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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향료 전쟁 (165/326)

  < 164. 향료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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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카 점령은 예상보다 손쉽게 이루어졌다.

  메카를 점령하고 있던 부족들은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온 나바테아와 싸울 마음이 먼지만큼도 없었다.

  일부는 도시를 버리고 도망가고, 남은 일부는 차례차례 항복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끝까지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후방의 보급부대를 귀찮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로마군의 우월한 궁기병대가 후방에 배치된 뒤로는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실제로 메카 인근에 거주하는 소수의 베두인족이 본대는커녕 후방부대에게 박살이 난 뒤에는 저항하는 부족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 민족들에게 로마란 국가는 사실상 미지의 존재에 가까웠다.

  시리아와 가까운 아라비아 북부의 민족들이나 남부의 정주민들은 로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메카 인근의 유목민들 중에는 로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이 특별히 무지해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로마와 접할 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라는 국가를 그저 소문만으로 알고 있는 부족들도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마르쿠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충격이란 한 마디로 간단히 요약이 가능했다.

  이미 파르티아와 전쟁을 거치며 사막지대를 안정적으로 돌파하는 방법까지 터득한 그들에게 사각은 없었다.

  결국 마르쿠스는 거의 무혈입성에 가깝게 메카로 들어왔다.

  그는 우선 불안해하는 현지 부족들을 달래주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일단 승자의 권리로 당연시되는 약탈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마르쿠스가 언제나 약탈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준다는 걸 아는 병사들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다음으로는 종교 관련 문제였다.

  이 당시 메카는 다신교적 성향이 두드러진 도시였는데 마르쿠스는 이 문화를 존중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런 뒤 여러 신들을 숭배하는 성역인 카바에 항복한 부족장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아랍 부족들이 숭배하는 달의 신 후발의 조각상 앞에서 정중히 예를 표했다.

  "로마는 지금까지 메카의 부족들이 누리던 종교와 문화, 관습을 최대한 인정해주겠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그대들이 로마를 적대하지 않고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예상했던 대로 여기저기서 와글와글 소란이 일었다.

  확실히 도시를 점령하자마자 후발 신에게 고개를 숙인 퍼포먼스는 효과가 좋았다.

  아라비아 부족들은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지금도 굉장히 종교적인 이들이었다.

  도시를 점령했는데 약탈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에게 예의를 표한다.

  호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의를 품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나바테아를 도와 군대를 이끌고 오긴 했지만, 이건 반대로 말하면 동맹을 위해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듣자하니 로마는 이미 북쪽과 동쪽, 서쪽의 모든 땅을 정복했다고 하더군."

  "우리가 속한 지역이 마지막이라는 뜻인가? 그러면 우리도 그냥 일찌감치 로마에 항복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로 저들을 믿어도 될까?"

  자연스레 부족들끼리 의견이 갈렸다.

  마르쿠스는 이런 토론에 끼어들어 잘못된 점을 짚어주거나 구구절절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진 않았다.

  그저 통역관을 시켜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밝힐 뿐이었다.

  "부족민들 가운데 완전히 로마로 귀의하고 싶은 자들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 부족장들에게는 로마의 시민권이 수여될 것이며 앞으로 로마가 추진하는 사업의 혜택을 가장 먼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시민이 된 이와 그가 속한 부족은 5년 안에 식량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메카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많은 도시였다.

  홍해 연안에 인접해 있어 해상 무역로와 연계하기가 편하고, 육로로도 사막을 건너며 지친 몸을 쉬기 적절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홍해 연안을 차지한다면 인근 유역을 총괄하기에도 딱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척박한 아라비아 반도 중부에서 그나마 사람이 살 만한 지역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마르쿠스는 메카를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로마화 계획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었다.

  한편, 로마군이 메카를 장악할 동안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는 혼란이 밀어 닥쳤다.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던 여러 왕국들이 술렁술렁 흔들렸다.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해 했다.

  나바테아의 군대는 그리 무섭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도 남부 일대까지 영향력을 뻗치려 한 적이 있었으나, 사바 왕국과 마인 왕국의 견제에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나바테아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온 로마 군단이 메카까지 당도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몇 주만 있으면 남부에 당도할 터.

  지리적으로 메카와 가장 가까운 사바 왕국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북쪽의 유목 민족들과는 대응이 판이하게 달랐다.

  농경과 무역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상대방이 강해 보인다고 자리를 비우고 도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항복을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사바 왕국은 이미 건국한 지 800년이 지난 국가로 아라비아 반도 최초의 문명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향신료 무역을 통해 번성한 자들이라 국제 질서와 정세에 민감했다.

  지금은 과거의 성세를 지키지 못하고 힘야르 왕국이나 하드라마우트에 밀리는 신세였으나, 아직 정보력 자체는 남아 있었다.

  사바 왕국의 수도이자 아라비아 남부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 마리브에서는 연일 격론이 이어졌다.

