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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향료 전쟁 (166/326)

  < 165. 향료 전쟁 >

  165.

  마르쿠스의 예측대로 남부 왕국 연합군은 로마군과 회전을 피하지 않았다.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피상적인 지식으로만 로마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합군이 알고 있는 로마에 대한 지식은 기껏해야 이 정도였다.

  서방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압도적인 군사력과 광활한 영토를 지닌 대국.

  그러나 광대한 땅을 지니고 있다고 해봐야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로 넓은지 아는 사람은 소수였고, 강력한 군사력도 피부로 체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로마가 무릎 꿇린 국가들은 숱하게 많았으나 남부 왕국은 그들과도 대치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들도 로마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력할 거라는 사실은 잘 알았다.

  하지만 로마의 모든 군사들이 몰려온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숫자는 자신들보다 적었다.

  로마와 아라비아반도 남부 사이의 거리 역시 조금 멀다고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연합의 장수들은 총력을 기울여 적을 한 번만 밀어내면 쉽사리 재원정을 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확실히 마르쿠스가 진다면 홍해 동부를 로마의 수중에 넣는다는 계획은 백지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라비아반도 남부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처럼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 절대 아니다.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손에 넣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르쿠스가 연합군에게 패배했을 때의 이야기다.

  연합군의 실수는 자신들과 적군의 전력 차이를 객관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실 실패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원래부터 불가능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남부 왕국들은 지금까지 쭉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서로만을 적으로 삼아 싸워왔다.

  언제나 대립하던 국가들이 공통의 적을 상대로 뭉쳤으니 자신감이 오르지 않는 게 더 이상하리라.

  좋게 말하면 사기가 충전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무서운 줄 모르는 거라 할 수 있었다.

  그중 어느 쪽의 시선이 옳은 지는 결과가 증명해줄 터.

  로마군의 움직임을 보고받은 연합군의 총지휘관 아사드는 전군을 사바 왕국 북서쪽으로 군대를 보냈다.

  회전이 열릴 장소는 해안 근처의 평원으로 결정 되었다.

  연합국 측에서 이곳을 전장으로 삼기로 선택했고, 마르쿠스도 전투가 벌어지면 이곳일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양국의 군대는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서로의 존재를 파악했다.

  한발 먼저 평원에 자리를 잡은 연합군은 숙영지를 건설하고 로마군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연합군의 장수들은 뜬금없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로마군이 이리로 오는 척하고 서부고원으로 방향을 틀면 어떻게 하지? 우리가 정면에서 싸우려고 해도 저들이 싸우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하하, 그래도 서방 세계의 강국이라고 떵떵거리는 자들인데 그런 명예롭지 못한 수를 쓰겠습니까."

  로마군과 한 번이라도 싸워봤다면 제정신인지 의문을 가질 만한 소리였다.

  그만큼 연합군은 지금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총지휘를 맡은 아사드도 딱히 다른 장수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과하게 자만하지만 않는다면 전투를 앞두고 사기가 올라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르쿠스는 연합군의 걱정을 깔끔하게 덜어주었다.

  그가 이끄는 8개의 로마 군단은 연합군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해안 평원으로 곧장 남하한 로마군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연합군의 진형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8만이 훌쩍 넘어가는 대군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평원을 꽉꽉 메우고 있는 연합군의 복장과 깃발은 크게 5종류였다.

  정보대로 5 왕국이 자신들의 전력을 이 전투에 대부분 동원했다는 뜻이다.

  대충 봐도 로마와 나바테아 왕국의 군대를 합친 것보다 확실히 많아 보였으나 누구도 겁을 집어먹은 사람은 없었다.

  마르쿠스는 눈앞을 가득 채운 적의 물결을 바라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고맙기도 하지. 알아서 이렇게 나와 주다니."

  수레나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지휘관에게 이유를 물어보고 싶군요. 정말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왜, 저들보다 로마군에 대한 정보가 더욱 많을 파르티아도 결국 우리와 회전을 벌였잖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수레나스의 항변에 마르쿠스는 가볍게 웃음을 보이며 연합군의 진형을 살펴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마르쿠스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자만에 빠지지는 않았다.

