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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정상회담 (156/326)

  < 155. 정상회담 >

  155.

  마르쿠스가 마르스 평원에 도착했을 때 로마의 정계는 그야말로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질서와 조화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하루하루가 거의 투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마르쿠스, 제발 어떻게 좀 해주게."

  세르비우스 성벽 밖으로 마중 나온 키케로는 인사 대신 푸념을 잔뜩 늘어놓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여기도, 저기도 죄다 멍청이들뿐이네! 믿을 수가 없어. 대체 그자들의 어깨 위에 달린 기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인가. 매일같이 처먹는 호화로운 요리의 영양가가 뇌가 아니라 죄다 하반신으로 가버렸나?"

  "고생이 심하셨던 듯합니다."

  "고작 그 정도로 표현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네. 진심으로 위에 구멍이라도 뚫리는 줄 알았어."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렇게나 상황이 혼란스럽습니까?"

  키케로가 입술을 깨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네가 직접 들어가서 보면 놀라게 될 걸세. 지금 원로원과 민회는 그냥 정상이 아니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그냥 강 대 강으로 부딪치기만 할 뿐, 누구도 협상이나 타협을 하려는 마음이 없는 듯해."

  "이렇게 과열될 일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군요."

  "내가 볼 땐 이건 이미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네. 민중파도 귀족파도 한 걸음도 물러날 마음이 없는 거지. 이대로 가면 올해는 정무관 선거를 치르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선 안 되죠. 물론 그렇게 놔둘 마음도 없고요. 일단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동에 대해 더 알려주십시오."

  마르쿠스의 자신감 있는 대답을 들은 키케로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는 지금 로마가 어떤 꼴이 됐는지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디부터 설명해주면 좋을까. 일단 클로디우스와 밀로가 뒷골목의 힘 좀 쓴다는 놈들을 전부 끌어들여서 난장판을 벌인 건 알고 있겠지? 그들은 자기네끼리 아주 치고받고 난리를 피우면서 모든 일정을 마비시키고 있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재판도 줄줄이 취소됐고, 연설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면 정확할 걸세."

  "어째서 그자들이 그렇게 날뛰도록 가만히 놔두고 있는 겁니까?"

  "클로디우스는 호민관이고 민중파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까. 그리고 밀로 역시 귀족파가 적극적으로 감싸고 있고 우리 쪽의 호민관과 같이 움직이고 있어.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제지하겠나."

  "그러니까 본질은 결국 귀족파와 민중파의 힘겨루기란 거로군요."

  "클로디우스 그 미친 자식 때문일세. 그놈이 계속 저열한 방식으로 우리의 성질을 건드리니까 강경파 의원들이 폭발해버린 거지."

  마르쿠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킨 대로 잘하고 있군.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일을 벌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클로디우스에게 내린 명령의 핵심은 딱 한 가지였다.

  민중파와 귀족파간의 충돌을 일으킬 것.

  그리고 클로디우스는 아주 효율적으로 일을 잘 수행해냈다.

  이번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폐기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두고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누군가 이 다툼을 수습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내가 수도 없이 해보려고 했지. 하지만 이미 머리에 피가 오른 귀족파는 여기서 물러나면 민중파에게 무릎을 꿇는 거라 여기고 있네. 그리고 기세를 탄 민중파가 완전히 원로원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라 믿는 자들도 많네. 나 한 명의 말로는 도저히 수습이 되지 않는 상황일세. 카토도 이제 거의 반 포기 상태고."

  "민중파는 어떻습니까?"

  "피소의 말로는 자기가 클로디우스를 제어해 보겠다고 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 같더군. 그리고 그쪽도 이미 싸움이 붙은 이상 물러날 마음은 없어 보였네. 클로디우스나 밀로가 맞아 죽는다면 일이 심각하게 되겠지만, 그놈들은 기가 막히게도 마지막 선은 절대 넘지 않는다네."

  신체 불가침권이 있는 클로디우스가 죽기라도 하면 아무리 귀족파가 감싸준다고 해도 밀로는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그걸 잘 아는 밀로는 클로디우스를 직접 건드리지 않았다.

