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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습격 (145/326)

  < 144. 습격 >

  144.

  "대단하군······."

  결혼식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인타프레네스는 솔직히 감탄했다.

  마르쿠스가 작정하고 로마와 본인의 위엄을 드러내려고 기획한 결혼식이다.

  동방의 귀족들조차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하고 장엄한 볼거리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화려한 의자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는 마르쿠스에게 이름난 귀족들이 아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극상의 예를 취하며 허리를 굽히는 게 영락없이 왕을 대하는 신하의 태도였다.

  수많은 귀족들이 경의를 표하는 인타프레네스였지만, 그런 그도 저런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왕과 귀족은 명백하게 다르다.

  아직 절대왕정이 들어서지 않은 시대라고 해도 왕은 귀족과 명백히 구별되는 존재였다.

  인타프레네스가 아무리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알아주는 대귀족이라고 해도 그는 왕이 아니다.

  다른 귀족들이 그의 앞에서 허리를 숙여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보다 세력이 강한 자를 향한 예우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달랐다.

  대다수의 귀족들은 그의 눈에 들지 못해 안달이었으며, 진심으로 우러나온 복종의 뜻을 표하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인타프레네스의 눈에 비친 마르쿠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동방의 왕이었다.

  '자신의 이름에 렉스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긴 그렇겠지. 그런 피상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왕이나 다름없는 것을.'

  인타프레네스는 로마인들의 사고방식이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런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자가 왕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본인은 한 명의 시민일 뿐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그저 우습게 보일 따름이었다.

  '이 정도의 권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걸 적극적으로 써먹으려고 하지 않다니···로마 놈들의 사고 구조는 어떻게 되먹은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인타프레네스는 순간 메소포타미아의 왕좌에 앉아 귀족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 일이었다.

  마르쿠스처럼 동방 전역을 주름잡는 권력을 손에 넣지는 못하더라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걸 위해서라면 동방은 혼란의 불길에 휩싸여야만 한다.

  마르쿠스 개인에게 원한은 없었으나 야망의 성취를 위해서는 그의 죽음이 필수적이었다.

  살기로 눈을 번득이는 인타프레네스의 옆으로 다가온 호르쉬드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의심을 살 수 있소. 아직 우리는 의심을 받고 있으니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드러났나 보군요. 그나저나 어떻습니까? 저희의 계책은 성공한 듯 보이던가요?"

  "그렇소. 일단 수비 병력들의 대다수가 도시의 외곽으로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오는 길이오. 그리고 사전에 매수해 둔 행정관에게 군단의 경비 동선도 입수했소. 이제 계획의 성공률은 사실상 9할 이상이라고 봐도 되겠지."

  호르쉬드가 조심스레 품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슬쩍 꺼내 보였다.

  조심스레 내용을 확인해본 인타프레네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경비를 서는 군단의 세세한 이동 경로가 대략적인 시간대에 따라 완벽히 적혀 있었다.

  이 정도로 상세한 지침이 있다면 경계를 서는 군단병들과 한 차례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히다르네스 님에게 계획대로 실행하라 일러두겠습니다."

  "그럼 예정대로 마르쿠스를 살해한 뒤에 합류하면 되겠군. 혹시라도 붙잡히는 일 없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시오."

  "당연하지요. 어차피 그리 위험한 일을 하지도 않을 테니 문제없을 겁니다."

  암살 부대는 크게 둘로 나뉘었다.

  우선 마르쿠스를 직접 암살하는 쪽은 인타프레네스와 호르쉬드가 맡았다.

  호르쉬드는 뒤에 숨어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으나, 인타프레네스가 마르쿠스의 숨을 끊는 건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히다르네스는 다른 귀족들을 이끌고 경비들의 시선을 끈 뒤, 사전에 확보해둔 탈출로로 향할 계획이었다.

  "유대인 놈들이 밤에 소란을 일으키는 역할까지 맡아줬다면 한결 일이 수월했을 텐데 아쉽군요."

