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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결혼식 (144/326)

  < 143. 결혼식 >

  143.

  마르쿠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날씨는 화창했지만, 쏟아지는 햇살마저 그의 눈에는 파란을 암시하는 거센 폭우처럼 보였다.

  왕궁의 정원에서 바라보니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거리 전체에 가득한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다가온 율리아가 옆에 앉으며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음료를 넘겨주었다.

  꿀을 듬뿍 넣은 과일 음료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아침에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실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잘하면 내년부터는 아침마다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겠지.'

  마르쿠스는 만약 폼페이우스가 악숨 원정에 실패하면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비시니아 고원을 점령할 생각까지 있었다.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한 마르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폈다.

  온 신경을 집중해 신경 쓰고 있던 문제가 오늘 끝난다고 생각하니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와 율리아가 아침 식사를 거의 다 끝마쳤을 즈음 아르시노에와 클레오파트라가 정원으로 나왔다.

  하품을 하는 아르시노에게 클레오파트라가 핀잔을 주는 모습이 보였다.

  오히려 보란 듯이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려던 아르시노에가 마르쿠스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딱 굳어버렸다.

  "어···일찍 나오셨네요."

  그녀가 입에 가져다 대려던 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좌우로 흔들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공주님도 평소보다 일찍 나오셨네요."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한 번 만나러 와달라고 해서요. 귀찮긴 해도 와달라는 데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정말로 가기 싫다면 다른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가지 않았겠죠."

  "···뭐, 일단 옛날에 있었던 일도 사과받았고 앞으로 쭉 볼 사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넘어가야죠."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저번에 푸블리우스와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가족끼리 풀 수 있는 앙금은 풀고 넘어가는 게 좋습니다."

  마르쿠스는 내친김에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에게 두 사람이 파라오가 된다면, 베레니케의 출입금지령을 풀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바로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클레오파트라는 자리를 뜨기 전에 마르쿠스를 슬쩍 돌아보았다.

  "마르쿠스 님은 푸블리우스 님을 보러 가지 않으실 건가요? 만약 가실 거라면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가도 되는데요."

  "저는 준비 해야 할 게 조금 많아서 한참 뒤에나 시간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시노에도 아쉬워하는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두 사람이 정원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마르쿠스가 그들을 잠깐 불러 세웠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군단병들에게 두 분을 호위하라고 일러뒀습니다. 되도록 오늘 하루는 호위들을 대동하시고 그들의 옆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많은 인파가 몰렸으니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규군을···혹시 무슨 첩보라도 입수하신 건가요?"

  "작은 소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져도 두 분에게 해가 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요."

  마르쿠스는 어디까지나 안전을 기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두 사람에게 괜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아르시노에는 마르쿠스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아미를 찌푸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르시노에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율리아가 그제야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죠?"

  "물론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당신도 결혼식이 시작하고 난 뒤에는 클레오파트라나 아르시노에와 함께 붙어 있도록 해."

  "우리 애들은요?"

  "당연히 사람들을 붙여놨어. 셉티무스와 다나에가 같이 있을 거야. 옥타비우스랑 아티아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거고."

  마르쿠스는 막힘없이 답을 들려주고 훌쩍 몸을 일으켰다.

  율리아는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지만, 그럴 때일수록 혹시 모를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해요. 지금까지 수많은 권력자들이 자만과 방심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걸 명심하세요."

  "알고 있어. 사실 나는 자만 같은 걸 할 배짱이 없어. 타고난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대비를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거든."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에 율리아의 입가에 웃음기가 돌아왔다.

  "당신이 배짱이 부족하다고 하면 믿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난 진심으로 한 말인데······."

  "네, 네, 그러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소심한 행보 부탁드릴게요."

  마르쿠스는 율리아의 볼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집무실로 돌아가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을 확인했다.

  오늘의 결혼식은 특히나 신경 쓸 게 많았다.

