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암살 >
141.
"그래서 우리가 무엇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인타프레네스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귀족들의 중심으로 꼽히는 히다르네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 로마 총독을 암살하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들어가자 귀족들은 사태의 심각성에 짓눌린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차례 좌중을 살핀 인타프레네스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매듭지어야 할 일은 우리가 의심받지 않을 방법을 마련하는 겁니다."
젊은 귀족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증거를 남기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끼워 맞추면 총독을 암살하려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아무나 마구잡이로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증거를 남기지 않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증거를 남기지 않아도 유력한 용의자들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무려 5개 속주를 총괄하는 로마의 총독이 사망하는 겁니다. 증거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대충 넘어갈 거라고 보십니까? 오히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자들은 닥치는 대로 때려잡고 보겠죠."
안 그래도 굳어있는 귀족들의 표정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반대로 호르쉬드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인타프레네스를 다시 보았다.
'의외로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군. 하긴 그 정도의 능력은 있으니 이 많은 자들을 끌어모아서······.'
응접실에 모인 수많은 귀족들을 둘러본 호르쉬드는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위화감의 정체를 막 깨달으려던 찰나 인타프레네스가 말을 걸었다.
"호르쉬드 님께서는 좋은 생각 없으십니까? 시리아에서 줄곧 마르쿠스 총독과 격론을 주고받은 호르쉬드 님이라면 저희보다 시야가 넓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우선 단적으로 말하겠는데 우리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될 확률은 없소."
히다르네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증거를 남기지 않고 쥐죽은 듯 있으면 무작정 우리를 의심하지는 못할 텐데요."
"그럼 일단 우리가 로마 원로원의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겠소. 마르쿠스 총독에게 가장 불만이 있는 자들이라면 일단 바로 네 부류를 뽑을 수 있소. 첫 번째가 로마에 있는 마르쿠스의 반대 세력,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귀족 중 소외당한 친국왕파 세력, 그다음이 유대에 남아있을 소수의 과격분자,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반로마파 귀족들이오.
하지만 로마에서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암살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오. 그러니 가장 먼저 떠오를 저 세 집단은 확실하게 박살 난다고 봐야겠지.
"
동요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솟아올랐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파악한 인타프레네스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호르쉬드 님은 그걸 알면서도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셨죠. 즉, 이미 적절한 구상을 그려놓으신 게 아닙니까?"
"단순히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고 우리가 로마의 철퇴를 피할 수는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해답은 간단하오. 유력한 용의자를 만들어 두면 되는 거요. 우리 대신 죄를 전부 뒤집어쓸 희생양을 준비해 둔다면 로마의 분노도 온전히 그자에게만 집중될 테니까."
"명안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하군요. 그것보다는 범인을 특정할 수 있도록 조작된 증거를 남기면서 총독을 암살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히다르네스가 한숨을 쉬며 턱 주변을 어루만졌다.
"이것 참···말은 쉬운데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 그래도 저쪽이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다면 허를 찌르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호르쉬드는 히다르네스의 낙관적인 예측을 단호하게 잘라냈다.
"마르쿠스가 아무것도 모를 거다?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있을까 봐 말해두겠는데 그런 물러빠진 정신 상태로는 절대 계획을 성공시킬 수 없소. 마르쿠스라면 이미 크테시폰에 자신의 정보원을 심어두었다고 봐야 하오. 아마 이 모임도 한참 전에 그의 귀에 들어갔을 테지.
내가 참가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을 테고.
"
"예? 그렇다면 이미 로마군이 들이닥쳤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우리가 모였다는 사실은 알아도 이 모임의 이유까지는 아직 모른다고 봐야겠지. 뭐, 핑계 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소. 하지만 저쪽도 우리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머릿속에 넣어두시오. 안 그러면 정말 어이없이 꼬리를 밟히고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
호르쉬드의 말을 들은 귀족들은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깔끔하게 버렸다.
이곳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최선을 다해 계획에 임해야 계획을 완수할 수 있으리라.
회의가 끝나자마자 호르쉬드는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크테시폰을 떠났다.
물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인타프레네스도 결혼식에 참석하기 전에 마르쿠스에게 인사를 올리겠다는 이유로 호르쉬드와 동행했다.
히다르네스는 조금 뒤에 나머지 귀족들을 데리고 안티오키아로 오기로 말을 맞춰 놓았다.
인타프레네스는 만족스러운 속내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내비쳤다.
"호르쉬드 님 덕분에 논의가 잘 풀렸습니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나 봅니다."
잔잔히 흐르는 티그리스강을 바라보던 호르쉬드의 시선이 인타프레네스를 향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라고 했었지?"
"예. 당연히 그렇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슬슬 나에게도 자네의 진짜 의도를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순간 인타프레네스의 눈이 미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말끔히 지워버린 그가 웃으며 물었다.