  클로디우스 역시 동료 호민관을 항상 옆에 끼고 다니는 밀로를 직접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이게 보통 폭력배들의 난동이었다면 병사들에게 금방 제압되었을 테지만, 제압 명령이 떨어지질 않으니 병사들도 그냥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귀족파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민중파가 묻지 마 거부권을 던지고, 민중파가 어떤 안건을 내도 귀족파가 문답무용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원로원이 아니라 민회에서도 이런 양상은 똑같이 반복됐다.

  클로디우스는 귀족파쪽 호민관이 제안한 모든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발목을 잡았다.

  귀족파 호민관 역시 클로디우스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양측의 폭력집단이 싸움을 시작하면 그날의 회의는 그걸로 끝이었다.

  키케로 같은 지성인에게 이런 정국을 지켜보는 건 그야말로 지옥에 있는 기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인물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지목됐으나, 두 사람은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크라수스는 이 일이 터지기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을 취하겠다는 이유로 남부의 별장에 내려갔다.

  클로디우스가 갑작스레 다시 설치게 된 것도 크라수스가 로마를 비우면서부터였다.

  귀족파는 진심으로 크라수스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아프다는 사람을 강제로 로마로 돌아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르비우스 성벽 밖의 마르스 평원에 있는 폼페이우스는 개선식과 속주 재편 때문에 로마 정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였다.

  원래부터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저런 저급한 자리에 같이 놀아나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만약 개선식 일정이 지연된다면 나서겠지만, 클로디우스나 밀로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다른 건 몰라도 폼페이우스와 관련된 사안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기묘하게도 로마 정국이 이 난리를 겪는 와중에도 개선식 준비는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폼페이우스가 나서는 것도 뭔가 그림이 이상했다.

  게다가 귀족파는 폼페이우스가 나선다면 민중파의 편을 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래서 귀족파는 폼페이우스는 개선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절대 로마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원래 개선장군은 개선식이 열릴 때까지는 신성 경계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폼페이우스는 처음부터 개선식을 치를 때까지 로마로 들어갈 마음이 없었기에 반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족파의 이런 주장 때문에 엉뚱하게도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도 피해를 보게 됐다.

  이 두 사람도 일단 개선장군의 자격이 있는 이들이라 귀족파의 논리대로라면 성벽 안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것까지는 마르쿠스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설마하니 귀족파가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걱정 말게. 내가 당장 내일이라도 자네가 로마로 들어올 수 있도록 원로원에서 담판을 지을 테니까."

  마르쿠스가 이 일로 마음이 상했을 거라고 짐작한 키케로가 먼저 호언장담을 했다.

  마르쿠스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로 북상하며 대강 소식을 들었던 그는 이미 어떻게 처신할지 계획을 다 세운 상태였다.

  지금 당장은 로마로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마르쿠스는 성벽 안쪽으로 들어가는 키케로를 배웅해 준 뒤, 마르스 평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폼페이우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마르쿠스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과 재회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율리아와 함께 오지는 않았나?"

  마르쿠스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로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함께 마르스 평원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거의 5년 이상을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사이다.

  마르쿠스는 반가운 마음에 진심이 담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에서 세우신 놀라운 업적은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자네의 놀라운 활약상은 내가 있는 갈리아에까지 들리더군. 과연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자넨 모를 걸세."

  "카이사르 님께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입니다. 율리아는 보름 정도 시간을 두고 오라고 했으니 얼마 뒤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굳이 함께 와서 이런 소란을 겪을 필요는 없었겠지. 올바른 판단이네. 그나저나 자네는 참 많이 변했군. 율리아가 얼마나 뿌듯해할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

  마르쿠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한 차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게 달라진 걸 모르겠는데요."

  "아니. 이전에 헤어질 때는 장래 유망한 청년이었다면 지금은 이미 시대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어. 안 그렇습니까, 마그누스?"

  "그나이우스든 섹스투스든 마르쿠스의 절반만이라도 따라가 줬다면 여한이 없었을 텐데···자네는 좋겠군. 사위라도 제대로 건졌으니."

  "이를 말씀입니까. 딸아이에게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어서 내심 미안해했는데 이제 그런 마음은 품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정도 되는 신랑감을 구해줬으면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할 테니까요."