  푸블리우스와 베리니케의 결혼식은 로마의 결혼 형태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방식을 따르기로 했던 까닭이다.

  로마의 결혼은 콘파레아티오, 코엠프티오, 그리고 우수스라는 세 가지 형태를 띠는 게 일반적이다.

  마르쿠스의 시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엠프티오에 의한 결혼을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다.

  콘파레아티오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번잡했으며, 무엇보다 법적으로 이혼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결혼식처럼 하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경우는 특히 더 그랬다.

  콘파레아티오에 의한 결혼을 무효로 돌리려면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모인 상태에서 의식을 거행해야만 한다.

  상식적으로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콘파레아티오 결혼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과거의 풍습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푸블리우스는 마르쿠스에게 이 콘파레아티오 결혼식을 요구했고, 마르쿠스는 이걸 기쁘게 받아들였다.

  "형님, 아무래도 이 정도는 해줘야 로마에서도 우리의 결혼에 진심으로 축복을 해줄 것 같습니다."

  "로마의 오래된 전통을 따른다는 측면에서는 이보다 적합한 결혼은 없겠지. 그런데 그럴 경우 법적으로 이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지?"

  "이혼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평생 그녀를 아끼고 사랑할 거니까요."

  푸블리우스가 엄숙하게 다짐했다.

  마르쿠스는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하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러 갔다.

  신부와 신랑이 열 명의 증인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항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열은커녕 수백이 넘어가는 하객들이 식장을 꽉꽉 채웠다.

  고귀한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참여하는 관계로 좌석의 배치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우선 가장 앞쪽은 원로원 의원들과 콘파레아티오 결혼을 증명하기 위해 찾아온 대제관들의 자리였다.

  그 뒤로 속주의 명망 있는 귀족들과 로마에서 찾아온 일반 기사계급이 줄을 지어 늘어섰다.

  호르쉬드와 인타프레네스의 위치는 원로원 의원들을 제외하면 가장 앞쪽으로 배정됐다.

  덕분에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주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카토가 대표로 축사 연설을 하고, 유노 여신의 대제관이 식의 성립을 선언하자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됐다.

  본래 로마의 결혼식은 신부가 집에서 출발해 신랑의 집까지 인도받는 게 첫 순서다.

  거기에 콘파레아티오는 신부의 아버지가 직접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가 주어야 한다.

  하지만 베레니케는 아버지가 식에 참석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형식을 조금 변경했다.

  그녀는 로마의 신부들이 입는 예복을 입고 머리에는 여사제들이 쓰는 모양과 같은 티아라를 썼다.

  그리고 안티오키아의 번화가를 크게 한 바퀴 행진하며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베레니케의 행렬이 지나가는 곳에는 아낌없는 은화의 세례가 뒤따랐다.

  도시 전체가 마치 개선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들썩였다.

  거리에서 열광적인 환호성이 들려오자 푸블리우스는 금실로 수를 놓은 자주색의 토가를 입고 나타났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풍채에 여기저기서 감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푸블리우스의 뒤를 따라서 일종의 웨딩 케이크인 파레움 리붐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쿠스가 특별히 지시해서 만든 파레움 리붐은 평상시 로마 귀족들이 보던 것보다 열 배쯤은 더 거대했다.

  선전과 과시를 목적으로 일부러 크기를 거대하게 키운 것이다.

  위에는 설탕 공예품까지 얹어 원로원 의원들조차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마르쿠스는 동경과 감동이 뒤섞인 사람들의 시선을 만족스럽게 즐겼다.

  지금까지는 모든 과정이 완벽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됐을 텐데.'

  마르쿠스는 호르쉬드와 인타프레네스가 앉아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수많은 귀족들이 일어서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호르쉬드 역시 태연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성공적인 결혼식의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총독님의 권세와 능력이 한층 더 빛을 발하겠군요."

  "아직 결혼식은 마무리되지도 않았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끝나면 좋을 텐데."

