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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다시 로마로 (154/326)

  < 153. 다시 로마로 >

  153.

  마르쿠스가 악바타나에서 한나라와 처음으로 조우했을 무렵,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를 완전히 정복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본래 역사와 다르게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마르쿠스의 지원으로 무장까지 완벽하게 갖춘 로마군은 강했다.

  브리튼 남부지대는 이미 원정 첫해에 로마의 영역이 되었다.

  카이사르는 이티우스 항에서 끊임없이 보급품을 실어 날라 웨일스까지 점령했다.

  패배한 부족을 학대하지 않고 온건한 융화정책을 취한 덕분에 현지 동화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카이사르는 현지 부족의 유력자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리고 빼어난 외모를 지닌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로마 남성과 결혼시켰다.

  갈리아가 일찌감치 평정된 덕분에 카이사르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쭉쭉 밀고 올라갔다.

  잉글랜드 지역을 정복한 카이사르는 솔웨이 만과 타인 강 사이의 지협을 앞두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역사상 로마는 이 지역의 북쪽인 칼레도니아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대신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짓고 북쪽의 픽트족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도미티아누스 시절 아그리콜라가 원정을 감행하긴 했지만, 중간에 본국으로 소환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사실 잉글랜드 지역까지 점령한 것만으로도 성과는 확실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역사와 달리 지금의 그는 브리타니아가 섬이고 칼레도니아가 브리타니아의 가장 북쪽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전력이 충분한데 굳이 후환을 남겨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군단을 투입해 칼레도니아를 합병했다.

  그리고 기원전 52년이 저물기 전에 마침내 최후의 전투를 승리로 끝마칠 수 있었다.

  "수고했다. 위대한 로마의 장병들이여. 그대들은 로마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로마로 돌아가게 된다면 모두가 그대들의 공을 칭송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완전 제패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한 카이사르의 군단은 위풍당당하게 브리타니아를 떠났다.

  야만족밖에 없는 브리타니아와 갈리아는 부유하지 않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부유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 쌓아둔 재물이 의외로 굉장히 많았다.

  로마에 끝까지 동화되기를 거부한 자들을 노예로 판 수입은 온전히 카이사르의 빚을 갚는데 들어갔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부하들의 인망을 얻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그는 수많은 전리품을 병사들에게 나눠주기로 약속했다.

  7년에 달하는 시간을 카이사르의 밑에서 싸운 군단은 이제 사실상 그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젠가 로마로 돌아가면 임페라토르가 하는 모든 일에 찬성표를 던지겠노라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이티우스 항구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우선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그리고 밀린 편지들을 읽으며 자신이 알아야 할 사항들과 검토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라비에누스, 내가 칼레도니아를 점령하는 동안 갈리아나 게르마니아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갈리아는 이제 완전히 로마의 영역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습니다."

  카이사르는 신뢰하는 부관인 라비에누스에게 2개 군단을 주고 자신이 없는 동안 갈리아의 동향을 살피게 했다.

  정말로 긴급할 시 전령을 보내라고 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전에 워낙 철저하게 박살을 내둔 덕분에 반란분자들이 감히 준동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리라.

  "다행이군. 그러면 로마는 어떤가? 얼핏 듣기로 마그누스의 원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모양이던데."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보고서들을 정리해 두었으니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사적인 편지들은 당연히 개봉하지 않은 상태로 두었습니다."

  "수고했네. 언제나 일 처리에 빈틈이 없군."

  카이사르는 엄청나게 쌓인 원로원 서신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티우스 항구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1천 킬로미터가 넘었다.

  현재 로마의 행정 체계로는 아무리 보고가 빨리 올라와도 걸리는 시간이 2주가 넘었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안티오키아에 있는 마르쿠스는 로마의 소식을 받아보려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카이사르는 갈리아에 있는 동안에도 로마의 최신 동향을 비교적 빠르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랫동안 전선에 나가 있었던 터라 최근 로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어디 보자···파르티아와의 전쟁이 끝나고 마르쿠스가 속주 재편성에 들어갔다고? 이거 잘못하면 우리의 개선식 일정이 겹칠 수도 있겠군.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시기를 조금 조절해야겠어."

  "바로 로마로 돌아가실 겁니까?"

  "글쎄. 아직 거기까진 결정하지 않았네. 지금 돌아가도 문제는 없겠지만, 로마로 돌아가려면 내 임페리움을 포기해야 하지 않나."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민중파는 당연히 찬성할 테고 귀족파도 감히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카이사르도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지금 귀환하는 걸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닐세. 귀족파는 분명히 여러 가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날 방해할 테니까. 우선 내가 세운 공이 정말로 마그누스에게 밀리지 않는지 따져보자고 할 게 틀림없어."

  "갈리아는 수백 년에 걸쳐 로마를 위협한 적이었습니다. 거기에 로마인 그 누구도 발을 디딘 적이 없던 브리타니아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게 마그누스가 세운 공에 밀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저들의 노림수에 걸려드는 걸세. 누가 더 공이 크네 작네 하는 식으로 의견을 부딪치게 만들어서 소모적인 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거지. 그런데 엮이지 않으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군공을 하나쯤 더 세울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설마 게르마니아까지 치실 생각이십니까?"