  "어쩔 수 없었소. 그들도 바보가 아닌데 정말로 잡혀가서 처벌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에 발을 걸칠 리가 없지.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정체도 밝히지 않은 수상한 놈의 제안을 넙죽 받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요."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낮에 소란을 피운 유대인들은 당연히 호르쉬드가 사전에 섭외한 유대 근본주의자들이었다.

  마르쿠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그들은 마르쿠스를 곤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호르쉬드의 꼬임에 흔쾌히 넘어왔다.

  물론 정말로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덕분이었다.

  그저 마르쿠스는 동방의 왕이라고 시끄럽게 떠든 뒤, 서신을 한 장 떨어뜨려 주기만 하면 눈이 돌아갈 정도의 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제안을 받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다만 유대인들은 어디까지나 시선을 끄는 용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계획의 전모를 알지는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절대로 협력했을 리가 없다.

  유대인들이 이런 소란을 부린 당일 마르쿠스가 암살당한다면 상식적으로 누가 의심을 받겠는가.

  인타프레네스는 암살의 책임을 모조리 유대 과격 분자들에게 덮어씌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소란을 일으킨다고 예고한 밤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히다르네스가 유대인들인 척 가장해 안티오키아 외곽에서 불화살을 쏴 신호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경계를 서는 군단병들의 상세한 배치도까지 손에 넣었으니 계획이 실패할 리는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로마가 자랑하는 신문에는 마르쿠스가 유대인 과격분자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리게 되리라.

  이번에야말로 유대는 예루살렘째로 초토화 당하겠지만 야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여기기로 했다.

  "유대인이 범인으로 지목되면 우리는 용의 선상에서 확실히 빠져나갈 수 있겠죠?"

  "물론이오. 다른 자들이 범인으로 지목되면 한 번쯤 의심해볼 수도 있겠지만 유대인은 다르잖소. 아무리 비합리적인 상황과 이유라고 해도 종교라는 배경이 깔리게 되면 모든 게 납득이 되는 법이오. 그래서 광신도들이 써먹기 좋은 거지."

  "동감입니다. 그러면 슬슬 저희도 움직이도록 할까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마르쿠스의 옆에는 스파르타쿠스라는 괴물이 붙어있을 가능성이 높소. 그자를 사전에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너무 과한 공작을 하면 괜한 의심을 살까봐 그냥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으니 주의해야 하오."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수로 밀어버리면 되니까요."

  로마 최강의 검투사라는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소문은 인타프레네스도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고 해도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하긴 쉽지 않다.

  거기에 열이 아닌 백이 넘는 인원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인타프라네스는 시내에 잠복시켜둔 부하들과 합류하기 위해 예식장을 떠났다.

  마르쿠스에게는 급한 일이 생겨 메소포타미아로 먼저 돌아가 봐야겠다고 둘러댔다.

  암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은 안티오키아에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인타프레네스와 호르쉬드는 성문을 경비하는 병사들에게 확실히 자신이 얼굴을 보인 뒤, 안티오키아를 떠났다.

  그런 다음 미리 매수해둔 행정관을 통해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게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서쪽 하늘을 향해 저물고 있는 해는 과연 누구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

  '실패는 하지 않겠다.'

  인타프라네스는 다짐하고, 다시 또 다짐했다.

  ※※※※

  긴장으로 초조해하는 건 인타프라네스와 호르쉬드만이 아니었다.

  외곽지역에서 숨을 죽인 채 숨어있는 히다르네스와 다른 귀족들도 긴장으로 몸이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호르쉬드에게 넘겨받은 병사들의 배치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이미 완전히 다 외워둔 상태였지만 조금이라도 긴장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이제 슬슬 시간이 됐겠지."

  히다르네스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어쭙잖게 있어 봐야 결국 계획의 성공률만 떨어질 뿐이다.

  이날을 위해 훈련 시킨 병사들이 흉흉한 눈빛을 빛내며 시위에 화살을 메웠다.

  화살의 촉 부분은 날카로운 대신 둥근 천으로 돌돌 말려있었다.

