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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귀족파의 반격 (149/326)

  < 148. 귀족파의 반격 >

  148.

  브룬디시움에 도착한 키케로는 곧바로 안티오키아로 향하는 배에 오르지 않았다.

  혹시나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버리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우유부단하게 마냥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일단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노예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들려 먼저 안티오키아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브룬디시움에서 머물며 친구 아티쿠스의 연락을 기다렸다.

  지금이야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을 수밖에 없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로마에 남아있는 귀족파 동료들이 어떻게든 구명 활동을 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친구 아티쿠스에게 받은 편지는 키케로의 헛된 기대를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네. 클로디우스는 자네가 로마를 벗어난 걸 자신의 승리라고 해석한 모양이야. 완전히 기세등등한 그자는 지지자들과 함께 좋을 대로 날뛰고 있네. 자네의 저택은 이미 폭도들에게 한바탕 쓸려나갔고, 수많은 조각상이 파손당하거나 도난당했네. 부피가 작은 귀중품들은 내가 미리 옮겨놨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

  다른 귀족파 의원들도 섣불리 나섰다가 괜히 불똥이 튈까 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형국일세. 민중파 의원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 뿐 클로디우스를 말리려는 생각이 없어 보이더군. 안타깝지만 자네가 로마로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네. 일단 피소나 칼비누스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테니 조금 더 기다려주게.>

  편지를 끝까지 읽은 키케로는 참담한 심정에 잠깐 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클로디우스 이 개자식이······."

  로마에서 쫓겨났다는 굴욕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집안의 문화재들마저 훼손됐다는 설상가상의 소식에 뒷골이 아파왔다.

  특히 베레스 재판에서 승소하고 시칠리아 주민들이 선물한 정의의 여신상마저 부서졌다는 게 무엇보다 뼈아팠다.

  "다른 의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겁쟁이들 같으니."

  같은 귀족파 의원들에게 느끼는 배신감도 엄청났다.

  민중파를 막으라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상황이 안 좋아지니 모른 척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키케로는 배를 타고 이탈리아반도를 떠났다.

  마르쿠스라면 절대로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키케로는 안티오키아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에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편지를 받자마자 부하들에게 명령해 키케로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자신이 직접 항구까지 마중을 나간 마르쿠스는 배에서 내린 키케로를 성대하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간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마르쿠스······."

  마르쿠스는 일부러 키케로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정규군단을 동원해 환영식을 거행했다.

  마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장수를 환영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로마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들었습니다. 키케로 님이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끝까지 관철하다가 해를 입으실 뻔하셨다고요. 비록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어도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어느 정치인이 그런 상황에서 계속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대가로 로마에서 쫓겨나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과보다도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마차 위에 오르시지요. 피로가 많이 쌓이셨을 텐데 밀린 이야기는 휴식을 취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키케로는 총독이 타는 호화로운 마차 위에 마르쿠스와 함께 올랐다.

  키케로를 중심으로 한 행렬은 마치 개선장군의 부대처럼 위풍당당하게 궁전으로 들어섰다.

  구경을 나온 시민들이 마르쿠스와 나란히 앉아 있는 키케로를 바라보며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로마에서 온 최고의 귀빈을 환영하기 위한 축제를 열겠다고 공표했다.

  당연히 시민들은 환호하며 키케로의 방문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키케로는 마르쿠스가 자신을 배려해 일부러 이런 행사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뛰어난 정치가이긴 해도 누구보다 인간적인 감성을 지닌 그는 눈물이 핑 도는 걸 느꼈다.

  로마에 남아있는 동료 의원들은 제 살길을 찾는답시고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안티오키아에 오자마자 자신을 향한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친우야말로 진정 가치가 있는 벗이다.

  키케로는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 마르쿠스가 보여준 호의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러면 이제 대책을 논의해볼까?"

  안티오키아 궁전에서 이틀간 숙면을 취한 키케로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로 쓰이는 넓은 방에는 마르쿠스와 키케로, 그리고 카토와 크라수스 네 사람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라수스와 카토는 키케로를 보자마자 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키케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했네. 내가 끝까지 로마를 지키고 있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아들이 결혼식을 했는데 어떻게 가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폼페이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거라고 봤는데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로마에 있는 모두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키케로의 한탄에 자리에 앉은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마르쿠스조차 이렇게나 빠르게 상황이 전개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수레나스와 전쟁의 결과를 내기했을 때 두 사람 모두 폼페이우스의 승리에 걸었다.

  마르쿠스는 9개월 안에 승부가 날 거라고 예상했고, 수레나스는 반년 안에 결판이 날 거라고 예측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틀렸지만, 그래도 내기는 결과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웠던 수레나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내기에서 이기고도 수레나스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었다.

