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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2차 동방원정 (152/326)

  < 151. 2차 동방원정 >

  151.

  마르쿠스는 수레나스의 제안대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이용해 병사들을 수송했다.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한 병사들이 자그로스산맥을 넘어간다는 건 너무 강행군이었고, 사상자가 나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역시 대군을 실은 선박이 통과하긴 좋지 않은 장소였다.

  강 하구 지역은 늪지대가 많아 대형 선박이 쉽게 통과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페르시아만을 통한 홍해 교역로가 더 많이 이용되었다.

  암초가 많고 바람이 변덕스럽긴 해도 홍해 쪽은 상대적으로 대형 선박들이 더 쉽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이 경로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레나스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평소 로마군이 건조하는 대형 갤리선의 크기를 줄이고 페르시아만을 자주 이용한 상인을 수배해 길을 안내하게 했다.

  만약 수레나스가 없었다면 로마군은 유프라테스강의 하구에서 발이 묶여 상당한 시간을 지체했을 것이다.

  파르티아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자그로스산맥을 넘든 페르시아만을 통해 남쪽에서 올라오든 시간은 끌리게 되어있다.

  그동안 충분히 방비를 갖춘 뒤, 적극적인 청야전술로 시간을 끄는 게 파르티아군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완벽히 준비를 갖춘 로마군은 생각보다 빠르게 페르시아만을 빠져나와 해안에 상륙했다.

  인근을 지키던 파르티아 지휘관은 로마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당연히 결과는 로마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수레나스가 입안한 전략을 채택한 마르쿠스의 로마군은 파르티아 병사들을 간단히 도륙하고 해안가를 점거했다.

  "예상보다 적의 저항이 훨씬 약하군. 아무리 우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당도했다고 하지만 이건 좀 심한데."

  마르쿠스는 변변찮은 전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혼이 돼버린 파르티아 병사들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까지 도망가지 않고 싸운 용기는 가상했으나 전투란 정신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새 마르쿠스의 옆으로 다가온 수레나스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쓰러진 시신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한가득 서려 있었다.

  "상륙을 저지할 가장 좋은 방법은 제대로 된 해군을 배치해놓는 거였겠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완전히 상실한 파르티아가 굳이 이 지역을 지키는 해군에 힘을 실을 이유가 없죠. 거기에 이런 지형에서는 파르티아의 주력인 기병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지휘관이었다면 전투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퇴각을 명했겠죠. 파르티아의 현 상황이 어떤지 대략 짐작이 가는군요."

  "역시 그렇군. 그런데 저번부터 느꼈지만 자네의 그 말투는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게 아닌가?"

  "언어란 곧 그 사람의 위치와 속성을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총독님을 섬기기로 한 이상 그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네가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예, 앞으로도 쭉 이렇게 하겠습니다.

  마르쿠스는 수레나스의 바뀐 말투가 어색해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레나스의 한 말의 의미는 결국 마르쿠스를 자신의 왕으로 섬기기로 정했다는 뜻이었다.

  말투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충성을 바치기로 한 건 고맙지만 굳이 이번 원정에서는 끝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을 세운 거니까 마음이 복잡하다면 뒤로 물러나 있어."

  일단 수하로 들어온 이라면 그에 맞는 배려를 해주는 게 마르쿠스의 방식이다.

  수레나스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파르티아를 공격하는 게 결코 마음이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다.

  굳이 벌써부터 무리를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마르쿠스의 의도를 이해한 수레나스가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 의지로 섬길 주군을 정한 이상 공사를 혼동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상황인 만큼 제 능력과 의지가 잘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태어나고 자란 나라인데 자신의 손으로 멸망에 일조하는 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잖아."

  "만약 정말로 억울하게 침략을 당한 거라면 저도 이렇게 각오를 굳히긴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파르티아는 너무 큰 빌미를 줬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막을 내려야 한다면 제 손으로 내리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나트루케스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겁니다."

  "하긴, 네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따지고 보면 수레나스가 사나트루케스를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게 흘러가도록 마르쿠스도 약간이나마 손을 썼었지만, 수레나스는 이걸 본인의 책임이라 여겼다.

  결국 파르티아의 몰락은 사나트루케스의 생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까닭이다.