  이길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 보인다고 해도 언제나 변수는 발생하고, 이변은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연합군을 둘러본 그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중앙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스파르타쿠스에게서 멎었다.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스파르타쿠스가 지금까지는 개인의 전투력으로 주목받긴 했어도 지휘관으로서의 재능도 없는 건 아니었다.

  원 역사에서 그는 수만의 노예 대군을 이끌고 몇 번씩이나 로마군을 격파한 장수였다.

  물론 이건 자만과 방심으로 점철된 로마군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경향이 강했으나, 수만이 넘는 사람들을 이끌었다는 건 결코 과소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사전에 수레나스에게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군단의 동향을 잘 보고 있으라는 명령도 내려두었다.

  만약 지휘체계에 혼선이 생긴다면 수레나스가 12군단을 대신 지휘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로 보험을 들어놨으니 설령 어떤 문제가 생겨도 대처할 수 있으리라.

  기우를 떨쳐버린 마르쿠스는 곧바로 포진을 끝내고 공격을 명령했다.

  "자랑스러운 로마의 용사들이여, 적들을 철저하게 짓밟고 유린하라. 다시는 로마와 적대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저들의 뇌리에 공포를 심어줘라!"

  공격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넓게 펼쳐진 로마군이 앞으로 돌진했다.

  "임페라토르를 위하여!"

  우레와 같은 함성이 해안 평원을 뒤흔들었다.

  남부 연합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사드가 다가오는 로마군을 향해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극악무도한 침략자들에게 신의 철퇴를 내려주자! 맞서 싸워라, 병사들이여! 로마 놈들에게 이 땅이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똑똑히 보여줘라!"

  "우와아아아!"

  양쪽 날개에 포진한 기병들이 일제히 낙타를 내달렸다.

  보병들도 넓게 퍼진 횡진을 유지하며 돌진했다.

  완벽히 진형을 잡은 채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연합군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방패로 전면을 가린 채 날카로운 창끝으로 로마군을 겨누며 달리고 또 달렸다.

  힘야르 왕국이 자랑하는 낙타 기병들도 자신들의 승리를 자신했다.

  로마군이 정면승부를 피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힘야르 왕국의 장수가 괜히 그런 말을 했던 게 아니다.

  거대한 낙타를 탄 힘야르의 기병들은 일반적인 말을 상대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낙타에 익숙하지 않은 말들은 이질적으로 생긴 낙타를 본 순간 겁에 질리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제는 리디아를 정벌할 당시 낙타기병대를 앞세워 리디아의 우수한 기마병을 손쉽게 무력화시켰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성질이 더러운 낙타는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동물들에게 거리낌 없이 덤벼들었다.

  힘야르 왕국군은 로마군의 기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라비아반도에도 우수한 군마는 많았으나, 힘야르 왕국은 이런 점에 착안해 이번 전투에서는 대규모의 낙타 기병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변수의 발생을 싫어하는 마르쿠스는 이미 군마의 훈련을 끝내놓은 상태였다.

  현재 로마군의 기병은 낙타들을 마주해도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거나 겁을 집어먹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당황한 건 기세 좋게 내달리던 힘야르 왕국군이었다.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로마군의 중무장 갑옷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뭐야, 저거? 저렇게 철판을 껴입고 있으면 창으로 찌를 데가 없잖아!"

  "당황하지 마라! 강철을 저렇게 두르고 있으면 당연히 둔할 수밖에 없을 거다."

  기병대 측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물론 현실은 반대였다.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로마 기병대는 궁기병단의 지원을 받으며 힘야르 왕국의 기병들에게 쇄도했다.

  알자스-로렌과 카프카스 산맥의 철광석을 독점한 마르쿠스는 이제 마음껏 판금 갑옷을 찍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최전열을 담당하는 기병대와 보병의 상당수는 판금 갑옷을 장비하고 전선에 나섰다.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의 평균기온은 20도 중후반.

  판금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사전에 전투가 벌어질 법한 시기와 장소를 치밀하게 예상하고 준비한 덕분이다.

  "적을 모조리 분쇄해라!"

  언제나처럼 전열에 선 안토니우스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외침에 호응하듯 수백이 넘는 로마의 중무장 기병대가 힘야르의 낙타 기병대와 격렬하게 부딪쳤다, 첫 격돌부터 우열이 명확하게 갈렸다.

