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 이집트의 선택 (169/326)

  < 168. 이집트의 선택 >

  168.

  이집트인들과 자부심이란 단어는 서로를 분리할 수가 없는 관계다.

  이집트인들은 왕족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자신들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야말로 모든 문명의 기원이자 근본이며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이집트에서 비롯된 파생국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현시대의 최강국인 로마도 그들이 볼 때는 아직 역사가 빈약한 신흥강국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로마가 건국되기 3천 년 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집트가 과거만큼 위상을 떨치고 있지 못했지만, 그들은 수천 년 이상을 인류 문명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르는 법이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될 시기가 당연히 오리라고 믿었다.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역사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집트가 잠깐 주춤했던 시기는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다.

  상하 이집트가 통일되고 천년 뒤 고왕국 시대가 끝날 때 나라 안팎으로 큰 혼란이 있었다.

  그 뒤 다시 중흥기를 거쳐 300년 이상을 번창한 뒤 다시 힉소스인에게 점령당한 바 있었다.

  그래도 이집트는 다시 국력을 회복해 천 년 가까이 번영을 누렸다.

  이런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이집트인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수천 년간 인류 문명의 정점에 군림해왔으니 국가를 통치하는 왕을 신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호루스의 화신인 파라오는 잠시 하계에 내려와 신들이 선택한 대지인 이집트를 통치한다.

  그리고 약속된 기간이 끝나면 그 영혼은 육신을 떠나 잠시 영혼의 세계에 머물다가 마땅한 때가 되면 부활할 거라고 여겨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부활의 때는 멀다.

  육신이 혼을 떠난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은 다시 볼 수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슬퍼할 필요 없다고 세뇌 수준으로 강조해대는 제사장들의 말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가족이 죽었는데 슬퍼할 필요가 없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지 않아?"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커다란 의자 위에 비스듬하게 앉아있는 소년이 클레오파트라의 말을 받았다.

  "대답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단순한 혼잣말입니까?"

  "네 좋을 대로 해석해."

  "그러면 답해드리죠. 바보 같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저에겐 흥미롭게 보이더군요. 사람의 죽음을 정의하는 건 각 문화권마다 다 다르니 어디가 정답이라고 할 마음은 없습니다. 방식이 어떻든 진심을 담아 사자에 대해 예우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바보 같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네."

  "그나저나 알렉산드리아는 참으로 흥미로운 도시군요. 평소 읽어보고 싶었던 주제를 다룬 책이 이렇게 많다니 공주님들을 따라오길 잘했습니다."

  여전히 파피루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소년은 바로 옥타비우스였다.

  이집트의 공주들과 부쩍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그는 공주들을 보필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번 알렉산드리아행에 동행했다.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인 장소는 역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의 도움으로 잔뜩 책을 빌려온 그는 독서삼매경에 빠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부친상을 당한 공주들에게는 미안했으나, 옥타비우스는 이번 알렉산드리아행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파라오가 위독하다는 서신을 받았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아울레테스의 건강과 나이를 고려해보면 그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이제 아버님의 미라가 완성됐다는데 곧 장례식이 열릴 거야. 너도 상객으로 참가할 거지?"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참석하는 게 예의이자 도리겠지요."

  "그럼 그렇게 말해둘 게."

  클레오파트라는 복잡한 얼굴로 침상에 몸을 뉘었다.

  그녀의 옆에는 환관 아폴로도로스가 아무런 말도 없이 기립해 있었다.

  본래 이집트의 여자 왕족들은 환관의 동행 없이는 가족이 아닌 남자와 단둘이 있을 수 없다.

  이집트 밖에서야 그런 관습 따위 사뿐하게 무시했지만, 국내로 돌아온 이상 파라오로 즉위하기 전까지는 법을 따라야만 했다.

  그녀는 온종일 자리에 앉아 책만 읽고 있는 옥타비우스를 흘겨보며 물었다.

  "넌 하루 종일 거기서 글만 읽고 시만 쓰고 있으면 지겹지도 않니? 그럴 거면 네 방에 있지 왜 여기까지 오는 거야?"

  "제가 있으면 방해가 됩니까?"

  "네가 있으면 쟬 밖으로 나가라고 할 수가 없잖아."

  클레오파트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폴로도로스를 가리켰다.

  이전에 그나이우스가 벌인 소동으로 환관 세력의 권력은 사실상 없어진 수준이었으나, 환관이란 제도 자체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리아와 로마에서 편하게 지내오던 클레오파트라는 거추장스럽게 달라붙는 환관들이 영 불편했다.

  옛날에는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원래 환관들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에 실린 짜증이 섞인 기색을 느낀 옥타비우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책에서 눈을 뗐다.

  "저도 하루 종일 방에 있고 싶은데 하도 귀찮게 하는 사람이 많아서요. 여기에 오면 절 찾는 사람이 없으니······."

  "귀찮게 한다고? 누가? 어째서?"

  "누구 하나라고 집어서 말하기엔 너무 많습니다. 공주님과 함께 온데다가 친밀해 보이기까지 하니 관심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예상했던 바입니다."