  "그자의 행보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걸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타국의 힘을 빌려 왕좌에 올랐다면 그에 맞는 처신을 해야지요. 속으로는 다른 꿍꿍이를 품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마지막까지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뭐, 타국의 군대를 지휘해 자국을 치기로 결의한 제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요."

  수레나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수많은 감정이 그의 말끝에서 묻어나왔다.

  마르쿠스는 수레나스가 계속 자책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파르티아의 총지휘관은 어떤 자가 맡을 거라고 생각하지?"

  "십중팔구는 카렌이 병사들을 지휘할 겁니다. 로마군과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이 있는 건 그자밖에 없으니까요."

  "저번에 중장기병을 지휘했던 장수 말인가? 그렇게 뛰어난 지휘관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무타레스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카렌만 보자면 그렇게 무능한 장수는 아닙니다. 특출하다고 보기도 어렵지만요."

  "무타레스라···그리운 울림이로군. 이번에도 그런 사람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나?"

  저번 전쟁의 최대 공신이라 할 수 있는 무타레스를 떠올린 마르쿠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힘들 겁니다. 그런 인재는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서요."

  "그건 조금 아쉽군. 어쨌든 나는 이번 전쟁에서 너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으니 어디 실력을 보여 봐. 납득할 수 없는 지휘가 아니라면 최대한 네 의견을 따라줄 테니까."

  "이 전쟁이 끝나면 총독님께서도 폼페이우스 못지않은 칭송을 듣게 되실 겁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폼페이우스를 의식하는 기색이 절로 느껴졌다.

  그런 마음에 조급해한다면 몰라도 투지와 전의를 불사르는 건 긍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었다.

  마르쿠스는 내심 수레나스가 이번 전쟁에 따라나선 이유에는 폼페이우스의 원정에 자극을 받아서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실제로 수레나스는 이번 전쟁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지는 않았다.

  우선 해안가에서 하루를 쉬고 항해와 전투의 피로를 푼 로마군은 천천히 행군을 재개했다.

  수레나스의 예상대로 파르티아군의 지휘는 대귀족 카렌이 맡았다.

  이미 저번 전쟁에서 로마군의 무서움을 실감한 그는 정면대결을 할 마음이 없었다.

  기동력이 좋은 기병대를 활용해 적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게 그가 세운 계획의 기본골자였다.

  그런 뒤, 사나트루케스는 로마군의 손에 잡히지 않도록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최대한 저항을 길게 이어나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수레나스는 카렌의 그런 계획을 이미 다 읽고 있었다.

  애초에 그건 처음 로마군이 쳐들어왔을 때 수레나스가 쓰려고 했던 전략이었던 까닭이다.

  수레나스는 파르티아군의 병력의 규모, 부대의 구성, 지휘관의 성향 등 모든 정보를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훤히 꿰뚫고 있었다.

  굳이 손무의 말을 빌려오지 않아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시대에서도 상식으로 통했다.

  수레나스는 우선 10개의 로마군단을 둘로 나누었다.

  마르쿠스가 이끄는 본대는 사나트루케스를 쫓아 진군하게 했고, 자신이 지휘하는 궁기병 부대는 독자적인 행동을 개시했다.

  원래부터 궁기병들을 다루는 걸 선호했던 수레나스는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드러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가문이 지배하고 있던 시스탄 지역을 손에 넣었다.

  페르시아만을 통해 남쪽에서 쳐들어온 건 처음부터 시스탄 지역을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었다.

  원래부터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수레나스의 귀환에 시스탄은 곧바로 로마군에 붙었다.

  이제 추가로 넘어오는 보급부대는 시스탄 지역을 통해 안전하게 본대와 합류할 수 있게 됐다.

  급하다면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이로써 로마군은 보급에 대한 부담감이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었다.

  파르티아군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청야전술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계획이 좌초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르쿠스의 본대는 유유히 수도로 접근해왔다.

  다급해진 카렌과 사나트루케스는 우선 수도를 비우고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래도 무작정 장기전으로 끌고 갈 마음은 이제 버렸다.

  그는 수레나스의 말대로 판단력이 나쁜 장수는 아니었다.

  시스탄을 점령한 이상 로마군이 더 이상 장기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걸 잘 알았다.

