾아가 자신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결과 한가지 충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나이우스는 마르쿠스를 너무 의식해 경솔한 행동을 했으니 섹스투스는 그러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애초에 다른 귀족파와는 몰라도 마르쿠스 님과 아버지는 사이가 괜찮잖아? 그나이우스처럼 멍청하게 처신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야."

  "마르쿠스 님만이 아니라 그분의 식솔들에게도 무례를 범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당연하지. 그나저나 마르쿠스 님이라···남자답게 잘생기셨다고 들었는데 빨리 뵀으면 좋겠네. 근데 아버지도 참 서투른 면이 있어. 그런 유망한 사람을 예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사윗감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가?"

  "그런 말을 들으면 매형께서 섭섭해하실 것 같은데요. 그리고 아무리 마르쿠스 님이 탐이 났어도 결혼까지는 힘들었을 겁니다. 크라수스 가문과 우리 가문은 예전에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요."

  섹스투스의 객관적인 분석에 폼페이아가 혀를 찼다.

  그녀는 문득 갑판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가문 하니까 생각난 건데 우리 소중한 동맹 가문의 도련님은 어디서 뭐 하고 있대?"

  "그 아이라면 배에 타자마자 속이 매스껍다며 안쪽에 틀어박혔습니다. 손위 누이와 어머니가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더군요."

  "뱃멀미라도 한 건가? 이 날씨에?"

  폼페이아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잔잔하기 그지없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섹스투스도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상당히 허약한가 봅니다."

  "쯧쯧, 남자아이가 그렇게 허약해서야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을까. 걘 아무리 커도 네 경쟁상대는 못되겠구나."

  "그래도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동맹 가문의 일원입니다. 물론 허약해 빠진 저 아이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 같진 않습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동맹을 배려하고 있다는 인식은 심어줄 수 있겠죠."

  "예쁘장하게 생겨서 꽤 귀여운 아이였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글쎄요···무슨 투리누스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이따가 다시 한 번 물어봐야겠네요."

  섹스투스는 자신보다 어려 보였던 여리여리한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똑똑해 보이긴 했어도 순해 빠진 외모에 가녀린 체구는 분명 장군의 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할머니는 아버지 폼페이우스의 고종사촌 동생뻘이기도 했다.

  촌수가 꽤나 떨어져 있지만 어쨌든 그녀의 아들은 폼페이우스의 재종손인 셈이다.

  돌봐줘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로 많았다.

  '형이 멋대로 넘어져 줬으니 난 조급해하지 말자. 착실하게 조금씩 점수를 따면 되는 거야.'

  섹스투스는 이번에 원로원의 축하사절로 함께 배에 타게 된 카토와 브루투스, 카시우스 같은 사람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눌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르쿠스에게도 최대한 좋은 인상을 보여 그나이우스와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게 궁극적인 목표였다.

  원래 섹스투스는 자신이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여느 명문 귀족의 차남들처럼 아들이 없는 친인척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 그쪽 가문을 이어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굴러들어왔다.

  섹스투스는 폼페이우스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나이우스가 한번 거하게 미끄러진 이상 이제 다음엔 자신의 차례였다.

  실수하지 않고 일을 매끄럽게 처리해 나간다면 타 가문에 양자로 입적되는 건 자신이 아니라 형이 될 것이다.

  사실 그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마르쿠스의 이름을 외치며 만세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참아야지. 너무 지위에 굶주린 인간처럼 보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테니까.'

  섹스투스는 아직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안티오키아가 있는 동쪽을 바라보았다.

  날씨부터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이 이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의 머릿속에 갑판 아래에서 골골거리는 소년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마르쿠스는 일단 가장 먼저 율리아를 찾았다.

  마르쿠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율리아는 웃으며 다나에에게 가보라고 말해주었다.

  오랜만에 본 다나에는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조그마하게 곡선이 생겨 있는 배는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감사하게도 다른 분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힘든 건 없어요. 축하도 많이 받았고요."

