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 습격 (146/326)

  < 145. 습격 >

  145.

  "허세는 정도껏 부려라! 어디 목에 칼이 박히는 순간에도 그럴 수 있나 두고 보겠다. 전원, 최대한 신속하게 이자들을 모두 죽이고 이탈한다."

  한 명을 살려두겠다는 사전계획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이미 암살 계획이 들켰다면 최대한 빠르게 메소포타미아로 돌아가 망명을 준비해야 한다.

  습격자들이 무기를 들고 거리를 좁히자 열두 명의 릭토르들이 마르쿠스를 원형으로 감싸며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도낏자루에 걸려 있던 철로 된 투구를 머리에 썼다.

  "우오오오오!"

  암살자 한 명이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마르쿠스의 릭토르는 아무런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까앙!

  암살자가 휘두른 무기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토가 자락은 잘렸지만 그 안에 받쳐 입은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이다.

  "토가 아래에 갑옷을 받쳐 입은 건가?"

  혀를 차며 자신의 무기를 내려다본 암살자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단 한 번 무기를 휘둘렀을 뿐인데 날이 완전히 나가 있었던 까닭이다.

  로마군의 갑옷이 단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기가 꺾인 습격자들이 주춤거리자 인타프레네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악을 썼다.

  "몸에 칼이 박히지 않는다면 눈을 찔러라! 우리 쪽이 열 배 이상 숫자가 우세한데 대체 뭘 겁먹고 있는 거야! 밀어서 넘어뜨린 뒤에 얼굴을 가격하면 놈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숫자에서 우세했다면 그럴 수 있었겠지."

  마르쿠스가 피식 웃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땅을 박차는 소리의 규모가 고작 수십 정도가 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소리를 감지한 습격자들이 긴장하며 고개를 돌렸다.

  "임페라토르에게 검을 겨눈 역도들을 섬멸하라!"

  완전 무장을 갖춘 로마 군단이 대열을 맞춘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째서 로마 군단이 도시 외곽이 아닌 중심부에 있는 것인가.

  당황한 습격자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었다.

  이번에는 인타프레네스도 우왕좌왕하는 부하들을 다잡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놀란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로마군이 벌써······?'

  사전에 검토했던 경비문서대로라면 로마군이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달려왔다고 해도 벌써 도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즉,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다.

  모든 병력을 안티오키아 외곽에 배치했다는 말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것이다.

  인타프레네스는 마르쿠스가 했던 말이 단순한 허세나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전부 알고 있었다는 게···사실이었다는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의 완수는커녕 마르쿠스의 몸에 생채기 하나조차 낼 수 없게 됐다.

  어렵게 끌어 \모아 훈련시켰던 정예병들이 로마군의 창칼 앞에 무력하게 쓸려나가는 게 보였다.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조차 이보다 볼품없지는 않으리라.

  인타프레네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딱히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저 정신없이 로마군이 없는 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습격자 한 명을 단칼에 베어버린 스파르타쿠스가 인타프레네스의 뒤를 쫓으려 하는 찰나, 마르쿠스의 평온한 목소리가 그의 발을 멈춰 세웠다.

  "따라갈 필요 없어. 우선 이곳부터 정리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스파르타쿠스가 멀어지는 인타프레네스의 등에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습격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항복해도 모조리 참수라는 걸 직감한 습격자들은 최선을 다해 저항했으나, 무기와 역량, 숫자까지 열세인 상황이라 변변한 전투조차 벌이지 못했다.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던 그들은 인타프레네스가 꽁무니를 뺐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아차렸다.

  결국 100명이 훨씬 넘어가는 습격자들이 모두 정리될 때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토록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성공을 자신했거늘 마르쿠스는커녕 호위병 한 명의 피조차 흐르게 하지 못했다.

  허망하고도 허무한 마지막이었다.

  ※※※※

  "헉, 헉, 헉."

  인타프레네스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어째서 계획이 실패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생각은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춰 선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달려왔는데도 사전에 계획했던 탈출 경로를 통해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히다르네스와 합류해서···아니, 경비문서가 가짜였다면 히다르네스가 무사하다는 보장도 없다.'

  이성적인 생각을 할 여유를 조금이나마 되찾은 인타프레네스는 냉정하게 현 상황을 되짚어 보려 했다.

  그런 그의 시선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익숙한 인영이 하나 보였다.

  "호르쉬드···님······?"

  "당신도 어떻게 몸을 빼는 데 성공했나 보군."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상처는 또 뭐고요."

  계획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려던 인타프레네스는 호르쉬드의 행색을 확인하고 차마 그를 끝까지 비판할 수 없었다.

  온몸에는 피 칠갑을 하고 있었고, 옷은 거의 넝마조각처럼 찢겨 있었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마르쿠스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뒤편에 숨어있었는데 갑자기 로마군이 밀어닥쳤소. 바로 퇴각을 하려고 했지만 전력 차이가 워낙 커서 몸을 빼기조차 쉽지 않더군. 덕분에 여기저기 몸이 성한 곳이 없구려."