  라비에누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카이사르의 의중을 살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게르마니아는 넓습니다. 완전히 제패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요."

  "그럼 엘베강 유역까지로 한정 짓는다면 어떤가?"

  "그 정도라면···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올해 겨울은 로마에서 보내고 내년에 새로 원정을 시작하실 계획이십니까?"

  "고민 중일세. 일단 조금 더 로마의 반응을 지켜보고 돌아갈지 말지 결정을 내릴 생각이네. 어차피 올겨울은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며 보낼 예정이니까."

  카이사르는 라비에누스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한 시도 보고서를 읽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오, 이런. 클로디우스가 또 알 수 없는 행동을 벌이고 있군. 귀족파의 중진인 메텔루스를 기소했다고? 이게 정말인가?"

  "사실입니다. 아내인 풀비아를 성적으로 희롱했다고 노발대발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풀비아가 매력적인 여인이긴 하지. 하지만 그녀는 유서 깊은 파트리키 출신일세. 메텔루스가 머리에 투창이라도 박힌 게 아닌 이상 풀비아를 희롱하려고 하진 않았을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메텔루스는 자신은 단지 연회에서 풀비아의 아름다운 외모를 칭찬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클로디우스가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카이사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클로디우스가 앞뒤 안 가리는 자라고 해도 그는 일단 민중파의 중요한 일원이었다.

  만약 진짜 재판까지 갔는데 어이없게 패소해 버리면 민중파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승소 가능성이 없다면 적당히 몸을 빼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그누스가 곧 로마에 들어갈 테니 클로디우스를 제어해주면 좋겠는데···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워낙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카이사르 님이 클로디우스가 설치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부탁한다면 움직이지 않을까요?"

  "클로디우스는 폼페이우스를 잘 아네. 한두 번 말을 듣는 척하면서 뒤에서 문제를 일으킬 게 뻔해. 폼페이우스는 그런 진흙탕 싸움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걸세."

  카이사르는 클로디우스가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아직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는 다소 다혈질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혈기를 못 이긴 단순한 폭주인지 아니면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연출인지 판단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결국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보기로 한 카이사르는 이제 자신에게 온 사적인 편지를 펼쳤다.

  아내 칼푸르니아는 거의 매달 편지를 보냈고 어머니 아우렐리아가 두 달 전에 보낸 편지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카이사르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딸아이 율리아에게서 온 편지였다.

  오랜만에 딸에게 편지를 받은 카이사르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편지에는 딸의 소소한 일상과 나날이 커가는 손자 손녀의 이야기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다시 볼 때까지 다치지 말고 건강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었다.

  "하하, 이 아이가 아비가 걱정되긴 했나 보군. 그나저나 우리 귀여운 아가들은 이 할애비를 기억이나 하려나 모르겠어."

  "걷지도 못할 때 본 게 마지막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기억 못 하겠지요."

  "···그러면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친분을 쌓아놔야겠군. 요새 애들은 우리 때와는 달라서 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많이 들리던데."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율리아 님이 잘 교육을 하셨을 테니 카이사르 님의 손주 분들은 요즘 아이들 같진 않을 겁니다. 지금 세대의 애들은 너무 버릇이 없고 철이 덜 들었습니다. 가끔 보면 우리 로마가 어떻게 되려고 하는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카이사르는 왠지 자신이 어렸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에게서 받은 편지로 한껏 기분이 올라간 카이사르는 다음 편지를 집었다.

  가장 최근에 아내가 보낸 두루마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딸보다도 더 어린 아내의 풋풋한 얼굴을 떠올린 그는 두꺼운 서신을 펼치자마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정갈하고 단정한 평소의 글씨체와 달리 난잡하게 휘갈겨 쓴 듯한 필체가 불안한 기분을 들게 했다.

  편지를 쓰다 물이라도 조금 흘렸는지 군데군데 잉크가 얼룩진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잠시 뒤 카이사르는 그게 물을 흘린 게 아니었음을 깨닫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농담을 주고받던 막사 안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당황한 라비에누스가 카이사르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

  카이사르의 눈은 못이라도 박힌 듯 아내의 편지에 고정된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하지 않는 걸 넘어 눈동자조차 깜빡이고 있지 않았다.

  "카이사르 님?"

  "···혼자 있고 싶군. 한 시간 정도 뒤에 돌아오게."

  카이사르느 평소와 다른 바 없는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라비에누스는 카이사르의 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랜 시간 카이사르를 봐온 라비에누스는 그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라비에누스는 그 어떤 말도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떠났다.

  방금까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펜 위에서 잉크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막사에 아무도 없자 카이사르는 편지를 내려두고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지금 읽은 편지가 제발 거짓이었으면 싶었다.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몇 번을 봐도 편지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꿈이기를 바라며 뺨을 한 대 쳐보기도 했지만 얼굴에 느껴지는 고통만 생생할 뿐이었다.