  그래서 후퇴하는 와중에도 사방에서 병력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4만이 넘는 병력을 편성했다.

  수가 많은 이유는 이 중 삼 분의 이 이상이 기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워낙 상황이 위중했기에 기병들의 방패막이 되어줄 보병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카렌은 결국 정면대결을 가장한 기습공격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이 지역은 왼편에 바위산이 솟아 있어 병사들이 몸을 숨기기 쉽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1만의 병사를 매복시키겠습니다. 결사 항전을 할 것처럼 황무지에 진을 치고 적이 쳐들어오면 배후를 공격하도록 하죠."

  사나트루케스는 카렌의 계획을 승인했다.

  어차피 계속 도망 다녀도 적이 초조함을 느끼지 않는 이상 전투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로마군처럼 정면승부에 강한 군대는 기습이나 변칙적인 공격에 가끔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카렌은 이 점에 국운을 걸어보기로 했다.

  확실히 처음 전투는 그의 뜻대로 되는 것처럼 보였다.

  로마군은 황무지에 진을 치고 있는 파르티아군을 보자마자 그대로 돌격해 들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판금 갑옷을 입은 중장기병들이 무서운 기세로 파르티아군의 정면을 향해 돌격해온 것이다.

  본래 기병이란 적의 측면을 공격하는 게 병법의 기본이었다.

  중장기병을 곧잘 운용하는 파르티아도 이렇게 대놓고 적의 중앙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카렌은 문득 저번 전쟁에서 로마기병이 보인 괴물 같은 강함을 떠올렸다.

  그는 부랴부랴 중앙의 방어를 강화하고 화살을 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로마 중기병의 돌격을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쇄도한 기병들이 파르티아 보병들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다.

  간신히 구색만 갖춘 파르티아의 보병들은 로마 기병대의 돌격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이미 로마 중장기병의 힘을 본 적이 있는 자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전 전쟁은 어디까지나 기병들간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보병을 덮쳤을 때 얼마나 압도적인 힘을 보일 수 있는지 카렌조차 미처 예상치 못했다.

  지휘를 하는 사람이 그럴진대 직접 돌격에 당하는 보병들은 어떻겠는가.

  중앙에서 중장기병의 돌격에 당한 이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압도적인 전투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창으로 찌르든 칼로 베든, 화살을 날리든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 적의 기병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가장 큰 문제였다.

  기병이 나아가는 경로에 있는 보병들은 무기를 휘두를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이미 혼란에 빠진 보병들은 아군이 발에 깔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중앙이 거의 분단될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이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 기병들의 뒤를 이어 로마군의 보병이 매섭게 파고들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중앙이 무너지자 당황한 카렌이 소리를 질렀다.

  "기죽지 마라! 자랑스러운 파르티아 병사들이여, 로마 놈들의 뒤를 쳐라!"

  "우오오오!"

  명령에 화답하듯 몸을 숨기고 있던 복병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그들이 재빠르게 로마군의 후미를 타격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파르티아가 자랑하는 기병들도 로마군의 측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르티아군의 움직임은 이미 마르쿠스의 예상 안에 있었다.

  "수레나스가 일러준 대로군. 역시 이런 장소에 매복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이 주변 지역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 수레나스는 이미 파르티아군이 매복하고 있을 만한 장소를 전부 마르쿠스에게 알려주었다.

  파르티아와 로마군의 전력 차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컸다.

  이 차이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기습이나 매복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수레나스의 주의를 듣고 실제로 전장이 될 지형을 보자마자 매복가능성을 고려했다.

  만약 적이 숨어있다면 100퍼센트의 확률로 바위산 뒤의 지형에 숨어있을 거라는 점도 알았다.

  그래서 사전에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12군단의 정예들을 바위산의 사각지대에 숨겨두었다.

  이미 사전에 귀띔을 받은 로마군은 당연히 파르티아 병사들의 매복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대열을 형성해 후미를 노리는 적들과 맞섰다.

  "스파르타쿠스, 지금이다!"

  마르쿠스의 신호가 떨어지자 몸을 숨기고 있던 12군단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역으로 포위를 당한 파르티아의 복병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들의 몸 위로 스파르타쿠스의 자비 없는 칼날이 떨어졌다.

