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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로마를 위하여 (160/326)

  < 159. 로마를 위하여 >

  159.

  세르비우스 성벽이 허물어지고, 개선식이 치러진 뒤 일주일이 지났다.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던 로마의 분위기도 이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예전과 똑같이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세르비우스 성벽이 있던 자리에는 대규모 공사가 들어갔다.

  소란에 휘말려 문을 닫았던 가게들도 정상적으로 영업을 재개했다.

  시민들이 단순하기는 해도 결코 바보는 아니다.

  그들은 로마의 분위기가 이전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공사 때문이 아니었다.

  포로 로마눔에 걸리는 원로원 회의록만 봐도 로마의 정치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일목요연했다.

  우선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이 확 줄어들었다.

  귀족파와 민중파의 대립이 격해진 뒤로는 악타 디우르나에 쓰여 있는 말들의 절반 이상이 생산성 없는 말다툼에 불과했었다.

  정치인들이 매일같이 싸움만 하고 있으면 대중들은 자연히 환멸감을 가지는 법이다.

  사실 딱히 원로원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민회를 책임지는 호민관들조차 원로원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완전히 귀족파와 민중파로 나뉜 호민관들은 민회가 열리는 날마다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싸움을 벌여 왔다.

  이 모든 지리멸렬한 행위가 삼두 연합이 들어선 뒤로는 씻은 듯 말끔히 사라졌다.

  단순히 폭력배들의 난투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권을 남발하던 악습이 깨끗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봐야 삼두 연합에 의해 거부권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이건 귀족파나 민중파 어느 한쪽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어느 진영이든 단순히 상대를 방해하려고 남발하는 거부권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이걸 모두가 인식한 뒤로 민회와 원로원은 눈에 띄게 평안해졌다.

  상대방의 정책에 반대 의사를 밝혀도 좀 더 논리적인 근거가 뒤따랐다.

  그렇게 로마가 빠르게 안정되는 동안 삼두 연합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남은 총독 임기에 관한 것이었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현재 자신들의 속주에 그대로 군단을 상주시켜 두었다.

  임페리움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도 아직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이 둘은 폼페이우스와 달리 아직 속주를 완전히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폼페이우스가 히스파니아와 북아프리카, 그리스 지역을 클리엔테스로 삼은 건 이미 10년이 훌쩍 넘었다.

  굳이 현지에 총독으로 가지 않더라도 그곳의 유지들은 전부 폼페이우스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쿠시 왕국과 악숨 왕조는 섹스투스를 머물게 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반면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아직 폼페이우스 정도의 지배력을 만들어 두지는 못했다.

  "역시 한 번쯤은 돌아갈 필요가 있겠어."

  카이사르의 무거운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로마에 우리의 영향력을 확실히 심어 놨으니 슬슬 한번 귀환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네. 마르쿠스, 자네는 동방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나?"

  "돌아가긴 해야죠. 저 역시 적당한 때를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동방에서 사람들을 전부 데려오지 않았을 때부터 그럴 줄 알고 있었네."

  마르쿠스는 이번에 율리아와 자식들을 제외한 다른 식솔들은 데려오지 않았다.

  아르시노에나 클레오파트라조차 안티오키아에 남았다.

  이제 출산을 앞둔 다나에 때문이었다.

  만삭인 그녀가 장시간 흔들리는 배를 타고 로마로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다나에와 그녀를 돌보기 위한 사람들을 동방에 남겨두었다.

  "일단 율리아가 계속 돌아가자고 보채서 로마에 그리 오래 머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율리아가? 어째서?"

  "다나에랑 사이가 좋거든요. 아이가 태어날 때가 됐는데 옆에 있어 주지 않는 건 여자에게 엄청난 상처가 된다고 매일 같이 잔소리입니다."

  율리아가 태어날 때 머나먼 그리스에 있었던 카이사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건 그렇지. 그런데 율리아 그 아이는 마음이 너무 여린 것 같군. 보통이라면 남편의 정부에게 그렇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데 말이야. 그리고 자네도 굳이 안티오키아까지 돌아가려고 하는 걸 보면 그 아이를 꽤 총애하는 듯하고."

  "어렸을 적에 제가 직접 거둔 아이라서요. 그동안 쌓인 정이 제법 많습니다."