  오랜만에 만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서로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주고받았다.

  "두 분 모두 절 민망하게 만들자고 사전에 말이라도 맞추셨습니까."

  마르쿠스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카이사르가 건네는 잔을 받아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와는 달리 진솔하면서도 유쾌한 웃음이었다.

  카이사르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갈리아에서 수년을 함께 전쟁을 치른 라비에누스나 다른 군단장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물론 카이사르는 부하들을 상당히 유쾌하게 대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윗사람으로서 보이는 태도였다.

  지금처럼 아무런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상대는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해 카이사르가 마르쿠스를 자신과 완전히 대등한 위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폼페이우스 역시 오랜만에 마음이 맞는 친우들과 자리를 가져서인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가 기세 좋게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오늘따라 술맛이 더욱 사는 것 같군, 그런데 자네 둘은 계속 여기에 머물러도 괜찮겠나?"

  "어쩔 수 없지요. 원로원에서 개선식을 치르지 않은 개선장군은 시내로 들어올 수 없다고 하니까요. 뭐, 다행히도 어머니는 여기에 묻히셨으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쪼잔한 놈들 같으니. 정식으로 항의를 해볼까? 난 이제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자네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우리 셋이 동시에 요구를 한다면 원로원도 감히 우리의 뜻에 반대하지 못할 걸세."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미 마르쿠스에게 생각이 다 있어 보이니까요. 그렇지 않나?"

  웃음기를 머금은 카이사르의 눈동자가 마르쿠스를 향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역시 카이사르 님이십니다."

  "처음엔 몰랐네. 클로디우스가 왜 갑자기 꼬리에 불붙은 강아지마냥 날뛰는지 추론하기엔 정보가 너무 없었으니. 하지만 로마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대략적인 윤곽이 보이더군. 그리고 브룬디시움에 상륙한 자네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로마로 북상하는 걸 보고 확신했네. 이건 자네가 그린 그림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마르쿠스가 시원하게 인정하고 나서자 폼페이우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로마의 이 혼란을 자네가 계획했다고? 어째서?"

  "당연히 저희 셋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가져오기 위해서입니다."

  마르쿠스는 태연자약하게 과일의 껍질을 까먹으며 대꾸했다.

  그 말만으로도 전후 사정을 파악한 카이사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모략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폼페이우스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인가. 그러니까 이 혼란을 우리가 수습하고 실권을 쥐자···뭐, 그런 의미인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릅니다. 우선 이 혼란은 현재 원로원이 자신들의 권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로마의 행정이 거의 마비 상태가 되었는데도 자신들의 자존심만을 생각하고 상대를 찍어 누를 생각만 하고 있지요. 시민들은 민중파에게든 귀족파에게든 환멸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사실 나도 그래서 저들과 상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세."

  "민중파와 귀족파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될수록 그들은 제살 깎아먹기를 하는 겁니다."

  카이사르가 재미있다는 듯 포도주잔을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니까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지금의 원로원은 이 대제국을 이끌어나갈 능력도, 지성도, 책임감도 부족하네. 다른 계급과 갈등이 생긴다면 원로원의 권한을 이용해 찍어 누를 수야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자신들끼리 갈라서서 싸우게 되면 출구가 없어지는 걸세."

  "아마 의원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내봐야 다수의 의견 앞에서는 무력하죠. 누군가 나서지 않는다면 최소한 지금의 한심한 사태는 올해 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폼페이우스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얼굴에는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우리가 이 사건을 해결하면 자연히 시민들의 지지는 전부 우리에게 오겠군. 원로원과 완전히 대비되게 보일 테니까. 그것참 묘책일세."

  "거기에 한 가지 더 이득이 있지요.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숨기고 있어야 했던 저희들의 연합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로마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서로 합의했다고 한다면 누가 우리를 의심하겠습니까."

  "음? 그러면 자네는 귀족파와 갈라서겠다는 말인가?"

  "아아, 그건 아닙니다. 저희의 협력은 어디까지나 상호견제를 하는 건설적인 토론의 장으로 보여야 합니다."

  카이사르도 히죽 웃으며 마르쿠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겉으로 보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의견 차이를 합의해 나가는 관계로 보여야 하네. 견제와 대립, 그리고 적절한 갈등을 연출해주는 게 필수라 할 수 있겠지."

