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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아라비아를 향해 (164/326)

  < 163. 아라비아를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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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을 비우라는 마르쿠스의 제안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었다.

  말리쿠 1세는 냉엄한 그의 눈동자에서 타협 불가능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어떤 조건을 걸고 회유를 하더라도 소용없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네, 알겠습니다' 하면서 넙죽 도장을 찍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리쿠 1세는 곤혹스러운 심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왕국의 서쪽을 비워달라는 건 홍해에 인접한 지역을 로마의 직할령으로 삼겠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로마는 이미 홍해를 기준으로 서쪽의 영역을 전부 확보했습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홍해의 동쪽에 인접해 있는 사막 부족들이 세력을 키운다면 교역로의 안전이 흔들릴 우려가 있습니다. 전 이 지역의 총독으로서 화근이 될 싹을 잘라 안전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홍해를 주름잡던 악숨 왕국이 쇠퇴한 건 사막 부족들의 발호로 홍해의 교역로가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지금 홍해 동쪽에 위치한 군소 국가들은 해상 교역에 눈을 돌릴 여유는 물론 그럴만한 국력도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러나 아라비아반도 남부를 완전히 통일할 만한 왕조가 나오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 역사에서는 지금보다 수백 년도 더 뒤의 이야기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대로 흘러가리란 보장은 없었다.

  마르쿠스는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손을 써서 홍해 유역을 완전히 로마의 영토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로마가 직접 사막 부족들을 통제하려고 들면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동방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아직 아라비아반도 남쪽의 국가들은 로마와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었다.

  로마가 어느 정도의 강대국인지 아는 자도 드물었고, 타지역의 이민족들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데에도 강한 거부감을 품었다.

  십 년 뒤쯤이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 아라비아반도를 속주로 삼는 건 아무리 봐도 시기상조였다.

  영명한 말리쿠 1세는 마르쿠스의 계획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마르쿠스의 입장이었어도 비슷한 방법을 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바테아를 통해 남쪽의 사막 부족들을 제어하려는 노림수는 분명 효과적인 한 수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게 로마에게만 좋은 흐름이라는 것이다.

  "홍해 해상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익히 이해하오. 하지만 그건 우리 왕국과 협상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데."

  "그렇습니까? 저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요."

  "쉽지는 않아도 가능은 하지 않겠소?"

  "글쎄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분쟁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말리쿠 1세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나바테아의 현재 영토는 홍해 북동쪽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게 다였다.

  면적으로만 보자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바테아가 점유한 지역은 이집트나 지중해와 곧바로 통하는 길목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곳을 차지하고 있어서 나바테아는 유향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다.

  만약 마르쿠스의 요구대로 왕국의 서쪽을 비운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바테아가 누리고 있던 유향의 독점권은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단순히 유향만이 아니라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나바테아의 상업적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다.

  끝까지 싸우다 멸망하느냐, 아니면 허울만 남은 약소국으로 전락하느냐의 양자택일이었다.

  어느 쪽도 쉽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르쿠스 총독, 우리 왕국으로서는 홍해 유역을 그리 쉽게 포기할 수는 없소. 그 점은 총독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오."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제 기준에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요구사항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순간 말리쿠 1세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

  가까스로 표정관리에 성공한 그는 건조해진 입술을 혀로 축였다.

  '일부러 도발하는 건가?'

  마르쿠스의 무표정한 눈빛은 아까부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입가는 예의 바른 웃음을 띠고 있었으나 눈동자는 역으로 점점 더 싸늘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농담도······."

  "농담이 아닙니다. 왕께서는 뭔가 오해하고 계신 듯한데 사실 나바테아가 홍해의 북동쪽을 계속 차지하고 있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

  "이런 말씀을 제 입으로 직접 드리긴 좀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로마가 홍해 동쪽의 사막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지금 나바테아가 차지하고 있는 유역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리라 보십니까?"

  "아!"

  말리쿠 1세는 둔기로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르쿠스의 요구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만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눈치채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로마가 홍해를 완전히 차지하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나바테아는 지금처럼 중개무역으로 폭리를 취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유향을 생산하는 현지에서 싸게 구매해서 홍해를 통해 나르면 되니까요."

  "···그러면 어째서 굳이 그 땅을 원하는 것인지?"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홍해의 전 유역을 확실한 로마령으로 삼을 계획이라고요."

  즉, 쓸데없이 금싸라기 땅을 놀리지 말고 확실히 써먹을 수 있는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말이었다.

  부아가 치밀긴 했어도 말리쿠 1세는 처음처럼 암담한 심정은 아니었다.

  나바테아가 지금까지 누리던 중개무역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그가 애쓴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일까.

  말리쿠 1세는 가능성 없는 사안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왕국에 득이 되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효용 가치가 없어진 땅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심기를 거스르느니 적당히 이득이 될 만한 조약을 맺고 물러나는 게 더 나았다.

  "만약 우리가 그쪽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소?"

  "당연히 그렇겠지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제부터가 진짜다.