  물론 마르쿠스가 안티오키아에 돌아가려는 건 다나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직 동방에는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많았다. 이걸 전부 끝내 놓지 않으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만약에 동방이 휘청이게 된다면 그건 마르쿠스의 권력이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건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에 기반을 둔 카이사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자리를 비운 동안은 언제나처럼 마그누스가 로마를 대신하는 걸로 하면 되겠군."

  "제 아버지도 다시 로마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러면 제가 없어도 충분히 대리 역할을 수행해 주실 겁니다. 카이사르 님은 대리로 세울만한 사람이 없습니까?"

  "일단 쿠리오를 로마에 남겨두려고 하고 있네. 하지만 그가 내 대리를 맡기엔 아직 무리가 있지. 그러니 저번에 자네가 말했던 역참 제도를 북이탈리아까지만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면 어떨까 싶네."

  잠시 생각해 보던 마르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네요. 경로를 한 군데만 정해두고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면 비용도 그리 크게 들진 않을 겁니다."

  "그래. 자네의 구상대로 역참을 운영하면 난 빠르면 이틀, 못해도 사흘 안에 로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받을 수 있네. 그러면 내 의견이 필요한 중대한 사안에도 충분히 화답할 수 있을 걸세."

  "북쪽의 속주에 있는 카이사르 님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선전이 될 겁니다. 마그누스 님은 혹시 지금까지의 방침에 이견이 있으십니까?"

  마르쿠스의 물음에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폼페이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평상시보다 활력이 떨어져 보였다.

  "내가 이견이 있을 리가 있겠나. 이런 분야에 관해서는 나보다 자네들이 훨씬 뛰어나니 나는 최대한 자네들의 제안에 맞춰가겠네."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조금 피곤해 보이신데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별다른 일은 없었네. 그냥 개선식을 준비하느라 신경을 많이 쓴 데다가 행사를 너무 화려하게 치른 탓인지 피로가 쌓인 모양일세.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만큼 빠르게 피로가 가시지 않더군."

  "그럼 오늘 회의는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게 낫겠군요. 저와 카이사르 님이 돌아갔다 오는 건 결정 됐으니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정하고 해산하도록 하죠."

  "그럼 나부터 말하도록 하지."

  카이사르가 손을 들고 마르쿠스와 폼페이우스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뒤 그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을 꺼내놓았다.

  "사실 나는 단순히 브리타니아와 갈리아를 안정시키기만 할 마음은 없네. 라인강을 넘어서 그 앞에 엘베강까지 로마의 영역으로 만들까 생각 중일세. 속전속결로 간다고 해도 점령에 1년, 안정화에 1년은 걸릴 테니 최소 2년은 필요하겠군. 아니, 게르마니아가 숲으로 뒤덮여 있는 걸 고려하면 3년을 잡는 게 현실적일지도 모르겠어."

  "엘베강까지 진출하겠다고? 그건 즉 게르마니아를 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마그누스. 로마의 국경을 라인강이 아니라 엘베강까지 확장하고자 합니다."

  폼페이우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마르쿠스에게 물었다.

  "자네는 카이사르의 계획을 알고 있었나?"

  "미리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군. 어째서 굳이 그런 땅을 손에 넣으려는 거지?"

  폼페이우스의 기준에서 보면 게르마니아라는 땅은 원정을 가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같은 야만족이긴 해도 게르만과 갈리아는 기질이 달랐다.

  로마와 오랜 시간 접촉하고 교역도 주고받았던 갈리아는 문명화하는데 용이한 편이었다.

  브리타니아도 남부와 중부까지는 갈리아인들과 기질이 비슷했다.

  로마를 끝까지 거부했던 칼레도니아의 야만족들은 카이사르가 전투에서 철저하게 짓밟았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게르만은 거의 부족 전체가 칼레도니아의 민족들과 유사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문명을 거부했고, 그런 삶이 자신들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게르마니아를 그대로 놔둔다면 분명 장래 로마의 안보에 위협을 미칠 겁니다. 갈리아가 완전히 평정됐으니 게르마니아 부족들의 힘을 적절히 빼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그럴 거라면 그냥 라인강을 넘어서 인근 부족들을 쓸어버리기만 해도 되지 않나."

  "물론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게르마니아를 칠 수 있는 최고의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로마는 다시는 엘베강까지 국경을 확장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겁니다."

  카이사르의 설명을 들은 폼페이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이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라는 말인가? 어째서?"