  "역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니 좋군요. 카이사르 님의 말대로입니다. 다행히 바깥에서 보면 우리 셋은 서로 대립할만한 요소가 차고 넘칩니다.

  저야 처음부터 귀족파로 두 분과 입장이 다른 입장이었으니 모두가 의심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카이사르 님은 지금까지 민중파의 2인자로 여겨졌습니다. 폼페이우스 님에 비하면 이룬 업적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으니까요.

  "

  "그렇지.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그누스가 뒤에서 나를 조종했다고 여겼을 걸세."

  "하지만 이제 카이사르 님은 누구의 그늘에 있는 게 말이 안 될 정도의 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공에 걸맞은 세력도 거느리게 됐고요. 민중파의 2인자에서 벗어나 1인자를 노리는 모습.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폼페이우스는 어느새 마르쿠스의 말에 빠져들었다.

  정치적인 실권이 탐이 나서가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로마를 움직이는 3명의 절대권력 중 하나.

  그 자리와 칭호가 솔직히 탐이 났다.

  그러면서도 술라처럼 공화정을 박살 냈다는 평가를 듣지는 않을 거라는 게 무엇보다 구미가 당겼다.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공화정을 지지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네."

  "물론입니다. 저희는 합법적이고 온건한 공화정의 지도체제를 구성할 겁니다. 그러기 위한 삼두연합이니까요."

  세 사람은 비어있는 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서로를 쳐다보며 대단히 만족했다.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는 없을 놀라운 순간이었다.

  지금 이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가 임박했다.

  카이사르가 단숨에 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장 먼저 시민들에게 우리는 원로원의 머저리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네. 지금 민중파와 귀족파가 충돌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시민들은 모두가 내심 우리의 충돌을 걱정하고 있을 거야. 우리 셋은 모두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임페리움을 가지고 있지. 지금 같은 기류에서는 언제 내전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일세."

  "로마인은 칼을 들지 않아도 이견을 좁힐 수 있다는 걸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군요."

  "그래. 아직도 싸움을 멈추고 있지 않는 저들과는 다르게."

  "그러면 카이사르, 그리고 마르쿠스. 우리의 삼두연합을 어떤 방법으로 합법화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마르쿠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이사르는 마르쿠스에게 먼저 의견을 내보라는 듯 말없이 포도주를 홀짝였다.

  "민회와 원로원 둘 모두를 이용해야 합니다. 저흰 절대로 권력을 탐하는 독재자들이 아닙니다. 민회와 원로원의 대변인으로서 그들이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는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들일 뿐이죠."

  "좋아, 아주 마음에 드네. 그럼 우리가 이 지리멸렬한 촌극을 끝내겠다고 원로원에 서신을 쓰도록 하지. 마그누스, 여기서는 당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마르쿠스의 군단은 아직 동방에 있고 제 군단도 이탈리아 북부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군단은 개선식을 치르기 위해 지금 로마에 있지요."

  "우리 말에 따르지 않으면 군단을 동원하겠다는 협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요. 굳이 직접적으로 위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되고요. 그냥 당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있는 자들이라면 알아서 몸을 사릴 겁니다."

  그 날 저녁,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의 서신을 지닌 노예들이 각각 민중파와 귀족파 의원들의 저택을 방문했다.

  편지에는 민중파와 귀족파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마르스 평원에서 회담을 개최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연히 카이사르는 민중파를 대표하고, 마르쿠스는 귀족파를 대표하게 될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회담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민중파의 일원이었으나 그 어떤 진영의 손도 들어주지 않겠다고 모든 신들의 이름 앞에 맹세했다.

  그리고 원로원이 이 제안을 수락하고 그들에게 전권을 위임해주기를 정식으로 요구하였다.

  다음날, 원로원에서는 길고도 격한 토론이 이어졌다.

  몇 시간에 이어진 토론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민중파와 귀족파간에 합의가 도출됐다.

  원로원에도 이 지긋지긋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결국 카이사르와 마르쿠스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회담은 나흘 뒤 마르스 평원에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됐다.

  < 155. 정상회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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