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정상회담 >
157.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된 원로원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 일이 잘 풀렸다고 안심하려던 찰나 말도 안 되는 사안이 회담의 주제로 올라온 것이다.
"단 세 명에 권력을 집중해서 몰아준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이런 게 성립되면 공화국은 붕괴하는 게 아닙니까!"
"지금처럼 한시적인 경우에만 기능하는 거라면 몰라도 영속적인 기구로 남는다면 왕정과 다를 게 뭡니까."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민중파와 귀족파를 가리지 않고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를 추종하는 젊은 의원들이 그들의 집권을 지지했다.
"왕이 세 명인 국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다못해 로마의 집정관만 해도 두 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셋으로는 반드시 의견이 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르쿠스 님은 무조건 우리 귀족파의 체면을 세워주는 쪽으로 활동하실 테니 문제 될 게 없지 않나요?"
"카이사르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께서는 지금까지 줄곧 민중파의 권익을 위해 힘써왔습니다. 이게 무슨 독재관을 세우는 것도 아닌데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호민관이나 집정관이 작정하고 거부권을 던지면 정국이 마비되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이런 치명적인 결함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긴 합니다. 견제와 균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도를 만든다면 충분히 공화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당연히 골수 공화주의자들은 신참 의원들의 이런 의견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원로원 내에서조차 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니 조직적인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내일은 아예 임시 평민회까지 소집되기로 한 상황이라 일부의 원로원 의원들만으로는 이 흐름을 막는 게 불가능했다.
답답해진 키케로와 카토는 로마 시내로 돌아가지 않고 마르쿠스를 찾았다.
"마르쿠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이리 들어오시죠."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마르쿠스는 넉살 좋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손수 포도주를 따른 그는 두 사람에게 잔을 돌렸다.
"내일 회담을 준비하는 데 이리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와 반드시 사전에 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두 분 중 누군가는 반드시 오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역시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그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세. 내일 회담에서 자네가 어떤 방식으로 나갈 것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이미 대략적인 구상은 다 짜 놓았겠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건 카이사르 님도 마찬가지겠지요. 일단 시민들의 요구가 저토록 격렬한 이상 일방적으로 이 안건을 거절하는 건 타격이 클 겁니다."
키케로와 카토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사전에 짜두기라도 한 것처럼 일련의 흐름에는 빈틈이 없었다.
카토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지금 떠오른건데 이게 모두 카이사르 그놈의 수작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클로디우스는 원래부터 카이사르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았나? 그놈이 카이사르의 지령을 받고 이 난리를 일으켰다고 가정하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네."
"설마······."
"아니, 아니. 설마가 아니야. 그자가 한 일을 되새겨 보게. 모친상을 당한 것마저 정치의 일환으로 써먹던 자가 아닌가."
마르쿠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반면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키케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카토의 주장에 동의했다.
"확실히···지금 이 과정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깔끔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어. 누군가가 사전에 계획했다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만약 카이사르가 이 흐름을 주도했다면 폼페이우스와도 작당한 거라고 봐야 하는 건가?"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카이사르라면 간교한 세 치 혀로 폼페이우스를 손쉽게 부추길 수 있었을 거라고 보네. 굳이 사전에 모의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두 분의 생각이 옳다면 더더욱 이걸 덮어놓고 거절하는 건 별 효용이 없을 것 같군요. 우리가 거절했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요. 사실 별다른 대비도 필요 없겠죠. 시민들의 총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면 당장 이번 선거에서 처참하게 박살 날 게 뻔하니까요."
마르쿠스의 간단한 상황정리에 카토와 키케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카토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뭔가 생각해둔 타개책은 없는 건가?"
"찬성을 하는 걸 전제로 삼은 뒤, 구체적인 내용을 조율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사실 카이사르 님과 폼페이우스 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긴 했습니다. 이번에 정상회담을 열자는데 찬성한 것도 틀 안에서 그분들을 견제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요. 최악의 결과는 나오지 않도록 막아볼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금까지 마르쿠스의 호언장담이 빗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확실히 구축된 신뢰 관계 덕분인지 키케로와 카토의 안색도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카이사르의 의견에 반박을 해보겠네."
"그렇게 하십시오. 두 분께서 지원을 해주신다면 저도 든든할 테니까요."
"좋아. 오늘처럼 반대하는 자에겐 이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기만 하게. 내 최선을 다해 볼 테니."
찬란한 공화정의 역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할 수는 없다.
카토와 키케로는 사명감을 불태우며 마르쿠스의 거처를 떠나 로마로 돌아갔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등 뒤를 향해 마르쿠스가 작은 목소리로 응원을 건네며 잔을 높이 들었다.
※※※※
약속의 날이 밝아왔다.
이른 새벽부터 마르스 평원은 간이 연단이 설치되고, 호민관들이 집결하는 등 민회가 열릴 준비로 북적였다.