  "우선 안정적인 원정의 수행 여부입니다. 갈리아는 완전히 로마의 영역이 되었고, 로마의 정계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안정화 된 상태입니다. 지금 원정을 한다면 저는 오롯이 눈앞의 게르마니아 정복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뭐···분명 그렇긴 하겠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전쟁을 하는 병사들의 수준입니다. 지금 제가 이끄는 군단은 경험과 실력 그 어느 쪽으로 봐도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병사들의 수준만 놓고 보면 역사상 로마의 그 어떤 군단보다도 높다고 자부합니다."

  여기엔 폼페이우스나 마르쿠스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무기의 질까지 고려하면 마르쿠스의 군단이 더 위겠지만, 순수한 개인 기량만 보면 카이사르의 군단병들이 최고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폼페이우스 휘하의 군단병들은 대부분이 원정을 위해 새롭게 조직된 병사들이다.

  마르쿠스가 이끄는 군단 역시 대부분은 파르티아전을 위해 편성한 이들이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긴 했어도 실제로 회전을 벌인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반면 카이사르의 군단병들은 7년에 달하는 시간을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에 상주하며 매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그들이 지금까지 치른 대규모 전투만 해도 양손으로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쯤 되면 사실상 야만족과의 전투에 도가 튼 전쟁 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카이사르는 자신의 밑에서 숙련된 병사들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이 정도로 전투에 익숙한 군단병들을 지휘해 게르만과 싸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경험을 쌓을 만한 전장은 이제 로마 주변에 없으니까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네. 하지만 게르마니아가 갈리아처럼 순순히 로마화 되진 않을 텐데 그들을 어떻게 문명화시킬 생각인가?"

  "저도 단기간에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두를 생각도 없고요. 일단 압도적인 무력의 우위를 보여주고,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겁니다. 이전의 불편했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흠뻑 빠져들게 해야겠지요."

  "저는 카이사르 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설령 엘베강 유역까지 점령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로마에 큰 피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일단은 게르마니아에 로마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나 역시 다른 말은 하지 않겠네."

  폼페이우스까지 찬성했으니 이제 누구도 게르마니아 원정에 반대를 할 수 없게 됐다.

  카이사르가 마르쿠스에게 눈짓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마르쿠스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그는 어째서 카이사르가 게르마니아를 치려고 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원 역사에서의 카이사르도 게르마니아를 정복하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게르만의 울창한 숲과 호전성, 그리고 로마에서 터진 내전 때문에 게르마니아 정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은 카이사르의 말대로 게르만 원정을 하기에 최적의 시기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부족한 군공을 보충하려는 마음이 가장 컸겠지만.'

  직접 말을 꺼내진 않았으나 지금 삼두에서 가장 세력이 밀리는 건 카이사르였다.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는 잠재력이 풍부한 땅이었으나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미개척지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폼페이우스는 부유한 그리스권과 히스파니아의 광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번에 손에 넣은 악숨 왕조도 풍부한 강우량을 바탕으로 뛰어난 생산력을 보이는 지역이었다.

  카이사르가 다스리는 지역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났다.

  그리고 마르쿠스에 이르러서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공화정 말기 로마의 식량 수급을 책임지는 지역은 이집트와 아나톨리아, 시리아였다.

  마르쿠스는 현재 이 세 지역을 전부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 있었다.

  여기에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하면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

  마르쿠스가 다스리는 지역만 떼어 놓고 봐도 전성기 페르시아 제국에 버금간다고 해도 무방했다.

  상황이 이러니 카이사르가 조금이라도 더 군공을 쌓으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협력 관계라고 해도 삼자 간의 세력과 위치가 대등하지 않다면 언젠가는 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나 폼페이우스가 그런 티를 낼 리는 없겠지만, 카이사르 본인의 자존심이 두 사람에게 뒤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장인과 사위 관계라고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확실한 세력 관계의 정립이 필요했다.

  어차피 훗날의 미래를 생각하면 게르마니아 지역을 손봐둘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마르쿠스는 카이사르에게 밑 준비를 맡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게다가 카이사르가 먼저 원정 이야기를 꺼낸 덕분에 자신도 편하게 계획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카이사르 님이 게르마니아 원정을 수행하는 걸로 결론이 났으니 제 얘기로 넘어가 보도록 할까요? 전 나바테아 왕국을 로마의 영토로 편입하고자 합니다."

  "나바테아인이라면···그 시리아 남쪽에 있는 자들을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숙이고 들어온다면 굳이 전쟁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시리아 남쪽을 완전히 안정화하는 것입니다."