  "대체 어째서 계획이 들통 난 걸까요? 보안을 기하기 위해 다른 귀족들에게도 세부 사항은 말해주지 않았는데."

  "답은 뻔하지 않소. 배신자가 있는 거지."

  서늘한 호르쉬드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인타프레네스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히다르네스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생각해 보시오. 최전선에서 마르쿠스를 죽이기로 한 우리와 달리 그는 후방에 대기하는 역할을 받았소. 배신해도 결정적일 때까지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오."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히다르네스는······."

  "마르쿠스가 상상 이상의 대가를 제시했을지 누가 알겠소. 나도 그가 배신자가 확실하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오. 단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그리고 상황이 이런 이상 사전에 논의한 탈출 경로를 그대로 사용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요."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히다르네스가 배신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붙잡혔을 가능성은 꽤 있으니까요."

  계획이 전부 노출된 상황인 이상 탈출 경로가 이미 새어나갔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 생각을 해봐도 도주로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내가 북쪽 성문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놓긴 했소. 그쪽을 통한다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안티오키아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가 빠져나간 뒤요. 이미 우리는 로마의 반역자로 규정됐을 텐데 여기에서 벗어난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그건······."

  "당신에게 이 일을 의뢰한 자와 연락할 수는 없소? 그자의 부탁을 처리하다 이 사달이 났으니 그쪽에 몸을 위탁하는 선택지도 있을 것 같은데."

  인타프레네스가 한숨을 쉬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면목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계획이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한 이상 그쪽은 철저하게 저희를 모르는 척할 겁니다. 로마와 척을 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현재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좋을 대로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다 이 말인가?"

  "대신 성공했다면 막대한 이득을 보장받았을 겁니다. 원래부터 그런 계약이었고요."

  호르쉬드의 눈이 점점 더 어두운 빛을 머금었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인타프레네스가 재빠르게 한마디 변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일단 최대한 빠르게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우리의 재산을 전부 처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파르티아로 넘어간 뒤에 틈을 봐서 인더스 유역까지 도주한다면 로마도 우리를 더 쫓아오진 못할 겁니다."

  "···그게 최선으로 보이는군."

  "예. 그러니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두르도록 하죠. 북쪽 성문까지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인타프레네스는 자연스레 호르쉬드에게 등을 보이고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막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려고 하는 순간, 등 쪽에 불에 데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몸이 앞으로 훅 기우는 게 느껴졌다.

  촤아악!

  이해할 수 없는 파육음과 함께 인타프레네스의 몸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하지 못한 그는 단순히 자신이 뭔가에 걸려 넘어졌다고만 여겼다.

  땅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던 인타프레네스의 다리에 다시 한 번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동시에 상당한 양의 피가 바닥을 수놓으며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커헉! 이, 이게 대체 무슨······"

  핏물 속에서 버둥거리는 그의 귀에 싸늘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게. 어차피 다리의 힘줄을 끊어놨으니 일어날 수도 없을 거야."

  "호, 호르쉬드···어째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호르쉬드를 올려본 인타프레네스의 눈에는 경악과 충격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천천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 눈동자가 점차 배신감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네, 네놈이 배신자였느냐? 아니면 나를 팔아서 네놈 혼자 용서를 구해보겠다고?"

  "배신? 용서? 안타깝지만 둘 다 아닐세."

  호르쉬드가 천천히 검을 집어넣고 조소를 흘렸다.

  혼란스러워진 인타프레네스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답은 바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호르쉬드, 수고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싸늘한 밤공기에 내려앉았다.

  호르쉬드의 뒤편에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자가 보였다.

  "오셨습니까, 마르쿠스 님."

  호르쉬드가 한쪽 무릎을 숙이고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스파르타쿠스만을 대동한 마르쿠스가 천천히 쓰러진 인타프레네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호르쉬드는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커다란 상자 하나를 마르쿠스의 앞에 가져다 두었다.

  "미리 의자를 구하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닐세. 자네는 언제 봐도 준비성이 철저하군."

  "그래서 저를 눈여겨 봐주신 게 아닙니까. 앞으로도 마르쿠스 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네. 자네 덕분에 이번 일이 아주 쉽게 풀렸어."

  "···과찬이십니다. 이렇게까지 밀어주셨는데 결국 흑막은 알아내지 못했다는 게 수치스러울 뿐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인타프레네스의 얼굴이 점점 분노와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가 온몸을 내달리는 통증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네놈들, 설마 처음부터 같은 편이었던 거냐?"

  "이제야 깨달은 건가? 그래, 처음부터다."