  퍼퍼퍼퍽!

  등자와 판급 갑옷, 카우치드 랜스가 조합된 로마 기병의 파괴력은 현재 시대에서는 장갑차에 비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낙타 기병대의 전열이 어이없이 무너졌다.

  화살로 응전해 보려고 해도 활의 성능 자체가 로마군이 압도적으로 더 좋았기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놈들의 기병 전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무리하게 응전하지 말고 전열을 다듬어라. 우리가 무너지면 중앙의 병력이 포위당하게 된다. 무너지지 말고 버텨라!"

  힘야르 왕국의 지휘관은 상식을 뛰어넘은 로마군의 장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무기를 휘둘러도 공격한 쪽의 날이 나가버리는 갑옷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되니 낙타를 끌고 온 게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낙타의 최대속도는 말과 비슷하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은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무기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면 기마의 속도를 이용해 운동에너지를 실어야 하는데 낙타는 이게 쉽게 되지 않았다.

  이러니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힘야르 기병대는 아무리 창을 찔러도 튕겨 나오는데 로마군의 창은 여지없이 힘야르 기병대의 몸에 쑤셔 박혔다.

  "으아악!"

  "괴, 괴물이다! 놈들은 괴물이야!"

  기병대가 할 수 있는 건 자신들의 무기로 로마군의 창을 비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방어를 하는 건 당연히 한계가 있다. 여러 명의 병사가 동시에 창으로 쑤시면서 돌진해오면 그걸로 끝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앞서 나갔던 힘야르 기병대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는 그들은 제발 중앙과 반대쪽 날개가 선전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르쿠스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좌익의 상황에 흡족해했다.

  그와 수레나스가 세운 전략은 간단했다.

  중앙의 로마군은 우익을 맡은 나바테에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며 방어를 견고히 한다.

  그사이에 기병 전력을 집중한 좌익이 적의 기병단을 분쇄하고 적의 후미를 타격하는 것이다.

  정석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원래 아군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굳이 묘책을 쓸 필요가 없는 법이다.

  "좋아. 그러면 이제 중앙과 좌익이 버티는 동안 우익의 기병대를 회전시켜서 적을 포위······."

  그런데 마르쿠스가 다시 전체적인 전황을 훑어보기 위해 시선을 돌린 찰나,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에 비쳐들었다.

  "···뭐야,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이번 전투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공격의 핵심인 좌익이라고 생각했다.

  중앙과 우익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르쿠스는 한동안 좌익을 위주로 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중앙의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시발점은 스파르타쿠스가 지휘를 맡은 12군단이었다.

  스파르타쿠스는 군단장이 됐어도 후방에서 지휘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고대 시대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기병대의 선두에서 적을 향해 돌격하는 지휘관이 없지는 않았다.

  이는 분명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그만큼 직접 지휘받는 아군의 사기는 높아졌다.

  12군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파르타쿠스는 판금 갑옷과 롱소드로 무장하고 가장 선두에서 몰려드는 적군과 대치했다.

  12군단은 그저 용맹한 군단장의 뒤를 따랐을 뿐이다.

  "하압!"

  스파르타쿠스의 숨이 뿜어질 때마다 그의 검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일반 병사들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햇살에 번뜩이는 검의 궤적만이 아련하게 눈에 비쳐들었다.

  촤아아악!

  효과는 극적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정확히 한 명. 어떨 때는 한 번의 횡참격으로 두 명의 목을 베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스파르타쿠스가 지나간 자리에 서 있던 사바 왕국군의 군대는 전열이 붕괴했다.

  그의 검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받아내는 병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의 시야에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다.

  병사들 지휘관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일검에 고혼이 되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단순히 병장기의 우월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스파르타쿠스는 자신이 지닌 장비의 우월함을 극한까지 발휘하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공격은 갑옷의 방어력을 믿고 흘려보내고 롱소드의 살상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갈리아에서 처음으로 장비를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다듬어 완성의 영역에 이른 기술이 보란 듯이 뿜어져 나왔다.

  혼자서 적진으로 파고든 그는 독특한 회전이 담긴 움직임으로 자연스레 방향전환을 하며 종횡무진 적병을 휩쓸었다.