대체 언제 끌어모았는지 가수와 무희들이 오늘 새롭게 탄생하게 될 삼두 연합에 대한 찬가를 부르며 평원 이곳저곳을 누볐다.
그 광경을 본 카토와 키케로는 이게 다 카이사르가 사전에 계획했던 일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사실 이들은 마르쿠스가 카이사르에게 소개해준 이들이었으나 귀족파로서는 진실을 알 수단이 없었다.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연단 위에 자리를 잡은 삼두는 회담의 개시를 선포했다.
카이사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좌중을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시민들의 요청으로 임시 민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나눈 합의문을 민회에 다시 상정하는 방식으로 시민 여러분의 뜻을 물을 것입니다. 사실 저희가 나눈 합의는 모두 원로원에서 정식으로 표결된 것과 같은 구속력을 지닙니다. 하지만 굳이 민회에 재표결을 요구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은 그만큼 이 사안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카이사르는 일부러 잠깐 뜸을 들인 뒤,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유피테르 신에게 맹세코 저는 삿된 권력을 취하려는 마음은 한 줌의 재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로마의 평화와 시민 여러분들의 안정입니다.
물론 제가 혼자 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홀로 길을 걸어가다 보면 독선이라는 늪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지금까지 위대한 여러 왕조들이 우리 로마 앞에 무릎을 꿇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저는 신뢰할 수 있는 동지들의 힘을 빌리고자 합니다.
"
카이사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마르쿠스와 폼페이우스를 돋보이게 했다.
시민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열렬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카이사르는 열광적인 함성을 충분히 만끽하며 좌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여기 있는 폼페이우스는 그 누구보다 로마에 큰 이득을 안겨준 위대한 장수이며, 무엇보다 명예와 신의를 중시하는 위인입니다.
그리고 마르쿠스의 경우 제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조차 사족일 정도로 여러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물입니다.
정치적인 신념은 다를지라도 로마를 향한 애정은 모두가 같다고 확신합니다. 저희를 믿어주신 여러분들의 신뢰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 카이사르, 위대한 신들의 이름을 걸고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
"와아아아!"
"위대한 삼두 연합에게 신들의 영광 있으라!"
이번에 터진 환호는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마르스 평원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발을 구르며 삼두 연합에 지지를 보냈다.
카이사르의 교활한 술책을 폭로하려던 카토는 쓴 입맛을 다셨다.
'교활한 놈 같으니.'
사전에 이렇게 못을 박아버린 이상 이제 카이사르가 권력욕에 눈이 멀었다는 공격은 할 수 없게 됐다.
카이사르는 일부러 자신이 혼자 권력을 쥐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거기에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걷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이게 다 계획된 연출이라 비판해도 카토만 웃음거리가 되고 끝날 것이다.
마르쿠스가 삼두에서 빠지겠다고 공언해도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시민들은 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집행기관의 존재를 원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봐야 결국 다른 인물로 채워질 게 뻔하다.
지금은 일단 삼두라는 틀 안에서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게 상책이리라.
마르쿠스는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시민들의 엄중한 뜻을 받들어 논의에 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폼페이우스 역시 이 영광된 책무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의무를 다하겠노라 선언했다.
삼두의 결성은 이제 완전한 기정사실이 됐다.
남은 건 구체적인 권한을 어디까지 잡을지 확실히 하는 것뿐이었다.
"먼저 기한을 정해두고자 합니다."
카이사르가 진중한 얼굴로 화두를 던졌다.
그가 폼페이우스와 마르쿠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로마에 종신직은 최고 신관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죠. 그래서 저는 이 연합의 기한을 5년으로 잡고자 합니다."
"5년 뒤에는 해체하자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닐세. 5년이 지나면 우리의 성과와 행적을 평가받고 계속 이 권한을 유지할지, 아니면 내려놓을지를 시민들에게 평가받으면 되지 않겠나. 즉, 5년 단위로 시민들이 우리에게 준 권한을 갱신한다고 여기면 될 걸세."
카이사르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독재를 하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권력자의 숫자도 3명.
그것도 확실한 임기가 정해져 있고 이들의 존속 여부를 평가하는 건 결국 로마의 시민들.
표면만 살펴보면 이는 독재와는 권리가 한참이나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마르쿠스는 바로 찬성표를 던지지는 않았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반론을 제기했다.
"5년은 너무 깁니다. 3년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3년은 너무 짧네. 다른 정무관의 기간은 1년이지만, 그들은 딱 한정된 지역과 범위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도 충분한 것이고 우리는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5년은 아닙니다. 그렇게 기한을 길게 잡으면 시민들에게 저희들의 성과를 평가받는 의미가 퇴색됩니다."
"그럼 4년으로 타협을 보는 게 어떤가?"