  "그래? 다행이다. 혹시 집안의 분위기가 얼어 있으면 어쩌지 걱정했었거든."

  "율리아 님 덕분이에요. 그분께서 누구보다 먼저 축하를 해주시니 집안의 분위기가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공기가 싸했겠죠. 저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을 테고요."

  마르쿠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임신한 다나에가 아닌 율리아를 찾은 것이었다.

  "율리아와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녀도 네 아이를 양자로 들이는 걸 허락해줬어. 하지만 가문을 상속할 권리는 율리아의 아이에게만 있을 거야. 그 점은 너도 이해해줬으면 해."

  "이해라니요. 오히려 이토록 과분한 배려를 받은 데에 제가 감사해야죠."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도록 해. 태교에는 산모의 심리상태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다나에는 감정이 복받쳤는지 물기 어린 눈동자로 마르쿠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련님······."

  몇 년 만에 들어보는 그리운 호칭이다.

  마르쿠스의 눈에도 아련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다나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마르쿠스 님을 처음으로 도련님이라고 불렀을 때가 떠올라요. 그때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게. 그저 어리기만 했던 여자애가 이렇게 아름답게 자랄 줄은 나도 몰랐어."

  "마르쿠스 님과 만나기 전에는 제 인생은 저주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했죠."

  "아직도 그때의 악몽을 다 떨쳐내지 못했어?"

  "아니요.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제 인생은 축복받았다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한 삶이라고요. 고맙습니다. 저를 찾아내 주셔서···그리고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다나에는 결국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는 걸 아는 마르쿠스는 그녀를 그저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넓은 가슴에 고개를 파묻은 다나에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배를 감싸 안는 그녀의 눈은 지울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순수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마르쿠스의 얼굴에도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다나에와 한동안 시간을 보낸 마르쿠스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셉티무스에게 저번 주에 발간된 동방 주간을 넘겨받은 그는 천천히 기사를 둘러보았다.

  1면은 역시 속주에서 인기가 폭발 중이라는 오늘의 총독님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충격적 진실! 총독님은 사실 유피테르 신의 자손?'이라는 표제가 눈에 쏙 들어왔다.

  <위대한 메소포타미쿠스 총독님께서 이집트 순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하셨다. 이집트의 백성들은 총독님의 위광에 감화되어 악숨 원정에 군량을 바치겠다고 자진해서 지원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집트의 고명한 신관들이 총독님이 아문-라의 혈통을 이 어받은 자라는 신탁을 받은 것이다. 아문-라는 유피테르, 제우스 신과 동일한 존재로 이집트에서도 최고의 신이라 경배받고 있다. 이로써 총독님이 어째서 이토록 위대한 업적을 행하실 수 있었는지 그 의문이 풀렸다고 할 수 있겠다.>

  "보는 내가 쪽팔릴 정도로 낯 뜨거운 찬양은 여전하군."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합니다. 게다가 신탁을 받은 건 사실이니 마르쿠스 님에 대한 속주민들의 지지는 더 올라갈 겁니다. 이제 총독님의 식사로 소개된 요리는 식재료가 부족해 만들기가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신문이 발간된 그 날 시장에서 재료가 동이 나버린다고 하더군요."

  "바람직한 유행이네. 결과만 보면 분명 성공적이긴 한데······."

  "그리고 마르쿠스 님께서 이집트에 가계신 동안에는 오늘의 여신님이라는 제목의 임시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율리아 님이었고요. 이것도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는지라 정규 꼭지로 편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신문의 1면은 오늘의 총독님, 2면은 오늘의 여신님으로 가도록 하죠."

  효과가 좋다면 분명히 기쁜 일이긴 했다.

  지도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까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율리아는 속주민들이 보기에는 여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긴 했다.