  "정신을 못 차린 인간들이 아직도 그렇게 궁에 많을 줄이야."

  어린 옥타비우스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안 봐도 짐작이 갔다.

  이집트의 공주들이 어린 미소년들을 옆에 두고 관계를 즐기는 건 그리 특이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옥타비우스의 외모는 충분히 예쁘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됐다.

  클레오파트라든 아르시노에든 누구의 정부라도 상관없었다.

  귀족들은 차기 파라오로 등극할 공주와 몸을 섞은 사이라면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두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당연히 옥타비우스 입장에선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불쾌하기 그지없는 오해였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해명하고 부인하는 것도 짜증 났다.

  그래서 그냥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클레오파트라의 궁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클레오파트라에게도 아부를 하러 오는 귀족들이 상당수 있긴 했어도 감히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진 못했다.

  "그래도 공주님을 계속 귀찮게 해드려선 안 되겠지요. 내일부터는 아르시노에 님의 궁에 가겠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내가 따끔하게 명령을 내려놓을까?"

  "아닙니다. 아르시노에 공주님도 마음이 심란하실 테니 가서 말동무라도 되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여기 도착하고 나서는 그 애 얼굴도 통 못 봤네."

  클레오파트라는 파라오의 장례와 이후 이어질 즉위식의 준비, 거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제사장들과 귀족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최근 자유 시간을 거의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즐기던 카드와 체스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뒤늦게 아르시노에도 자신만큼 바쁠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환관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다니던 사람은 아르시노에였다.

  아부하는 귀족들을 잔뜩 데리고 다니며 권위를 과시했던 사람도 그녀였다.

  그랬던 만큼 솔직히 조금 궁금했다.

  전형적인 이집트의 왕족에서 탈피한 그녀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한번 보고 싶었다.

  그녀는 주섬주섬 책을 챙겨 나가는 옥타비우스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 아이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잘 보고 와서 나한테도 말해줘."

  문 앞에 멈춰선 옥타비우스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어째 목소리에 묘한 즐거움이 느껴지는데 동생이 고생하는 걸 보고 싶으신 겁니까?"

  "설마. 그냥 귀여운 동생이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번 보고 싶을 뿐이야."

  옥타비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클레오파트라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의 짙은 눈동자를 본 클레오파트라는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왠지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속내가 전부 간파당하는 기분이었던 까닭이다.

  '아직 열다섯도 안 된 애 눈동자가 무슨······.'

  클레오파트라는 꽤 많이 친해진 지금도 가끔 옥타비우스를 볼 때면 흠칫할 때가 있었다.

  옥타비우스는 그런 클레오파트라의 심정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차기 파라오시여."

  ※※※

  "이제 곧 즉위식이 열릴 겁니다. 아르시노에님, 마르쿠스 메소포타미쿠스 님은 정말 이번 즉위식에 참석하실 수 없는 겁니까?"

  "아마 무리일걸. 그분께서는 지금쯤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계실 테니까."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참가해 주신다면 공주님의 권위가 확 살아날 텐데 조금 아쉽군요. 뭐, 이제 와서 다른 마음을 품는 자가 있을 리는 없다고 보지만요."

  아르시노에는 자신의 전속 환관이자 가정교사였던 가니메데스를 무감정한 눈길로 흘겨보았다.

  "그러게. 다른 마음을 품는 불충한 무리가 나와서는 안 되겠지. 예를 들면 파라오의 권위를 등에 업고 땅에 떨어진 권위를 다시 세워보려는 그런 무리 말이야."

  허를 찔린 가니메데스의 몸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어졌다.

  "공주님···저는 결코 그런 마음이······."

  "나는 너를 지칭한 적이 없는데? 혹시 찔리기라도 하는 거야?"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불충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쭉 아르시노에 님의 충실한 종복일 뿐입니다."

  "그래야지. 주제를 모르고 설치면 뒤끝이 좋지 않은 법이야. 선대 파라오께서 통치하실 때에도 몇 번이나 피바람이 불었잖아? 난 그래도 자신만은 예외일 거라고 믿는 우둔한 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싸늘함이 풀풀 날리는 아르시노에의 일침에 가니메데스는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로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눈치가 이렇게 빨라져서는······.'

  이전에 공주들이 잠깐 이집트에 돌아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아르시노에의 변화는 특히 더 놀라웠다.

  이전에는 가니메데스의 말이라면 의심조차 하지 않고 믿었었는데 마르쿠스가 이집트를 방문한 그 뒤로는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점점 환관들의 말을 의심하고 듣지 않더니 기어이 로마로 유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가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는데.'

  그때는 아직 환관 세력의 권력이 건재했으니 충분히 이유를 만들어서 공주의 유학을 무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후회에 불과했다.

  폼페이우스의 장남을 이용해 마르쿠스의 세력을 견제해 보려고 했던 대가로 환관들의 권력 기반은 뿌리째 뽑혀나갔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권력을 가졌던 무리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다시 새로운 권력자들이 채우는 법이다.

  지금 이집트의 왕실은 아울레테스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환관들의 자리를 대체했다.