"진짜 의도라니요? 총독을 암살하는 것 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내 표현이 조금 잘못됐나 보군. 총독을 암살하겠다는 목표 자체는 의심하지 않고 있소. 문제는 그런 일을 하는 의도지. 나야 당신들이 내놓기로 한 이권을 받아 챙기면 불만 없지만, 당신들은 그게 아닐 텐데? 대체 그 정도의 막대한 이득을 내놓으면서까지 총독을 암살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호르쉬드는 회의가 끝난 뒤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냉정하게 되짚어 보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봤을 때 이 모임은 무언가가 이상했다.
우선 마르쿠스를 암살하려는 동기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마르쿠스가 메소포타미아의 농업 체계를 뒤흔들고, 유서 깊은 귀족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호르쉬드가 강하게 항의했고, 마르쿠스도 조금씩 양보를 해주는 모양새였다.
오히려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모를까 암살을 모의할 근거로는 너무 약했다.
그런 사소한 간섭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자존심과 아집으로 뭉쳐 있다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인타프레네스나 히다르네스는 파르티아의 왕들에게도 최대한의 자치권을 보장받은 이들이었으니까.
만약 저 둘과 소수 귀족들만이 참가했다면 호르쉬드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임에 모인 귀족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쭉 본 바로는 히다르네스는 몰라도 인타프레네스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지면 동원할 수 있는 수는 많아져도 밀고자가 나올 가능성이 올라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제일 이상한 점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실 호르쉬드는 이권의 1할을 가져가는 선에서 협정을 체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타프레네스와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1할 5푼이나 되는 막대한 재산을 손쉽게 포기했다.
이 점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귀족들이 보는 손해를 메꿔줄 정도의 추가적인 보상을 약속했든가, 아니면 약점을 잡았거나···그것도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겠군.'
호르쉬드의 냉철한 시선을 마주한 인타프레네스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곤란하군요. 이제 와서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난 내가 챙길 이득만 확실히 보장받는다면 당신의 진의 따위는 뭐가 됐든 상관없소. 다만 다른 꿍꿍이속이 있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그 점이 염려되는 것일 뿐."
"걱정하지 마십시오, 총독의 죽음이 이번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사실은 결코 거짓이 아니니까요."
"마르쿠스가 죽는다면 차기 총독은 메소포타미아를 지금만큼 존중해주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는 걸 알고 있겠지?"
"지금 동방 속주가 성공적으로 관리되는 건 순전히 현 총독의 역량 덕분입니다. 그가 사라진다면 과연 지금의 구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호르쉬드는 처음으로 인타프레네스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뭔가가 있다. 단순히 총독을 암살하는 선에서 그치려는 게 아니야. 어쩌면······.'
인타프레네스를 바라보는 호르쉬드의 시선이 한층 더 낮게 가라앉았다.
암살을 실행하는 순간까지는 같이 가겠지만, 그 이후로도 같은 편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한 배를 탄 동지라고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다가는 커다란 낭패를 보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런 호르쉬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타프레네스는 그저 여유롭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호르쉬드와 인타프레네스가 음모를 꾸미는 동안에도 결혼식의 준비는 막힘없이 진행됐다.
시리아 속주와 로마에서만이 아니라 동방 전역에서 축하 사절들이 물밀 듯 밀어닥쳤다.
이집트와 유대, 아르메니아와 폰투스는 물론 비티니아와 킬리키아에서도 하객이 도착했다.
푸블리우스의 결혼식은 이미 단순한 결혼식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버렸다.
이건 로마가 동방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종의 선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로원 의원들과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도 전부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식의 주인공인 푸블리우스는 뒤로 밀려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르쿠스는 일을 이렇게까지 키운 데에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을 집무실로 부른 그는 솔직한 심정을 들어보기로 했다.
"결혼식 준비는 어때? 잘 돼가?"
"예. 조금 얼떨떨하긴 해도 그럭저럭 잘해가고 있어요. 너무 과한 관심을 받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파라오의 자리에 있던 사람과 결혼하는 거니까요."
"그래, 확실히 엄청난 화젯거리긴 하지."
처음 결혼 소식이 퍼졌을 때 안티오키아는 문자 그대로 난리가 났었다.
안티오키아는 오랜 시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대립해온 셀레우코스 왕조의 중심도시였다.
당연히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은 존재인지 잘 알았다.
아무리 파라오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그 자존심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다.
안티오키아의 귀족들은 베레니케의 신랑이 될 푸블리우스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푸블리우스도 예상했던 바였다.
그런데 거기에 로마와 각 속주에서 대규모 사절들까지 합류하니 생각 이상으로 부담감이 심해졌다.