  말리쿠 1세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바람을 입에 담았다.

  "우선 나바테아 왕국의 존속과 내 지위를 확실히 보장해줬으면 하오."

  "그야 어렵지 않지요. 로마 원로원의 이름으로 왕께서 나바테아의 유일무이한 지배자라는 사실을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후계자의 경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분란을 피하기 위해 저희 쪽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겠습니다."

  사실상 친로마파만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로마의 패권을 인정한다고 한 이상 거기까지는 예상한 범위 내였다.

  말리쿠 1세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으로 우리가 포기한 영토와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이권, 혹은 영토를 원하오."

  "그러시겠죠.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너무나도 선선히 떨어진 승낙에 말리쿠 1세는 아연실색했다.

  지금까지 혼자서 허공에 주먹질을 한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황당해하는 말리쿠 1세의 표정을 살핀 마르쿠스가 피식 웃었다.

  "저는 나바테아를 약탈하러 온 도적이 아닙니다.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고 충실한 동맹국의 위치를 지키는 곳에는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파르티아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탓에 그런 결말을 맞이했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더욱 강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 중입니다. 나바테아도 이집트처럼 로마와 끝까지 좋은 관계로 남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나 역시 그러길 간절히 바라오. 그나저나 총독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이권이 무엇인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들려줄 수 있겠소?"

  "예.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로마는 홍해와 접하고 있는 영역을 손에 넣을 겁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군소 왕국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그쪽에 대한 권리를 나바테아 왕국에 맡기겠습니다.

  동맹국으로 삼든, 속국으로 삼든 그건 전적으로 왕국의 뜻대로 하시지요. 사막이 안정된 추세를 보이기만 하면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

  "그러니까···로마가 안정적으로 홍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대신 내륙지방의 정세를 책임지라 이 말이로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소?"

  마르쿠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리쿠 1세는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나바테아가 정말로 아라비아반도의 내륙지방을 차지할 수 있다면 그래도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처럼 막대한 부를 쌓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로마의 힘으로 호가호위하며 사막의 절대자 행세를 할 수는 있다.

  인근의 사막 부족들과 군소 왕국들에게 공물을 받는다면 어떻게든 왕권을 유지하면서 나라를 꾸려가는 게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로마라는 최강대국과 국경을 접한 이상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건 파멸의 지름길을 따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말리쿠 1세는 마르쿠스가 말했듯이 파르티아의 멸망이 가져다준 교훈을 절대 간과하지 않았다.

  "그러면 협정서에 서약하는 대로 행동에 착수하도록 하죠. 왕께서 군대를 편성해 남진하신다면 저와 제 군단이 옆에서 보좌해드리겠습니다."

  "서, 설마 지금 바로 전쟁을 개시하겠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굳이 8개나 되는 군단을 끌고 오지는 않았겠지요. 물론 왕께서 군대를 편성하시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 그동안 저희는 로마의 땅이 될 왕국의 서쪽을 정비하고 있겠습니다."

  말리쿠 1세는 마르쿠스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내려왔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왕국의 턱밑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건 분명 경고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조약을 지키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로마군의 창끝은 바로 왕국을 향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철렁하고 무거운 납덩이가 얹어진 듯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르쿠스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안토니우스, 휘하의 기병대를 이끌고 손님들을 국경 너머까지 배웅해드리도록. 오늘은 로마의 동맹국이 또 하나 탄생한 기념일이니 신들에게 감사제를 열기로 하겠다."

  '귀찮은 일을 대신 처리해줄 수족이 생긴 기념일이겠지!'

  말리쿠 1세는 씁쓸한 심정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애쓰며 마르쿠스에게 마주 웃음을 지어주었다.

  "후우···나 역시 오늘을 경축일로 지정하고픈 심정이오. 그럼 이제 서명하겠소."

  ※※※

  마르쿠스는 말리쿠 1세의 인장이 찍힌 협정서를 들고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조약대로 나바테아 왕국의 서쪽은 로마의 영토로 재편되었다.

  국가 간의 동의가 이루어진 사항이라 저항이나 무력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로써 로마는 아라비아반도에서 곧장 지중해와 이집트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를 장악하게 됐다.

  말리쿠 1세는 이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즉각 군대를 소집해 남쪽으로 원정을 가겠노라 선언했다.

  영토를 떼어준 굴욕적인 항복을 맺었다는 소문이 나면 자연스레 왕권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영토를 넓혀 이게 단순히 로마에게 모든 걸 내어주기만 한 협상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말리쿠 1세에게는 다행히도 마르쿠스는 약속을 지켰다.

  새롭게 들어온 영토를 안정화한 그는 군단을 일으켜 말리쿠 1세와 함께 홍해를 따라 남쪽으로 진군했다.

  나바테아 왕국의 군대는 고작 2만이고 로마의 군단은 그 2배가 훌쩍 넘는 5만이었으나, 원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바테아였다.