  로마군의 위력은 전투가 지속될수록 더 강해졌다.

  마침 붉은 해일이 밀려와 파르티아군을 쓸어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카렌이 아무리 독려하고 전의를 북돋아 봐도 소용없었다.

  전술과 전략에서 전부 밀린 파르티아군은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후, 후퇴하라! 전군 물러나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는 이미 붕괴된 병사들을 필사적으로 통솔해 군을 뒤로 물렸다.

  파르티아 병사들은 질서정연한 퇴각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작정 도망쳤다.

  말을 탄 기병들은 빠르게 전장에서 멀어질 수 있었지만, 보병들은 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빠르게 도주하기 위해 무기와 투구를 내동댕이치고 줄행랑을 쳤다.

  저번 전쟁에 이어서 이번에도 완패한 카렌은 완전히 의기소침했다.

  4만의 병력 중 3만에 가까운 병력을 한 번에 잃었다.

  한 번에 3만의 병력이 모두 죽거나 포로가 된 게 아니었다.

  전투에서 도망간 뒤 그대로 꽁무니를 빼고 다시 합류하지 않은 병사들의 수가 만만치 않게 많았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탈영병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었다.

  로마군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파르티아군의 뒤를 따라왔다.

  카렌은 어쩔 수 없이 사나트루케스를 데리고 원래 몸을 피하려 했던 거점 도시로 경로를 틀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적한 장소에 당도했을 때 본 광경은 성벽 위에서 흩날리는 로마군의 깃발이었다.

  카렌의 움직임을 예상한 수레나스의 유격부대가 한발 먼저 도시 제압을 끝낸 것이다.

  "수레나스 이 배신자가······."

  사나트루케스는 한때 자신의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맛보았다.

  과거 내전에서 그의 아버지 미트리다테스 3세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수레나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다가 패배를 겪었다.

  돌고 돌아서 자신도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허탈함으로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동시에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체념한 사나르투케스는 순순히 항복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다른 도시로 도망가자는 카렌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가오고 있는 마르쿠스를 향해 사절을 보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헛된 망설임과 욕심으로 수만이 넘는 병사들의 목숨만 잃은 꼴이 됐구나. 내 죄가 실로 크다."

  "샤한샤이시여······."

  "나는 이제 샤한샤가 아니다. 앞으로 이 땅을 지배하게 될 저자야말로 샤한샤를 칭할 자격이 있겠지."

  사나트루케스는 비장한 마음으로 마르쿠스의 군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마르쿠스와 마주하게 된 사나트루케스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파르티아는 로마와 싸울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소. 총독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패자는 말 없이 따를 뿐이오. 그래도 부디 이 땅의 백성들과 귀족들에게는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길 부탁하겠소."

  사나트루케스는 마르쿠스의 옆에 서있는 수레나스에게 어떤 비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를 배신자라고 욕했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나는 우리가 제법 건설적인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고 봤는데 참으로 유감입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그저 면목이 없을 따름이오."

  "이유라도 듣고 싶군요. 어째서 그런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운 겁니까? 저를 적으로 삼지 말라는 경고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그 경고 때문이오. 나는 당신이 나를 왕위에 세우고 메소포타미아와 자그로스를 가져갔을 때 느꼈소.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당신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조급함에 잡아먹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거요."

  "현명한 줄 알았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괜한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파르티아는 동쪽의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하는 동맹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사나트루케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마르쿠스의 말은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파르티아를 완전히 정복한다면 그에 따른 이득만큼이나 신경 써야 할 점도 많아질 것이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파르티아라는 국가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마르쿠스는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파르티아의 마지막을 선고했다.

  "사나트루케스를 폐위하고 아르사케스 왕조의 일원을 전부 로마로 압송할 것이다. 파르티아의 현지 귀족들의 자리는 그대로 보장해줄 것이며 원하는 자에 한해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하겠다."

  예상했던 결과에 사나트루케스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왕족 전원을 압송하고 귀족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는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파르티아를 로마의 속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마르쿠스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200년을 이어진 동방의 강국 파르티아는 결국 이날을 기점으로 역사상의 수많은 왕조들처럼 과거의 이름으로 사라졌다.

  < 151. 2차 동방원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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