귀족파 의원들은 이 결합으로 위대한 형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라는 식의 말을 건넸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 결혼을 정치적인 결합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베레니케를 좋아하는 푸블리우스에게는 불편하기만 한 조언이었다.
"결혼하면 당분간은 한적한 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낼까 합니다. 물론 형님께서 일이 바쁘시다고 하면 도와드려야겠지만······."
"일이야 지금 잔뜩 도와준 거나 마찬가지니 식이 끝나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거 말고도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든 말만 해. 다 들어줄 테니까."
"그러면 그···베레니케가 이집트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 아예 가서 살겠다는 건 아니고 가끔 그리울 때 한 번씩 가는 정도만 해도 괜찮은데."
당연한 일이지만 베레니케는 죽을 때까지 이집트령에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처음에는 그녀도 동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렉산드리아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추방당할 때까지 일평생 살아왔던 고향이다.
마르쿠스도 베레니케가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울레테스가 파라오로 있는 동안은 좀 힘들겠지만···아르시노에나 클레오파트라가 차기 파라오가 되면 출입 금지령쯤이야 해제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좀 참으라고 해."
"예.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베레니케의 말로는 최근 동생들과 사이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고 하니까요."
"그래? 그건 또 의외의 사실이네."
"피가 섞인 자매니까요. 아예 안 볼 사이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언제까지 으르렁 댈 수는 없는 노릇이죠."
확실히 그 말대로다.
마르쿠스는 여기에 현실적인 판단도 더해졌을 거라고 보았다.
아울레테스야 다시는 베레니케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상관없다고 쳐도 클레오파트라나 아르시노에는 상황이 달랐다.
베레니케가 마르쿠스의 제수가 된 이상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는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생판 남인 두 사람과는 다르게 베레니케는 마르쿠스와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동생들 앞에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선보이는 베레니케의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이 갔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한 생각을 하는 날파리들이 꼬이지 않게 주의해."
"이상한 생각이라고 한다면 무슨?"
"베레니케가 크라수스 가문의 사람이 되었으니 그걸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이 나올 수도 있어. 그것까지 고려하면 확실히 당분간은 한적한 별장에서 지내는 게 낫겠어. 이 얘기는 식이 끝나면 다시 하기로 하자."
푸블리우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면 저는 다시 베레니케에게 가보겠습니다."
푸블리우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떠났다.
오랜만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마르쿠스는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푸블리우스가 나간 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들이닥친 불청객들 때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작은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인타프레네스라고 합니다."
"인타프레네스 가문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최고 명문 귀족입니다. 메소포타미아를 대표해 이번 결혼식을 축하하고 싶다고 요청해 이렇게 면담을 청하게 됐습니다."
호르쉬드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인타프레네스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한순간 집무실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느낄 정도의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약소하지만 이번 결혼식을 축하드리는 저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누가 봐도 절대 약소하다고 할 수 없는 보석들과 금으로 만든 작은 조각상이 가득 담겨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대저택을 몇 채는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토록 호화로운 선물을 주다니 내가 지금까지 자네들의 진심을 잘못 보았던 모양이로군. 고맙게 받겠네."
"총독님께서 지금까지 저희를 배려해 주신 데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그래, 자네들이 지금처럼 협조적이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줄 걸세. 호르쉬드가 어째서 부랴부랴 크테시폰으로 돌아간 건지 의문이었는데 이런 선물을 가져오기 위해서였군. 정말 감격스러워."
가볍게 지나가는 마르쿠스의 말에 인타프레네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당황한 그는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 노회한 호르쉬드는 조금도 목소리를 떨지 않고 태연스레 대답했다.
"그 외에 총독님께서 저희들을 배려해주신 여러 가지 사항을 전해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거리 때문에 소통도 힘든지라 오해가 생기기 쉬운 상황이니까요.
총독님이 지역의 전통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알고 있는 귀족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대처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었는데 시리아의 사정에 가장 정통한 제가 초대받았던 것이지요.
"
"그렇군. 자네가 이렇게 중간에서 노력해주는 덕분에 나도 안심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네. 이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확실히 해줄 테니 조금 더 수고해주게."
"물론입니다."
"그런데 말일세."
갑자기 낮아진 마르쿠스의 목소리에 인타프레네스는 물론 호르쉬드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마르쿠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집트에 있는 동안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별다른 정책을 시행한 기억이 없는 걸로 아는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오해가 쌓인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 그렇지 않나?"
"···아무래도 축적된 문화와 생활양식이 다르다 보니······."
"하긴. 그러니까 별 의미 없는 행동도 가끔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는 거겠지.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던 모양이로군. 양해해 주게, 인타프레네스."
"예? 의미 없는 행동이라면 어떤······?"
갑작스레 지목된 인타프레네스가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그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마르쿠스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엄청난 긴장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르쿠스의 입가가 엷은 호선을 그렸다.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141. 암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