  "설마 무슨 일이 있기야 하겠습니까."

  인타프레네스가 호르쉬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 마디를 보탰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이런 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잘 알겠죠."

  마르쿠스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평온하기만 한 두 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황급히 달려온 병사 한 명이 한껏 목소리를 낮춰 보고를 올렸다.

  "총독님, 아무래도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예. 그게 폭동이라고 해야 할지···아니면 단순히 소란을 피우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총독님께서 판단을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귀족들과 원로원 의원들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카토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밑에서 자그마한 소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워낙 많이 몰렸으니 사고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 싸움이라도 난 건가?"

  질문을 받은 병사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답답해하는 카토를 대신해 마르쿠스가 명령을 내렸다.

  "진압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면 폭동 같은 건 아니겠지. 대체 무슨 일인데 직접 보고 판단을 해달라는 건가?"

  "예. 아마도 유대인으로 보이긴 하는데 꽤나 상당수의 인원이 집결해서 요상한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요상한 구호가 대체 뭔가. 제대로 말을 해야 알지!"

  짜증이 복받친 카토가 결국 큰 소리를 냈다.

  반대로 짜증보다는 궁금함이 앞선 마르쿠스는 말을 타고 병사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시내에 옹기종기 모여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기인가 보군."

  마르쿠스의 뒤를 따라온 카토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감히 신성한 행사가 열리는 걸 알면서도 이 시기에 소란을 벌이다니. 당장 저들을 모조리 옥에 가두고······."

  열변을 토하던 카토는 유대인들이 외치는 구호를 듣고 순간 입을 딱 벌린 채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

  길가에 밀집해 있던 유대인들이 마르쿠스와 카토를 발견하고 그들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쿠스 총독님이다! 동방의 렉스, 마르쿠스 총독이 왔다!"

  렉스는 라틴어로 왕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원로원 의원들이 가장 혐오하고 금기시하는 그 단어가 마르쿠스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렉스! 동생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위대한 렉스! 동방의 왕을 찬양하라!"

  "렉스! 렉스! 렉스!"

  유대인들이 렉스라고 적힌 거대한 파피루스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정말로 존경심이 복받쳐서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마르쿠스가 소란을 부리고 있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자네들은 내 코그노멘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군. 크라수스, 혹은 메소포타미쿠스라고 부르게. 내 이름에 렉스라는 글자는 들어가지 않으니까."

  "마르쿠스는 동방의 왕이다! 우리는 그를 렉스로 모셔야만 한다!"

  유대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큰 소리로 외쳤다.

  카토가 분노로 몸을 떨며 마르쿠스를 돌아보았다.

  "저 미친 인간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렉스가 뭐 어쩌고 어째?"

  "진정하십시오. 딱 봐도 저를 모욕하려고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웃기지도 않은 장난을 치고 있다는 말인가."

  마르쿠스의 곁을 지키고 있는 병사가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렸다.

  "여기만이 아니라 시내 각지에서 저런 말을 외치고 있는 유대인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총독님에 대한 비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칭송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호한 상태라 진압을 하지 못하는 중입니다."

  "꽤 머리를 썼군."

  마르쿠스는 여전히 시끄럽게 아우성치는 유대인들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동방의 사람들에게 마르쿠스가 왕이라는 외침은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이미 사실상 그렇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에서 온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에게 왕이란 압제의 상징이었으며 독재를 의미하는 최악의 금기였다.

  이런 소리가 시내 곳곳에서 흘러나오면 좋든 싫든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단순히 폭동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인 한 수였다.

  물론 카토는 유대인들이 외치는 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충실한 공화정의 아들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부르다니.

  이건 끔찍한 중상모략이자 일고의 가치도 없는 모함이라 확신했다.

  "마르쿠스, 이런 쓰레기 같은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지금 당장 저 자들을 치워버려야 하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퍼졌을 겁니다. 여기 온 원로원 의원들도 얼마 뒤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다 듣게 되겠죠."