  로마는 동맹국인 나바테아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병력을 지원했을 뿐이다.

  인근의 사막 부족들은 당연히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이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정세는 남쪽에 자리를 잡은 왕국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유목 생활을 했다.

  나바테아인들 역시 그 기원은 아라비아반도 내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비아 북부를 제압하는 데에는 그리 큰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파죽지세로 남하한 로마군은 훗날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메디나에 자리를 잡았다.

  메디나는 현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하자즈 지역에 있는 메디나 주의 주도다.

  물론 지금 시기는 이슬람이 탄생하기 한참 전이었고 메디나 역시 성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소도시에 불과했다.

  이 도시 주변에 위치한 카브라지족과 아우스족은 로마의 대군을 앞세운 나바테아 왕국에 바로 백기를 올리고 항복했다.

  거의 무저항으로 메디나 시내에 입성한 마르쿠스는 감회에 찬 눈빛으로 도시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른 마을들과 다른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메디나가 이슬람의 성지가 된 건 무함마드가 이곳으로 피신을 왔기 때문이니까'

  무함마드의 집이나 그가 무슬림에게 설교한 라우다가 없으니 애초에 이 도시에 의미 있는 무언가가 있을 리가 없다.

  그 유명한 예언자의 모스크가 이 자리에 들어서는 건 지금으로부터 700년 뒤의 일인 것이다.

  마르쿠스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과거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실감이 갔다.

  예루살렘에서 유대교의 성전을 봤을 때와는 느낌이 또 색달랐다.

  황량한 메디나의 전경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나바테아 왕국 군의 지휘를 맡은 샤킬라빌이 조심스레 마르쿠스에게 다가와 물었다.

  "총독님,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잡으시겠습니까."

  표면적으로 이 원정의 총사령관은 샤킬라빌이었으나 실제 모든 결정권은 동맹군의 사령관 마르쿠스에게 있었다.

  샤킬라빌의 임무는 마르쿠스가 효과적으로 남쪽의 왕국을 공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런데 샤킬라빌은 마르쿠스가 의외로 아라비아반도의 지리에 해박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떨 때 보면 자신보다 더 이 근방에 빠삭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 로마가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터무니없는 착각에 불과했지만.

  "이대로 남하하면 메카가 나올 테니 우선 그곳을 손에 넣는 게 좋을 것 같군. 인근 지역에서는 그나마 보급하는 게 용이한 지역이니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남부의 왕국을 공략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메카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미리 현지 부족을 통해 정보를 얻으셨는지요?"

  "비슷하지. 그래도 내가 아는 건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해 조금 확인이 필요하네. 혹시 자네는 메카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저도 상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남들만큼은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메카는 페트라와 함께 중요한 무역거점으로 손꼽히는 도시니까요. 신성한 곳이기도 하고요."

  "신성한 곳? 메카가?"

  메디나와는 사뭇 다른 현실에 마르쿠스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이건 모르셨나 보군요. 메카가 이 근방의 성지로 취급된 지는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그쪽에는 카바라는 성역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후발 신을 숭배하죠."

  "그렇군. 메카는 이때부터 이미 성지였던 건가······."

  마르쿠스의 혼잣말에 샤킬라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슬람 최대이자 최고의 성지가 지금은 다른 신을 섬기는 성역이라고 하니 뭔가 느낌이 묘했다.

  "어쨌거나 말씀대로 메카를 점령하면 이제 남부 왕국들은 코앞입니다. 남쪽에서 우리와 가장 먼저 접촉하게 될 사바 왕국과 마인 왕국은 이미 그들 나름대로 대비에 들어갔다고 보셔야 할 겁니다."

  "두 왕국이 서로 협력할 가능성은?"

  "9할 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인 왕국은 사실상 사바 왕국의 속국에 가까우니까요. 문제는 그들과 인접해 있는 힘야르 왕국과 하드라마우트 왕국까지 한데 힘을 합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평소엔 치고받고 싸워도 외부에서 외적이 쳐들어오면 싸움을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희가 저 비옥한 남부지대를 손에 넣지 못한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아라비아반도의 북부나 중부와 달리 남부는 물이 풍족하고 비교적 토지가 비옥했다.

  현대의 예멘과 오만에 속한 이 지역은 일찍부터 농업이 번성해 유목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이미 거대한 댐을 건설할 정도로 기술력도 출중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남부 왕국들은 북부의 다른 부족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 지역에 들어선 고대왕국들은 자신들끼리는 심한 견제를 하면서도 외부 유목 부족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군사 능력은 어떤가?"

  "보병들과 낙타 기병을 사용한 전면전을 즐겨 사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직한 힘싸움을 즐겨 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샤칼라빌의 설명은 마르쿠스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도 일치했다.

  그가 그늘진 구릉 아래에서 훈련 중인 스파르타쿠스의 군단을 내려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직한 힘싸움이라면 우리 군단에도 도가 튼 자들이 여럿 있지. 그때가 기대되는군."

  < 163. 아라비아를 향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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