  "내가 호르쉬드를 끌어들였을 때부터···이미 배신할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거로군. 나는 결국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것인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마르쿠스가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의문으로 범벅이 된 인타프레네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마르쿠스는 최소한의 자비로 모든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내가 말한 처음이라는 건 그보다 훨씬 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관할하는 총독이 되었을 때부터지. 나는 그때부터 호르쉬드를 반로마파 귀족들을 모두 엮어낼 그물로 점찍어뒀었다. 그에게 합리적인 비판자 역할을 맡긴 건 너희 같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고, 역시 예상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이 움직여주더군."

  "처음부터···우리를 솎아내려고 작정하고 있었다고?"

  "그럼 내가 너희들을 그저 두고 볼 거라고 여겼느냐. 메소포타미아 같은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로마에 호의적이지 않은 너희들을? 아, 물론 한 가지는 예상외긴 했다. 원래 호르쉬드를 통해 하려 했던 건 너희들의 횡령과 부패의 증거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거였지 이런 암살 같은 게 아니었거든."

  마르쿠스는 처음 호르쉬드의 보고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던 기억이 났다.

  "무슨 일을 꾸밀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설마 정말로 날 암살하려고 할 줄은 몰랐다.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그 과격성에는 솔직하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야."

  "호르쉬드가 우리에게 이권을 요구했던 것은······."

  "상식적으로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낀 거지. 그래서 너희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과한 조건을 내걸었던 거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수락하면서까지 암살을 진행하려고 한 너희들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더군. 반로마파 귀족을 뒤에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이 나 외에도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

  "이걸 기회로 삼기로 한 나는 그때부터 너희들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을 안겨줄 기회라고 생각했거든."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인타프레네스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함은 짙어지기만 했다.

  그가 입술을 꽉 깨물며 물었다.

  "헤아릴 수 없는 이득? 아니, 그 이전에 네가 우리를 도와줬다고?"

  "눈치채지 못했나? 나야말로 너희 계획의 가장 큰 후원자였는데. 어째서 호르쉬드가 그토록 막힘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지? 수레나스를 감시하는 경비들이 필담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준 걸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나?"

  "그럼 역시 호르쉬드가 경비문서를 가지고 온 것도······."

  "단순히 너희들의 준비성이 철저해서, 실낱같은 틈을 놓치지 않은 용의주도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 것이냐?"

  인타프레네스는 경악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등을 타고 올라오는 고통조차 한순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너의 신중함만큼은 솔직히 예상 외였다. 그렇게나 압박을 가하고 유도신문을 해도 흑막의 이름을 입에 담지는 않더군. 호르쉬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애를 쓴 모양이던데."

  "처음 만났을 때 집요할 정도로 내 반응을 떠본 것도······."

  "그래. 호르쉬드가 사전에 내 능력을 집요할 정도로 강조해서 너의 경계심을 이끌어낸 것까지는 계획대로였는데 말이지. 네가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그때는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해 아쉬웠다."

  호르쉬드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제 능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아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네. 그리고 덕분에 나는 이제 저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됐거든."

  "그게 정말입니까?"

  마르쿠스는 천천히 상자에서 일어나 인타프레네스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와 눈을 마주쳤다.

  "샤한샤에게 만족스러운 보고를 올리지 못해 아쉽게 됐어. 그렇지 않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인타프레네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진실을 숨겼으나, 이미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상태에서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르쿠스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반응만으로 대답은 충분할 거 같군. 고맙다, 인타프레네스. 너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보물상자였어."

  "자, 잠깐!"

  "지금까지의 공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너만은 고통 없이 보내주마. 스파르타쿠스, 죽여라."

  "나는 인타프레네스다! 다리우스 대제부터 이 땅을 지켜온 귀족이란 말이다. 너희같이 근본도 없는 놈들이······!"

  인타프레네스의 말을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파르타쿠스의 검이 그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피 보라를 뿜으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에서 냉정하게 눈을 돌렸다.

  호르쉬드와 스파르타쿠스가 그의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그럼 다음 목표는 파르티아입니까?"

  "아니. 지금 당장 쳐들어가기엔 아무래도 명분이 부족해."

  "예? 이번 암살 계획에 파르티아의 왕이 개입되어 있다면 명분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물증이 없잖아. 인타프레네스의 성향을 고려하면 이미 증거는 다 없애버렸을 거야. 단순히 심증으로만 전쟁을 선포하면 로마에서 반대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귀족파 내부에서도 내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고."

  스파르타쿠스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면 그런 음모를 꾸민 놈들을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 겁니까?"

  "설마. 그냥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거지.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조금만 기다리면 때가 올 거야."

  마르쿠스가 먼저 전쟁을 부르짖지 않아도 상관없다.

  톱니바퀴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돌려세우는 건 이제 그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걸음을 옮기는 마르쿠스의 눈이 문득 머나먼 남쪽을 향했다.

  < 145. 습격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