두 사람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폼페이우스가 절충안을 제시했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기한은 모두의 의견대로 4년으로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우리들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둘 것인지 확실히 규정을 만들어두죠. 마그누스, 혹시 생각해둔 바가 있으십니까?"
"음···일단 우리에게는 최소한 집정관에 준하는 권한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야 다양한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지."
"동감입니다. 그럼 연합의 구성원인 저희 셋 모두가 각각 집정관에 동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해두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한 번 더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카이사르는 삼두 연합의 일원들에게 거부권이 허용되지 않는 통치 권한을 부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이게 독재관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반대했다.
첨예한 논쟁 끝에 다시 중재안이 마련되었다.
세 사람이 합의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연합 구성원 개개인이 발의한 법안이나 명령에는 집정관과 호민관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삼두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결정은 거부권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다.
삼두의 설립 이유는 거부권 남발로 굳어진 정국의 흐름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합의한 사항에는 거부권을 발동할 수 없다는 주장이 타당했다.
마르쿠스도 여기엔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혹시 이견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계신다면 어제처럼 마음껏 반론을 제기해 보십시오. 건설적인 토론이라면 저는 언제든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가 한 말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포르키우스 카토, 그렇게 하십시오."
허가가 떨어지자 카토는 성큼성큼 연단 위로 걸어 올라왔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는 카이사르를 힐끔 노려보았다.
그는 토론을 해봐야 카이사르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평민회를 동원하는 방식을 취한 이상 시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얻는 쪽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카토의 목적은 일부러 의사 진행을 방해해 강제로 병사들에게 이끌려 퇴장당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카이사르에게 반항한다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모습을 모두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우선 저는 삼두 연합의 대의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지만, 우려를 완전히 떨쳐내진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이 새로운 체제가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카토가 정상적인 비판을 하려는 듯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뭐라고 해도 카토는 카토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연설 도중 화제를 탈선해 특유의 장광설로 시간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카이사르는 카토를 제지하지 않았다.
지루한 연설에 하품을 하면서도 턱을 괸 채 열심히 카토의 말에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반응을 보인 건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었다.
"카토 저자가 또다시 회의를 방해하려 한다!"
"지긋지긋한 놈 같으니. 모두 저자를 끌어내자!"
자리가 자리인지라 이곳에 모인 군중들은 기본적으로 의사진행 방해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카이사르가 입도 뻥끗하지 않았는데도 카토의 방해 공작을 참지 못하고 연단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방에서 고성과 욕설을 동반한 돌팔매질과 오물이 날아들었다.
예전에 카토가 장광설로 농지법의 통과를 막으려 했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다시 말해 삼두 연합에 대한 지지가 시민들의 숙원이었던 농지법에 대한 지지만큼이나 높다는 뜻이다.
과거에 이어 이번에도 오물과 돌 세례를 받게 된 카토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자진해서 연단에서 내려갔다.
그제야 병사들을 동원한 폼페이우스는 카토를 회담장 밖으로 퇴장시켜 버렸다.
누가 봐도 카토를 쫓아내는 게 아니라 신변을 보호해주는 모양새였다.
카토의 반항은 명백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카이사르가 여유롭게 원로원 의원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군가 또 연단 위에 오르실 분 계십니까?"
분위기가 이렇게 조성되니 누구도 반대 의사를 입에 담지 못했다.
카토 다음으로 연설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키케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시민들은 이미 삼두 연합에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외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도 꽤 보였다.
사실 키케로도 이 정도면 생각보다는 선방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일단 기존 원로원의 권한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던 까닭이다.
다른 점이라면 삼두 연합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에는 집정관이나 호민관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마르쿠스가 삼두에 있는 이상 공화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에 찬성표를 던질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만 해도 기한을 5년으로 잡는다거나, 구성원 개개인에게 독재관급 권한을 주려고 했던 카이사르의 의견에 단호히 반대하지 않았던가.
키케로가 이렇게 느낄진대 다른 귀족들과 군중들의 반응은 볼 필요도 없었다.
특히 시민들은 이 제도야말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많았다.
4년마다 재신임 여부를 묻는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원래 사람의 심리상 연임 투표 같은 것은 심각한 하자가 없는 한 어지간하면 찬성 쪽의 표가 더 높게 나오는 게 통례였다.
거기에 삼두는 셋 모두가 수만에 달하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병사들은 거의 전원이 로마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여론이 그리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병사들을 일시적으로 귀환시켜 찬성표를 던지게 할 수도 있었다.
"이제 합의안은 완성되었습니다. 저희는 이를 민회에 맡기고 겸허하게 시민들의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삼두 연합의 권한과 임기를 명시한 법안은 모든 선거구에서 찬성이 우세한 형태로 통과되었다.
마르쿠스와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는 서로 손을 잡고 연단 위에 서서 시민들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로마의 시민들은 아낌없는 환호로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축복해주었다.
열화처럼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공화정은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 157. 정상회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