  로마가 얼마나 강대한 대국인지 잘 아는 현지 귀족들은 쓸데없는 싸움은 그만두고 로마의 밑으로 들어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오히려 기회입니다. 현재 저희 왕국은 무역로의 변화로 이전의 부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남쪽의 해로를 차지하고 있는 왕국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라를 로마에 바치고 기어들어가자는 것인가?"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기울 수밖에 없는데 로마에게 붙어서 기회라도 엿보는 게 낫지 않겠냐 이 말입니다."

  만약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있는 국가가 사바 왕국밖에 없었다면 이대로 로마에 항복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바 왕국과 달리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힘야르 왕국이나 하드라마우트 왕국은 순순히 항복해줄 마음이 없었다.

  이들은 이제 막 발달하고 있는 해상 무역로를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쌓으려 하고 있었다.

  원래 기원전 시기 무역의 중심은 낙타를 끌고 육상무역을 하는 카라반들었다.

  그러던 게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는 항구가 발달하며 해상무역이 육상무역의 규모를 앞지르게 됐다.

  이 때문에 육상무역에 힘을 기울이던 사바 왕국이 쇠퇴하고 남부의 힘야르와 하드라마우트가 떠오른 것이다.

  로마의 남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이 두 국가는 자신들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혼자였다면 로마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본래 사람이란 연합을 구축했을 때 없던 용기도 자연스레 샘솟게 되는 법이다.

  힘야르와 하드라마우트는 남부 해상로를 독점하기 위해 싸워왔던 과거를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그들은 침략자 로마와 나바테아를 몰아낼 것임을 천명하고 군대를 모았다.

  뒤이어 두 왕국 사이에 끼인 카타반도 참전을 선포했다.

  어차피 전쟁이 벌어져도 전장은 북쪽에 위치한 사바 왕국이나 마인 왕국이 될 터.

  해상에 접한 세 왕국으로서는 거리낄 게 없었다.

  이들은 사바 왕국과 마인 왕국에 사절을 보내 연합에 합류하라고 압박을 넣었다.

  로마에 항복할 기회를 보고 있던 사바 왕국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하지만 여기서 화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남부의 세 왕국들에게 먼저 공격을 당할지도 몰랐다.

  화친파에 억눌려 있던 주전파들은 이때다 싶어 로마와 싸우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왕의 마음도 자연스레 흔들렸다.

  마인까지 포함해 5개의 왕국이 힘을 모은다면 로마군을 격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결국 사바 왕국은 정식으로 사절을 보내 항복하라는 권고를 한 로마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러면서 힘야르와 하드라마우트에 거의 모든 군사를 동원해 자신들을 지원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로마와 싸우려면 우리의 모든 전력을 하나로 모아야 하오. 이빨이 없으면 자연스레 잇몸이 시린 법이지 않겠소. 만일 사바왕국이 로마의 손에 무너진다면 힘야르는 로마와 국경을 마주해야 할 거요. 단순히 군대를 지원해주는 정도로는 부족하오. 가용한 모든 전력을 동원해 로마군을 격퇴하는데 힘을 빌려주시오."

  사바 왕국의 서신을 받은 힘야르와 하드라마우트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강력하게 전쟁을 주장한 이들은 그들이었기에 이제 와서 병력 지원을 아낄 수는 없었다.

  힘야르와 하드라마우트, 카타반은 도합 5만이 넘는 대군을 지원군으로 파병했다.

  여기에 사바 왕국과 마인 왕국의 전력을 합하면 숫자는 8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정도면 능히 로마군과 자웅을 겨뤄볼만 하다고 여겼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이민족의 침략을 막아내고 자신들끼리 경쟁하는 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

  마르쿠스는 사절을 보내긴 했어도 남부 왕국들이 순순히 항복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예상대로의 답을 받아든 그는 즉시 군단을 일으켜 남쪽으로 진군했다.

  "남부의 왕국들은 우리의 동맹 제안을 거부하고 로마의 적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을 가만히 놔둔다면 파르티아가 그랬듯 향료를 독점하고 정도를 넘어선 폭리를 취하려 들 것이다. 이들이 로마의 경제를 위협하기 전에 화근이 될 싹을 미리 제거하겠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정오, 마르쿠스의 검이 하늘을 향해 쭉 뽑혔다.

  마침내 전쟁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전투다운 전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병사들은 흥분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마르쿠스의 뒤를 이어 백인대장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 임페라토르를 연호했다.

  아라비아의 눈부신 태양빛이 칼날 위에 부서지고, 공기가 곧 다가올 전투의 살벌함을 머금었다.

  뒤편에 도열해 있는 군단병들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막을 가로질러 머나먼 남쪽까지 왔음에도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걸음이 처지는 자도 없었다.

  메카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이들의 머릿속에는 마르쿠스의 명을 받아 적들을 박살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로마군의 사기가 이토록 하늘을 찌를듯하니 나바테아 왕국군의 자신감도 덩달아 솟구쳤다.

  샤킬라빌은 처음에 적들의 규모가 8만이 넘어갈 것 같다는 소식에 동요를 감추지 못했었다.

  로마군과 자신들의 군대를 합친 것보다 수가 확실히 더 많았던 까닭이다.

  게다가 로마군은 몰라도 나바테아 군은 구색 맞추기로 끌어모은 병력이라 그렇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쿠스의 반응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그는 적들이 있는 대로 병력을 끌어 모았다는 보고에 쾌재를 불렀다.