  히다르네스가 신호를 보내자 부하들이 재빨리 화살에 불을 붙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사수들의 손이 시위를 튕겼다.

  티이잉!

  남쪽을 향해 날아오른 수십 발의 불화살이 하늘을 가득 수놓았다.

  이 정도면 멀리서 보더라도 대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히다르네스는 부하들을 이끌고 화살을 쏜 반대 방향으로 서둘러 몸을 뺐다.

  이미 사전에 병사들이 어디에 배치되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자 뒤따르던 귀족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감돌았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날 수도 있겠군요."

  "방심은 금물이네. 어쨌거나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총독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니까. 누구의 눈에도 목격되지 않은 채, 유대인들의 소행으로 보이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까지 완수해야 진짜 계획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걸세."

  히다르네스는 암기해온 히브리어 문장을 어두컴컴한 골목과 벽에 새기며 미리 짜놓은 탈출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돌이켜보면 이번 계획은 시작부터 준비까지 쉬운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상당한 수의 인원과 무기를 동원하고, 도주할 때 사용할 수레와 배까지 준비해둬야 했다.

  이 모든 걸 갖추는데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금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많은 반로마파 귀족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감히 준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놈들에게 상응하는 보상을 안겨주려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텐데···그쪽에 그 정도의 여력이 있을는지 모르겠군.'

  인타프레네스가 확실히 가능하다고 했으나, 대체 어디서 돈을 끌어오려는 것인지는 히다르네스도 알지 못했다.

  만약 돈이 모자란다면 사재를 털어서라도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믿어볼 뿐이었다.

  상념에 잠긴 채 걸음을 서두르던 히다르네스는 북쪽 공터로 향하는 방향을 향해 골목을 끼고 돌아 나왔다.

  역시 사전에 숙지해둔 대로 근처에는 로마군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지점은 코앞까지 와있었다.

  이제 저 근처에서 마르쿠스를 암살한 인타프레네스의 부대가 돌아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리면 된다.

  바로 그때였다.

  히다르네스의 시선에 뭔가 기묘한 것이 들어왔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지?"

  히다르네스가 계획대로 움직이는 동안, 인타프레네스 쪽도 행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무장을 갖춘 100명이 훌쩍 넘는 병사들이 마르쿠스의 관저 인근에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지금쯤 연회가 끝났겠군요. 곧 이쪽으로 오겠어요."

  "그렇소. 마르쿠스는 언제나 자신을 호위하는 릭토르단을 대동하고 다니는데 그 수는 집정관에게 허용된 숫자인 열두 명을 넘지 않는다고 하오. 나머지 병력은 전부 도시의 외곽에 배치했으니 사실 총독 주변을 호위하는 병사들의 수는 지금이 가장 적다고 할 수 있겠지."

  "열두 명의 릭토르에 스파르타쿠스 한 명. 빠르게 처리하고 도망가면 되겠군요."

  "총독 관저 주변은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라 다소 소란이 일어나도 금방 눈에 띄지는 않을 거요. 다만 우리 쪽에 사상자가 생기면 일이 지체될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겠지."

  시신을 놔두고 갔다가는 이게 유대인의 소행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 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인타프라네스는 사망자가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시신을 태워버릴 생각이었다.

  그가 날카롭게 연마된 자신의 검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건 암살이라기보다는 습격이란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마르쿠스는 자신의 관저 인근에서 매복을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죠."

  이 한 번의 습격을 위해 그야말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

  멀리서 망을 보고 있던 호르쉬드의 부하가 허겁지겁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연회가 끝났습니다. 원로원 의원들은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고, 귀빈들은 궁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르쿠스와 그 호위들도 곧 있으면 이쪽을 지나칠 겁니다."

  "좋아. 모두 단단히 준비하라. 곧 심판의 때가 다가온다."

  호르쉬드와 인타프레네스가 끌어모은 정예 병력이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렸다.

  때가 왔음을 직감한 호르쉬드는 소수의 부하들을 이끌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는 옆으로 돌아가 퇴로를 차단해 놓겠소. 그편이 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제가 먼저 공격하면 그걸 신호로 삼아 호응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그럼 무운을 빌지."