  카이사르는 입가를 파르르 떨며 아내의 눈물이 묻은 편지의 한 구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 카이사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이미 일흔이 넘은 고령이었다.

  고대 사람들의 수명을 생각한다면 이미 천수를 누렸다고 볼 수 있는 나이였다.

  카이사르는 모르는 사실이었으나 아우렐리아는 실제 역사보다 2년가량을 더 살았다.

  율리아의 죽음으로 심적인 고통을 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말을 가져다 붙여도 카이사르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은 것이다.

  이십 대 초반에 남편을 여읜 이후로 수없이 많은 구애를 받았음에도 오롯이 아들만을 바라보고 재혼을 거절했던 어머니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모든 인생을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데 바쳤다.

  아우렐리아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정을 전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때에 부고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한참이나 막사 안을 서성이며 감정을 추스른 카이사르는 간신히 아내가 적은 편지의 다음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평온하셨어요. 신들께서도 그분을 어여삐 여기신 것이겠죠. 고통스러운 기색은 전혀 없으셨어요. 저와 베스타 신녀들이 보는 곳에서 또렷하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어요. 당신에 대한 말은 가장 마지막에 나왔는데 그분께서는 '카이사르, 너의 어미라서 행복했다.'

  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눈을 감으신 뒤 조용히 운명하셨어요. 장례식은 아버지께서 책임지고 준비하실 거예요. 민중파에서도 그 여느 인사 못지않게 신경을 쓰겠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신들은 언제나 영웅이 될 자들에게 커다란 시련과 괴로움을 준답니다. 부디 오늘의 슬픔이 당신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지 않고 내일의 영광으로 이어지기를.>

  모든 내용을 읽은 카이사르는 조용히 편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는 두 달 전 어머니가 보냈던 편지를 향해 몇 번이나 손을 뻗으려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평생을 고민만 안겨드렸는데 행복하셨다니···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하시는군요."

  수선으로 눈가를 훔치니 눈물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그게 카이사르가 흘린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는 아우렐리아가 보낸 편지를 접어 자주색 단을 댄 토가의 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라비에누스가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섰을 때 카이사르는 평소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 들어왔나 보군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네."

  "아···그거 참···유감입니다.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라비에누스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네. 어머니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10년 이상은 더 건강하게 사셨으니까."

  "위대한 신들의 옆에 그분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겁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로마 귀부인들의 귀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나저나 우리 군단의 방침 말인데. 방금 전 확실히 정했네. 지금 즉시 군단장들에게 명을 내릴 테니 이 자리에 집결하도록 전해주게. 우리는 로마로 돌아갈 걸세."

  카이사르의 결단을 들은 라비에누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신 건 아니시겠죠?"

  "자네의 눈에는 내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만큼 비탄에 잠긴 걸로 보이나?"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까 전에는 귀족파가 붙들고 늘어질 걸 염려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이 편지가 나에게 도착한 이상 이제 상황은 변했네."

  라비에누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카이사르는 그를 탓하지 않고 친절하게 자신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로마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 영웅이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원래 로마의 법이 그러니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네. 하지만 폼페이우스가 이미 예외사항을 만들었고, 나도 그럴만한 자격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일세. 그런데 과연 귀족파가 드러내놓고 반대를 할 수 있을까? 얼마 뒤면 내 개인사가 로마 전역에 퍼져 나가 시민들의 동정을 사고 있을 텐데?"

  "···못하겠죠. 반대를 하려고 해도 때와 상황을 좀 가려가면서 하라는 빈축을 사기 딱 좋을 테니까요."

  라비에누스는 카이사르의 심계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걸 자신의 행보에 써먹을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얼핏 보면 패륜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라비에누스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아우렐리아는 카이사르를 위해 살았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아들만을 생각한 어머니였다.

  자신의 부고 소식이 조금이라도 카이사르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준다면 누구보다도 기뻐할 사람이었다.

  "난 최고 신관으로서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한 의식을 주관할 자격이 있네. 만약 귀족파 놈들이 분위기를 못 읽고 훼방을 놓는다면···이번만큼은 그들에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교훈을 철저하게 심어줄 생각일세."

  "저는 임페라토르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군단장들을 부르기 전에 먼저 쿠리오를 막사로 불러주게. 원로원에 보낼 서신을 작성해야 하니까."

  라비에누스는 지체하지 않고 막사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카이사르의 대변인으로 임명된 쿠리오가 로마를 향해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군영을 떠났다.

  쿠리오를 먼저 보낸 카이사르의 군단은 천천히 이탈리아 북부,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까지 내려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로마로 귀환한 폼페이우스는 어마어마한 환호에 둘러싸여 개선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르티아를 떠나 안티오키아로 귀환한 마르쿠스도 브룬디시움으로 갈 배를 수배해 놓았다.

  서방 세계를 휩쓴 거대한 세 개의 폭풍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던 태풍의 눈을 향해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 153. 다시 로마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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