  마르쿠스는 호승심으로 전의를 불태우던 수레나스의 얼굴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지금 로마는 민중파가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아직 폼페이우스 님이나 카이사르 님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된 건 조금 뼈아픈 상황입니다."

  카토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한숨을 흘렸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내가 로마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판단을 그르쳤던 모양이네."

  "두 사람의 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그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네. 카토, 자네와 크라수스 님이 원로원에 있었다면 내가 쫓겨나는 최악의 결과까지는 나오지 않았을 걸세. 그런데 어째서 로마로 돌아오지 않았던 건가? 크라수스 님이야 그렇다 쳐도 자네는 여기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을 텐데."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소동이 있었네. 파르티아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마르쿠스를 암살하려고 했지 뭔가. 게다가 마르쿠스가 그 일로 상담을 요청해서 도저히 로마로 갈 수가 없었던 걸세. 그게 결과적으로 좋지 않게 작용한 모양이지만."

  "암살이라고?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키케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르쿠스는 최대한 요점만을 간추려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들은 키케로가 턱을 긁적이며 실소를 흘렸다.

  "멍청한 놈들이로군.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완전히 로마의 땅으로 편입시키느라 다른 곳에 정신을 쓸 수 없었던 거로군."

  "예. 그들이 움직여준 덕분에 일이 한층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속주는 이제 시리아 못지않게 친로마파로 가득한 지역이 됐습니다. 혼란으로 가득했던 지역에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거죠,"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가 마침내 동방 전역에 구현된 거로군. 암살에 가담했던 귀족들의 처분은 어떻게 했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한 뒤 국고로 환수했습니다. 안 그래도 공공도서관을 지을 자금을 어디서 조달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재원이 쉽게 마련됐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반로마파 귀족은 암살 파동으로 완전히 쓸려나갔다.

  인타프레네스와 히다르네스는 현장에서 즉결 처형당했고, 다른 귀족들도 모조리 극형에 처해졌다.

  마르쿠스는 그들의 재산을 모조리 압수하긴 했지만, 모든 걸 자신이 혼자 취하지는 않았다.

  반로마파 귀족들이 누리고 있던 이권이나 토지는 경매에 부쳐 적절한 가격에 친로마파 귀족들에게 분양해 주었다.

  당연히 헐값에 토지와 사업권을 손에 넣은 친로마파 귀족들은 마르쿠스에게 다시 한 번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이제 마르쿠스가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마음대로 주물러도 반대를 할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암살소동 한 방으로 말고 많고 탈도 많았던 메소포타미아 속주가 완전히 안정화된 것이다.

  마르쿠스가 인타프레네스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건 정말 과장 없는 진심이었다.

  그래도 아직 모든 게 마무리된 건 아니다.

  암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파르티아의 사나트루케스가 멀쩡히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이런 중요한 안건이 어째서 원로원에 올라오지 않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파르티아를 계속 놔두고 있던 이유는 어째서인가?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안정화하는 게 더 급선무라고 판단해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지금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당시엔 시기도 좋지 않다고 판단했고요.

  폼페이우스 님이 막 원정을 시작하려고 할 때 제가 파르티아를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민중파에서는 분명 폼페이우스 님에 대항해 군공을 쌓기 위해 억지로 전쟁을 일으키는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심증밖에 없으니까요.

  "

  "하긴···그럴 가능성이 높았겠군. 이미 북쪽과 남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동쪽에서까지 군단을 일으키는 건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을 수도 있고."

  "예. 카토 님과도 의논을 해봤는데 파르티아 건은 조금 더 증거를 모아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었습니다."

  아무리 건수를 잡았어도 절대로 무리한 행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게 마르쿠스의 철칙이었다.

  실리를 챙기면서도 결코 명분을 잃지 않았던 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잠깐은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듯해도 길게 보면 훨씬 더 멀리 뻗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마르쿠스는 지금 로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파르티아 건과 엮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만약 섣불리 파르티아를 치겠다고 나섰다면 이런 기회를 잡을 수는 없었으리라.

  게다기 지금은 마르쿠스가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민중파에 대한 적개심으로 활활 타오르는 키케로가 눈에 불을 켜고 반격할 틈을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나. 폼페이우스는 남쪽에서 원정을 다 끝내고 북상하고 있네. 그러니 파르티아 하나를 친다고 로마에 부담이 가지는 않을 거야.

  전쟁에 드는 비용이야 파르티아 쪽에 전부 전가하면 되는 일이고. 그리고 지금 파르티아는 옛날의 그 강대국이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직접 지휘를 맡는다면 1년 도 걸리지 않아서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들이 수도를 버리고 이쪽저쪽 도망 다니면서 싸우면 1년 만에 정복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패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고민할 게 없지 않나. 파르티아를 밀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네. 민중파에게 넘어간 시민들의 지지를 일부나마 되찾아올 수 있을 테고, 자네의 명성도 한층 더 높아질 걸세. 파르티아는 옛날의 그 페르시아에 대응되는 국가가 아닌가. 파르티아를 완전히 정복하면 자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맞먹는 업적을 쌓게 되는 것이네. 시민들에게 홍보하기에 이보다 저 좋은 소재는 없지."