  현재 나바테아 왕국은 막 통일정권이 들어선 시기로 로마와 경계를 접한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바테아 왕국의 영토는 아라비아반도의 북동부까지 뻗어 있었는데 이들은 원래의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점점 정주민족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개간 기술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켰고 상업에도 꽤나 열심이었다.

  무력으로 찍어 눌러서 속주로 만들지 않더라도 이집트처럼 알아서 로마의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마르쿠스는 이들을 이용해 아라비아반도 중남부의 민족들의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아직 무함마드가 태어나려면 600년도 더 남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랍권에는 이슬람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는 소수의 군소 왕국들이 난립해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는 혼돈의 시대였다.

  통일된 왕조 따위는 없었고, 그런 비슷한 국가가 생길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정보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르쿠스는 일단 나바테아를 통해 남쪽의 상황을 조사하고, 행동방침을 수립할 계획을 세웠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써 사막 민족에 대한 처우는 전적으로 마르쿠스에게 맡겨지게 됐다.

  중요한 사항들을 일단락 지었다고 판단한 마르쿠스는 이만 회의를 파했다.

  폼페이우스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붙여야겠다며 가마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마르쿠스는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카이사르와 함께 원형 경기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열릴 검투사 리그의 최종 결승전에 삼두 연합이 축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검투사 리그는 이탈리아반도의 거의 모든 대도시가 참가했기에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지금 가는 원형 경기장에도 사람이 너무 몰려 추가 좌석을 몇 개나 마련했는데도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던 카이사르는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거대한 콜로세움의 전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저게 조금만 빨리 완성됐다면 이번 결승전을 저기서 치를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보시다시피 이제 거의 완성 됐습니다. 내년에는 분명 저기에서 시합을 열 수 있을 겁니다."

  아르시노에가 처음 로마에 왔을 때 한창 건설 중이던 콜로세움은 이제 로마의 중심지에 우뚝 서서 그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콜로세움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규모만으로도 로마 전역에 화제가 되었다.

  시민들은 몇 년 전부터 이 경이로운 건축물 안에서 펼쳐질 경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가 노리고 한 건 아니겠지만 이 건물이 지어지는 시기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완벽하네. 우리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시민들의 관심은 전부 여기에 쏠려 있을 테니."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요."

  개막식을 시작으로 콜로세움에서 개최되기로 한 시합과 행사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마 내년의 로마 시민들은 유흥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원로원이 삼두에 대항하기 위해 뭔가를 해본들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으리란 의미다.

  그리고 새로운 유흥거리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잠잠해질 때쯤, 마르쿠스와 카이사르가 또다시 대공을 세우고 로마로 귀환할 것이다.

  "저것 덕분에 마그누스에게 쏠릴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겠어. 아까 보아하니 당분간은 무리하면 안 될 것 같던데."

  "최근에 신경을 쓸 일이 굉장히 많았으니까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요새는 며칠 무리하면 회복하는데 몇 주는 걸리는 것 같다고 투덜대십니다."

  "세월이란 참 야속한 법이지. 그 위대한 폼페이우스가 이 정도 일정을 이기지 못하고 체력이 다해버리다니."

  "모든 걸 다 이뤘다는 정신적인 충족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의욕이 솟지 않는 게 아닐까요?"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아직 폼페이우스의 나이는 50대 중반에 불과했다.

  반평생 군을 지휘하며 살았던 그가 장거리 원정으로 몸을 혹사하는 건 몰라도 이 정도로 체력의 고갈을 호소할 것 같지는 않았다.

  평상시의 그였다면 아무리 피곤했어도 이런 자리에서 축사를 하는 걸 마다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의욕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일거리들을 알아봐 줘야겠군.'

  원형 경기장이 시야에 들어오자 마르쿠스는 적당히 생각을 정리하고 카이사르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수만에 달하는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마르쿠스 만세! 카이사르 만세!"

  "로마를 위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에 휩싸인 마르쿠스와 카이사르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가볍게 심장 부위를 두드려 주었다.

  "로마를 위하여."

  마르쿠스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퍼져나가자 관객들의 열광 어린 반응은 거의 배로 불어났다.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자리에 앉아 경기를 즐겼다.

  아까 품었던 일말의 불안함은 군중들의 환호에 씻겨나가 어느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159. 로마를 위하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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