  "으음···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모함을······."

  "제가 얼마 전에 하스몬 왕가의 잔당을 끝장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직 남아있었나 봅니다."

  마르쿠스는 병사에게 명령을 내려 앵무새처럼 렉스를 외치고 있는 유대인들을 즉각 해산하도록 만들었다.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면 무력을 써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미리 도시 전역에 병사들을 배치해둔 덕분에 유대인들의 시위는 순식간에 진압됐다.

  카토는 저들의 뒤에 혹시 민중파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했지만, 마르쿠스는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답을 들려주었다.

  마르쿠스가 다시 식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예식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유노 신전의 대제관이 푸블리우스와 베레니케의 오른손을 붉은 가죽끈으로 묶는 게 보였다.

  부부 사이의 결합을 의미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이끈이 묶인 이후부터 결혼의 효력이 성립된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흐뭇하게 동생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르쿠스의 옆으로 호르쉬드가 다가왔다.

  "아까 전에 가신 일은 잘 처리하셨습니까?"

  "그래.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네. 난 또 어떤 거창한 일이 벌어진 걸까 걱정했었는데 말이야."

  "하하하, 이런 날에 거창한 일을 벌일 멍청한 자들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마르쿠스는 대꾸를 하지 않고 대충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는 동안 대제관은 콘파레아 티오 결혼의 신성한 의미와 효력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지루한 행사가 거의 끝났을 때쯤 유대인들의 진압을 명령받은 백인대장이 절도 있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일은 다 끝났나?"

  "예. 그런데 심상치 않은 문서가 나왔습니다."

  "심상치 않다고?"

  "예. 저희가 진압을 시작하려고 하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전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중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자가 있어서 강제로 제압했더니 이런 문서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에게 파피루스를 건네받아 내용을 읽은 마르쿠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일어나라 야훼의 백성들이여. 유대 민족이 아닌 타민족이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현 유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을 팔아 로마에게 협력한 것이다. 이에 우리들은 마귀의 자식 마르쿠스가 더는 야훼의 이름을 더럽히는 걸 묵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첫 번째로······.>

  종이에 적힌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할 가치조차 없는 선동문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대략적인 계획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는 문서였다.

  "로마 원로원 의원들 모두의 귀에 들어가도록 나를 왕으로 몰아가고, 밤이 깊은 뒤에는 안티오키아의 외곽부터 중심부까지 나를 규탄하는 문장을 가득 새길 거라고? 거기에 기회가 되면 로마에게 붙은 타락한 동포들에게도 천벌을 내리겠다니···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낮에 너무 순순히 해산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마 밤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는 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끝까지 따라가서 모두 감옥에 집어넣을 텐데······."

  "이미 사전에 계획을 파악한 이상 문제 될 건 없겠지. 자네는 어떻게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나?"

  "예. 안티오키아를 방어하고 있는 군대를 외곽 지역에 넓게 배치해 감시망을 형성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백인대장의 의견에 마르쿠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밤을 틈타 안티오키아 전역의 벽에 괴문장을 적어두고 다니는 꼴을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정말 치졸하고 볼품없는 방식으로 소란을 일으키는군. 그냥 내 얼굴에 먹칠이라도 한 번 하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마르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기고 전부 도시의 외곽을 경계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겠다. 귀빈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도록."

  백인대장은 허리를 한 번 숙이고 그대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마르쿠스는 호르쉬드와 인타프레네스에게 등을 돌린 채 그대로 가족들을 향해 걸어갔다.

  호르쉬드는 천천히 포도주가 담긴 잔을 기울이며 긴장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인타프레네스는 마지막으로 계획을 점검하기 위해 히다르네스와 그가 이끄는 귀족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의 두 눈 깊숙한 곳에 한줄기 싸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 143. 결혼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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