  호르쉬드가 옆으로 걸어가려다 말고 문득 발을 멈추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긴장감으로 물든 인타프레네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도 당신의 목적을 전부 말해줄 생각은 없는 것이오? 이 계획의 뒷배가 누구인지 영영 풀어놓을 생각이 없단 말인가?"

  "모든 게 끝나고 나면···말해드리겠습니다. 그때는 호르쉬드 님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요."

  "이제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군. 지금은 일단 그것만으로 만족하도록 하겠소."

  호르쉬드는 피식 웃으며 완전히 몸을 돌려 그를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사라졌다.

  결행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실감에 입술이 바싹 말라왔다.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려니 마침내 그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행렬이 보였다.

  열두 명의 릭토르와 로마 최강의 검사를 호위로 대동한 이.

  동방의 총독이자 왕인 마르쿠스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 움직여라!"

  인타프레네스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앞으로 나섰다.

  뒤를 따르는 부하들이 미리 암기해둔 히브리어로 '신의 천벌을 받으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인타프레네스는 문답무용으로 기습하지는 않았다.

  호위를 한 명 정도는 일부러 살려둬 이 소행이 명백히 유대인의 탓이라는 걸 알 수 있게 상황을 몰아가려는 까닭이다.

  마침내 마르쿠스가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좁히자 인타프레네스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갑작스레 나타난 괴인들의 모습에 릭토르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고 마르쿠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림잡아 십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

  병사들이 달려간다면 한순간에 좁힐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양측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골목과 나무 뒤에서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괴인들을 본 마르쿠스가 담담한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나한테 볼 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인가?"

  인타프레네스의 뒤편에 서 있는 병사들이 히브리어로 암기해둔 욕설을 내뱉었다.

  인타프레네스는 일부러 어눌한 그리스어를 연기하며 마르쿠스의 호위들이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악귀의 자식이자 이교도 무리의 수장인 마르쿠스에게 우리의 신을 대신해 벌을 내리겠다!"

  마르쿠스는 당황하거나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열 배가 넘는 적에게 둘러싸이면 누구라도 패닉에 빠질 법한데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인타프레네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도망치려거든 도망쳐라. 우리들의 신의 분노가 끝까지 너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가지가지 하는군."

  사전에 어떤 언질을 받기라도 한 것일까. 어쩌면 뒤에 추가 병력을 숨겨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초조한 마음이 든 인타프레네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 했을 때다.

  마르쿠스의 무심한 목소리가 한 발 그의 귓전을 울렸다.

  "인타프레네스, 어울리지도 않는 연기는 그쯤하고 그 답답해 보이는 두건 좀 벗는 게 어떤가."

  "······!"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인타프레네스가 입을 벌린 그대로 자리에 딱 굳어버렸다.

  한순간에 그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뭐지? 계획이 사전에 들통 난 건가? 배신자가 나왔다고? 아니, 그럴 리가···세세한 계획을 아는 사람들은 5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만약 이미 모든 게 탄로 난 상황이라면 이 자리에서 마르쿠스를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아니야. 나는 공식적으로 지금 안티오키아를 떠난 상황이다. 아무리 우겨봐야 확실한 물증이 없다면 절대 나를 엮을 수 없어.'

  애초에 이건 궁지에 몰린 마르쿠스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기응변을 부리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인타프레네스는 여전히 어눌한 그리스어를 연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헛소리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해도 신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다."

  "거창한 계획을 세웠기에 적어도 500명 이상은 동원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군. 뒤쪽에 있는 쥐새끼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말이야."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돌아갔던 호르쉬드까지 언급되자 인타프레네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니까 한 마디로 너는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소리다.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아주 쉽게 처리할 수 있겠어."

  마르쿠스의 목소리에는 조롱이나 모멸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을 세운 부하를 치하하는 듯한 어조에 더 가까웠다.

  그가 마지막으로 싱긋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 인타프레네스. 넌 최고의 배우였어."

  < 144. 습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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