  "적이 총력전으로 나와 준다면 이쪽이야 고맙지. 저들의 주력을 격파하기만 하면 이제 저항할 여력이 남지 않게 된다는 뜻이니까."

  마르쿠스는 일대의 지형을 자세히 표시한 지도를 들여다보며 회전을 벌이기 적합한 곳을 물색했다.

  그의 앞에는 세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바테아 왕국군의 지휘를 맡은 샤킬라빌과 마르쿠스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수레나스와 스파르타쿠스였다.

  샤킬라빌이 우려섞인 표정으로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총독님, 적들의 숫자는 이쪽에 비해 확실히 많습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희의 병력은 적들을 격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합니다."

  "그건 문제없네. 자네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자리를 지키고 전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어만 굳히고 있으면 돼. 1개 군단을 추가로 지원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1만에서 2만의 병력 차이야 그리 어렵지 않게 만회할 수 있으니까."

  스파르타쿠스가 마르쿠스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치른 전투에서 적들보다 수적으로 우세했던 적은 파르티아와 싸울 때를 제외하면 없었으니까요."

  수레나스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들의 질적인 차이가 뒷받침 된다면 병력 1만 정도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제대로 진영을 갖출 수 있는 평야에서 싸운다면 말이지요. 중요한 건 적들이 저희와 회전을 벌여주느냐 하는 겁니다."

  "아마 그렇게 나올 거야. 저들은 5개 국가의 병력을 하나로 합친 연합군이야. 그런 자들이 성에 틀어박혀 수비만 하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게다가 수적으로도 자신들이 우세하니 공격하러 나올 수밖에."

  마르쿠스의 말에 스파르타쿠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저들이 나올까요? 평원에서 우리와 싸우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로마군과 한 번이라도 싸워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라면 회전을 피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저들은 아니야. 그냥 말로만 로마군이 강하다고 들었을 뿐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알지 못하거든. 그리고 저들은 평소에 공성전을 즐기지도 않고, 탁 트인 곳에서 우직하게 힘싸움을 하던 이들이야. 그런 군대가 초장부터 겁먹고 우리와 싸움을 피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렇군요.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저들은 우리에 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체계를 갖춘 단일부대가 아니니까요. 수비를 하면서 싸움이 장기화 되면 자연스럽게 의견 충돌이 많아지고 지휘체계도 혼선을 겪게 되겠군요."

  스파르타쿠스가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이자 수레나스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일단 회전에서 승리를 거두면 속전속결로 적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5개 국가 중 2군데만 항복하더라도 연합은 간단하게 와해될 테니까요. 점령도 한결 손쉬워질 겁니다."

  "그건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리고 스파르타쿠스, 너의 군단은 이번에 우리군의 중앙을 맡아줘야겠어."

  "좌익이나 우익에 배치되는 게 아니었습니까?"

  스파르타쿠스가 속한 12군단은 마르쿠스가 이끄는 군단 중 최고의 정예병들이었다.

  평소 마르쿠스는 이들의 공격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에 군단을 배치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바테아의 군대도 함께 싸울 테니까. 그쪽이 좌익이나 우익을 맡을 거야. 만약 그들이 돌파당할 우려가 있다면 중앙에 배치한 병력을 돌려야 할 텐데 그러려면 평소보다도 중앙의 전력을 더 강화해둘 필요가 있어. 그러니 너와 12군단이 중심을 확실히 잡아줘야 해."

  "알겠습니다. 철통처럼 방어를 굳히고 적들의 돌파를 저지하겠습니다."

  사실 마르쿠스가 스파르타쿠스를 방어쪽으로 돌린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스파르타쿠스로서는 군단장을 맡은 뒤 처음으로 출격하는 전투였다.

  지금까지 숱한 전장을 치렀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군단장은 백인대장과는 다르게 군단 전체의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직접 무기를 쥐고 전선에 나서니 이 역할을 1대대의 백인대장과 분담해 수행하기로 했다.

  그래도 일반 백인대장이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용맹한 전사가 뛰어난 지휘관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역사에 그런 예는 수없이 많았다.

  스파르타쿠스라고 하더라도 첫 전투에서 실수를 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공격부대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침투했을 때 사고가 일어난다면 아무리 그라고 해도 위험할 수도 있다.

  차라리 치열하게 싸우긴 해도 자리를 지키면서 전투를 벌일 중앙 쪽이 덜 위험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스파르타쿠스가 군단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이건 단순히 마르쿠스의 얼굴에만 먹칠을 하는 게 아니었다.

  스파르타쿠스를 군단장으로 삼는다는 파격적인 인사를 감행한 건 삼두연합이었다.

  만약 이게 잘못된 인선이었다는 게 드러나면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이번 전투를 어떻게 치르는지 보고 이후의 방침을 결정해야겠군.'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병력 지휘에 신경을 더 써보라고  여러 번 언질을 줬으나 아직까지는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마르쿠스가 각오를 다지는 스파르타쿠스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이번 전투는 별다른 변수 없이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 164. 향료 전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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