  한 번 손에 넣은 권력을 손에서 놓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아울레테스의 측근들은 다음 대의 파라오가 들어서도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권력의 핵심인 파라오를 지지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재확인받을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사실상 단독통치를 했던 아울레테스와 다르게 이번에는 관습대로 두 사람의 파라오가 공동으로 통치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공동 통치를 한다고 해도 한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뜰 수는 없다.

  파라오가 두 명이라고 해도 권력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는 건 아니었다.

  세력의 추는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었고 국정을 주도하는 건 권력을 지닌 파라오였다.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실세가 되는 파라오의 측근으로 남을 필요가 있었다.

  귀족들이 쉴 새 없이 아르시노에와 클레오파트라를 방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 중 누구를 지지하는 게 좋을지 가늠해 보려 했다.

  이미 권력에서 밀려난 가니메데스 같은 환관들도 파라오에게 기생해 다시 중흥을 누려보려는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아르시노에 역시 옥타비우스에게 몰래 귀띔을 받아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귀족들과 환관들은 생각만큼 아르시노에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난감할 따름이었다.

  어제부터 아르시노에의 궁으로 독서 장소를 옮긴 옥타비우스가 옆에서 한마디를 거들었다.

  "공주님, 이 이집트는 오로지 파라오의 것입니다. 산과 강, 바다와 땅부터 모든 백성들과 노예들의 목숨은 파라오에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변의 목소리에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역시 그렇겠지?"

  "물론입니다.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이니까요. 이 세상에서 파라오에게 간언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건 오직 로마뿐입니다."

  "그렇다는데 가니메데스, 넌 어떻게 생각해?"

  이 상황에서 가니메데스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넙죽 고개를 숙였다.

  "저 도련님의 말이 옳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권력은 파라오에게 집중되는 것이 맞습니다."

  본래 이집트의 파라오는 전제군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힘이 약해지고 파라오의 권위가 떨어진 뒤로는 귀족들의 힘이 많이 올라왔다.

  명목상 파라오는 절대군주가 맞았지만 이전처럼 모든 걸 혼자서 휘두르지 못했다.

  당장 선대 파라오인 아울레테스만 해도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기 전까지는 알렉산드리아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도 마르쿠스가 이집트를 완전히 수중에 넣으면서 달라졌다.

  옥타비우스는 새로운 파라오의 즉위와 함께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확실히 못 박으라고 종용했다.

  물론 옛날과 다르게 현 파라오의 절대 권력의 기반은 로마의 지지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아르시노에는 이걸 조금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떠보려고 하는 귀족들에게 이런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아예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으로 공식적인 성명을 공표했다.

  "들어라, 알렉산드리아의 백성들과 귀족들이여. 나 아르시노에는 위대한 파라오 아울레테스의 후계자로서 확실히 선언하겠다.

  최근 왕족들의 의중을 떠보며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무엄한 무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아직 파라오의 장례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무도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파라오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모든 귀족들은 열과 성을 다해 장례 절차에 임하라. 새로운 파라오의 즉위식이 거행될 때까지 삿된 욕망을 드러내는 이들은 호루스 화신의 부활을 방해하는 역적으로 간주해 엄히 벌을 내릴 것이다.

  "

  당연한 말이지만 아르시노에의 이 발표에는 옥타비우스의 입김도 들어가 있었다.

  백성들은 공주의 선언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파라오의 장례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자신들의 이권에만 관심이 있는 귀족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고위 귀족들은 상당히 당황했다.

  아직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확실히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고민하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차기 권력의 핵심은 과연 아르시노에인가, 아니면 클레오파트라인가.

  골치 아프게도 두 명 다 마르쿠스와 가까운 사이인지라 아직도 명쾌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두 공주 모두 알렉산드리아의 보석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미모를 지녔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마르쿠스도 남자인 이상 분명히 공주들 중 누군가와는 정을 통했을 거라는 게 귀족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미 둘 다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권은 과연 누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공주 중 한 명이 마르쿠스의 아이를 가졌다면 판단하는 게 훨씬 쉬웠을 텐데······."

  어떤 귀족은 그런 불충한 소리를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게 귀족들이 내심 가지고 있는 속마음이었다.

  만약 마르쿠스가 파라오의 즉위식에 참여했다면 그가 누구를 더 총애하는지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라비아 원정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 상황이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기만 해서는 다른 자들에게 선수를 뺏길 우려가 있다.

  몇몇 귀족들은 자신들의 감을 믿고 일찌감치 선택을 내리기도 했다.

  어차피 두 공주 다 마르쿠스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설령 권력 싸움에서 밀려도 아예 몰락할 일은 없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파라오의 즉위를 앞둔 이집트의 정국은 수면 밑에서 격한 흔들림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이제 막 아라비아 원정을 끝내고 귀환하는 도중이었다.

  마르쿠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모든 이들의 시선은 아직 두 공주에게만 쏠려 있었다.

  두 사람이 데려온 어린 소년을 주목하는 이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

  < 168. 이집트의 선택 > 끝

2