  안 그래도 아름다웠던 그녀는 마르쿠스가 현대의 지식으로 완성한 천연재료를 쓴 화장품을 사용하고, 몸매를 관리하는데 좋은 운동을 소개받아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율리아의 미모는 신문물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이애나와 비너스 여신의 현신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래도 찬양 기사를 쓰는 건 당분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에 오는 원로원 의원들이 그런 글을 읽어서 좋을 게 별로 없으니까. 일단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는 특집 형식으로 원로원 의원들의 방문을 1면에 실어. 그리고 그 신문을 의원들에게 보여주면 아주 효과가 좋을 거야."

  "명안이십니다. 당장 그렇게 하도록 조치하죠. 그리고 저번에 보고받은 메소포타미아 귀족들의 회동은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조치를 취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로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귀족들이 주로 모였다고는 하는데 목적이 뭔지 파악은 됐나?"

  "안타깝게도 그것까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호르쉬드 그자까지 초대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건 조금 골치가 아플 수도 있겠네."

  호르쉬드는 페르시아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는 유서 깊은 가문의 수장이었지만, 그리 큰 실권은 지니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르쿠스가 총독이 되면서 갑자기 그 존재감이 올라갔게 됐다. 그러면서도 친로마파가 아닌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는 마구잡이식으로 로마에 반대하거나 어깃장을 놓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합리적으로 로마의 정책을 비판했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합리적인 비판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친로마파도 대놓고 그를 공격하진 못했다.

  반면 반로마파 귀족들은 그를 희망의 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호르쉬드가 반로마파 귀족의 모임에 초대받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로마에서 수많은 요인들이 오는 시기라 여러 가지로 민감한 때입니다. 이럴 때 저들이 해괴한 짓을 벌인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글쎄···저들도 생각이 있다면 괜히 이목이 집중되는 때는 피해서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어쨌든 확실한 증거가 없이 무작정 귀족들을 압박할 수는 없어. 자칫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그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부터 상세히 조사해봐."

  "예. 즉시 정보원들을 총동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사절단이 도착할 텐데 명단 좀 가져다줘. 내가 직접 맞이해야 할 사람들이 몇 명인지 정도는 미리 파악해놔야지."

  "안 그래도 이미 명단을 받아놓았습니다."

  마르쿠스가 두루마리를 세로로 쭉 펼쳐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예상대로 폼페이우스의 자식들과 카토의 이름이 가장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다음으로 로마 최고의 명문가인 유니우스 씨족의 브루투스의 이름이 보였다.

  "아직 법무관도 지내지 못한 청년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명단이로군."

  "파라오의 핏줄이 로마인에 편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니까요. 게다가 참석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르쿠스 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오는 걸 겁니다."

  마르쿠스는 고개를 까딱이며 계속해서 명단을 훑었다.

  메텔루스와 카시우스, 레피두스 등등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이 숱하게 눈에 띄었다.

  '푸블리우스에게 이 명단을 보여주면 부담감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겠네.'

  안 그래도 너무 결혼식의 규모가 커졌다고 전전긍긍해 하던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마르쿠스의 눈이 순간 두루마리의 하단 부분에서 우뚝 멈추었다.

  "셉티무스. 이번에 율리아의 사촌도 하객으로 오는 걸 알고 있었나?"

  "아니요. 가족 중 한 분이 오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이 오는지라 정확히 누가 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하긴 나도 이 사람들이 올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사촌께서 오시면 율리아 님도 기뻐하실 테니 좋은 일 아닌가요?"

  "나쁘진 않지. 아니, 오히려 아주 잘 됐어. 내가 로마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직접 보려면 한참이나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마르쿠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셉티무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그런 셉티무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줄곧 두루마리에 적힌 이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명단의 가장 끝에 간신히 걸친 이름이었으나, 그의 눈에는 어떤 인물보다도 훨씬 더 눈에 크게 띄었다.

  율리아의 사촌 아티아 발바 카이소니아.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그녀의 아들 이름.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

  원 역사에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이자 후에 존귀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

  로 불리게 될, 로마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의 이름이었다.

  < 137. 후계자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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