  카토도 키케로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재 귀족파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파르티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암살을 주도한 자들이니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민중파는 폼페이우스가 총독직을 유지한 채 로마로 들어오는 특별법을 통과시켜 버렸다고 하네. 이건 정말로 미친 짓이 아닌가? 그자들은 폼페이우스를 왕으로 만들고 싶은 건가?"

  "설마요.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폼페이우스 님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 나도 폼페이우스가 왕이 될 야망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카이사르는? 카이사르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총독직을 유지한 채 로마로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난 그자가 당장 독재관이 되겠다고 나서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네."

  카이사르가 그런 바보 같은 자충수를 둘리 없다고 생각했으나, 마르쿠스는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카토가 카이사르를 잔뜩 경계해주는 게 마르쿠스에게는 오히려 더 도움이 됐던 까닭이다.

  "확실히 폼페이우스 님을 대우하는 특별법을 성공적으로 통과시킨 이상 카이사르 님도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민중파의 권력 구도상 두 분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마르쿠스의 냉정한 분석에 키케로가 쾅 소리가 나도록 책상을 내리쳤다.

  "로마에 있는 동안 임페리움이 정지된다고 명시해 놓았지만 그건 말장난일 뿐일세.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가 군대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로마 밖으로 나가 병사들을 소집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면 대체 우리가 어떻게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나. 마르쿠스, 솔직히 내가 원로원에서 했던 말 중에 하나라도 틀린 말이 있었나?"

  "당연히 없습니다. 키케로 님은 마땅히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하신 겁니다."

  "그렇지? 진정으로 공화정을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내가 하는 말에 동의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로마에서 도망칠 때 기억을 떠올린 키케로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이 붉게 충혈됐다.

  어지간히도 속앓이가 심했던지 키케로는 마르쿠스만이 아니라 카토와 크라수스에게도 일일이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에게 자신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는 확언을 받고 난 뒤에야 키케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크라수스가 손을 뻗어 키케로의 팔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자네는 누구보다 공화정을 사랑하는 위인 중 한 명일세.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평생을 그런 자부심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클로디우스 그 잡놈이 제가 공화정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모욕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민들은 그에 동조하고 있고요. 돈을 풀어서 시민들을 선동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이 저에게 공화정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는 겁니다. 제 평생 이토록 굴욕적인 경험을 겪어본 일이 없습니다.

  "

  꽉 움켜쥔 키케로의 주먹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마르쿠스는 지금까지 키케로가 이 정도로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지금 그가 보이는 분노의 원인은 단순히 로마에서 추방된 데에 기인하지 않았다.

  공화정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에 금이 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잠깐 고민을 한 마르쿠스는 당분간 키케로가 마음껏 하도록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오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일단 파르티아 원정보다는 키케로 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게 선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키케로 님과 카토 님이 원로원에서 효과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동감일세. 나 혼자 원로원으로 가봐야 키케로처럼 민중파의 공세에 밀려날 테니까."

  "그러면 우선 클로디우스를 잠잠하게 만들어야겠군요. 이건 아버지가 해주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마르쿠스가 깜짝 놀란 크라수스에게 살짝 눈짓을 주었다.

  어차피 클로디우스는 마르쿠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크라수스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적당한 건수가 떠오르긴 하는군. 좋아, 클로디우스는 내가 침묵시켜 주지."

  너무나도 간단한 선언에 키케로가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클로디우스 그놈은 말이 통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걱정 말게. 좋은 방법이 떠올랐으니까."

  아무리 사나운 개라고 해도 주인을 물지는 않는다.

  만약 앞뒤 못 가리고 주인을 무는 개라면 이제 살처분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는 클로디우스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오랜만에 삼두의 영향력을 사용할 생각까지 있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게 부탁한다면 클로디우스 하나를 찍어내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다.

  키케로의 정계 복귀도 어렵지 않게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르쿠스도 폼페이우스처럼 총독직을 유지한 채로 로마로 귀환할 수 있는 방안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로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단숨에 봉합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치고받고 싸워서 갈등을 임계점 바로 직전의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슬슬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군.'

  한 자리에 마주 앉아 토론을 벌이고 있음에도 마르쿠스가 보는 광경은 카토나 키케로와는 달랐다.

  그의 머릿속에서 로마에 용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질서가 구체적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림자 뒤에 숨어있던 삼두가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 148. 귀족파의 반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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