  그 뒤를 따라온 12군단의 병사들이 매섭게 사바 왕국군을 몰아쳤다.

  아사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독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군대는 엄청난 기세로 아군을 도륙하는 스파르타쿠스의 위용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12군단은 그저 롱소드를 휘두를 간격을 유지한 채 한곳으로 집결해 스파르타쿠스의 뒤를 쫓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군단장님을 따르자!"

  물론 스파르타쿠스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돌진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군신 마르스가 현세에 강림한 듯한 위용을 뽐내면서도 수시로 전황을 살피고 아군과 자신의 간격을 조정했다.

  무기를 휘두르고 적을 베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졌고, 의식은 오히려 군의 움직임을 살피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따라오는 부하들의 상태를 살피면서도 그의 검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단신으로 수만의 적진을 휘젓는 그 압도적인 위압감.

  단순히 겁을 모르는 자의 만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스파르타쿠스의 위용이 지나치게 뛰어났다.

  "으아아아! 괴물이다!"

  "도, 도망쳐! 좀 비켜봐! 앞으로 가면 죽는다고!"

  완전히 사기가 떨어져 버린 사바 왕국군의 병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스파르타쿠스의 시선이 향한 곳에 있는 병사들은 다급히 도망치려다가 같은 아군을 밀어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마인 왕국의 장수 한 명이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며 스파르타쿠스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왔다.

  아무리 상대방의 갑옷이 단단해도 도끼에 온 체중을 실어 내리찍으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노옴!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도끼를 들고 돌진해오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었다.

  스파르타쿠스의 앞에서 장수는 아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 살림이 네놈의 목숨을 거둬 가주마. 자아! 그 잔재주를 이 몸 앞에서도 부려······."

  스파르타쿠스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쏟아내는 적장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검투시합이라면 몰라도 여긴 전장이다.

  그는 한순간에 거리를 좁혀 살림의 거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콰작!

  일 검에 상대방의 도낏자루를 부숴버린 스파르타쿠스는 다음 공격으로 깔끔하게 적장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자신의 용맹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려던 살림은 그렇게 단 이합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다.

  그가 일반 병사보다 나았던 점이라고는 스파르타쿠스에게 딱 한 번 더 검을 휘두르게 했다는 것이었다.

  적장의 목을 날려버린 스파르타쿠스가 아군을 향해 거친 포효를 터트렸다.

  "적장을 베었다! 로마의 용사들이여. 이 여세를 몰아 적들을 유린하라!"

  마르쿠스가 전황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렇게 스파르타쿠스가 적의 중앙을 완전히 헤집어둔 뒤였다.

  연합군의 대군은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12군단에게 돌파당해 절반으로 분단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스파르타쿠스는 신들린 듯이 적병을 학살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니 중앙이 버티는 사이 좌익이 적의 후위를 타격한다는 전략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사실 어이없는 건 스파르타쿠스의 뒤를 따르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군단장님은 대체 어디까지 가시는 거냐?"

  "몰라. 적의 총사령관이라도 베어버릴 작정이신가 보지."

  군단의 가장 후미에 있는 병사들이 앞에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어이! 군단장님은 어디 계셔?"

  "···안 보이냐? 저기 맨 앞에 계시잖아."

  얼떨결에 스파르타쿠스 대신 지휘를 맡은 선임 백인대장도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니, 세상에 어느 군단장이 혼자 뛰쳐나가서 선두에서 날뛰는 거야?"

  "저기, 방금 적장의 목을 날려버린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백인대장들은 군단장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악을 쓰며 적병을 베어 넘기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기분 좋은 변수에 어안이 벙벙해진 마르쿠스는 이렇게 된 이상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면서도 당황한 티는 내지 않고 차분하게 군단장들에게 돌격 신호를 보냈다.

  "전군! 용맹한 12군단을 따르라! 적은 이미 진형이 무너졌다. 포위해서 섬멸하라!"

  눈치가 빠른 수레나스는 이것조차 이미 다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우익을 지원하기 위해 보냈던 병력들까지 다시 불러들여 공세로 전환했다.

  "계획대로! 12군단이 적진을 돌파했다! 뒤를 따르라 병사들이여!"

  < 165. 향료 전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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